[시로 만난 별 Ⅱ 배우 고두심] 겨울엔 봄을 누리는 게
[시로 만난 별 Ⅱ 배우 고두심] 겨울엔 봄을 누리는 게
  • 장재선(시인)
  • 승인 2022.12.14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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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여행, 고두심이 좋아서〉 포스터 이미지 ⓒ채널A

겨울엔 봄을 누리는 게
- 배우 고두심

장재선(시인)

 

뭍으로 향한 바람이
그를 서울로 데려다줬을 때
남양군도서 살아 나온
아방 어망의 끈기와 슬기가
함께 따라왔을 것이다

시작의 떨림을 이기지 못해
뛰쳐나갔으나
곧 돌아와 다시 선 것은
섬의 유전인자가 불러서였을 것이다

양촌리 맏며느리의 유순함도
사랑의 굴레를 벗어던진 독함도
모두 그의 안에서 나왔으니
냉정과 열정 사이의 시간들이
커튼콜의 꿈속에 흘러왔다

그 세상에서 나날이 빛났으나
여름에 일찍 가을을 만났으니
겨울엔 봄을 누리는 게
마땅하고 마땅한 조화일 것이다.

 


시 작 노 트

배우 고두심 씨와 20여 년 전 통화한 내용이 인상적이어서 지금도 기억한다. 그가 제주의 어느 문예지를 후원한다는 소식을 들은 후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시대가 첨단으로 달려갈수록 맑고 향기나는 시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 몇 년 후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주관한 가톨릭매스컴대상 시상식장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방송 부문, 나는 신문 부문 수상자여서 옆자리였다. 그는 동석한 방송 작가와 시상식 내내 유쾌하게 대화를 나눴다. 떠든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활기찼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드라마 〈전원일기〉 속의 음전한 며느리와 〈사랑의 굴레〉에서의 박정숙 여사가 다 있구나.

내 기사를 더듬어보니 그가 이렇게 말했다고 적혀 있다. “연기자는 국민정서에 영향을 미치는 공인입니다. 개인사를 넘어 사회에 따뜻함을 전할 의무가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살도록 노력할게요.”

그가 그렇게 살아왔는지는 보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그가 한국인의 고단한 마음을 어루만져 온 대배우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는 지상파 연기대상 최다 수상자이다. 방송 3사와 백상예술대상에서 모두 대상을 수상한 유일한 배우이다. “오랫동안 광고모델을 하셨던 미원이 대상그룹 제품이잖아요. 대상과 이래저래 관련이 깊군요.” 한 후배(송승환)가 유튜브 인터뷰에서 이런 농담을 건네자, 그가 “정말 그렇다.”라며 웃는 것을 봤다.

그는 젊을 때부터 어머니 역을 많이 했다. 그래서 인생의 늦가을에 있는 지금은 로맨스 물을 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고 한다. 영화 〈빛나는 순간〉에서 그 바람이 이뤄지기도 했다. 앞으로도 그 꿈이 늙지 않고 지속됐으면 좋겠다.

 


장재선 문화일보 선임기자. 시집 『기울지 않는 길』, 시-산문집 『시로 만난 별들』, 산문집 『영화로 보는 세상』 등 출간. 서정주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등 수상.

 

 

* 《쿨투라》 2022년 12월호(통권 10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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