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쿨투라 신인상 시 부문 당선작] 「미술관」 외 4편
[제8회 쿨투라 신인상 시 부문 당선작] 「미술관」 외 4편
  • 이현정
  • 승인 2015.03.3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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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이현정

 

교양은 협박일까, 깨끗하고 천장이 높은 공간에 있다 멋지다, 생각하는 것은 폭력적이다 미술과 마술을 본다

소크라테스와 스파이더맨 조각이 있다 하나는 수직으로 서 있고 하나는 천장에 거꾸로 붙어 있다 둘 다 휘어진 얼굴을 하고

철학과 공상이 서로에게 누드를 보여주고 있다
대결하는 것일까?

새마을 시장 철물점에 사내가 있다 사내는 철사의 굵기를 잘 안다 잘 안다는 게 심심해서 사내는 자신의 음경을 꺼낸다 조각 같은 주상복합빌딩을 향해 흔든다 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맑다

긴장한다 부끄러움은, 사내는 선거 포스터 앞에서 정액을 쏜다, 중요한 걸 벗지 않는 지점까지, 긴장한다 폭력이 있어서, 거리는 상쾌하다 사내는 치약 거품을 뱉는다 뉴스처럼 작품처럼

나는 출근하다가 사내를 본다
두 조각이 서로를 보고 있다

미술관은 움직이지 않고 조용하다
교양은 게으르다

 

국기와 걸레

내 국기는 내 혀다
국경일도 아닌데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죽은 날인 것 같아
혀를 차며 골목을 걸었다

나는 왜 울었을까? 다시 돌아가면 생각날까
간판이 덜컹거리는 손칼국수 가게
오리궁뎅이 여자는 서빙을 하고 남자는 주방장이다
여자가 걸레질을 한다 작은 몸짓에도 궁뎅이는 크게 움직인다
민망할 정도로 큰 궁뎅이는 걸레처럼 더러워졌다
주문을 하자 남자는 오리궁뎅이 여자를 휘파람으로 불더니
여자의 궁뎅이를 쓱싹쓱싹 잘라 칼국수 면을 만들었다
어떤 놈이랑 붙었길래 실실 쪼개고 있냐
새끼하나 못 낳고 으이구, 빌어먹을 년, 남자는 여자의 궁뎅이를 발로 찬다

내 혀는 붉은 걸레처럼 탱글탱글한 하얀 면을 꼰다 잘도 삼킨다
나는 명랑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맛을 구별하고 싶지 않아
예의를 차리는 뉴스들아, 나는 혀를 쭉 내밀어 보인다
나무들은 꽃을 내민다 입냄새 가득한 봄이 또 오겠지

내가 사랑했던 계절은 혓바늘만 남았지
내 걸레는 온도를 조절하며 필요한 곳에 잘 숨어 살았다
여자는 걸레를 비틀며 웃음을 터뜨린다 마른 걸레에 침을 퉤퉤 뱉어
탁자의 묵은 때를 지운다 남자는 여자가 울지 않아
화가 났는지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갔다
너무 웃겨, 여자는 끌려가면서 오리보다 더 괴상하게 웃었다
여자가 닦은 탁자 모서리는 비타민을 바른 것처럼 반질반질했다
칼칼한 웃음에는 눈물이 있다 눈물은 깨끗한 것으로 닦고 싶었다
식은 국물은 더 짜고 걸레맛이 난다
정수기 위에 널어놓은 걸레들이 빳빳하게 말라 간다
내 궁뎅이에서 나온 알처럼
걸레들은 청결을 모른다
검은 눈물에 안도하며 소멸을 모른다
국기는 어디서 파는 지도 모르겠고 꽂을 기둥도 없는데
아무렇게나 태어난 것들이
국가를 부른다 뽕짝에 젖어 백태가 낀다

 

요가 수업

일주일에 두 번씩 남을 따라한다
그녀는 전문가이고
나는 을씨년스럽다

그녀는 긴 호흡과 짧은 호흡을 어떻게 조절해야하는지 안다 그녀는 친절로 사람을 이끌수 있다는 것을 안다 수강생들이 요가실로 들어설 때 양말을 신발 속에 넣는다

