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여러분, 다시 태어나세요: 〈재벌집 막내아들〉
[드라마 월평] 여러분, 다시 태어나세요: 〈재벌집 막내아들〉
  • 김민정(드라마 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3.01.03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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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JTBC

하고 싶은 일들과 해야 할 일들 사이에서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기에 딱 좋은 새해의 첫 달. 2023년 1월. 어떤 드라마를 소개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블랙홀 같은 드라마월드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는 디지털노마드의 삶은 이제 그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누군가 내가 보면 좋은 드라마를 미리 골라준 느낌. 절반의 성공을 미리 보장받고 시작한 금수저 드라마가 있었으니 바로 원작이 있는 드라마다. 원작의 종류는 다양하다. 웹툰으로 시작해 소설과 영화를 지나 저기 저 멀리 프랑스 드라마까지. 자, 구명조끼를 입고 흥미진진한 드라마월드에 퐁당 빠져볼까나.

사진 제공: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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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로 다시 태어난 ‘웹소설’

요즘 한국 안팎에서 대박 행진 중인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동명의 웹소설 원작이다. 웹소설 연재 당시 이미 굉장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으니, 그때 그 시절부터 흥행 보증수표였던 셈이다. 당첨 100% 로또를 보고 그냥 지나칠 리 없다. 드라마 제작사 래몽래인은 IP 확보를 위해 자그마치 176억 원을 공동 투자했다. 단순 외주 제작을 넘어 판권과 2차 판매 수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인데, 드라마 해외 판권이 일찌감치 170여 개국에 팔렸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투자 수익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가수는 노래 제목 따라가고 드라마 제작사는 드라마 제목 따라가는 걸까. 오, 재벌집.

드라마 줄거리를 살펴보면, 흥행 대박의 냄새가 폴폴 난다. ‘재벌 총수 일가의 오너리스크를 관리하는 비서가 재벌가의 막내아들로 회귀해 인생 2회차를 산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염원을 담은 흥미진진한 설정의 판타지.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여러분 부자되세요”라는 광고 카피 이후 또 하나의 유행어 예감이다. “여러분 다시 태어나세요.”

웹소설 장르에서 성공 공식으로 통하는 환생물은 최근 드라마 장르로 건너와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과거로 돌아가 자기가 원하는 이상적인 역사를 다시 쓸 수 있다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환생물을 향한 MZ세대의 관심은 유독 뜨겁다. 게임 플레이어가 되어 다시 태어나길 반복하며 N차 인생을 즐기는 느낌이랄까. 이번 생은 망했지만 다음 생은 망하지 않아. 다다음 생이 있다면 지금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다고욧!

다시 태어날 때마다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되는 N차 인생이 궁금하다면, 웹소설에서 드라마로 다시 태어난 〈재벌집 막내아들〉의 대박 행진을 보면 된다. 드라마 방영 후, 원작 웹소설 유료 결제 매출이 230배 증가했고, 드라마 방영에 앞서 공개한 동명의 웹툰은 2개월만에 ‘관심 웹툰’ 등록자 수가 10만 명을 넘겼다. 그리고 현재 태국어, 인니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돼 연재되는 중이며 조만간 영어와 일본어 등 해외 연재를 확대할 계획이란다. 무엇이 또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무튼, “여러분 다시 태어나세요.”

사진 제공: JTBC

재벌집 막내아들로 다시 태어난 ‘재벌 비서’

주인공 윤현우는 드라마 초반 오너 일가의 지시라면 거절도, 질문도, 판단도 하지 않는 충성스러운 흙수저 비서로 등장한다. 그런데, 부회장의 지시를 받고 터키에서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중 괴한에게 납치되어 살해당한다. 총에 맞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순간, 눈을 떠보니까 1987년 서울. 과거로 돌아간 것도 깜짝 놀랄 일인데, 가난한 집안의 윤현우가 아니라 재벌집 막내아들, 그러니까 자기가 근무하던 대기업의 재벌 패밀리가 되어 있다. 와우.

1987년이면 2022년 지금으로부터 35년 정도 전, 지금 자기가 모시는 회장님의 아버지가 그룹 회장일 때로 돌아가 그 회장의 초등학생 손자의 몸으로 영혼이 들어간 것이다. 그 손자의 이름이 바로 진도준. 순양그룹 초대회장 진양철의 막내 손자 진도준이다. 흙수저에서 금수저, 아니 다이아몬드 수저로 극적인 신분 상승이 이루어진 것이다. 인생 2회차 로또에 당첨된 행운의 주인공 윤현우는 배우 송중기가 연기한다. 얼굴도 재벌인데, 신분까지 재벌이 되었으니 극 중 거칠 것이 없다.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다 알고 있는 10대 미소년이라니. 인생이란 게임에서 만렙의 실력자로 다시 태어난 느낌이랄까.

