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INTERVIEW] 배창호 감독 인터뷰
[4월 INTERVIEW] 배창호 감독 인터뷰
  • 윤성은(영화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 승인 2019.03.2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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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향한 오랜 꿈

 

 배창호. 세대를 막론하고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설레는 이름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영화를 보면서 자랐고, 그의 영화를 배우면서 평자가 된 내 또래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그는 삭막했던 80년대에 스크린을 수놓으며 관객들을 열광시켰고, 새로운 영화언어로 코리안뉴 웨이브를 이끌어냈으며, 동시대의 수많은 영화인들에게 영감과 도전을 준 인물이다.

배창호를 대면할 수 있게 된 것은 내가 상아탑을 벗어나 영화제 일과 매체 활동을 하면서 얻게 된 큰 행복 중 하나다. 곧 그의 1990년 작, <꿈>이 시나리오집으로 출간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자택으로 찾아갔다. 

 


영화를 향한 오랜 꿈 

윤성은(이하 윤): 이번에 <꿈>이 시나리오집으로 출간될 예정이시죠. 축하드립니다. 감독님의 작품세계를 총괄하자면 몇 권의 책이 필요하겠기에, 이번 인터뷰는 대개 <꿈>에 집중한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시작하면서 감독님의 데뷔 시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요. 다섯 살 때,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길’을 보신 기억이 있으시다구요. 영화 감독의 꿈은 어떻게 가지게 되셨는지요? 

배창호(이하 배): 어머니가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셔서 저를 뱃속에 갖고 계실 때부터 영화를 많이 보셨고 유아시절에도 극장에 데리고 다니셨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에 그냥 특별한 동기 없이 영화가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그 때는 영화감독이 뭔지 몰랐기 때문에 배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러다가 중,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고 대학생이 되면서 배우보다는 감독이 더 하고 싶어지더라고. 프랑스 문화원에서 프랑스 영화들을 보면서 작가로서의 일을 감독이 해낼 수 있겠다. 물론, 내가 나서서 배우로서 성공할 수 있는 개성의 시대도 아니었으니까 그런 것도 있었고.

그래서 감독의 길을 가겠다고 마음을 굳혔죠. 대학 졸업 즈음 해서. 그런데 배우의 꿈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어. 외국처럼 감독을 하면서 연기자도 겸할 수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감독을 하면서 그런 생각은 없어지게 됐죠. 

윤: 감독님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셨는데 지금은 고학력, 유학파 감독들이 많지만 그 시절에는 드물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부모님이나 주변에서 만류하진 않았나요? 영화인은 소위 딴따라 라는 인식이 강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배: 부모님은 말리지 않았어요. 내가 영화를 워낙 좋아하는 걸 아셔서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더라고. 그런데 내가 조감독 생활 하던 시절 우연히 피카디리 극장 앞에서 예전에 알던 기자 선배 한 분을 만났는데, 내 근황 얘기를 했더니 그 양반이 “창호야, 너 깡통 찬다.” 하시더라고. (웃음) 경제적으로 그만큼 어려운 길에 들어섰다 라는 말이었죠. 그 분도 나를 염려해서 한 얘기였고, 말리는 사람은 없었어요. 

윤: 의외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외부적으로 큰 걸림돌은 없었던 셈이네요. 

배: 없었어요. 오히려 내 자신이 조감독 생활을 하면서 그 당시 한국영화의 열악한 환경을 경험하게 됐어요. 검열도 심하고, 기자재도 열악하고, 제작비도 너무 적고. 그래서 여기서 내 이상을 펼칠 수 있을까 라는 회의가 있었고, 또 하나는 내가 정말 영화감독으로서 재능이 있는건가.

검증 받아보질 못했으니까 내 자신에 대한 점검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죠. 그런데 조감독 때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하는 1회 시나리오 공모전이 있었어요. 거기서 1등으로 당선이 되면서 아, 영화를 할 수 있겠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됐죠.

