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쿨투라 신인상] 당선작 및 심사평
[제8회 쿨투라 신인상] 당선작 및 심사평
  • 쿨투라 cultura
  • 승인 2015.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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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신인상 당선작 발표

시 부문
「미술관」 외 4편 이현정

희 곡 부 문
「비밀」 송한샘

연 극 평 론 부 문
「영원과 한계, 그리고 우리」 손옥주

심 사 위 원
전찬일(영화평론가), 홍용희(문학평론가), 이재복(문학평론가), 강태규(대중문화평론가)

 

심사평

시 심사평

 

유쾌하고 도발적인 상상력의 질주

2015 《쿨투라》 신인상 부문에 이현정의 시 「미술관」외 4편을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이현정의 작품들은 유쾌하고 도발적인 상상력의 질주가 돋보인다. 그의 싱그럽게 활주하는 상상력의 가속도는 어느새 “미술과 마술”, “국기와 걸레”, “국기”와 “혀” 등의 비동일성을 동일성의 계열체로 어우러지게 한다. 그의 이러한 상상력의 마법은 “미술관”보다 더 미술관 같고, “요가수업”보다 더 요가수업 같은 입체적 생동감을 연출해낸다. 그래서 그의 시편은 매우 이색적이면서 친숙하고 난해하면서 편안하게 다가온다.

신인의 독창적인 시적 개성과 패기가 평가된다. 다만, 좀 더 날렵하고 세련된 시적 몸매와 체위를 갖추어나갈 것을 주문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다소 둔탁하고 산만하고 자의적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우리 시단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날카롭고도 문제적인 시적 상상의 진군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기를 바란다. 거듭 ‘쿨투라 신인상’ 수상을 축하한다.

- 심사위원을 대표하여, 홍용희(문학평론가)

희곡 심사평
신예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수준 뽐내

제8회 《쿨투라》 신인상 수상자로 시 부문의 이현정, 연극평론의 손옥주와 함께 희곡 〈비밀〉의 송한샘을 선정했다. 다소 진부하게 다가서는 제목과 달리 〈비밀〉은 신예의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상당한 수준을 뽐낸다. 개별 캐릭터들의 성격화와 대사 처리도 그렇거니와, 심상치 않은 캐릭터들을 둘러싸고 양파 껍질 벗겨지 듯 드러나는 ‘비밀들’을 펼쳐 보이는 탄탄한 플롯이나 캐릭터들 간에 시종 유지되는 극적 긴장감 등 주목할 만한 덕목들이 즐비하다. 당장이라도 연극 공연으로 보고싶다면 이해할까?

실은 그 정도가 아니다. 연극에 이어 영화로도 보고 싶다는 욕구마저 일게 한다면 어떨까. 희곡은 손옥주가 평한 연극 〈맨 프럼 어스〉의 원전 격인, 동명 원작 시나리오를 형상화한 영화와 여러모로 비교될 만한데, 영화 〈맨 프럼 어스〉가 의도적으로 연극적인데 반해 이 희곡은 영화적 느낌을 물씬 풍긴다. 4막 내지 5막 구성으로 이뤄지기 십상인 전통적 연극 구성 대신 13개의 장과, 수미상관을 이루며 그 13개 장을 에워싸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짜인 플롯부터가 영화적이다. 에피소드 구조를 취하고 있는 바, 흥미롭게도 여느 에피소드 물과 달리 몰입의 강도를 결코 잃는 법이 없다. 특히 12장의 몽타주적 구성과, 그 지점을 거치며 폭발적으로 벗겨지는 비밀들이 선사하는 극적 감흥은 압도적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정하고픈 〈비밀〉의 덕목은 또 있다. 열여덟 살 남자 고등학교 우등생과 40대 중반의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줌마이자 친구의 엄마 사이에 펼쳐지는 일종의 러브 어페어와 그 위험한 어페어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프로급 솜씨다. 일찍이 이 땅의 그 어느 연극이나 영화가 그렇게 ‘위험한 관계’를 이렇게 멋들어지게 극화했던가! 그 관계는 퍽이나 자극적·도발적이나, 한편으로는 한없이 순수하고 솔직하다. 그래서 아름답고 가슴 설렌다. 그럴 만하거늘 도저히 비윤리적이라거나 반도덕적이라고 손가락질 할 길이 없다.