그녀는 목을 빼고 인사를 한다 손과 발은 반대로 뻗어야한다며 내 몸의 모서리들을 만진다 나는 올해의 끝이 좋아요 자, 지탱하세요 이제 속으로 숫자를 셉니다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신발속의 양말이다

수업이 끝나고 그녀는 나에게 묻는다 이런 수업 처음이냐고
땀 냄새에도 수준이 있는 것 같다
그녀는 경력이 다채롭다

우리는 유리를 보고 있다
뒷모습이 생수병 같다

퀵서비스 배달부, 오토바이를 길가에 세우고
뛰어와 자판기에 동전을 넣는다
후루룩 떨어지는 경쾌한 콜라

그녀는 발을 접어 오토바이처럼 비스듬히 지탱해본다
그녀는 사람이 하지 않는 자세를 연습한다?

나는 급하게 수업을 그만 두었다
호흡은 훈련이 필요 없다

 

너를 여행한다

아고고 댄서들, 빗방울 같다 눈이 풀린 사람들은 오늘 밤을 계산하고 나는 메뉴를 고르고 있다 참 종류가 다양하고 특이해 트럭에서 복서 경기를 광고하던 선수가 죽었다 경기장에 불이 나서 몇 명이 더 타서 죽었다 싸우려는 것은 일찍 죽는 걸까

아이들은 우산을 판다 꽃목걸이도 판다 팔다가 남은 꽃들을 불이 난 곳에 던져준다 아이들은 댄서가 되는 꿈을 꾸고 열대과일은 여름이 된다

댄서들이 테이블마다 봉을 잡고 춤을 춘다 제일 높은 층에서 춤을 추는 댄서, 추워 보인다 카메라를 눌러주면 좀 따뜻할까? 새로운 자극을 위해 봉에 수갑을 찬 채 춤을 춘다 얼굴에 햇살을 바른 손님들이 댄서들의 가슴에 엉덩이에 발가락에 팁을 끼워준다 팁은 은밀한 것이 된다

이곳은 처음에 어떤 곳이었을까, 저 댄서가 나의 엄마가 아닐까, 터무니없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원래 이념이었을까 이념은 늙어버렸다

자본주의는 낭만적이다 환전하고 남은 동전처럼, 게이 댄서가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운다 카메라를 누르면, 살아날까, 게이와 나는 화장실에서 같은 거울을 보고 있다 에세이처럼

 

우리들의 하수구

지하철에 시는 누가 붙였나 이렇게 차근차근
시 읽고 지하철 타고 가방 메고 차례차례
나는 홍대 앞 술자리가 되기 위하여
할 말이 뚜렷한 의자를 나눠 갖고 할 말이 없으면 손을 씻으러 갔다
그 속의 우리들은 꽤 시끄러운가 지금은 일상의 앞접시가 되기 위하여
꼬꼬순이 맥주집, 밖의 풍경들은 건조한 대답들
문학이 무엇이냐 꼬꼬꼬꼬 몸이라도 팔아야
그 주둥이는 집어치우고 건배나 꼬꼬꼬꼬
우리들은 알을 낳아야 하므로 꼬꼬꼬꼬
알보다 더 애절한 너의 노래
미친년이 되기 위하여 겪는 불편과 제도를 계산하고
닭들처럼 항상 급하게 밤이 끝나면
아침상에서 국자로 감자를 떠야 하는가
너희 엄만 미친년였다 그렇다면 미친년은 감자로 국을 떠야하리
술냄새에 취한 옷들을 세탁기에 넣었다
세제를 넣고 유연제를 넣고 뚜껑을 닫으면
감정이든 사실이든 한꺼번에 섞여 힘차게 돌아간다
지하철에 시를 붙여 놓듯이 처방전을 받아
차근차근 달래며 요즘도 배가 아프냐며
몇 달 약을 먹으면 괜찮아 질 거라고
나는 혹시나 빨래 속에서 알이 나올까
하수구 밑구멍을 지켜보는 중이다

 

 


이현정 1976년 서울 출생. 숭의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국어교육 석사 졸업. 2000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 희곡 당선.

 

 

 

* 《쿨투라》 2015년 봄호(통권 3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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