 
영화, <꿈>(1990)을 만들기까지

윤: 이장호 감독님 영화의 조감독 생활을 거치신 후 만들었던 <꼬방동네 사람들>(1982)은 유수의 영화상을 휩쓸었죠. 첫 연출작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이후 <고래 사냥>(1984),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등 히트작들이 연이어 나오면서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도 등극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명세 감독의 <개그맨>(1988)에 각본과 배우로 참여하신 후, 미국 산호세 대학에 다녀오시면서 연출에 있어 약간의 휴식기 다음에 만든 작품이 <꿈>(1990)이예요. 

배: 미국에서는 일종의 석좌교수로 있었어요. 거기서는 1년을 있어달라고 했는데 작품이 하고 싶어서 6개월만 했어요. 많이 충전됐다고 느꼈지. 그 다음 작품을 <꿈>으로 정한 것은 그로부터 몇 년 전에 지금은 돌아가신 소설가 최인호 선배께서 원작이 좋으니까 한 번 생각을 해봐라. 하셨는데 소재가 그 당시 나한테는 좀 어려웠어요.

인생에 대한 본질적인 면을 깊이 통찰하는 힘이 있어야 되는 영화인데, 자신이 없더라고. 그렇게 몇 년이 쭉 흐른 다음에 미국에서 휴식기를 가질 때 이 작품을 떠올리게 됐죠. 뭐랄까 재충전의 시간을 많이 가져서 에너지가 왕성할 때라 심혈을 기울여서 찍어야겠다는 의욕을 가지고 시작을 했어요.

윤: 특히, <꿈>은 이 영화는 바로 전작인 <안녕하세요, 하나님>(1987)이나 그 다음 작품인 <천국의 계단>(1991)과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어서 흥미로운데요. 감독님의 다른 작품들도 그렇지만 <안녕하세요, 하나님>에는 기독교적 색채가 좀 더 깊이 들어간 작품이었는데, <꿈>은 특정 종교에 관한 영화는 아니지만 소재 자체가 불교잖아요. 그런 부분에 부담감이나 어려움, 더 공부하셨던 부분은 없으셨나요? 

 

배: 불교에 대해서 일부러 공부를 한 것은 없었어요. 영화 <꿈>은 불교 철학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헛된 욕망은 한낱 꿈같은 것이다 라는 보편적인 이야기니까. 기독교 정신이나 일반 상식과도 맞닿아있는 소재라 그런 고민은 많이 안했죠. 하지만 여러 사찰을 방문해 스님들을 만나면서 대화를 나누는 기회는 가졌어요. 그리고 (<꿈> VHS 케이스에 있는 ‘꿈’이라는 제목을 가리키며) 이 ‘꿈’이라는 제목의 글씨도 그 당시 수덕사에 계셨던 주지스님이 써주신 거예요. 

윤: 그렇군요. 그런데 말씀하신 “헛된 욕망은 한낱 꿈 같은 것”이라는 <꿈>의 주제는 당시 30대 중반의 청년이 다루기에는 좀 이른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배: 나이 든 분들은 그런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었을 거야. 지금 내가 <꿈>을 만든다면 더 깊이 있게 만들겠죠. 인생에 대한 더 많은 경험과 더 깊이 있는 경험을 했으니까. 90년도에 만든 <꿈>에는 당시 35살 청년이었던 내가 인생에 대해 하고 싶었던 말, 내가 느낀 정도의 감정이 표현됐겠지요. 그렇다고 그것이 <꿈>의 테마에서 벗어나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구요.

  그러나 이를테면, 이런 건 또 후회스러운 게 있어요. 안성기씨, 조신이가 아들이 죽었을 때 왜 공동묘지에 두고 막 울잖아. 그 울음이 더 비통했어야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갖고 하니까. 아무래도 미혼자의 눈으로 인생을 본 모자란 부분이 있었겠죠. 지금 찍으라면 더 보완해서 찍겠지.

