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진정한 교육
[에세이] 진정한 교육
  • 최영한(경제학자, 전 웅지세무대학교 총장)
  • 승인 2022.12.14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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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KBS의 〈인간극장〉이란 프로그램을 시청할 기회가 있었다. 한 사람 또는 가족의 생애나 삶을 드라마처럼 엮어 4-5일 연속으로 방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젊은 플룻 연주자와 바이올린 연주자 부부가 아이들 셋과 함께 가파도에 정착하여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플롯을 연주하는 남편은 41세, 바이얼린 연주자인 아내는 33세, 큰 아이가 8세 가량이며 2-3살 터울로 세 남매가 있으니 모두 다섯 식구가 살고 있었다.

이들이 가파도에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가파도가 고향도 아니고 부모의 직장이 가파도인 것도 아니며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는 곳 역시 가파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 놓치지 않고 시청한 것이 아니라 어떤 연유로 그리 들어왔는지 모르겠으나 서울생활, 도시생활 등 빈틈없는 생활이 싫었고 그런 빡빡한 삶이 과연 인간의 최종목적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것으로 보여진다. 아이들에게 자연을 접하게 만들고 내 삶이 남에 의해 꾸려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삶의 주체로 살아간다는 느낌이 중요했던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가파도에 왔고 파도소리에서 음악적 영감을 얻고 내 가까이 있는 가족이 소중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 모양이다.

가파도는 대한민국 거의 최남단에 위치한 섬이다. 제주 본섬에서 배를 타고 더 달려야 가파도가 나오며 해안선 길이가 4.2㎞에 불과하고 인구래야 고작 407명인 작은 섬이다. 우리나라 최남단의 마라도보다는 본섬 제주도에 조금 가깝다. 그곳 주민들의 생업生業은 아마도 어업일 것이다. 농토가 넓지 않으니 자급자족하는 수준에 만족할 것이며 바다로 나아가 고기를 잡는 일이 그들의 생업 아닐까 싶다. 초등학교는 있는데 학생 수가 얼마 되지 않고 상급학교인 중학교나 고등학교는 보이지 않고 젊은 또래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대한민국에서 음악을 전공했다면 가정도 부유했을 것인데 멀리 가파도에 찾아온 그들의 삶이 퍽 궁금했다. 남편은 누추한 집을 얻어 하나씩 수리하며 살아가고 있었고 아내 역시 그곳 생활에 순응하며 늘 밝은 모습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아이들의 모습인데 그들 얼굴에 그림자가 하나 없었다. 무지개를 보면 무지개에 몰입하고 학교 친구들과 지낼 때에는 그들에게 몰입하고 아빠와 스킨쉽을 할 때에는 아빠에게 최선을 다하며 엄마와 대화 할 때에는 나름 심각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려 노력한다.

연주자가 연주생활을 포기한다면 상실감이 매우 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파도에 있다는 것은 연주자로서 포기된 삶 이상의 편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은 음악인 세포가 살아있어 동네에서 음악하는 분과 함께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가파도만의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아내의 음악적 소견은 듣지 못했는데 이곳에서 가족에 몰입하며 남편이 소중하다는 것,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 멀리 계신 부모님이 그동안 고마웠다는 것을 진심으로 느꼈다고 했다.

쪼그려 앉아도 비좁은 공간에 가스레인지를 두고 그 곳에서 조리하면서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는 아내 모습을 보며 그들에게 행복이 가득하다는 걸 알았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남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내 감정을 숨기며 누구에겐가 보여주려는 액션이 없는 것만으로도 피로감이 확 줄어들 것이다. 음악이 무언지 모르나 아이들 학교에서 그들은 플룻과 피아노를 연주했고 같이 연주활동 하던 분과의 끈도 놓치지 않고 가끔은 음악인으로 자신을 표출할 기회도 갖는다.

학교에서 돌아오자 바로 학원으로 뛰어가고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한 학원 마치고 다른 학원으로 뛰어가는 것이 도시 아이들 모습이다. 가파도 삶의 모습은 달랐다. 학교에서 친구와 충분히 놀고 하고 싶은 이야기 충분히 하고 집에 돌아와 엄마와 또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고 아빠와 함께 바다에 나아가 여러 가지 체험을 하는 것이 이들의 교육이다. 아름다운 저녁놀을 본 아빠가 조리하던 아내를 불러 너무 아름답다며 함께 보자 하는 모습이 압권이었다. 부동산이 문제가 아니며 자동차가 중요한 것이 아니며 부의 크기가 중요한 것 역시 아니다. 사람으로 주체적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영한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했다. 경제학박사이며, 웅지세무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 《쿨투라》 2022년 12월호(통권 10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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