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쿨투라 신인상] 당선작 및 심사평
[제7회 쿨투라 신인상] 당선작 및 심사평
  • 쿨투라 cultura
  • 승인 2014.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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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신인상 당선작 발표

문 화 평 론 부 문
'인디'의 추억 오영진

게 임 평 론 부 문
게임규칙에서 게임적 리얼리즘으로 박원호

심 사 위 원
전찬일(영화평론가), 홍용희(문학평론가), 이재복(문학평론가), 강태규(대중문화평론가)

 

심사평

매트릭스화된 문화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해부

문화의 시대라는 말도 적절하지 않다. 우리의 삶 자체가 문화이고 문화 자제가 삶이 되어버린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문화 현상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어디서나 늘 문화에 대한 말과 담론이 넘쳐나고 있고, 누구나 자신이 그것의 진정한 향유자라고 자부한다. 어쩌면 이들의 이러한 태도는 '지금, 여기'의 문화의 장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넘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 자연스러움이 문제라면 문제일 수 있다. 이것이 생식 작용처럼 자연스럽다보면 그것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와 판단이 여기에 함몰되어 버릴 수 있다. 문화의 매트릭스 현상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문화를 잘 안다고 하지만 그 누구도 그 문화에 대해 무지한 현상이 초래될 수도 있는 위험성이 '지금, 여기' 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문화비평은 바로 이 지점, 다시 말하면 문화의 매트릭스 현상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너도 나도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게임, 대중음악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정보의 전달자 아니면 매개자로서 기능할 뿐 그 문화의 매트릭스 현상을 깊이 있게 관조하고 여기에서 어떤 이해와 판단을 이끌어내는 그런 사려 깊은 우리 시대의 문화론자라고 볼 수 없다. 우리 『쿨투라』에서 지향하는 비평의 모토가 여기(관조, 사려 깊음)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에 투고된 글들을 심사위원들이 읽고 그것에 대해 열띤 토론을 가졌다. 그 결과 오영진의 「'인디' 의 추억-1996년에 대한 회고」와 박원호의 「게임규칙에서 게임적 리얼리즘으로-〈바이오쇼크 : 인피니티〉를 중심으로 본 게임체험의 진화와 완성」이 남게 되었다.

먼저 오영진의 비평은 '인디음악' 을 중심으로 1996년의 문화현상에 대해 성찰한 글이다. 인디음악을 중심으로 당시의 문화현상을 읽어내는 솜씨가 범상하지 않다. 이것은 당시의 인디음악에 대한 이해의 수준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이 글을 통해 볼 때 그는 당시의 문화현상에 대한 향유자이면서 비판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비판의 시각은 인디음악이 당시의 사회 문화적인 문맥 속에서 어떠한 정치성을 드러내고 있는지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대목에서 잘 나타난다. 우리가 혼히 90년대를 가리켜 냉전의 종식으로 인한 거대 이념이 종말을 고한 시대로 명명하면서 정치성의 약화내지 소멸을 이야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90년대에 대해 가지는 고정관념에 대해 필자는 인디문화가 지니는 저항과 실험 속에서 새로운 정치성의 의미를 찾아낸다. 그의 이러한 시각이 이 비평의 큰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인디문화의 지속성과 그것이 은페하고 있는 의미와 정치성에 대한 탈은폐 전략은 90년대 이후 우리의 문화현상을 이해하고 판단하는데 일정한 방향성과 환께 지평을 제공할 것이다. 우리 시대의 문화현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음악에서 다른 문화의 차원으로 확장하고, 해석의 깊이를 확보한다면 좋은 비평가가 되리라고 본다.

박원호의 비평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문화비평' 의 차원에서는 낯선 것이다. 이것은 내용보다는 그 형식. 다시 말하면 정격화되고 체계화된 비평의 형식으로써 그의 비평이 낮설다는 것이다. 게임이야말로 '지금, 여기' 의 문화적인 양식에서 가장 진보한 것이 아닌가. 소설의 내러티브와 만화의 이미지,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동영상을 모두 포괄하면서 여기에 '상호작용성interactivity' 까지 아우르는 장르가 바로 게임이다. 이런 점에서 게임은 지금 이 시대의 문화의 결정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 시대의 많은 문화양식 중에 게임에 대한 깊이 있는 탐색이 제일 부족하다는 점이다. 게임을 향유의 차원에서 인식할 뿐 그것을 체계화 된 담론이나 학문의 차원에서 탐색하는데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박원호의 비평은 주목에 값한다. 그의 글은 감각적이지도 감성적이지도 않지만 게임에 대한 열정과 그것을 해명하려는 진지한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하나의 텍스트로서의 게임에 대한 섬세하면서도 구체적인 탐색과 그것이 '지금, 여기'에서 어떤 사회 문화적인 전망과 지평을 거느리고 있는지에 대한 해석이 전제된다면 더 좋은 비평적인 안목을 지닐 수 있으리라고 본다.