윤: 1986년작 <황진이>와 <꿈>은 같은 사극이지만, 아주 다른 스타일을 갖고 있습니다. <꿈>의 촬영은 꽤나 역동적이고, 꿈과 꿈 속의 꿈까지 다루다 보니 몽환적인 부분, 시적인 부분도 적지 않거든요. <황진이>에서 극적인 요소를 너무 줄였다는 판단 때문에 <꿈>은 보다 강한 스토리텔링을 택하신 건가요? 감독님이 구상 하셨던 <꿈>의 스타일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요.

배: 맞아요. 좀 더 이야기가 강하기 때문에 영상적으로도 좀 더 강렬한 신들을 넣기를 바랐어요. 그런데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몇 신을 빼야 했어요. 그 당시에는 CG가 없고 특수 효과 기술도 미약해서 뺀 장면들이죠. 예를 들어, 조신이 달례와 밭을 일굴 때 큰 독수리가 새로 태어난 아기를 채가지고 가고, 조신이 그 독수리를 쫓아가서 아기를 뺏어오고 그런 장면들이 있었거든. 또, 조신이 모례 아손이 쫓아오는데 외나무다리의 줄을 끊어버려서 모례가 급류에 휩쓸려 내려가고. 이런 신들을 찍어보려고 노력했는데, 잘 안 나올 것 같더라구. 그래서 생략을 했어요. 그런 게 아쉽죠. 시나리오에는 그 장면들이 있을 거예요. 

 

조신, 달례, 모례의 꿈을 말하다 

윤: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조신이 한 순간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 이유로, 주변 인물들까지도 계속해서 인생풍파를 겪게 되는데요, 전반적으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선택할 수 있는 지점도 있었다고 보거든요. 달례의 경우, 모례 아손이 마을에 찾아오고 조신이 그녀를 놓아줬을 때 그 때라도 모례에게 갈 수 있지 않았을까요. 

배: 갈등의 상황이죠. 그 전에 이미 꿈으로 나오잖아요. 꿈 속의 꿈 장면으로. 모례 아손이 와서 손을 내미는데 이 쪽에는 조신이 잡혀 있고. 그 때 망설이면서 꿈을 깨죠. 그런 꿈을 꾼 다음 조신이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을 때, 순간적으로 인간적인 동정심이 생겼겠지. 자식들의 아버지고, 이왕 이렇게 되었는데 이 한 목숨을 죽게 내버려둘 수 없다는 달례의 어떤 연민. 한 쪽 속으로만 갈 수 없는. 

윤: 또, 마지막 부분에서는 모례 아손이 조신을 죽이지 않는 선택을 하죠. 머리카락만 베어버리는데요. 

배: 모례 아손도 이런 목숨 하나 지금 거둬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생각이죠. 그를 몇 십 년 쫓아온 자기 인생에 대한 허무 같은 거? 그런 걸 일일이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복수심에 대한 허망함이 드러난 장면이죠. 

윤: 용서라고 보기에는 어려울까요?

배: 아… 그럴거야. 완전한 용서는 쉽지 않았을 거고.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조감. 이런 인생에게 복수를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거죠. 

윤: 조신이야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니까 그렇다 쳐도, 달례나 모례는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데, 세 사람 중 어떤 캐릭터에 가장 몰입하셨었나요?

배: 물론 조신이지. 테마를 끌고 가니까. 달례는 희생의 상징이죠. 인간이 욕망을 갖고 있으면 그 덫에 걸리는 대상이 있는데, 바로 그런 희생자죠. 영화 찍을 때 달례의 심리를 그리기가 미묘했어. 조신에 대해 갖는 미움과 살아온 정이랄까, 그런 감정들이 교차하니까.

그래서 달례는 말이 없어요. 대사가 몇 마디 안 돼. 좀 더 여성의 심리를 심층적으로 찍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 내가 그 때 미혼이었으 니까 여성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시각이 모자랐거든. 그래서 좀 더 입체적으로 그릴 수도 있지 않았나 하는데 그 당시에는 복잡미묘한 심리에 집중하고, 말이 없을 수밖에 없는 캐릭터로 그렸어요. 

