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사진으로 만든 어록’ 은 관조 스님의 사리입니다: 관조 스님 유고 사진집, 『觀照관조』
[북리뷰] ‘사진으로 만든 어록’ 은 관조 스님의 사리입니다: 관조 스님 유고 사진집, 『觀照관조』
  • 설재원(본지 에디터)
  • 승인 2022.12.1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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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나와 상대를 동시에 정화시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나 자신이 정화되고
사진을 보면서 사람들이 정화되기를 바랍니다.”
관룡사 용선대 불상

『觀照관조』(이하 『관조』)는 수행자이면서 사진가로 한국 불교사에 한 획을 그은 관조 스님(1943-2006)의 유고 사진집이다. 1975년부터 근 30년간 찍어온 20만 점이 넘는 사진 가운데 불교와 관련된 사진 278점을 선별하여 담은 이 책은 필름카메라로 작업한 사진들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이번 사진집은 수록작의 절반이 최초 공개되는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주로 소재별로 나뉘었던 전작 『승가1』이나 『사찰 꽃살문』 등과 달리 이번에는 한국 불교이 모든 소재를 총망라 하였다. “나뭇이 하나, 돌멩이 하나에도 부처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 광대한 우주공간의 그 어느 것이나 다 부처의 법신입니다.”라는 관조 스님의 말씀을 따른 이번 사진집은 스님이 10대 시절부터 뿌리내렸던 불가를 거침없이 보여주고 있다.

스님의 작품들은 스님의 법사리法舍利입니다. 사리가 계정혜(계정혜) 삼학(삼학)의 수행결정체라면 스님의 작품이야말로 진정 스님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사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중략) 저는 스님의 사리가 세상을 깨우치고 맑히는 지혜의 법문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스님의 작품 활동은 단순한 예술 행위가 아니라 바로 수행 그 자체였습니다. 피사체에 몰입하는 순간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삼매의 경지에 드셨던 것입니다.
- 「출간의 변」 중에서

『관조』의 여정은 스님의 출가본사이자 평생을 주석했던 부산 범어사에서 출발한다. 속세와 탈속의 경계인 사찰로 들어서면 눈 앞에 당간지주를 마주하게 되고, 곧이어 절집의 전경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 어우러진 탑과 석등을 만난 후 대웅전을 포함한 각 전각을 둘러보면서 그 안의 불상, 탱화, 닫집, 문살, 수미단, 나한, 단청 등을 하나하나 담는다. 이어 수행자들의 일상 공간인 승방, 공양간 등의 사계절 모습을 들여다본 후, 다비식과 수계식을 비롯한 특별한 의식을 전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범종, 부도, 탑비 등까지 두루 짚은 뒤에 다리를 건너 폐사지로 향한다.

『관조』는 사찰이 자연과 어우러져 존재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 만행의 길에는 자연과 인간의 만화萬化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사찰 속 전각과 탑 등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들이 자연과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자연과 하나되어 존재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사소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들,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돌계단, 기와 등 그저 묵묵히 세월의 자국을 간직해온 사물들 역시 큰스님의 시선 속에서는 하나같이 빛나고 있다. 또한 종교를 넘어 수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준 큰스님들의 친근한 모습, 쉽게 볼 수 없거나 이제는 볼 수 없는 문화유산들의 소중한 모습들이 반짝인다.

관조 스님

유·무생 모두를 가리지 않고 귀하게 여긴 관조 스님의 사진에는 아웃포커싱 된 것이 드물고, 대부분 대상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오늘날의 디지털 사진, 색다른 앵글과 기술을 추구하는 사진들과 비교했을 때 일견 단조롭거나 가라앉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성의 측면에서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빛을 발한다. 스님의 사진은 오로지 대상과 바라보는 사람의 교감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빛을 통과한 대상들은 정사각형 또는 직사각형 프레임 속에서, 사진을 들여다보는 이의 마음으로 들어와 여운을 남긴다. 현란한 이미지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평범하고 꾸밈없는 차분한 응시’는 비범한 힘을 분출한다.

또한 사찰의 모든 대중이 모여 땀 흘리며 일하는 울력을 통하여 수행과 노동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선농일치禪農一致의 현장도 사진 속에 담겨 있다. 선방禪房에서 정진하다가 잠시 밖으로 나와 눈부신 햇살 아래에서 단체 사진을 찍기 직전의 자연스러운 찰나를 담은 스님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다양한 형상의 나한을 떠올리게 한다. 전각의 검은 그림자, 촛불 등 스님의 렌즈 속으로 들어온 피사체들은 하나하나 고졸하고 푸근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스님의 꽃살문은 일찍이 서구에서도 그 독특한 아름다움과 창의성을 인정받았으며, 전국의 국립박물관과 해외 유수의 박물관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스님의 사진은 자연물의 모습을 선구적으로 추상화·패턴화하여 일상적 예술의 세계로 승격시켰으며, 이외에도 기와, 담장 등 사찰의 구석구석에서 삶에 묻어있는 정교한 구성과 깊은 뜻을 포착하고 있다.

森羅萬像天眞同 삼라만상천진동
念念菩提影寫中 염념보리영사중
莫問自我何處去 막문자아하처거
水北山南旣靡風 수북산남기미풍

삼라만상이 본래 부처니
찰나의 깨달음을 한 줄기 빛으로 담았네.
나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마라.
동서남북에 언제 바람이라도 일었더냐.
- 관조 스님 「열반송」 중에서

부산 범어사 사미수계

1960년 범어사로 출가한 관조 스님은 삼십 대 초반에 해인사 강원에서 강주講主 소임을, 다시 범어사에서 총무 소임을 맡은 이후 일체의 공직을 맡지 않고 1978년부터 범어사에 주석했다. 스스로 익힌 사진기술을 수행과 포교의 방편으로 삼아 전국 산사를 돌아다녔고, 관조 스님의 필름들은 현재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필름을 스캐닝하여 수록한 『관조』의 사진들은 선명한 해상도의 디지털 사진과 대조적으로 톤 다운되어 색감이 깊고 무거우며 피사체가 확연히 도드라지지 않아, 감상자가 천천히 세심하게 살펴볼 때 그 안에 깃든 힘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을 잘 드러내기 위해 『관조』는 일반적으로 사진집에 많이 쓰는 색감 표현에 좋은 종이가 아닌, 계조 표현에 좋은 종이를 선택하여 인쇄했다.

범어사 기와

“모든 것이 부처의 법신”이라는 스님의 화엄 세계는 ‘있는 그대로’ 이 사진집을 넘기는 이들의 가슴 깊숙한 곳에 닿을 것이다. 『관조』가 스님의 발원대로 한국의 불교문화를 널리 알리는 데 일조할 것을 기대하면서, 아울러 사진이라는 평면의 이미지가 그것을 바라보는 각각의 시선들과 만남으로써 또 다른 담론談論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찰나를 상상해본다. 이 책을 통해 스님의 법명과 같이 그윽이 관조하면서, 만물을 평등하고 넉넉하게 품어왔던 스님의 삶이 오래도록 뻗어가길 바라본다.

운문사 공양간

 

 

* 《쿨투라》 2022년 12월호(통권 10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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