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평] 아바타, 새로운 길의 어려움
[영화 월평] 아바타, 새로운 길의 어려움
  • 강유정(영화평론가, 강남대 교수)
  • 승인 2023.01.0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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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물의 길〉에 대한 소문은 온통 숫자와 관련 있다. 우선 13. 2009년 〈아바타〉 개봉 13년 만에 두 번째 이야기 〈물의 길〉이 개봉했다. 워낙 주목을 끌었던 작품이었기에 후속편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짐작은 했지만 13년은 예상했던 기다림보다 길었다. 두 번째 숫자는 192. 〈아바타: 물의 길〉의 상영시간이다. 무려 3시간 12분의 상영시간이다. 감독 제임스 카메론은 13년의 시간적 공백과 서사적 설정을 메우기 위해 192분이라는 상영시간이 꼭 필요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3D, 4D라는 인공적 관람 환경이 제공된다는 점에서 192분의 상영시간은 일종의 모험으로까지 여겨진다. 공교롭게도, 인도의 한 영화관에서는 흥분성 심장 마비로 인한 사망자까지 등장했다. 세 번째 숫자는 3억 5,000만 달러, 〈아바타: 물의 길〉의 제작 추정 금액이다. 한화로 4,600억 혹은 5,000억 정도의, 소위 천문학적 제작비는 손익분기점 숫자에 대한 상투적 호기심도 동반하기 마련이다. 〈아바타: 물의 길〉 개봉 이후 뉴스가 온통 관객수와 손익분기점에 쏠리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영화라는 예술이 태생부터 대중적이고 자본 집약적 산업이긴 하지만 〈아바타: 물의 길〉에 대한 논의는 지나치게 ‘돈’에 집중되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아바타〉는 이미 2009년 영화사에 기념비적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2억 3,700만 달러의 제작비로 전 세계에서 28억 4,700만 달러 역대 최고 성적의 흥행을 거둔 것도 대단하지만 〈아바타〉의 성과는 단지 상업적인 데 머무르지 않는다. 영화 〈아바타〉는 단지 눈속임이나 잔재주 정도로 취급되었던 3D를 주제적 구현의 주요한 방법으로 도입한 최초의 영화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를 대중에게 설득했다. 설득은 감정의 미묘한 변화까지 담아낸 모션 캡쳐의 몰입감과 단순하지만 명료했던 주제 의식의 시의적절함 덕이었다. 주제와 형식이 명실상부하게 맞아 떨어진 셈이다.

〈아바타: 물의 길〉은 전편의 기대감 안에서 볼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한 영향력을 벗어나기 힘든 작품이다. 2009년 〈아바타〉는 주제적으로나 체험적으로 그리고 시각적으로도 새로웠다. 판도라 행성, 나비족, 아바타를 통한 접속, 네이티리라는 진취적 여성 캐릭터, 언옵테늄이라는 고부가가치 자원 등은 제임스 카메론과 영화 〈아바타〉을 통해 처음으로 목격할 수 있었던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자 세계였다.

〈아바타〉를 본다는 것은 곧 새로운 세계에 접속하는 것이었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이해하는 과정이었으며 처음으로 낯선 3D 안경을 쓰고 감독 제임스 카메론이 제공하는 환상적인 가상 세계를 체험하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환상으로, 발로 딛는 지구에서 판도라로 넘어가는, 환상적인 판타지 체험이 바로 〈아바타〉 관람이었다. 그러므로 2009년 〈아바타〉 관람은 단순히 영화 한편 관람이 아니라 일종의 문화적 체험이었고 문화 현상이었다. 그렇다면 〈아바타: 물의 길〉을 통해 이런 문화 체험과 현상이 가능할까?

