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월평] 무의미의 의미, 모름과 앎 사이에 순환하는 존재에 관하여: 원버튼The Onebutton의 〈달〉, 그리고 〈원〉
[음악 월평] 무의미의 의미, 모름과 앎 사이에 순환하는 존재에 관하여: 원버튼The Onebutton의 〈달〉, 그리고 〈원〉
  • 이준행(음악가)
  • 승인 2022.12.1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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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ebutton

지난 10월, 홍대에서 공연을 함께한 밴드가 있다. 처음에는 ‘앳된 얼굴들이 보이는 밴드구나.’ 정도의 사소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였다. 그러나 그 사소함을 뚫고 나오는 가사들, 그리고 그 표현을 뒷받침하는 훌륭한 연주력에 흐트러진 자세를 고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비평문을 작성하기 위해 간단한 정보를 요청했을 때, 돌아온 정성어린 그들의 밴드 소개글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보컬 예새별, 기타의 강성일, 베이스의 윤희영, 드럼의 노윤영으로 이루어진 4인조 밴드 원버튼The Onebutton은 우리에게 이런 메시지를 남겨둔다.

세상에 작은 것들도 모두 필요한 곳이 있고 쓸모없는 것은 없기에,
당신과 나도 모두 하나의 단추처럼 제자리에 맞춰지기를 바란다.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누군가에게도 우울은 있다. 
깊게 숨겨 놓은 우울함을 슬프지 않게, 쉽게 이야기 할 수 없었던 당신의 이야기를 대신 노래한다.

‘듣고 받아들이는 느낌은 자유’
우리의 음악은 당신의 감상으로 완성된다.

그들은 ‘대신’ 노래한다고 말한다. 행복 이면에 위치한 우울을 우울하지 않게 표현하려, 기꺼이 자기 자신을 화자로 내어놓는 것이다. 동시에 그들은 자신의 작품을 겸허하게 독자의 몫으로 내어 놓는다. 이 확신에 찬 선언 덕분에,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퍼즐 조각을 들고 이 작품을 완성시킬 자격을 획득하게 되었다. 2020년 발표된 원버튼의 첫 EP 《Blumy》의 〈달〉과 〈원Circle〉의 둥근 버튼을 함께 눌러보자.

어두운 공기를 차가운 밤들을 / 우리는 계속해서 밝혀가
아무도 오지 않는 건 / 저 먼 곳에서
모두들 어디로 계속 어디로 / 사라져갔는지 몰랐지
아직 많은 것들을 찾지도 못한 것 같아 / 계속 나는 무의미한 것에 의미를 두려 해
아직도 많은 날들이 남아 있단 걸 알지만 / 계속해서 더 깊은 곳으로 헤엄쳐

〈달〉의 첫 구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어두운 공기와 차가운 밤이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의 수식구는 도치되어 있다. 차가운 공기와 어두운 밤은 서로의 수식구가 바뀌면서, 공기라는 질감에는 색채가 부여되며 밤이라는 시간에는 촉각이 부여된다. 이 도치로 인해서 부정적인 속성이 더욱 양각화되며, 그것을 계속해서 밝혀가겠다는 ‘달’의 신념은 한층 더 강화된다. 하지만 우리는 무언가를 밝히거나 혹은 밝혀낼수록 더 많은 것들이 어두워진다는 사실, 그리고 실은 우리가 더 모르는 것이 산재한다는 사실에 근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The Onebutton
ⓒThe Onebutton

앎을 향한 달의 여정은 모름을 불러 온다. 무의미는 무의미할 때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것에 의미를 두려 할수록 의미는 사라진다. 우리에겐 아직도 많은 날들, 즉 시간적 여유가 남아 있다. 그러나 무의미의 의미를 찾으려는 무한한 탐구는 이 시간마저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모르는 남들은 차가운 맘들을 / 모두들 계속해서 맞춰가
알겠어 이제 그만해 / 계속 그럼 뭐해
달라질 건 하나 없는 / 전부 바보 같은 일뿐이잖아

2절 역시 표현의 도치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차가운 남들과 모르는 맘들은, 모르는 남들과 차가운 맘으로 서로의 형태를 바꾼다. 그러나 도치가 되어도 여기서의 본질은 같다. 아마 남들도 무언가를 몰랐을 때에는 순수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의미의 의미를 탐할수록 스스로를 무언가에 맞춰가고 순응하는 삶으로 변해간다. 그 모습을 확인한 화자는 자조 섞인 독백을 남긴다.

