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이순신의 꿈, 평등 세상
[꿈] 이순신의 꿈, 평등 세상
  • 이병초(시인, 웅진세무대 교수)
  • 승인 2022.12.30 10: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산: 용의 출현〉 ⓒ롯데엔터테인먼트

통제사 이순신은 고금도로 통제영을 옮긴 뒤 자주 해변을 걸었다. 호위무사를 물리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명량에서의 전투, 단 13척의 판옥선으로 왜수군의 전투선 31척을 격침했고 반파한 전투선이 92척, 왜군 2만여 명의 목숨을 거뒀다. 대승이었지만 그 피의 살상殺傷을 어서 잊고 싶은지도 몰랐다. 며칠이 지나면 무술년이 밝는가. 새해에는 아름다운 일들을 꿈꿀 수 있겠는가.

어젯밤 그는 부하 이영남과 술을 먹으면서 며칠 후면 새해가 밝는데 어떤 꿈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이영남은 조용히 웃을 뿐 좀처럼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전의인全義人 이영남, 혼자서 능히 천 명을 상대할 만큼 무예가 뛰어났고 힘없는 백성이 조선의 실체임을 자각한 선비이기도 했다. 평소엔 과묵했지만 왜적 앞에 서면 날랜 범같이 포효했다. 공중에 튀어 올라서 일격에 적을 베고 목숨을 거두는 검법은 피의 굶주림 너머에서 반짝이는 황홀경이었다. 아니다, 이영남의 칼춤은 백성의 원혼을 모시는 피의 제문祭文이었다. 잘못된 욕망을 가진 자들이 이룬 피의 역사를 깡그리 베어버리고 싶은 춤사위였다. 이영남은 술잔을 비운 뒤 며칠이라도 조선의 산천을 둘러보자고 했다. 자신의 고향 전주부에도 가보자고 했다.

새해의 꿈을 물었는데 조선의 산천을 둘러보자? 이순신은 의아하게 이영남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유람할 때가 아니었다. 자신과 수군이 목숨을 다해 바다를 지켜냄으로써 조선이란 국가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돌아온 것은 무엇이던가. 의금부에 압송되는 기막힘이었고 고문이었고 백의종군이었다. 그렇더라도 통제사의 직무를 방기할 수는 없었다. 자신은 백의종군 이후 임금을 모시는 신하가 아니라 백성을 모시는 일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치르는 망궐례望闕禮를 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러므로 백성의 안위에 전력을 기울임과 동시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투를 대비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런데 산천을 둘러보자니?

이영남장군영정. 국립전주박물관 소재.

“장군. 제가 한민족 오천 년 역사에 불만이 있다는 점은 알고 있으실 것이옵니다. 때를 알아서 논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는, 김을 매고 베를 짜고 염천을 견디고 난 뒤에 곡식을 거두는 일- 거기에 목숨을 바쳤던 만백성의 역사. 당쟁과 사화史禍 그리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감긴 오천 년에 쓸개간장이 녹아든 백성의 곤고한 생활사生活史는 빠져있사옵니다. 하여 역사성을 획득한 사건을 기록하는 게 사관의 일일지라도 백성의 음식과 의복과 집의 형태와 거기에 깃든 삶의 형태가 빠진 역사는 반토막짜리다, 기득권층을 옹호하는 변명에 불과하다는 제 입장도 헤아리셨을 것이옵니다.”

이영남의 말본새에는 걸림새가 없었다. 울돌목 전투 이후 전쟁이 잠시 소강상태이니 산천을 둘러보면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사랑할 줄 아는, 농사짓는 사람들의 몸에 무형의 글줄로 배어 있는 백성의 품에 다가서보자는 말이었다. 전쟁이 끝나면 칼날에 묻은 피 냄새를 바닷물로 씻어내고 고향 전주부로 돌아가서 농사짓고 싶은 사나이. 길가에 핀 하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오래 바라볼 줄 알았고 산길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를 살갑게 들어주던 사나이. 이 세상에 옳은 전쟁은 결단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던 젊은 장수. 이순신은 조용히 술잔을 내려놓았다.

고금도의 파도는 거셌다. 전쟁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데 이영남의 고향을 운운하는 자신의 심정을 사납게 할퀴는 것 같았다. 이순신은 번쩍 눈을 떴다. 시국時局은 전주부에 가는 호사를 허락할 리 없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 이영남과 함께 전주부를 돌아보리라. 그가 자랑하던 한벽루, 승암산을 굽이돌며 퍼렇게 물결이 이는 한벽루 앞에 서면- 저 멀리 슬치재에서 발원한 물이 고덕산에서 쏟아진 물과 합해져 소쿠라지고, 맨몸끼리 뒤엉켜 휘감기는 물길들을 어쩌지 못하고 남고산이 헛감시나하며 늘어뜨리는 낙낙한 그늘속에서는 짜가사리 매운탕이 다갈다갈 끓고 있을 것이었다. 배가 고프면 초록바위 아래 남밖장(남부시장을 예전엔 ‘남밖장’이라고 불렀다.)으로 발길을 옮기리라. 싸전다리 근처 떠들썩한 장의 풍경을 구경한 뒤 아무 밥집에나 들어가서 갓 뜯어온 푸성귀와 고사리나물이며 취나물과 참기름이 평등하게 실현된 비빔밥을 이영남과 달게 먹으리라.

가배량진(경상우수영)

그를 헌헌장부로 키워준 모악산인母岳山人 김철의 흔적도 만나보리라. 볼에 와 닿는 따뜻한 바람을 기꺼워하듯 사람을 대함에 차별이 없었고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를 아꼈으며 짐승들조차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는 이영남의 스승 김철. 햇살이 만물을 차별하지 않고 온기를 평등하게 나눠주듯이 지식인의 언행도 이와 같아야 할 것이라면서, 무시당하고 멸시받는 백성이 조선의 주인이자 실체라는 가르침을 전한 조선의 스승. 김철의 발자취를 떠올리면서 전쟁 중에 떼죽음당한 백성들과 병사들의 산천도 살펴보리라.

이순신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런 날이 올까. 양반이나 상민이 없는 세상, 붓쟁이도 땜쟁이도 농사꾼도 선비도 장사꾼도 벼슬아치도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리워했던 사람다움의 꿈을 적어갈 수 있을까. 생지옥 같은 전선에서 최악의 상황을 견뎌낸 전투 병력의 핵심 또한 백성의 아들이었음을 찬찬히 적어갈 날이 올 수 있을까. 이로써 정치사 그리고 전쟁사의 요약에 불과한 역사를 넘어서는 진짜 역사를 꿈처럼 만날 수 있을까.

꿈은 모질수록 아름답다는 듯, 전쟁의 악순환을 못 벗어나는 역사의 답을 찾으라는 듯이 고금도의 파도가 해변의 바위를 들이쳤다. 이영남의 꿈이 통제사 자신의 꿈은 아닐까. 그믐달이 바닷물에 비수처럼 내리꽂히곤 했다.

 


이병초 전주 출생, 1998년 《시안》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밤비』 『살구꽃 피고』 『까치독사』 등이 있으며, 시비평집 『우연히 마주친 한 편의 시』와 역사소설 『노량의 바다』가 있다. 현재 웅지세무대 교수.

 


* 《쿨투라》 2023년 1월호(통권 103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