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2만 명 확보가 새해 목표입니다: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을 만나다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2만 명 확보가 새해 목표입니다: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을 만나다
  • 이경택(대한경제신문 부국장 겸 문화전문기자)
  • 승인 2023.01.03 10: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종자로서의 문화유산이 있기 때문에 한류도 나오고 국가의 품격도 높아지는 것입니다.
당연히 신탁 회원이 되어서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가야죠.”

김종규(83)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은 지난 한해 두 번 눈물을 비쳤다. 한번은 2월 26일 이어령(1933-2022) 초대문화부 장관이 작고했을 때이고, 또 한 번은 9월 24일 문화유산국민신탁 회원 1만 5,000명을 달성했을 때였다. 그로서는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한해였다.

김 이사장이 2009년부터 ‘무보수’로 이끌고 있는 ‘문화유산국민신탁’은 2007년 출범(초대 이사장 유영구)했으며 국민 기금에 의해 해외문화재 환수와 보존에 앞장서는 문화재청(청장 최응천) 산하기관이다. 그가 취임할 때 1,000명 미만이었던 문화유산국민신탁 회원이 1만 5,000명이 됐으니 감회가 당연히 컸을 것이다. 몇일 뒤 신탁 직원들과 함께 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그동안의 소회를 밝히면서 평소 ‘껄껄~’ 잘 웃으며 소년 같은 표정을 즐겨 짓던 그도 급기야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그럴 법도 하다. 김 이사장은 ‘문화계의 영원한 마당발’로 통한다.

그는 1964년 형님인 김봉규(89) 삼성출판사 전 회장이 출판사를 창립하자 부산지사에서 출판일을 시작해 1992년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그의 다양한 문화계 인맥은 삼성출판사 업무와 관련해 수많은 인사들을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인지 모른다.

삼성출판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사장과 회장을 거쳐 평생을 출판계의 리더로 활약하면서 문화재위원, 한국박물관협회 회장, 서울세계박물관대회 공동조직위원장, 국립중앙박물관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그리고 국내 유일의 출판박물관인 삼성출판박물관도 현재 운영하고 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부터, 고인이 된 시인 구상과 ‘걸레스님’ 중광, 국민배우 최불암, 도올 김용옥 등으로부터 20-30대 젊은 작가와 화가, 배우, 국악인에 이르기까지 불혹不惑(40)과 지천명知天命(50)의 세월을 넘어 팔순의 나이를 넘기는 동안 그는 문화예술계 현장을 뛰어다녔고, 그같은 활동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문화예술계의 그같은 인맥이 문화유산국민신탁 회원 확보에 결정적이었다.

그는 시낭송회건, 공연장이건, 미술전시회 개막식이건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일일이 신탁회원 가입을 권유했고, 이를 성사시켰다.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 회원으로 가입하며 회원수 1만 5,000명에 이른 것이다. 평소 “나를 만나 식사하려면 먼저 문화유산국민신탁 회원에 가입부터 해야한다”고 공언할 정도로 회원 확보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인터뷰 중에 이런 얘기도 들려주었다.

“인간이 90세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첫 30년은 준비하고 배우는 기간입니다. 두 번째 30년은 생업에 매진하고 나머지 30년은 사회에 봉사해야 합니다. 책으로 훌륭한 분들을 만나고 돈도 벌었으니 이제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비롯해 좋은 자료를 수집하고 후대에 되돌려줘야죠.”

그러나 그처럼 기쁜 일에 앞서 작고하기 직전까지 돈독한 교유관계를 유지했던 이어령 초대문화부 장관과의 이별은 그에게 큰 슬픔이었다.

김 이사장은 이 전 장관의 장례식이 문화체육관광부장(葬)으로 치러지는 5일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빈소를 지켰다.

그와 이 전 장관의 인연은 유별나다.

“당시 삼성출판사 편집 고문이셨던 이어령 장관이 ‘편집주간’으로 《문학사상》을 창간했습니다. 창간호 발간 일주일 만에 재판에 돌입했는데, 순수 문학교양지로서 전례가 없던 일입니다.”

이어령 전 장관과의 인연을 그는 각별히 아꼈다. 자신의 평창동 자택 인근에 이 전 장관이 강인숙(89) 여사와 함께 운영 중인 ‘영인 문학관’에 일주일에 한번 꼴로 꼭 찾아 안부를 물었다.

“이 전 장관의 저에 대한 신뢰를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작가들의 만남 주선이건, 원고집필이건, 매체의 인터뷰 요청이건 제가 부탁하면 한번도 거절하신 적이 없어요.”

이 대목에서 그는 다시 울먹였다.

“이어령 전 장관이 노태우 정권 시절 초대 문화부장관을 했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 등 굵직굵직한 일을 많이 하셨죠. 그러나 정치신인이어서 소신발언 등이 기존 정치인들과 갈등도 빚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어느 날 국무회의 마치고 나오며 노 대통령이 ‘참용기’ 얘기를 꺼냈다고 합니다. ‘참고 용서하고 기다리라’는 얘기죠. 그 말을 듣고 노 대통령을 다시 보게됐다고 들려주었습니다. ‘참용기’는 지금도 제 좌우명 중의 하나입니다.”

“제 인생을 바꿔놓은 분이 두 분 있습니다. ‘안’으로는 형님이신 김봉규 삼성출판사 창업주이시구, 또 한분이 바로 이어령 장관이십니다. 형님은 출판인으로서의 제 길을 열어주셨구, 작고 직전까지 펜을 놓치 않았던 이어령 장관은 제가 존경하고 따르지 않을 수 없었던 큰 어른이십니다.”