송한샘은 여러 모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며 톡톡 튀는 발랄한 상상력과 참신한 지성”을 찾는 ‘쿨투라 신인상’에 근접 조우한 최적의 사례 아닐까 싶다. 더욱 더 힘찬 정진을 기대한다.

- 심사위원을 대표하여, 전찬일(영화평론가)

연극평론 심사평

극과 영화의 비교나 글쓰기 완성도 높아

손옥주의 공연 〈맨 프럼 어스〉의 평은 사실‘공연 평’이라고 일컫기에는 적잖이 허전하다. 무엇보다‘배우 예술’인 연극을 평하면서 정작 배우들에 대한 언급이 워낙 부족한 탓이다. 이 연극에는 제작자로 나선 배우 이원종을 위시해 서이숙, 정규수, 최용민 등 한국 연극계의 좋은 중견 배우들이 단연 빛을 발한다. 그들 사이의 앙상블도 그렇지만, 개별 연기들을 음미하는 맛도 얕지 않다. 여현수의 존 올드맨 연기는 볼 수 없었지만, 문종원과 박해수의 각기 다른 인물 해석은 현장 예술로서 연극의 속성을 새삼 일깨워주기 모자람 없었다. 그렇다면 왜, 손옥주는 연극의 배우 예술적 측면을 소홀히 한 것일까?

그것은 몇 년 간 이 땅을 떠나 지내야 했던 이력으로 생길 수밖에 없었던 어떤 공백으로 인한 것일 공산이 크다. 달리 말하면 체험적으로 위 배우들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배우에 집중해 쓸라치면 자신의 경험보다는 자료에 기반해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게고, 그런 얄팍한 평을 쓸 바에는 연기 층위보다는 연기자들이 토해내는 대사 및 대화에 방점을 찍는 텍스트 중심적 평을 쓰는게 더 낫겠다는 판단을 했으리라. 더욱이 이 연극은, 동명 원작 시나리오를 극화한 영화를 원전으로 탄생하지 않았는가. 영화와 마찬가지로 연극 또한 몇 차례의 반전을 품고 있는, 너무나도 강렬한 스토리와, 그 스토리를 단순하게 배치한 플롯의 힘이 으뜸 매혹 아니던가.

손옥주의 선택은 효과적이었다. 그는 최용훈의 연출 스타일을 살짝 건드린 뒤, 연극과 영화를 비교 분석해가며 상호텍스트 중심적 비평을 시도한다. 비교는 그의 장기다. 아니나 다를까, 그 비교 솜씨가 일품이다. 더욱이 글쓰기 기본을 겸비했다. 글쓰기 완성도가 큰 칭찬감이다. 이런 장점들은 공연 평으로서 허전함을 상쇄시켜주기 충분하다.

손옥주는 프로 냄새 가득한 송한샘과 이현정에 비하면 천상 아마추어다. 다름 아닌 그 아마추어성이 손옥주의 최대 강점이라면 어떨까. 이제 막 첫 발을 내딛는 신인에게 "아마추어적"이라는 것은 큰 흠일 수 없다. '송'과 '이'의 프로페셔널리즘에 감탄했듯이, 손옥주의 잠재력 · 가능성에 한 표 던지련다. 평론가로서 각고의 노력을 기대하며, '쿨투라신인상' 수상을 축하한다.

- 심사위원을 대표하여, 전찬일(영화평론가)

 

당선소감

시 부문 - 이현정

아픔이 아픔을 구한다

무거운 걸 들다가 근육이 뭉쳤다. 보석 사우나 가는 길. 알몸으로 살아도 창피하지 않은 세계였다. 내가 시를 쓰는 곳은.

때가 보석이다. 어떤 엄마가 자폐아를 돌본다. 엄마는 의사에게 의지한다. 의사가 할 수 없는 일은 시인이 한다. 시인이 할 수 없는 것은 아픔이 한다. 결국 아픔이 아픔을 구한다.

내 젊음은 하늘에 침을 뱉기도 했다. 침은 별이 되었다. 시는 아픔을 성찰한다. 죽지 못하는 운명은 아플 수도 없는 운명이리라. 사회는 아픈 도시를 앓는다. 나는 내 시를 얼마나 많이 죽였던가. 더 무거운 걸 들면 무엇이 부러질까.