어젯밤 꿈속이 난 기억이 안 나 / 점점 더 흐려지고 사라져간다
어젯밤 꿈속에 난 무엇을 봤나 / 다 모르지 모르지
어젯밤 꿈 속에 난
어젯밤 꿈 속에 난

후렴에 와서 화자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으며 흐려지고 사라지는 상태가 된다. ‘점점 더 흐려지고 사라져간다’는 기억을 지칭하는 말인 동시에 달인 화자의 존재 자체가 흐려지고 사라져간다는 것을 뜻한다. 존재의 사라짐과 동시에 ‘다 모르지’라는 무지의 선언이 이어진다. 특히 곡의 마지막 후렴구에서는 ‘어젯밤 꿈 속에 난’ 다음 마디에는 가사가 나오지 않고 기타 리프를 위시한 악기 연주만이 이어진다. 이것은 화자가 자신의 발화마저 잃은 채, 존재의 흐려짐과 사라짐을 드러내는 형식적 표지이다. 무의미의 의미를 탐구하는 달의 여정은 존재의 흐려짐과 사라짐, 그리고 언어의 사라짐으로 돌아오고 만다.

너는 알 거라 /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보이지 않는 것들을 / 볼 수 있을 거라고
시간은 계속 나를 /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중략)

아 돌고 돌아 계속 돌고 돌아 / 그러다 누워 잠에 들지
아 돌고 돌아 계속 돌고 돌아 / 그러다 누워 잠에 들지

지난날의 우리를 잊어가고 있어 / 아니 빛을 잃어가고 있는 건가
어린 나에게 / 빚을 져가고 있는 건가
지난 어린 나에게 / 빚을 져가는 건가

앨범의 타이틀 곡 〈원〉은 〈달〉의 연장선상에 있다. ‘달’이라는 구체적인 원은 이제 추상화된 ‘원’이 되어버린다. 여기서 거짓말쟁이를 만드는 주체는 자기 자신이 아닌 ‘시간’이다. 주체적으로 의미를 탐구하던 정력적이었던 달은. 이제 시간에게 주체의 자리를 내어주고 만다. 시간은 단 한 번의 멈춤도 없이 과거와 미래로 뻗은 무한대의 선이다. 인간은 그것에 선을 긋고, 원의 형태를 부여하여 끊임없이 돌고 도는 시계를 창조했다. 인위적인 원 안에서 화자는 계속해서 돌고 돈다. 원형의 시간은 끊임없이 1부터 12의 숫자를 돌고, 그 원을 벗어나는 탈출구는 주어지지 않는다. 시간 그 자신은 무한으로 뻗어 있으면서, 자신을 원형으로 보이게 하고 우리를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비웃는 것이다.

ⓒThe Onebutton
ⓒThe Onebutton

화자는 ‘우리를 잊어가는 것’과 ‘빛을 잃어가는 것’ 빛과 빚이라는 운율로서 동질성의 범주로 묶는다. ‘빚을 져가고 있는 건가’, ‘빚을 져가는 건가’ 부분의 가창이 [비즐]이라는 발음이 아닌 [비츨]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놓쳐선 안 된다. 빚을 져가는 것이 ‘빛이 져가고 있다’라는 동시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린 모두 알고 있어 / 너도 알고 있잖아
나도 알고 있는데 / 너도 알고 있잖아
우린 모두 알고 있어 / 너도 알고 있잖아
모두 알고 있잖아

우리는 서로 이 모든 사실들을 알고 있다. 무언가를 비추려 했던 달이었던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를 속임수로 만드는 추상적인 원의 세계 속에 갇혀버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달〉에서 이루어진 모름의 선언은 「원」에 와서 앎의 선언이 된다. 그러나 본질은 동일하다. 알고 있지만 우리가 어찌 할 수 없는 모름에 관한 선언인 것이다. 모르는 것에 대해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점점 사라지는 자신의 존재, 그에 비례하여 자라나는 알고 싶지 않은 ‘앎’에 대한 선언이다.

 

 


이준행 음악가. 락 밴드 벤치위레오 보컬, 기타로 활동 중.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시 전공 박사과정 수료. 시와 음악의 연관성, 그리고 시와 음악이 주는 즐거움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 《쿨투라》 2022년 12월호(통권 10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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