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우리들의 애도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우리들의 애도
  • 해나(본지 에디터)
  • 승인 2019.03.2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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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시사회

 4월이 오면 새로새록 되살아나는 기억, 세월호가 벌써 참사 5주기를 맞았다. 그간 해당 사건의 진실을 다룬 많은 책들과 공연, 여러 다큐멘터리 영화와 독립영화가 나왔지만, 상업영화로 세월호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주인공은 오는 4월 3일에 개봉하는 <생일>(이종언 감독, 나우필름· 영화사레드피터·파인하우스필름 제작)이다.

 영화는 2014년 4월 이후 남겨진 가족들의 모습을 찬찬히 비춘다. 참사 이후 아들 수호(윤찬영)를 잃은 슬픔을 누른 채 살아가는 순남(전도연)과 사고 당시 가족 곁에 있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순남을 찾아온 남편 정일(설경구)이 아픔을 직시하고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가는 정일과 순남 가족. 매년 먼저 떠난 아이를 아끼던 이들과 가족들은 한자리에 모여 생일 자리를 열지만, 순남은 이를 완강히 거절해 왔다. 그리고 어김없이 올해도 아들 수호의 생일이 돌아온다.

 일견 별 탈 없이 살아가고 있는 듯한 이들의 일상에는, 실은 수없이 많은 균열이 있다. 어떤 사정으로 외국에 있다가 가족의 곁으로 돌아온 정일은 그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마음 편히 울어본 적이 없다. 

 

순남은 유가족이 모인 자리에도 가지 못한다. 보상금에 대한 오해도 지긋지긋하다. 다른 유가족들은 매년 여는 아이의 생일 자리를 순남은 계속 거부했다. 그러면 정말 아이를 떠나보내야 할 것 같아서다. 오빠의 빈자리에 마음 아파하는 엄마를 보고 자란 둘째 예솔(김보민)은 일찍 철이 들어 투정 한번 크게 부리지 못한다.

 지난 3월 18일 오후 8시, 서울 용산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에서 언론·배급시사회가 열렸다. 시사회에 참석한 이종언 감독과 배우 설경구(아빠 정일 역), 전도연(엄마 순남 역)은 ‘두려움’부터 고백했다.

 참사 발생 후 2015년 안산에 내려가 봉사활동을 하며 지냈던 이종언 감독은 "사고가 난 지 오래 되지도 않았을 땐데 많은 매체에서 세월호 피로도 얘길 하는 걸 보고 안타까웠다"며 "작게 만들든 크게 만들든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드린다면 그런 말이 나오지 않을 거란 제 마음은 확고했다"고 기획 당시 생각을 밝혔다.

 전도연은 감독이 보낸 시나리오를 본 뒤 "처음엔 이 슬픔이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거절도 했었다"며,  "이 이야기에 진정성이 있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라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설경구는 영화에 출연하기 전 “많은 걱정을 하면서 시작했다”고 운을 뗐다. <생일>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상황이 촬영할 수 있는 스케줄이 안 되었지만, 그는 "이 영화를 할 수 있는 일정이 아니었는데 정말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시인은 시를 썼고, 소설가는 글을 썼고, 가수는 추모 노래를 만들었는데 우린 무엇을 했을까 생각했다. 왜 영화로는 없었을까. 물론 시기가 이르다는 지적 또한 있었기에 일주일 정도 고민하면서 다른 쪽에 양해를 구해 일정을 조정해 참여하게 됐다." 고 출연을 결정한 계기를 밝혔다.

 

영화 <생일>은 이야기 자체가 안고 있는 주제와 소재가 크기에 쉬운 과정은 없었다. 전도연은 "혼자만의 방식으로 아들 빈 자리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인물이었는데 제 감정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것보다 앞서갈까 봐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감독님과 얘기했다"며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 참 무서웠다"고 진심어린 고백을 했으며, 설경구는 "촬영 후 컷 소리가 났을 때 더 깊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정말 슬펐다. 시사 무대에서는 저렇듯 아름다운 전도연이 스크린 속에서는 아들 수호를 잃은 슬픔을 완벽하게 재현해내는 엄마 순남으로 돌아갔다. 전도연이 울먹이면 관객들도 따라 울었다. 전도연은 과거 <밀양>에서 아이를 잃은 엄마를 연기한 바 있다. 이제 결혼도 하고 아이 엄마가 되어서일까? 역시 전도연의 연기는 <밀양>때보다도 더 무르익었고, 스크린과 현실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먹먹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슬픔을 꾹꾹 눌러 담으며 담백하게 흘러가던 영화는 마지막에 올라가서야 마음 놓고 눈물 흘리게 한다. 수호의 생일 모임에 온 이들이 각자 수호를 추억하고 이야기하는 30여 분의 시간을 통해서다. 부모의 자책, 친구 대신 살아남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아이들의 부채감, 그런 이웃들을 넉넉히 끌어안으며 함께 슬퍼하려는 이웃들의 마음이 한데 어우러진다. 이 장면에서 관객 모두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자리에 초대받은 일원이 된다. ‘이제 그만 잊으라’는 말들 사이에서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애도의 시간이었음을 영화 <생일>은 말하고 있다.

 

알려진 대로 <생일>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여러 우려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참사를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원색적 비난부터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을 극화하는 게 이르진 않냐는 지적이었다. 이종언 감독은 "많이 걱정하며 시작했다. 만들고 싶다고 해서 다 만들어지는 건 아니겠지만 여러 노력으로 영화를 완성시켰어도, 나름 최선을 다했어도 누군가에게 또 다른 상처가 생기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고 밝혔다.

이어 감독은 <생일>이 단지 상처입은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강조했다. 이종언 감독은 "참사를 당한 유가족분들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도 담고 싶었다"며 "그 사건이 평범한 사람에게 다가온 그 참사가 우리 일상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담담하게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도연 역시 감독 말에 힘을 실었다. "다 같이 아프자고 만든 영화가 아니"라며 그는 "보고 힘이 생기길 하는 바람을 담았다. 관객 분들, 누군가에게 그리고 유가족분들에게 힘이 될 영화"가 될 수 있게 사랑과 관심을 부탁했다.

 이처럼 영화 <생일>은 진실이 곡해되기 쉽고, 국가적 참사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일부 부정적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만큼 조심스러운 시도다.

 “보시면 단지 슬프기만 한, 힘들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아시고 누군가에게 소개하시지 않을까” 바라고 있다는 이종언 감독의 희망처럼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슬픔을 넘어서 상처를 치유해내는 따뜻한 긍정의 메시지로 다가갈 수 있길 기대한다.

 

 

 

 

 

* 《쿨투라》 2019년 4월호(통권 5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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