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탐방] 산·물·빛 그리고 예술 감동: 원주 뮤지엄 산(Museum SAN)
[미술관 탐방] 산·물·빛 그리고 예술 감동: 원주 뮤지엄 산(Museum SAN)
  • 김명해(화가, 본지 객원기자)
  • 승인 2023.01.03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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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워가든 설경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 내 구룡산 언저리에는 돌을 쌓아 물과 빛으로 빚은 예술 공간이 있다. 정리가 잘된 골프장 부지를 지나 산 정상에 오르면 자연석벽으로 원을 그리듯이 둘러싸여 있는 비밀의 공간은 대자연의 품속에서 건축과 예술이 어우러진 예술의 성Castle인 ‘뮤지엄 산’이다.

노출 콘크리트와 기하학적 특징의 건축으로 유명한 안도 타다오Ando Tadao (1941- ,일본) 건축가의 설계로 지어진 뮤지엄 산은 건축가의 건축철학인 예술과 자연의 조화, 인간의 삶과 휴식을 잘 반영한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미술관 명칭인 ‘산SAN’은 공간Space, 예술Art, 자연Nature의 영문 첫 글자에서 따온 이름으로, 자연 속에서 문화와 예술의 울림을 통한 진정한 소통을 바탕으로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끊임없이 발견하는 살아있는 미술관을 지향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았다.

“처음 부지를 보았을 때, 가늘고 길게 이어진 산 정상을 깎은 듯한, 아주 보기 드문 땅이었기에, 여기에 주위와는 동떨어진 별천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중략)…나는 건물 본체 뿐 만 아니라, 부지 전체를 Museum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어른과 아이 모두 여기에 와서 하루를 보내면 자연과 예술에 대한 감성이 풍부해져,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살아갈 힘’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곳 말입니다.”
-뮤지엄 산, 「건축가 소개」 중에서

삼각코트

뮤지엄 비밀의 공간은 웰컴센터WelcomeCenter를 통과해야 궁금증이 해결된다. 플라워가든FlowerGarden, 워터가든WaterGarden, 뮤지엄 본관, 명상관MeditationHall, 스톤가든StoneGarden, 제임스터렐관JamesTurrell 까지 하나의 길이 산책로처럼 길게 이어져 있어 뮤지엄 본관뿐만 아니라 대지 전체가 뮤지엄 산의 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넓은 플라워가든을 지나 하얀 자작나무 오솔길을 통과하면 제주 본태박물관(안도 타다오가 설계)에서 본 일자형 담장과 트인 문이 어김없이 나타난다. 가벽의 문은 공간을 구분하는 벽과 열려있는 문으로, 전체 풍광을 바로 보여주지 않고 담벼락을 의도적으로 배치하여 탐방객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안도타다오 건축 특징 중 하나이다.

긴 담장을 따라 끝 지점에 다다르면 마침내 뮤지엄 본관이 보인다. 맑은 인공연못과 물 속 깨끗한 돌, 큰 파장 없이 잔잔하고 일정하게 흐르는 물길은 본관 건물 삼면을 에워싸고 있어 마치 물위에 떠 있는 고요한 돌집마냥 아름답다. 본관 출입구까지 연결된 물길과 붉은색 대형 아치Arch 조각품은 신비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이 조각품은 알렉산더 리버만Alexander Liberman(1912~1999, 미국)의 〈아치웨이Archway〉로 이곳 뮤지엄을 대표하는 상징물이자 포토 존이다.

삼각코트
본관 내부복도. ©김명해

1995년 설립된 한솔문화재단은 1997년 한솔종이박물관을 개관한 이후 30년 이상 수집해온 미술 컬렉션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고故 이인희(1928~2019) 전 한솔그룹 고문의 강렬한 열망에 의해 소장품 4000여 점을 모아 2013년 뮤지엄 산을 설립했다. 그래서 뮤지엄 본관에는 문화와 문명의 창조자이자 전달자 역할을 해 온 종이의 소중함을 발견할 수 있는 ‘페이퍼갤러리’와 매년 두 번의 기획전과 상설전이 열리는 ‘청조갤러리’로 구성되어있다.