그런 점에서, 〈아바타: 물의 길〉이 ‘그들만의 공간’이라는 점은 아쉽다. 이곳에서 그곳으로, 지구에서 판도라로 넘어가는 이동의 체험은 아예 선험적으로 배제되어 있고, 판도라가 경험의 주공간으로 제시될 뿐이다. 인간-배우가 아바타 캐릭터로 바뀌는 놀라운 마술적 장면화는 애니메이션처럼 평면적으로 제시된다. 인간보다 아바타의 삶에서 더 박진감 넘치는 정체성을 느끼며 딜레마를 경험했던 제이크 설리의 질문이 단순 명료한 방어 논리로 무뎌지고 〈아바타: 물의 길〉은 여느 대안적 2차 공간의 판타지와 차이가 소실된다.

게임 속 가상 공간 ‘오아시스’ 속 캐릭터와 현실 속 자아를 대비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 메타버스 미래를 예측한 무척 중요한 작품이 되는 맥락도 바로 간극의 장면화에 있다. 게임 속, 가상 현실 속 완벽하게 구현된 아바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문제는 그것과 현실의 낙차이기 때문이다.

문제적인 것은 〈아바타: 물의 길〉이 판도라라는 가상 대안 세계에 단도직입하면서도 그 안에 구축한 이야기는 완전히 이 지상의 것, 케케묵은, 할리우드 스토리라는 사실이다. 바로 가족만이 유일한 구원이라는 식의 개척 시대의 가족 이데올로기를 192분을 견인할 유일서사로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아바타: 물의 길〉 내내 제이크 설리는 나비 족장인 토루크 막토로 부족을 지키고 판도라를 지키는 게 아니라 군인이자 인간 제이크 설리로 자신의 가족을 지키느라 여념이 없다.

제이크 설리의 아이들이 보여주는 갈등도 전형적인 서구 중심적 갈등 구조를 답습한다. 제이크 설리와 네이티리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과 막내 딸, 신비로운 방식으로 태어난 딸 키리 그리고 인간이지만 이 집안에 거의 형제처럼 자라며 가족으로 함께 자라난 스파이더. 아버지 중심의 가부장제 그리고 장자 승계 원칙 속 카인과 아벨처럼 인정 투쟁을 벌이는 아들들, 중요한 순간마다 걸림돌이 되는 약한 여성 가족 구성원 등은 지금껏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에서 보아왔던 서사구조의 전형과 차별성을 찾기 힘들다. 미지의 세계, 자연, 생명체로부터 자원을 뺏고 경제적 가치로만 환산하는 몰염치를 비판하는 접근도 기시감이 짙다. 주제적 측면에서 보자면 전편 〈아바타〉보다 훨씬 더 작고 오래된 세계로 퇴보하고 축소되었다.

다양한 신화와 언어를 조사하고 참조해 마련되었던 2009년 〈아바타〉의 신기하고 새로운 세계와 달리 〈아바타: 물의 길〉은 익숙했던 서구 중심적 개척 서사와 기독교 서사, 가족 만능 주의 서사를 반복하고 있다. 〈아바타: 물의 길〉은 새로운 이야기라기 보다, 지금껏 제임스 카메론이 영화적으로 구현해왔던 모든 이야기들의 총정리 및 집대성에 더 가깝다. 배가 전복하는 장면에서는 〈타이타닉〉이, 포기하지 않고 쫓아오는 악당의 모습에서는 〈터미네이터〉가 해저 생태계의 신비로움에서는 〈어비스〉에서 못다 이룬 영화적 염원이 발견된다.

만약, 감독의 말처럼 〈아바타〉 시리즈가 5편까지 완성될 수 있다면, 〈아바타: 물의 길〉은 이야기를 완성해 가는 다리 정도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따지고 본다면, 그저 다리를 놓을 뿐인데, 192분은 너무 긴 시간 아닐까? 이야기 창작자 입장에서야 토대를 다지는 게 중요하겠지만 관객에겐 시간이 곧 투자이니 말이다.

 

 


강유정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졸업. 2005년 《조선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으로 등단, 저서로는 『영화 글쓰기 강의』 『타인을 앓다』 등이 있다. 현재 강남대학교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사진제공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쿨투라》 2023년 1월호(통권 10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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