윤: 대사 없이 심리를 표현해야 해서 황신혜씨가 좀 답답해하시지는 않았나요?

배: 황신혜 배우가 자기 표현을 잘 안 해. 잘 안해서 속으로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작품을 남겼다고 생각하겠죠. 

윤: 저는 달례가 나중에 탈선하는 장면에서도 방탕하다기 보다는 연민의 시선이 들어있다고 느꼈어요. 심지어 돈을 받고 남성들과 관계를 하는 장면에서도 어쩐지 담담하게 느껴졌달까요. 

배: 달례로서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으니까. 조신은 달례가 몸을 파는 공간(살림집)에서 자기 괴로움을 잊으려 마약에 취하죠. 

윤: 참 끔찍한 상황이죠, 사실. 그런데 나중에 그 모든 게 꿈이었음이 밝혀지면서 상쇄가 돼요.  

배: 그렇지. 거기에 구원이 있는 거지.

 일화를 하나 얘기하자면, 내 딸이 이 영화를 안봤다가 3년 전쯤 런던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꿈>을 상영할 때 보고 놀란 거예요. 정사 신 이런 걸 보고 말이죠. 아빠 어떻게 이런 걸 찍었냐고. 그런데 이 영화를 함께 본 교포 청년 한 사람은 또 인생이 한 순간의 잘못으로 이렇게 될 수도 있구나 라는 측면에서 충격을 받았던 거예요. 그 친군 테마를 제대로 이해한 거지. 그래서 딸하고 대화를 나눈 모양이야. 딸은 이미지에 놀라서 그런 테마를 느낄 새조차 없었는데, 대화 후에 좀 누그러졌어요. 딸이 원래 센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즐겨보는 친구가 아니어서 그 정도에도 충격을 받았던 거지. 

윤: 우리 아빠가 이런 영화를 찍으시는 분이 아닌데, 뭐 그런 느낌이었을까요. (웃음) 여튼 재미있는 일화네요.

 안성기씨는 감독님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작품을 계속 같이 하다보면 그 때 그 때 캐릭터를 좀 더 구체적으로 잡아나가려는 고민도 있었을 것 같아요. <꿈>에서는 안성기씨에게 어떤 감정을 좀 더 집중적으로 끌어내기 원하셨나요?

배: 고뇌지 고뇌. 그리고 허무.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한 후회와 그 일로 인한 자기 삶에 대한 고뇌. 만약 조신이 좀 더 결단력 있게 죽음을 택했다든가 자진해서 관가에 출두를 했다든가 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었을텐데 그럴 용기까지는 없는 거예요. 그렇게 고뇌만 하다가 결국은 자기를 버릴 때가 된 거죠. 그래서 모례가 왔을 때 기다리고 있었다고.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하는데 거기까지 가는 데에는 여러 희생이 있었잖아요. 친구를 죽이고, 아들이 기아로 죽게 되고, 부인이 병들게 되고, 그 러면서 비로소 초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 거죠. 그리고 자기가 있던 법당에서 모든 죄를 뉘우 칠 때, 바로 그 순간에 꿈에서 깨어나면서 구원이 오구요. 그걸 향해서 달려가는 것이 이 영화의 내적인 리듬예요.

 

 

 

 

윤: 그 서사 안에서 안성기씨는 정말 넓은 스펙트럼의 캐릭터를 소화해냅니다. 순수, 욕망, 후회, 두려움 등의 감정을 넘나들면서요. 아내에게 “시체 치우기도 힘드니까 먹어!” 하는 장면에서는 안성기씨가 저렇게 화내는 모습을 어디서 봤더라 싶기도 했어요.

