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상상력을 매개로 한 미술과 문학의 상호 교류: 강경호 평론집 『미술의 상상력을 통한 시적 발화』
[북리뷰] 상상력을 매개로 한 미술과 문학의 상호 교류: 강경호 평론집 『미술의 상상력을 통한 시적 발화』
  • 권준안(본지 인턴기자)
  • 승인 2023.01.03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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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이란 모든 예술의 공통된 창조 원류이다. 여러 예술 분야는 서로 상호 간 영향과 수용의 관계를 형성해오며 발전하였으며, 인접예술의 작품에서 작가가 창작의 영감을 얻는 사례도 수없이 많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속 풍경이 화가들의 단골 소재였고,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들의 명화가 후대 시인들의 시작詩作 동기가 되었다. 이처럼 문학과 미술은 서로에게 창작의 원동력이자 발전을 일으키는 자극제이다. 여기 문학과 미술의 통섭적인 측면을 주목하는 이가 있다. 시인이자 문학 평론가인 강경호이다.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문학의 길을 걸은 지 어언 30여 년이 넘은 강경호는 새로운 평론집 『미술의 상상력을 통한 시적 발화』를 내놓았다.

작가가 인접예술의 작품에서 창작의 영감을 얻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상상력이랑 모든 예술에 공통된 창조의 원류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상호 간의 영향과 수용의 관계를 형성해 왔다. 즉 문학과 미술은 서로에게 창작의 동기를 제공하며 발전해 온 것이다. (중략)

미술가의 삶을 문학으로 형상화하는 경우 미술가의 삶과 미술 작품 세계를 한꺼번에 응축하여 소설이나 시로 표현되기도 한다. 때에 따라서는 미술가의 특정 작품에서 얻은 영감이 창작 동기가 되어 소설이나 시로 형상화하기도 하는데, 미술작품이 갖는 주제를 시인 자신의 삶, 또는 문학인이 살고 있는 현실을 문학적으로 내포하기도 한다.
- 「고야의 그림과 김이듬·이원의 시」 본문 172쪽

Jean-François Millet, 〈Des glaneuses〉, Huile sur toile, 1857, 83,5 cm × 110,0 cm. Musée d’Orsay

그의 평론집 『미술의 상상력을 통한 시적 발화』에서는 다양한 미술과 문학 작품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서양미술의 대가 12명의 미술작품과 우리나라의 대표 화가 3명의 작품들을 통해 시인들의 시적 발화와 시적 상상력을 펼치는 과정이 담겨있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과 김형술·조말선의 시」, 「밀레의 그림과 최승철·추영희의 시」, 「이중섭의 그림과 구상·김광림·이수익의 시」, 「클림트의 그림과 김은숙·정선우의 시」 등 보편적이면서도 특수성이 조화를 이루는 주제들로 채운 것이 특징이다.

시인을 ‘사물의 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모습을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훌륭한 시는 조각작품 같은 것이어서 앞에서 볼 때, 뒤에서 볼 때, 옆에서 볼 때, 그리고 위에서 내려보거나 밑에서 올려다볼 때마다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관념적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되면 늘 보아왔던 뻔한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에 숨겨진 또 다른 진실을 찾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낯선 시선이 필요하다.
-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과 김형술·조말선의 시」 본문 15쪽

Francisco Goya, 〈Saturn Devouring His Son〉, mixed media mural transferred to canvas,
1819-1823, 143.5 cm × 81.4 cm. Museo del Prado, Madrid

『미술의 상상력을 통한 시적 발화』는 미술가들의 작품 속에 드러난 상상력을 통해 시가 어떻게 발화하는지를 연구한 평론집으로, 문학과 미술이라는 이질적인 장르의 소통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상상력을 펼치는지 규명하고 있다. 미술가들의 삶과 예술적 상상력이 시인에게 어떻게 영감과 시적 발화에 영향을 주었을지, 미술가들의 작품과 시인들의 시가 어떻게 교감하는지, 미술 작가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의 삶과 예술세계에 대해 비중을 두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미술의 상상력을 통한 시적 발화』에서는 장르간의 교감, 소통·창작의 과정, 작품의 위의를 쉽게 전달하기 위한 강경호 평론가의 배려가 담겨있으며, 문학과 미술의 통섭을 위한 물꼬를 트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고 있다.

눈만 부리부리하게 살아있는 비쩍 마른 사람의 모습이 뇌리에 가득 찼다. 그래서 나는 몸에 살이 찌는 것을 혐오했다. 음식이 목구멍에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몸이 비쩍 말라갔다. 그 무렵, 자코메티의 조각들을 보았다. 막대기처럼 마른 인물 조각 작품들은 내가 닮고 싶었던 모델들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며 무척 반가웠다. 거울을 보며 멋을 부릴 스무 살짜리 청년이었지만 나는 그런 것에는 소가 먼 산 쳐다보듯 했다. 책만 읽었다. 수많은 책을 읽어가며 나는 외형주의보다도 사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철든 아이였다. (중략)

내 생각으로는 최승호의 시 여러 편에서 자코메티의 조각 작품의 이미지에 시인 자신의 삶의 내력을 은연중에 오버랩시킨 것으로 짐작이 된다. 물론 최승호의 작품은 엄연히 독립된 텍스트로 존재한다. 자코메티의 조각과 최승호의 삶의 체험이 시적 배경이 되었을 뿐이지만, 조각과 시라는 장르적 이질감이 주는 정서가 아주 낯설게 다가온다.
-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과 최승호의 시」 본문 256-260쪽

Alberto Giacometti, 〈Woman of Venice VII〉, Bronze, 1956, 117.0 x 16.0 x 36.0 cm.
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Foundation
Gustav Klimt, 〈The Kiss〉, Oil and gold leaf on canvas, 1907-1908, 180cm x 180cm. Ö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 Vienna, Austria

문학의 길 위에서 미술의 끈을 놓지 않았던 강경호의 독특한 시선이 주목하는 대표적인 이가 최승호 시인이다. 『자코메티와 마네킹』이라는 시선집을 내기도 한 최승호에게서 강경호는 자신의 스무 살 시절을 떠올리며, 자코메티에게서 느낀 위안감을 공유한다. 생명성을 이야기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공허’, ‘무’, ‘죽음’에 대한 함의까지도 포함하는 최승호의 시는 현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현상까지 주제로 삼고 있는 자코메티의 작품을 연상케 한다. 그 둘은 서로 다른 장르이며 독립된 텍스트이지만, 최승호 시의 배경으로 자코메티의 작품 세계가 은은하게 깔려있다는 점은 자명하다. 그리고 최승호 작품에서 자코메티의 작품을 읽으며 느낄 수 있는 장르적 이질감과 정서적 동질감, 그리고 그 사이 문학과 미술의 미묘한 소통이 주는 감상의 즐거움이 바로 강경호가 미술의 상상력을 통한 시적 발화를 주목하는 이유이다.

강경호 평론가는 1992년 《문학세계》에 평론, 1997년 《현대시학》에 시로 등단했으며, 저서로는 문학평론집 『휴머니즘 구현의 미학』, 미술평론집 『영혼과 형식』, 시집 『언제나 그리운 메아리』 등이 있다. 현재 계간 《시와 사람》 발행인으로 27년째 문예지를 발행하고 지역 문학을 이끌고 있다.

 


 

 

* 《쿨투라》 2023년 1월호(통권 10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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