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쿨투라 신인상 미술평론 부문 당선작] 한국현대미술의 팽창과 분열: K-Art, 한국 단색화를 중심으로
[제11회 쿨투라 신인상 미술평론 부문 당선작] 한국현대미술의 팽창과 분열: K-Art, 한국 단색화를 중심으로
  • 김준철
  • 승인 2018.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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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술의 깊은 열망에서 만들어지는 역사

현재의 예술은 도무지 따라갈 수 없는 속도를 지니고 있다. 즉, 현대미술은 발전기, 침체기, 격동기 등등의 예술사적 단계를 거치고 또 반복해 왔지만 지금같이 빠른 변화와 발전, 침체, 격동을 함께 맞으며 움직인 적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화의 최전선에서 끊임없이 촉수를 사방으로 내뻗는 괴물과도 같은 형상이다.

그 아수라와 같은 상황의 중심에 알게 모르게 한국현대 미술이 자리하고 있다. 독일의 Expressionist 화가인 Frauz Marc는 “예술은 다만 우리 꿈의 표현일 뿐”이며 “진실한 삶에 대한 격렬한 질문을 물어 갈수록 그 갈망에 대한, 그 목적을 이룰 수 없음에 더 좌절을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매순간 승복할 수밖에 없는 삶과 예술에 대한 시선이라 하겠다. 세계 1차대전 패망 후, 절망적이고 암담한 현실에서 인간성의 탐구, 영적고갈과 초현실적 욕망, 그리고 후기 인상파에 대한 반항심으로 Expressionism이란 새로운 화풍이 대두 되었을 때 Frauz Marc는 “눈에 보이는 세계는 묘사하는 그림부터 화가 자신이 지닌 각각의 감성을 표현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오늘날 추상예술은 범위가 분열된 모든 -nism의 한계를 포용하고 더 나아가 미술 이외의 모든 분야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그것은 끊임없이 기존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사상, 문화, 유행, 과학, 언어, 습관 등)을 이용하고 변형하고 급기야 파괴하는 작업까지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분야를 자신이 속해있는 그룹에 한정 짓는 것이 아니라 다시 역으로 모든 분야를 비추고 있다.

예술과 예술의 접목 및 변형에서 나아가 전혀 다른 학문이나 매체 등과 접목함으로 이름조차 명명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는 사이, 한국현대미술은 그럼 어디에서 무엇으로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이라는 이름, ‘K’라는 이니셜을 달고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K-Pop, K-Movie, K-Drama, K-Entertainment…… 하지만 이에 비해 뚜렷하게 자리매김 못하고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이 K-Art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 체감하는 예술적 가치나 역량에 비해 외부로 나오면 그 온도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한국의 현대미술사는 짧다. 보편적으로 한국현대미술사의 시작을 8.15 광복을 기점으로 보고 있다. 일제의 억압과 단절된 상황 속에서 광복을 기점으로 그 시야가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이후에도 역시 만만치 않은 격동의 시간이었으나 80년대 이후 국제적인 활동이나 관심이 증가하고 그 필요성 또한 깨달았다고 하겠다. 그리고 90년대 모더니즘과 민중예술의 갈등으로 인한 구조의 재편성을 이루며 차츰 새로운 가치에 대한 갈증이 대두되고 모색되었다.

이 시기에 사실상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인정받는 이는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일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인심을 쓴다면 단색화라고 하겠다. 물론 이중섭, 천경자, 김환기 등의 굵직한 소위 한국현대미술의 1세대로 평할 수 있는 그룹이 만들어져 있으나 이들 조차 1세대라 명명하기에 부족하다, 그것은 단지 스토리텔링적, 혹은 희귀성에 의존한 가치판단의 1세대로 평해서는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이견이 존재할 수 있겠으나 엄밀히 따져보자면 그 작품이 가진 파괴력이나 영향력, 그리고 그 가치평가로 볼 때 작품 대부분이 부분적인 영향력과 국소적 파괴력을 지녔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알다시피 백남준의 Video Art를 통한 캔버스에서 모니터로의 전환은 미래를 내다 본 창조성, 즉 예술 영역의 확장과 매체에 대한 의식 변화, 그리고 기술과학의 발견과 같은 예술에 대한 시각적 변화까지 이미 50여년 전에 지금의 모습을 예상한 작품이다.

이는 하나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림으로써 다른 이들로 하여금 또 다른 차원의 문을 열게 했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이미 오래 전, 독일 Capital지는 세계 100대 작가 중에 5위로 백남준을 뽑았으며 이게 그리 놀랄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후에 부분적 활동, 축소적 평가, 국소적 시도가 계속되었는데 그중에 단색화(Dansaekhwa)가 주목을 받게 된다. 한국 추상화(단색화)에 대한 해외 평론 중, 저명한 Curator이자 미술평론가인 Barry Schwabsky가 2015년 <Nation>지에 게재한 평이 가장 간략하지만 심도있고 포괄적이며 사실적 배경을 가지고 예술성을 논했다.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한국 단색화, 그것은 예술적 깊은 열망에 태어났다.”