배: 김종원 평론가가 “요즘 영화에는 인간이 안보이잖아.” 그러시더라구. <꿈>은 인간의 삶에 관한 작품이니까 인간의 여러 모습들, 욕정, 배신, 후회, 고뇌, 연민, 외로움, 뉘우침 등 다양한 것들이 다 들어있을 수밖에 없는 거죠. 조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관통하면서.

윤: 정광석 촬영 감독님과의 작업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세요. 계속 작업을 같이 하셨잖아요. 

배: 그 분은 나하고 여덟 작품을 같이 했어요. <꼬방동네 사람들>, <적도의 꽃>, <고래 사냥>,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깊고 푸른 밤>, <꿈>, <천국의 계단>, <젊은 남자> 까지. 그 여덟 작품 중에서 <꿈>은 <깊고 푸른 밤> 이후 5년 만에 만나서 같이 한 영화구요. 그 분은 내용과 맞지 않는 영상은 구사하지 않는 분이예요. 영상이 드라마, 심리와 녹아들도록 그렇게 찍는 분. 물론 나도 그걸 원하고.

이 영화 자체의 스토리가 우리나라의 자연과 사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따라서 영상의 깊이도 깊어졌죠. 일본 유바리 영화제의 초대 프로그래머가  이 영화를 보고 한국에 미조구치 겐지와 구로사와 아키라를 합친 것 같은 영화가 나왔다는 말을 했어요.

윤: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숲 속에서의 몇몇 장면이 <라쇼몽>을 떠올리게 하더라구요. CG가 없었던 시대기 때문에 아마 시각적인 표현 방법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고래사냥>의 테마곡도 참 유명하지만, <꿈>에도 노래가 나오죠. 말이 별로 없는 달례가 반복해서 부르는 노래가 있는데요, 영화의 주제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황신혜씨의 구슬프면서도 맑은 목소리가 톤 앤 매너를 잘 만들어주었습니다. 가사는 삼국유사에 있는 것이지요? 

배: 삼국유사에 나와 있는 것을 다듬었죠. 작곡은 이성재 선생이라고, 음악감독이죠. 나하고 <황진이>, <꿈>, <러브스토리>, <정>, <길> 이렇게 다섯 작품을 한 분인데 당시 고등학교 음악교사였어요.

국악 작곡가이기도 하고. 이 분의 성실성, 그리고 튀지 않고 영화에 잘 어울리는 가락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열의 때문에 다섯 작품을 같이 하게 됐죠.

 나는 시나리오가 나오면 작곡을 먼저 부탁하거든. 이 영화음악을 작곡할 즈음이 그 분이 막 결혼하셨을 때예요. 그런데 신혼여행을 가서도 이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작곡에 열중했다는 겁니다. 그 정도로 열의 있게 해줬어요. 

윤: 그렇게 만들어온 음악에 대해서 감독님은 한 번에 좋다고 하셨나요?

배: 아녜요. 그 작곡가 집에 자주 가서 내가 좀 까다롭게 굴었죠. 일 할 때는 날 싫어했을 거야. 내가 음악 전문가도 아니면서 이건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여기는 음이 튄다 하는 식으로 요구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무던히 참고 해주셔서 나와 좋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죠. 

윤: <꿈>이라는 시나리오를 책으로 대하는 동시대의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배: 이 영화가 94년도에 프랑스 수출이 됐었어요. 그러다가 3년 전에 브줄 아시아 영화제에서 상영을 했었고, 프랑스에 있는 동양 전문 박물관인 기메 박물관에서도 상영을 했었어요. 그렇게 외국에서, 특히 프랑스, 영국 등 유럽에서 이 영화를 주목을 해줬죠. 우리나라에도 <꿈>의 마니아층이 있죠. 이번에 작가출판사에서 <꿈>을 좋아하는 여러분들을 알게 되어서 그 성원에 힘입어 출판을 하게 되었고, 독자들에게 지면으로나마 인사를 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영상자료원에서 제공하는 유튜브 링크에서 보실 수 있으니까 시나리오를 보시고 영화도 꼭 감상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책으로 출판되어 자료로 남게 되어서 기쁘구요, 시나리오를 공부하는 학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요새 영화 시나리오는 나열식으로 늘어놓는 게 많거든. 그게 아니라 영화는 압축하고 생략하고, 그렇게 생겨나는 리듬 속에 예술성이 있어요. 여러분이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압축의 힘을 느껴 보시면 공부가 될 것 같습니다. 