그같은 와중에 뜻 깊었던 일 한가지로 지난해 4월 유네스코 세계 유산인 논산 돈암서원에 사계 김장생 선생 서거 390주년을 맞아 본인이 소장 중인 가례집람 등 책판 54점을 기증한 일을 꼽기도 했다.

당시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문화유산은 제자리에 있을 때 더욱 값어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번 기증이 앞으로 더 많은 문화재 환수의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그처럼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보낸 김 이사장에게 새해 포부를 물어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문화유산국민신탁’ 회원 확보 얘기가 가장 먼저 나왔다.

“1만 5,000명을 돌파했으니 2만명 확보가 새해 목표입니다. 12월 현재 벌써 1만 5,000명에 300명의 회원을 더 추가했습니다. 몇해 전 어느 신문에 인터뷰를 하면서 ‘10만명’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하자 ‘문화재 지킴이 10만 양병설’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나왔더라구요.(웃음)”

그래도 재차 김 이사장에게 문화유산국민신탁 회원확보 외에 또다른 소망 한가지를 얘기해달라고 말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얼마전(지난 12월 19일) 신라의 문화와 역사를 되살려 그 정신을 전승·보전하고자 헌신한 고청古靑 윤경렬尹京烈(1916-1999) 선생을 기리는 기념관이 경주시 인왕동 양지마을에 문을 열었습니다. 저희 신탁이 운영 주체이며, 고청기념사업회(회장 김윤근)가 관리주체입니다. 기념관은 윤 선생의 유품 전시, 학술·토론 등 좌담회, 전시와 공연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입니다. 새해에는 우리 문화유산국민신탁에서 위탁받아 운영 중인 문화재들이 그처럼 많이 활용돼 국민 곁으로 가까이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현재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인 전남 벌교의 ‘보성여관’을 비롯 ▲이상李箱(1910-1937) 시인의 옛집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경기 군포) ▲울릉도 도동리 일본식 가옥 ▲부산 수정동 일본식 가옥인 ‘문화공감 수정’ 등을 위탁 관리하고 있다.

문화유산국민신탁 회원이 되는 것은 우리 문화재와의 보존과 환수에 앞장서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명분이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김 이사장이 왜 회원 확보에 그처럼 온 열정을 기울이는 것인지 궁금했다.

“다산 정약용선생이 편찬한 속담집 ‘이담속찬耳談續纂’에 ‘농부는 죽어도 종자를 베고 죽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아무리 먹을 게 없어도 다음 농사에 쓸 종자는 남겨둔다는 뜻이죠.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석굴암이나 사찰 7개, 서원 9개가 모두 한민족 역사와 문화의 씨앗이고 종자입니다. 그처럼 종자로서의 문화유산이 있기 때문에 한류도 나오고 국가의 품격도 높아지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양반국가’로 세계가 인정할 때 국제적으로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신탁 회원이 되어서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가야죠.“

김 이사장은 덧붙여 “삶의 후반부에 이처럼 문화유산국민신탁을 이끌며 문화재지킴이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제게는 큰 영광이고 축복입이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그의 좌우명으로 중국 후한 시대의 학자인 최자옥崔子玉(78-143)이 남긴 ‘시인신물념 수시신물망, 무도인지단 무설기지장施人愼勿念 受施愼勿忘, 無道人之短 無說己之長’을 말한다. ‘누구에게 베푼 것은 결코 생각하지 말며, 받은 것은 결코 잊지 마라. 다른 사람의 단점을 함부로 말하지 말고 자기 자랑은 함부로 하지 마라’는 뜻이다.

김 이사장의 대인관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그는 결코 타인을 비판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항상 ‘긍정의 화법’을 유지한다. 상대방이 누군가를 원망하면 석가모니 부처의 ‘역보살’론을 들며 달랜다. 석가모니의 제자이자 사촌 동생이었던 ‘제바달다提婆達多’는 여러차례 석가모니를 시해하려 했지만 오히려 그를 용서했다.

김 이사장은 “부처님도 제바달다라는 역보살을 통해 오히려 더 큰 깨달음을 얻으셨으니 위해를 가하려는 상대방을 ‘역보살’로 여겨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 이사장의 그같은 삶의 태도가 수많은 이들과 교유를 맺도록 해 1만 5,000여 명에 이르는 문화유산국민신탁 회원 확보를 가능하게 했고, 이어령 전 장관이 세상을 뜨기까지 그를 신뢰했는지 모른다.

김 이사장의 생각은 요즘 부쩍 심각해지고 있는 세대간의 갈등해소에도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지 않을까.

“역지사지입니다. 나이든 이들도 모두 젊은 시절을 거쳐왔어요. 본인이 젊었을 때 어땠는지를 돌아보면서 젊은 세대를 먼저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어차피 인생은 바톤 터치입니다. 젊은이들과의 모임에 끝까지 남아 교훈이나 훈계조 얘기를 하면 안됩니다. 저녁 식사비나 술값 미리 계산해주고 일찍 자리를 피해주어야죠. 노인 대접 받으려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자’, 그것이 저녁 모임에서의 내 신조입니다. 하하.”

 


이경택 연세대 문과대 불어불문학과와 홍익대 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박사 졸업. 문화일보 문화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대한경제 신문 편집국 부국장 겸 문화전문기자이다. 서울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소마미술관 운영위원, 종이문화재단(종이박물관)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쿨투라》 2023년 1월호(통권 103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