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문화비평] 오늘날, 다소 찝찝한 연애의 목적
[청년문화비평] 오늘날, 다소 찝찝한 연애의 목적
  • 조정빈(출판 마케터)
  • 승인 2023.01.0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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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생님,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같이 자고 싶어요. 우리 같이 자요… 저, 굉장히 솔직한 스타일이거든요? 감추고 음흉한 거보단 낫잖아요.”

영화감독 한재림의 데뷔작 〈연애의 목적〉에서 남자 주인공 유림은 이렇게 말한다. 남자친구랑 섹스하냐, 다리가 너무 예쁘다. 처음 교육실습을 나온 교생 홍(여자 주인공)에게 교사인 본인과의 파트너십을 강조하여 “얘기도 할 겸” 가지게 된 술자리에서 말이다.

2005년 6월 상영작인 이 영화는 유림과 홍, 젊은 두 남녀의 앙큼하고도 발칙한 밀고 당기기를 보여준다. 총 관객 수 173만 명에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을 포함한 여러 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얼마 전 OTT 플랫폼에서 한국 로맨스 영화를 찾다가 보게 된 〈연애의 목적〉. 과연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한 연애의 목적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극 중 초반 유림은 홍에게 당당히 잠자리를 요구하며 홍의 볼에 기습뽀뽀하고, 홍은 그런 유림이 싫지 않아 보인다. 수학여행에서 교사들끼리의 회식 후 키스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키스가 이어지면서 술에 취한 유림은 흥분을 이기지 못해 홍의 바지를 강제로 벗긴다. 홍의 완강한 거부 의사표시에도 불구하고 “딱 5초만 넣고 있을게요.”라는 어처구니없는 말과 함께 강간을 저질러 직장 내 성폭행의 본보기가 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영화가 결말에 다다랐을 때 홍이 유림을 학교에 고발하는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그마저도 마치 본인의 트라우마와 관련된 문제가 화두에 오르자 말해선 안될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묘사되어 버린다. “난 그냥은 안 자요, 돈 받고 자요.” 성폭행을 당한 후의 여자 주인공 대사, 이 영화의 결말이 결국 두 남녀의 해피엔딩인 것은 연애의 목적을 떠나 찝찝한 여운을 안겨준다.

〈연애의 목적〉은 2005년 청룡영화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2006년 백상예술대상 등 화려한 수상내역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로부터 18년이 지난 2023년 현재 이 영화의 개봉을 가정하면 관객들의 반응은 어떨까. 상영 당시 관객들의 반응과는 확연히 다를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성인지 감수성 인식은 2000년대에 비해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한 남자의 성적 욕구인지 사랑인지 모를 어떤 감정의 촉발과 보호본능. 우리가 이 영화를 관람하며 자연스레 따라가게 되는 이야기의 주인은 유림, 즉 남성의 입장이다. 직장 내 여성근로자들의 몇몇 성희롱 피해 사실들은 어쩌면 너무나도 쉽게 휘발되었을 수 있다. 대등하지 않은 권력관계에 처해있을 때 상대가 무안하지 않게 ‘부드러운 표현’을 사용하여 거부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남자 주인공 유림의 언행은 단지 발칙하고 솔직한 캐릭터성으로 설명될 수 없다. 그는 본인이 홍을 “좋아한 죄”로 징계를 받은 것이 아니라, 명백한 성범죄를 저질렀기에 교사로서 전락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현 세대의 연애의 목적은 사랑이 될 수도, 섹스가 될 수도 있다. 둘 중 어느 것이 목적이 되든 서로의 합의만 이루어진다면 그 판단을 나무라거나 비난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또 하나의 〈연애의 목적〉에 주목해야 한다. 연애라는 이름 아래 아직까지 잔존하고 있는 남성중심주의적 사상을. 그 속에서 여성들은 지금껏 꾸준히 ‘예민’했고, ‘유난’이었으니까. 한국 로맨스 영화시장에서 성인지 감수성 인식 변화에 걸맞은 〈연애의 목적〉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이 영화, 참 불편했다.

 


조정빈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출판 마케터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 《쿨투라》 2023년 1월호(통권 10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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