옅은 붉은색이 맴도는 본관외벽은 파주석으로 둘러싸여져 있고 본관내부는 노출콘크리트와 파주석을 복도나 계단 벽에 나란히 또는 번갈아 배치하여 자연석과 인공재료의 조화를 꽤하였다. 즉 파주석 박스 안에 노출 콘크리트 박스가 놓인 ‘Box in Box 컨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네 개의 윙wing 구조물이 사각, 삼각, 원형의 중정中庭공간들로 연결되어 관람객들에게 쉬어가는 공간이 되어 주고 대지와 하늘과 사람으로 연결하고자 하는 건축가의 철학이 담겨있다.

각 갤러리를 연결하는 복도 창은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시시각각 보여주어 심심할 틈이 없고, 벽과 처마 사이의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과 반사광이 복도를 따뜻하게 감싸주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전반적으로 은은한 분위기다. 내부 전시장을 관람하기 위한 길은 마치 미로 같다. 층과 층 사이 약간의 경사를 둔 좁고 긴 복도로 연결되어 있어 그냥 화살표 방향으로 안내하는 대로 이동하고 순환하는 동선을 반복하면서 전시를 관람하다보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 나오는 구조이다.

《일상_Layer》 1전시실

현재 청조갤러리1, 2에는 기획전시인 판화공모전 《일상_Layer》전이 진행 중이다. 이 전시는 2017년부터 격년으로 실시한 세 차례 판화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13명의 작가-이하나, 나광호, 이원숙, 이언정, 임지혜, 정혜정, 권오신, 이상미, 곽태임, 홍윤, 한지민, 김혜나, 김서울-작품으로 구성되어있다.

볼록·오목판화와 평·공판화로 크게 나눠지는 판화는 판 재료에 따른 목판화, 동판화, 리놀륨판화…, 판화기법에 따른 에칭etching, 드라이포인트dry point, 아쿼틴트aquatint…등의 다양한 명칭으로도 분류된다. 학부 때 배웠던 판화수업이 문득 떠오르면서 지금 전시되어있는 작품에서 이러한 판화기법들이 눈에 들어온다. 극사실적 디테일이 돋보이는 단색 동판화부터 형형색색의 다색판화까지 판화의 다양한 표현기법과 현대적 감각의 세련된 구성, 설치 및 입체화한 판화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김서울, 〈plants〉, silkscreen on acrylic plate, 2022.
김서울, 〈plants〉, silkscreen on acrylic plate, 2022.

이곳 〈판화공모전〉은 뮤지엄 산을 대표하는 ‘예술 지원 사업’이다. 공모전을 통해 판화작가를 선발하여 전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또한 다양한 판화 프로그램을 만들어 일반인들에게 판화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하여 판화가 친근하고 어렵지 않은 일상의 예술임을 알리며 현대판화의 발전과 문화적 가치를 관람객과 나누고자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많이 두른다. 그러나 통창 너머 바깥풍경과 스톤가든이 한눈에 들어오고, 복도 한편에는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심플하고 과학적인 의자들이 전시되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하다. 파주석으로 구성된 둥근 원형기둥을 따라 내려오면 바로 ‘백남준홀’로 백남준의 비디오조각 〈정약용JeongYakyong〉과 〈퀴리부인MadamCurie〉이 나란히 전시 되어있다. 백남준은 조선 말 실학자인 ‘정약용’과 방사선분야의 선구자인 ‘퀴리부인’등 시대를 정주하고 개척하는 인간상을 풍자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이중섭, 〈나무와 달과 하얀새〉, 14x19cm, crayon and oil on peper, 1956.

1층 청조갤러리3에는 소장품전인 〈한국 미술의 산책 8: 꿈〉 전시가 열리고 있다. 뮤지엄 산은 매년 소장품을 《한국 미술의 산책》 시리즈로 기획해 선보이데, 현재는 서양화, 단색화, 조각, 산수화, 추상화, 판화, 구상회화에 이은 여덟 번째 전시다. 이 전시에서는 20세기 한국 화가들의 꿈을 ‘고향’, ‘초현실주의’, ‘소망’ 셋으로 나누어 그 시절 화가들의 다양한 꿈과 지금 우리의 꿈을 교차해 읽어보고자 전시를 기획했다고 한다.