배창호가 말하는 ‘로맨스’ 


윤: 마지막으로, 쿨투라 4월호의 테마인 ‘로맨스’에 대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로맨스는 감독님 영화의 주요 소재 중 하나고, <러브 스토리>라는 영화를 만드시기도 했으니까 이 분야에 전문가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독님께 ‘로맨스’란 무엇인가요?

배: ‘로맨스’의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겠네요. ‘로맨스’는 일반적으로 사랑의 이야기겠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에서 로맨스를 봤잖아요. 그런데 영화 속 사랑이야기에는 환상이 있어요. 좀 나중 영화지만, 리처드 기어가 나왔던 <귀여운 여인>을 보면, 투자 전문 엘리트 사업가와 몸을 팔러 나온 여인이 사랑에 빠지죠. 난 속편이 궁금해져요. 속편이 나온다면 그들은 헤어지지 않았을까요. 문화적인 차이가 충돌을 일으켰을 테니까. 그런데도 영화는 그런 걸 제공하지 않고, 해피엔딩으로 막연하게 끝나거든요. 그래서 영화의 세계 속에서 파묻혀 살았던 나도, 영화가 주는 로맨스의 환상이 있었죠.

 그러니까 대학교 때도 사랑이라는 액자에 환상을 집어넣었던 것 같아. 어느 대학교 연극부 여학생을 좋아했는데, 실제로 가깝게 봤던 게 아니고 연극 무대에 있는 모습을 보고 좋아했거든. 그런 환상을 갖고 있었던 거죠. 

윤: 감독님 부부는 뵐 때마다 서로 다정하면서도 안정적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부럽고, 모범적인 가정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사모님과의 로맨스도 말씀해주세요.

배: 내 삶에 있어 진정한 로맨스가 이루어진 건 집사람과 데이트를 하면서 일거예요. 그래서 <러브 스토리>(1996)라는 영화도 만들어졌죠. 만나면서 모습도 마음에 들었지만, 상당히 편했어요. 시간 가는 줄 모르겠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게 됐어요. 짧은 시간 동안의 기쁨도 물론 진정한 로맨스지만, 그것이 계속 가지는 않는 것 같아. 그건 로맨스를 만들어주는 하나의 매개체고, 그 이후에는 편안한 동지 같은, 친구 같은 감정이 오래 가는 거지.

그래서 꾸밈 없는 로맨스 영화를 만들어 보자. 사랑을 미화시키거나 왜곡시키지 말고 정말 있는 그대로의 로맨스를 영화로 만들어보자고 했어요. <기쁜 우리 젊은 날> 이후 내 두 번째 로맨스 영화죠. <러브 스토리>에 집사람과 함께 직접 출연한 건 제작비를 아끼려거나 아내를 너무 사랑해서 라는 이유 때문은 아니고 (웃음) 가능한 한 리얼리티를 주려고 했던 거예요. 진정성을 갖기 위해서.

윤: 당시로서 좀 앞서가는 기획이기는 했지만 만약 전문 배우들이 출연했다면 개성이 약한 영화가 되었을 것 같아요. 

배: 맞아요. 예전에 어떤 평론가가 배창호 영화는 왜 맨날 진부하게 사랑을 이야기 하냐고 말한 적이 있는데, 사랑은 진부한 게 아니라 우리 삶의 양식이죠. 너 왜 진부하게 밥을 또 먹니 라고 하지는 않잖아요. 우리 삶 속에 늘 병존하고 있는 게 사랑예요. 

윤: 감독으로서, 또한 울주산악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하고 계시는 일 모두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오늘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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