안타깝게도 세상사가 모두 좋을 수만은 없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 재벌집 막내손자로 태어난 것에도 그늘이 있다. 윤현우가 터키에서 살해당한 배경에는 순양그룹의 또 다른 재벌 패밀리가 있다. 한 마디로 자신을 죽인 집안의 핏줄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날 죽인 사람과 가족이 되어 함께 지내야 한다니. 공황장애가 생기기 딱 좋은 상황이다. 만약 내가 윤현우라면 인생이 한 편의 공포 영화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사진 제공: JTBC

레트로로 다시 태어난 ‘그때 그 시절’

〈재벌집 막내아들〉의 인기 요인 중 하나는 윤현우의 복수극에 굵직한 한국 근현대사를 잘 녹여냈다는 점이다. 전직 대통령들의 실명은 물론이고 KAL기 폭파사건, 분당 땅값 상승, 글로벌 히트 영화 〈타이타닉〉 〈나홀로 집에〉까지 그때 그 시절 TV 뉴스에서 봤을 법한 굵직한 사건들이 극 중 언급이 되는데, 극적 사실감과 함께 몰입도를 한층 높여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젊은 MZ세대에게는 재미있는 현대사 공부, 나이 든 어르신들에게는 방울방울 추억 여행. 1980년대 배경의 〈응답하라 1988〉이나 2000년대 배경의 〈스물다섯 스물하나〉와 같은 드라마들처럼 그때 그 시절을 향유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많다.

드라마를 연출한 정대윤 감독은 제목만 보면 재벌 2세의 로맨스나 끈적한 막장드라마를 예상하는 분들이 많을 거라면서 오해하는 분이 없으면 좋겠다고 제작발표회에서 말한 적이 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환생물은 웹소설이나 웹툰에서 자주 사용되는 설정으로 티키타카 로맨스물이 많다. 하지만 〈재벌집 막내아들〉은 결이 많이 다르다.

드라마 배경으로 등장하는 순양그룹은 시간이 지나면서 반도체 사업을 기반으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그 변천사가 글로벌기업으로 거듭난 국내 모 대기업을 연상시킨다. 세 개의 별. 쓰리 스타. 음음. 여기에 주 3회 방송이라는 파격 편성까지. 서사 전개의 박진감과 속도감이 남다르다. 주 3회 편성은 한국 드라마 최초였는데, 방영 전에는 생소하다고 호불호가 갈렸지만 방영 후에는 OTT 드라마 몰아보기하듯 몰입감이 좋다는 호평이 압도적으로 많다.

드라마로 다시 태어난 ‘그들’

드라마로 다시 태어나 인생을 업그레이드한 것이 어디 웹소설뿐이겠는가. 요즘 드라마를 향한 유별난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영화다. 드라마 〈몸값〉으로 다시 태어난 단편영화 〈몸값〉 또한 그 이름값을 제대로 했다. 드라마 〈몸값〉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온 스크린On Screen 섹션에 초청받았는데, 상영 당시 전석 매진을 기록할 만큼 대중들의 관심과 기대를 많이 받았다. 이준익 영화감독이 연출한 드라마 〈욘더〉 역시 티빙과 미국 영화 제작사 파라마운트가 처음으로 공동 투자한 작품으로 화제를 모으며 온 스크린에 초청을 받았다.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안락사라는 파격적인 모티프를 다루는데, 2011년 출간된 소설 『굿바이 욘더』가 원작이다.

드라마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는 제목만 들으면 왠지 웹툰 원작일 것 같지만 2015년에 방영된 프랑스 드라마가 원작이다. 인기가 많아 ‘국민 드라마’로 불렸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매회 방영 직후 인터넷이 들썩였다. 실제 스타 배우들이 실명을 걸고 특별 출연한 덕분이다. 배우 조여정을 시작으로 배우 진선규, 이희준, 김수미….

어떨 때는 특별출연하는 배우들이 주인공이고, 매니저를 연기하는 배우 이서진과 서현우가 그들을 받쳐주는 역할처럼 보이기도 한다. 드라마 제목처럼 엄청난 라인업에서 주연배우들이 ‘살아남기’하는 것이 드라마의 또 다른 미션이 아닐까 싶다. 드라마의 드라마로 살아남기.

뭐, 살아남기에 실패해도 괜찮다. ‘알신’(알고리즘의 신)의 부름을 받아 부활하는 숨은 웰메이드 드라마들이 종종 존재한다. 드라마 안이 아닌 밖, 그러니까 드라마 자체에게도 N차 인생이 허락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2023년 신년 덕담은 이것만 한 게 없다.

인생 2회차인 것처럼,

새로운 인생인 것처럼,

“여러분, 다시 태어나세요.”

 


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연두빛 캠퍼스물과 회색빛 오피스물 사이를 분주히 오가고 있다. 언젠가는 내 인생이 장르가 판타지로맨스코미디홈드라마가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2022년 중앙대학교 교육상과 제4회 르몽드 문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쿨투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크리티크 M》 편집위원과 KBS World Radio 〈김형중의 음악세상〉 고정 게스트로 활동하며 자발적 드라마 홍보대사로 열일하고 있다. 저서로 드라마 캐릭터 비평집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외 여러 권의 책이 있다.

 

* 《쿨투라》 2023년 1월호(통권 10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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