박생광, 〈시집가는 날〉, 136×137cm, ink and color on paper, 1980

과일 바구니를 이고 가는 소녀들을 통해 풍요와 평화를 표현한 박항섭의 〈소녀들〉(1960) 작품을 시작으로 널뛰기를 채색화로 그린 김기창의 〈판상도무〉(1931), 나뭇가지에 모여든 새들을 서정적인 화면에 담아낸 이중섭의 〈나무와 달과 하얀 새〉(1956)와 장욱진의 〈거목〉(1954), 타국에서 살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그린 김환기의 〈무제〉(연도미상), 실제의 고향풍경을 그린 오지호의 〈부두〉(1976). 이종우의 〈제목미상〉(1947) 작품을 볼 수 있다. 또한 전통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무속적이고 토속적인 화면을 구현한 박생광의 〈시집가는 날〉(1980), 도교와 불교이미지로 이상향을 절제된 형태로 그린 이만익의 〈무릉〉(1994), 혼란스러운 시대상황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이쾌대의 〈군상〉(1948), 민중의 애환을 목판화로 새긴 오윤의 〈도깨비〉(1985) 작품도 관람할 수 있다.

여기 소장품전시를 보고 있자니, 지난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친 《이건희 컬렉션》전이 생각난다. 뮤지엄 산을 설립한 이인희 전 고문은 이건희(1942~2020) 전 삼성그룹 총수의 누님이다. 남매뿐만 아니라 삼성가家에서 문화예술품에 관심을 갖고 수집하여, 공들여 모은 소장품을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같이 향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감사하고 감동이다.

이만익, 〈무릉〉, 160x600cm, oil on canvas, 1994.

미술관을 한 바퀴 돌아 나오면 다시 뮤지엄 본관 로비이다. 이번에는 종이박물관을 관람할 차례이다. 한솔종이박물관은 1997년 국내 최초의 종이전문박물관으로 개관하여 국보와 보물 등 다수의 지정문화재와 다양한 공예품 및 전적典籍류를 수집, 연구, 보존해 오고 있다. 이곳 페이퍼갤러리는 공간을 네 곳으로 나누어 종이의 역사와 의미에 대한 전시 및 유관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종이의 탄생부터 현재까지를 보여줌으로써 관람객들이 종이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본관을 지나 밖으로 나오면 스톤가든과 명상관이다. 신라고분을 모티브로 한 스톤가든은 아홉 개의 부드러운 곡선의 스톤마운드로 이루어져 있고, 곡선으로 이어지는 스톤마운드의 산책길을 따라 걸으면 대지의 평온함과 돌, 바람, 햇빛을 만끽할 수 있다. 안도 타다오가 뮤지엄 개관 5주년을 기념하며 완성한 명상관은 돔 형태의 공간으로, 인접한 스톤가든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물위의 작은 배 같은 야외 카페테라스Café Terrace가 앙상한 나뭇가지로 가득한 겨울 풍경과 함께 운치를 더하고 있다.

장욱진, 〈거목〉, 29x26cm, oil on canvas, 1954.

개인의 컬렉션에서 출발하여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공공의 문화자산으로 확대한 뮤지엄 산은 한국 근현대 미술작품을 선보여 우리 미술의 흐름을 알리고 종이의 문화적 가치를 접하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문화행사와 프로그램으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또한 자연과 문화의 어울림 속에서 문명의 번잡에서 벗어나 휴식과 자유로 인간의 심신을 치유하고 새로운 창조의 계기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운영을 통해 문화예술 저변확대에 이바지한 한솔문화재단은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2022 한국메세나대회’에서 문화공헌상을 수상했다.

느림걸음으로 마음을 따라 산책하십시오.
이 만남이, 당신에게 잊히지 않는 ‘기분 좋은 만남’이 되길 바랍니다.
소중한 발걸음, 웃음소리, 빛나는 얼굴 모두 간직하겠습니다.

안내책자에 있는 글귀가 가슴에 와 닿는다. 뮤지엄 산에서의 하루는 정말 ‘기분 좋은 만남’이다. 필자가 좋아하는 미술작품을 마음껏 감상하고 마음의 여유와 휴식을 자연 속에서 누리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함께여서 더욱 그러하다.


 


참고자료
뮤지엄 산 http://www.museumsan.org

 

 

* 《쿨투라》 2023년 1월호(통권 10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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