- 심사위원: 전찬일, 홍용희, 강태규, 이재복

 

 


당선소감

문화평론 부문 - 오영진

이것은 쓰기 어려운 글입니다

일전에 신춘문예란만 집중적으로 볼 기회가 있었을 때, 저는 경악했습니다. 그 유명한 작가들의 당선소감이 너무나 천편일률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다른 사연을 보여주는가 싶지만 대개는 열쇠를 쥐고 문을 연다던가, 긴 동굴을 거쳐 밖으로 나온다던가, 밤이 지나 새벽을 맞이하는 상상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니 등단이나 수상의 소감만큼 상투적인 글이 있을까 싶습니다. 이것은 쓰기 어려운 글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란 문학을 공부하는 것이고, 때때로 그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 입니다. 하지만 문학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문학이 점점 낡은 형식으로 취급되고, 이제는 '문학'을 읽어도 '사회'는 커녕 '문제적 개인'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스럽게 이것 저것 문학이외의 영역을 건드려보곤 합니다. 한 때 영화감독이 꿈이었다는 것, 록앤롤 스타가 꿈이었다는 것이 이런 행위를 정당화하곤 합니다. 이렇게 문화평론을 썼다는 것은 앞으로도 그런 글을 쓴다는 약속입니다. 이것은 쓰기 어려운 글입니다.

당선작 「'인디'의 추억」은 제목에서부터 느끼시겠지만 굉장히 사적인 대중음악평론을 쓴 것처럼 보입니다. '한국평크키드의 생애' 에 가까운 이 글은 그러나 몇 번의 스타일변화를 겪은 글입니다. 우선 어떻게든 쉽게 읽히는 글을 쓰자는 입장은 물론이요, 어차피 주관적인 사항을 애써 객관적인 척 위장하느라 쏟는 에너지를 줄이고, 전혀 관계가 없는 사항들 간에 연결고리를 만들어 보려고 시도한 글이었습니다. 애시당초 제가 가진 세대론적 대결의식에서 글이 나왔다는 것을 밝힙니다. 시작부터 너무 많은 짐을 부여했습니다. 이것은 쓰기 어려운 글입니다.

문화연구이론부터 시학, 서양철학, 동아시아 미학까지 폭넓게 가르칠 수 있는 선생은 얼마 없습니다. 학생시절부터 문학 외 커리쿨럼에 눈뜨게 하고 이를 트레이닝 시켜주신 모교의 은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엉성한 질문에 언제나 칼날같이 답해주고, 거침없이 비판해주신 최진석, 전혜진 학형께도 감사드립니다. 식자라면 '책'으로 싸우라는 이진경 선생님의 말씀도 깊이 새겨봅니다. 또 올해로 6년차에 접어드는 '한양문화비평연구회'의 동료들, 이제는 유서 깊다고 표현해야 할 대안인문학 공동체 '수유너머N'의 수많은 동지들, 같은 전공, 동년배들이 많아 즐거운 '인문학협동조합'의 친구들에게 감사합니다. 언급되지 않은 모든 이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기에 이것은 쓰기 어려운 글입니다.

 

게임평론 부문 - 박원호

언젠가 세익스피어는 게임을 할 것이다

제가 영화와 게임에 빠져있었던 고교시절 매달 발매되는 게임잡지를 교과서보다 더 열심히 읽었습니다. 대학에 들어와 리포트를 작성하면서 그 잡지의 기자들이 사용하던 단어나 필체를 나도 따라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을 때 스스로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 때부터 항상 게임평론을 쓰고 싶다는 하나의 열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게임이 문화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역량 있는 제작자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게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학문적 활동 역시 필요하다고 항상 믿어 왔습니다. 그에 대한 일환으로 개인 블로그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여 게임을 주제로 한 논문이 당선되기 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게임에 대한 논문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소위 기성세대들이나, 위정자들에게 우리 아이들의 공부를 방해하는 저질문화로 평가받는 게임이 가진 문화적 맥락을 연구하는 것이 가치가 있는 활동일까요? 사실 모바일게임은 물론 콘솔게임까지 우리 생활에 게임이라는 문화는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다가오고 있으며, 이미 그 일부로 자리 잡은 면도 있습니다. '게임은 문화인가? 혹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저는 물론 '그렇다'라고 생각하지만 '게임이 고급예술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거기에는 좀 더 연구할 시간이 필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학과 영화가 하나의 예술로서 가치를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본다면 게임도 언젠가 고급예술 즉 인간의 인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하지 않은 가치를 가진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은 이미 그렇게 작용하고 있을 지도 모르지요.

언젠가 사회가 용인한다면 게임에서도 세익스피어 같은 사람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 세익스피어를 찾아 나서는 그 첫걸음을 쿨투라를 통해 시작하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 글이 나오기까지 도움주신 '문화비평연구회'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항상 응원해주시는 아버지 어머니께도 감사드립니다. 이제 겨우 첫걸음을 내딛은 부족한 글을 심사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한신대학교 시절부터 항상 저의 학문에 대한 열망을 응원해주신 은사 최민성 교수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제가 즐겨온 수많은 게임의 주인공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Thank you for playing

 

 


 

* 《쿨투라》 2014년 봄호(통권 3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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