분노를 텅텅 차던 저에게 이 세상을 안아주라고, 힘든 일은 모두 문학 공부라고 용기를 주셨던 강형철 선생님 감사합니다. 박상률 선생님, 이윤설 선생님, 신미나 선생님, 시의 생명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안현미 선생님, 김소연 선생님, 김이듬 선생님, 시의 미학을 주셨습니다. 소중한 숭의 문우들, 부모님과 두 딸, 고마운 남편에게 기쁨을 전합니다. 제 시를 읽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희곡 부문 - 송한샘

저는 요즘 갓 알을 깨고 나온 햇병아리가 된 기분입니다. 그 작디작은 소우주에 갇혀서 바깥세상이란 어떤 것일까, 아직 채뜨지도 못한 눈을 안으로, 안으로 굴리던 햇병아리는 이제 조금씩 튼실해지는 살집과 뼈마디를 뽐내고, 거친 듯 부드러운 어색한 솜털을 갈라지는 껍질 틈으로 쏟아져 내리는 태양빛에 쬡니다. 온몸으로, 온몸으로 어둠의 때를 벗어 버립니다. 두 눈이 멀어도 좋을 것만 같던 부신 환희, 온몸이 타버려도 좋을 것만 같던 뜨거운 불꽃, 그 떨림. 그러나 그것은 찰나보다도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이미지 조각이었음을, 이 햇병아리는 결코 에덴동산 위의 아담이 아님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런 깨달음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밀〉을 통해서 그저 평소에 우리가 겪을 수 있는, 모두가 앓고 있는 우리들 무의식 속의 그림자를 원고 위에 솔직하게 비춰보고 싶었습니다. 우린 참 성적을 위해 노력하고, 재산을 부러워하며, 가족을 중요시합니다. 하지만 성적과 배움은 다르고, 재산이 풍요와 다르며, 가족이 곧 행복한 가정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서 어떤 가면을 쓴 채 살고 있을까요? 누군가 이 희곡을 혹은 언젠가 무대 위에서 태어날지 모를 연극을 통해 자기 안의 그림자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보듬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면 참 행복할 것 같습니다.

알 속의 햇병아리를 세상으로 불러주신 쿨투라 심사위원 및 편집위원 분들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에게 글을 쓰는 즐거움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가슴이 아니라 손가락 마디마디로 느끼게 해주신 경희사이버대학원 문예창작과 홍용희 교수님, 극작의 기본을 가르쳐주신 김정숙 선생님, 그리고 함께 글을 쓰며 건필의 투지를 다졌던 동학들 참 감사합니다. 햇병아리는커녕 지구상의 그 어느 세포만도 못했던 졸고를 함께 읽고 비평하고 발전시켜주신 극단 달나라동백꽃의 부새롬 연출님과 성여진, 김시영, 신안진, 노기용, 장율 배우님 정말 감사합니다.

 

연극평론 부문 - 손옥주

스쳐지나가는 순간을 언어로 기억하고 기억한 언어를 다시 종이에 옮겨 적는다는 것은 한 편으로는 설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너무나 막막하고 두려운 일이다. 오랜 시간,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은 순결한 백지 위에서 깜빡이는 까만 커서를 볼 때마다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그 리듬 속으로 한 없이 숨고만 싶었다. 두려움이라는 녀석은 본래 유통기한조차 모르는 건지, 맨 종이를 대할 때마다 나는 여전히 그저 숨고만 싶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두려움 보다 큰 것, 두려움을 잊게 할 만큼 거대한 것 또한 운명처럼 주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나의 경우에는 아마도 공연이 그러했던 것 같다. 공연자들의 움직임을 경험하는 순간 만큼은 글쓰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놓여나 그저 내가 본 것들을 의식의 살 끝에 부지런히 한 땀 한 땀 새겨 넣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새겨 넣는 과정이 끝났을 때 과연 어떤 그림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게 될지, 아직은 모르겠다. 다만 이번 당선 소식을 전해 듣고 그 그림이 어쩌면 재미있는 방향으로 전개될지도 모른다는, 조금은 긍정적인 생각을 해보았을 뿐이다.

전찬일 선생님을 비롯한 심사위원 분들의 도움으로 부족하기만 한 나의 글에서 용기의 끝자락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작업해나가는, 그래서 늘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는 베를린과 서울의 무용인들, 연극인들에게 애정 어린 마음을 보낸다.

 


 

* 《쿨투라》 2015년 봄호(통권 3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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