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꽃들도 가끔은 토끼꿈을 꾼다
[꿈] 꽃들도 가끔은 토끼꿈을 꾼다
  • 혜범 스님
  • 승인 2022.12.30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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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 나도 꿈속이요 이것 저것이 꿈이로다
꿈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려는 꿈 꿈은 꾸어 무엇을 할 거나
- 민요 〈꿈타령〉 중에서

법당 앞 화단의 마른 겨울 꽃들에게 물어보니 꽃들도 가끔은 꿈을 꾼다 한다. 꿈은 현실에서의 체험이 꿈속에서 왜곡되고 변장되어 나타난다. 꿈속에 나타나는 표상은 현실 체험과 깊은 연관을 갖는다. 융합하거나 그 부분들이 조합되어 만들어지기도 하고, 서로 바뀌어 다른 것에 부딪혀 결부되기도 하고 상징되어 형상화되는 방법으로 나타난다 한다.

현실의 여러 가지 몽조와 그 응험이 바탕이 되어 연상해서 꿈으로 꾸어진다. 그러므로 꿈은 현실과 관련을 가지면서도 비현실적이라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불교에서 꿈은 크게 두 가지로 본다. 잠자는 동안 일어나는 무의식의 작용과 현실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희망이나 이상을 일컫는다. 우리가 꿈을 꾸는 건 기억과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희망, 바램은 결핍과 욕망의 발현이라 하여 본능적 충동의 해방설, 학습기억설, 회복설로 보기도 한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게 되고
이것이 소멸하므로 저것이 소멸한다.
- 『중아함경』 중에서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세계, 즉 우리들 몸과 마음의 체험세계에는 고유의 시간과 공간 구조를 가져야 한다. 또 4차원의 현실의 체험세계에서는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 그리고 우리는 과거와 미래의 경계인 현재를 살아간다. 그러므로 몸, 육신으로 사는 건 물리적인 삶이요, 마음으로 사는 건 정신세계로 사는 것이 된다. 물리학적인 세계에서는 시간의 방향성이 기본적으로 존재하지만 우리들 정신세계는 호기심과 상상으로 시간과 공간의 방향성, 고정성이 무시되기도 한다.

재미있는 건 영장류, 인류들만이 꿈을 꾸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척추동물들, 포유류, 심지어 일부 조류 및 파충류들도 꿈을 꾼다는 사실이다. 그렇듯 꿈을 꾼다면 주체가 있어야 한다. 악몽도 길몽도 꿀 수 있는 게 우리다. 흔히 간밤의 꿈은 소몽小夢이고 인생은 대몽大夢이라 비유한다.

그렇다면 꿈을 꾸는 주인공 내(大我)가 있어야 한다. 하여 꿈을 회상하고 내다보는 내(小我)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꿈속에서도 그 꿈을 주관하는 주인공과 그 주인공이 마주하는 사물과 대상인 세계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기억으로 나의 눈, 나의 귀, 내가 보는 관점과 방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현실에서의 선악미추, 희로애락애오욕을 충족시켜 주는 조건으로.

불교에서는 물리적인 육신을 물, 불, 흙, 바람으로 인연되어 연기되어 있다 한다. 하여 우리들의 몸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범주의 요소로 오온五蘊이라 한다. 곧 물질적인 것을 의미하는 색色, 감각의 수受, 인식 작용의 상想, 의지 작용의 행行, 마음 작용의 식識으로 보는 것이다.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집착하는 모든 현실 꿈과 같으며 그림자나 허깨비와 물거품 같고

아침이슬, 번개처럼 사라지는 것 이와 같은 그 실상을 여실히 보아야 한다.
- 『금강경』 중에서

꿈속의 나는 꿈꾸는 나를 인식하지 못 한다. 그러나 어떤 꿈에서는 인식할 때도 있다. 나라는 것은 없다, 또는 내 것이 없다, 하는 무아설은 영원히 변치 않는 고정불변의 실체로서 나라는 것, 또는 내 것이라 할 것이 없다, 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가 실체가 없고 변한다, 한다. 누가 인생을 풀에 맺힌 이슬 같다 했던가.

내가 꿈에 대한 글을 쓰고 그 꿈 이야기를 읽는 이는 누구인가. 우리는 꿈속의 사람들인 것이다. 하여 하늘에 떠다니는 저 뜬구름 같다는 비유로 인생을 꿈같다 하고 환幻이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전도몽상, 환幻이라 해도 눈에 보이는 게 다 가짜고 허위虛僞라는 게 아니다. 우리가 현존하며 충돌하는 사물과 대상, 그 사건 사고는 우리의 육신을 통해 받아들이는 마음작용이라는 얘기일 뿐이다.

꿈인가 하면 꿈이 아니요
꿈이 아닌가 하면 꿈이 아닌 것 또한 아니니
어이할꼬 중생이여
꿈을 꾼즉 깨어나기 괴롭고
깨어난즉 꿈을 꾸기 괴롭고여
- 김성동의 소설 『꿈』 중에서

나는 승려작가로 토끼해에 스테디셀러, 대표작 하나 내고 싶다. 그냥 꿈꿔보는 것이다.

죽은 이는 꿈을 꾸지 못한다. 우리는 꿈 안에서 꿈밖으로 가는 이들이다. 다시 법당 앞 꽃들에게 무엇 하냐, 물었다. 계묘년 봄을 기다린단다. 맞다. 꿈속의 꿈도 꿈이다. 그렇다고 꿈밖의 꿈도 꿈이 아닐까.

 


혜범 스님 1991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바다, 뭍, 바람」 당선.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1992)이 영화화되었으며, 《대전일보》에 장편소설 『불꽃바람』(1993)을 연재했고, 대일문학상(1996) 수상했다. 장편소설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 『천기를 누설한 여자』 『미륵』 『반야심경』 『업보』 『남사당패』 『시절인연』 『플랫폼에 서다』 등을 출간했으며, 2019년 『소설 반야심경』(문학세계사)을 복간했다. 산문집으로는 『행복할 권리』 『나비는 나비를 낳지 않는다』 『달을 삼킨 개구리』 『숟가락은 밥맛을 모른다』를 펴냈다. 현재 강원도 원주 송정암에서 수행하고 있다.

 

* 《쿨투라》 2023년 1월호(통권 10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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