또 다른 Curator이자 예술가인 Henry Meyric Hughes 역시 “The International Art Scene and the Status of Dansaekhwa” (Art in Asia, 2014)에서 “한국 근대주의 양식은 식민주의와 전쟁의 고통스런 경험, 강력한 전통의 감각과 1970년대의 급속한 경제 발전기에 이르기까지 외국의 영향으로부터 국가의 상대적 고립” 또한 “많은 서구 근대주의적 예술가들이 계급과 권위체계에 반기를 들고 도전하고자 했다면 단색화의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뿌리에 접목하려는 시도를 해왔다.”라고 평하며, 사실상 서구 예술가의 선명하고 극명한 차이를 집어내고 있다.

 

2. 작품의 만드는 사람과 전하는 사람.

그럼 예술이 평가되는 기준은 무엇인가? 무엇으로 예술 작품에 대한 기준을 세우고 있는가? 세속적이고 미개하고 무식한 잣대일지 모르겠으나 가장 눈에 보이는 기준점을 찾는다면 역시 많은 부분, 물질적 가치의 판단 기준을 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미술계에 있어서는 더욱 큰 차이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현재 세계 미술 경매의 큰 축을 보자면 미국, 유럽, 중국 시장으로 나눌 수 있다. 각각 그 추구하는 형태나 예술 작품의 특성이 다르겠으나 결국 현대미술에 대한 특성은 비슷하다. 이 글에서 경매에 대한 깊고 상세한 리뷰를 할 필요는 없겠으나 대략적인 형태로 언급해보기로 하겠다.

‘TEFAF’ Art Report 2017을 보면 세계 예술 경매 동향이 잘 나와 있다. TEFAF는 The European Fine Art Foundation으로 2016년 총 매출액 450억 달러이며 2015년에 비해 1.7% 증가했다고 한다. 현대미술의 경우, 유럽 및 미국 형군 가격이 4%, 중국 13% 높은 것으로 나온다. 판매 점유율로 보자면 미국 시장 29.5%, 영국 24%, 중국 18% 등을 차지하고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지난 30년간 경매 참여도인데 한국은 현대미술 분야에서 2점을 받고 있다. 이는 미국 59점, 독일 83점, 영국 153점, 현저히 낮은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현대 미술이나 골동품 수입에서 세계 최대의 무역국가로 지난 2015년 거래내역으로 볼 때, 1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것으로 나온다.

또한 우리가 주목할 만한 수치도 눈에 띈다. 그것은 경매에서 팔린 현대미술품의 가격 분석인데 2016년 4.5% 상승했으며 지난 5년간 24.5%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2016 현대미술 경매매출은 56% 감소를 보인다. 이 의미는 동일한 구매 가격대비 유명하지 않은 예술가, 혹은 아직 발굴되지 않은 신인의 작품을 선호한다는 결과를 산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Curator와 Curating이라고 말하겠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한 것처럼 현재 모든 미술작품의 가치는 엄밀히 말해 전시와 판매에서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비단 지금만의 일은 아니겠으나 갈수록 그 중요성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즉, 유능한 Curator의 능력에 따라 성공적이고 효율적으로 세계의 화단에 작품을 선보이고, 고가의 작품 판매로 연결할 수 있는 것이다. Gallery와 Curator의 채널 이외에도 현재는 미술품 전문 Web Market도 등장하여 활발한 시장 활동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Curator의 Curating 능력이 크게 좌우하고 있다고 본다.

다양한 능력을 지닌 Curator 중에 Italian Curator인 Camilla Boemio가 WSJ Culture 특집에서 대담한 내용을 발췌하여 소개하자면 이렇다.

Curator는 Organizer(행사주최), 신인발굴, 예술품 Dealer 및 감별사의 역할마저 해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Curate이란 의미는 식물재배와 같은 의미로 문화적으로 대중에게 Visual Art를 제공하고 예술가들의 인내와 노력이 담긴 작품의 배경을 Theory 속에 세부개념으로 녹여서 소개해내는 작업이라고 하겠다. 그것은 식물이 자람에 필요한 빛, 공기, 물처럼 필수인 것이다. 이렇게 자란 예술가의 작품을 대중에게 전시하고 작가들의 실천적, 철학적 개념과 아울러 비평의 논란 역시 체험케 하는 것 또한 Curator의 역할인 것이다.

이렇듯 오늘 날은 너무나 다양한 예술의 팽창과 분열이 그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변화와 진화의 수준을 넘어선다. 전혀 새로운 개체로의 개념들까지 서슴없이 받아들이며 그 깊은 중심에 있는 젊은 작가들이 새로운 탐험의 접목을 통해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믿는다.

참고로 Camilla Boemio는 55th Biennale Art of Venice에서 Maldives Pavillon을 마련하고 우주로부터 Satellite으로 Maldive의 형상을 스크린에 비치게 하는 설치예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제 우리 작가들이 Museum과 Gallery 중 어느 쪽에서 능력있는 Curator를 만나느냐에 따라 작가 작품의 Value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여야 한다. 작가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던 또 다른 작품에 대한 해석과 이해가 그 가치를 바꾸고 나아가서 작가의 성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3. 꽃이 아닌 씨를 보는 작업

침체되어 있던 한국의 현대미술(추상화, 단색화)은 2009년 LA County Museum of Art, Museum Time Art in Houston에서 열린 첫 번째 Major Museum 전시회에서 그 작품들을 보다 심도 있게 선보이게 된다.

이 해, 가을 New York City Gallery에서 1세대 추상 화가들의 전시회가 열렸다. Gallerie Perrotin에서 정창섭, 같은 날 Blum & Poe에서 윤형근, 얼마 후 Tina Kim Gallery에서 하종현의 개인전까지 모두 해외 업계 종사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처럼 국제미술시장은 1980년 비공식 소련작품들이 붐을 일으켰던 Monochorm 장르 이후, 한국 단색화에 매료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시회와 개인전으로 단색화는 그 무게와 부피를 키워 나갔다. 2014년 가을 Joan Kee(Curator)는 LA Blum & Poe에서 ‘From All Side: Tansekhwa on Abstraction’ 전시회를 개최하였고 LA Times David Pagel은 “미술의 한계와 실제적 존재를 떠나 비이성적 효과까지 나타내었다.”라고 호평하기도 했다. Huffing Post의 Peter Frank는 “Truly Radical”이라 하기도 했다.

누구나 단색화에 대하여 충분히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 작품이 미술에 대한 깊은 열망에 뿌리를 두고 그려졌기 때문이다. 한국 미술교육은 Ink와 Oil이라는 두 궤도에서 성장하였고 이 이분법적이고 역설적인 융합으로 “Painting without Painting” 혹은 “Creating without Creating”이란 주장도 거론되곤 했다.

우린 왜 오랫동안 이 단색화가 서양세계에 이토록 눈에 띄지 않았었는지를 되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답은 물음보다 더 묵직하다. 그것은 한국 단색화가들이 이 망각의 시간 속에서 끈질김과 무던함으로 때가 오기까지 내내 기다렸다고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단색화는 하나의 추상화 장르로 자리를 잡았고, 한국 단색화가들은 세계 여러 화랑과 각종 전시회, 미술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또한 거기에 발맞춰 제2, 제3의 주자들이 성장하고 있다. Art Monitor의 Marion Manaker는 “한국 단색화의 버블시대는 끝났다”라고 말하며 침체상태인 것으로 말하지만 작가와 작품에 따라 시장은 더 확대되고 더 나은 가치를 찾을 것이라 믿는다. 이에 우린 젊은 작가들의 활동 역시 눈에 담아두어야 하는 것이다.

Art Rader나 Culture trip, New Yorker 등을 통해 언급된 현재 주목을 받고 있고 또 활발하게 활동 중인 한국 작가를 몇 명 소개해 보자.

최상렬(1975년생), 그의 작품을 ‘Huffington Post는 “상상의 어두운 마스터”라고 묘사하고 있다. 페인트된 그의 고분자 점토조각은 2000년 초반을 시작으로 점점 규모를 키우고 미묘하면서도 악몽같은 건축적 예술을 표현해내고 있다. 초현실의 비틀어진 변형, 왜곡과 과장의 인간관계, 사회구조, 정신의 깊은 암울을 은유적으로 적용해내고 있다.

함진(1978년생), 그의 작품은 재미와 판타지를 섞은 상상력이 보이는 결과물이다. 진흙을 위주로 한 미니어처에 조각과 설치가 결합되면서 추상적 미묘함과 미니어처의 정교함이 깊어져서 돋보기를 통해 살펴봐야 그 안에서 그의 세밀한 목소릴 들을 수 있다.

최정문(1966년생), 채색된 양모와 자외선만으로 최면에 빠진 듯한 전혀 다른 수준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원근감, 조명, 환상적 묘사로 동적 상호작용을 실과 공간 그리고 조명을 통해 드로잉이나 페인팅으로 적절히 묘사하고 있다. Paris의 Laurent Muller는 그의 작품에 대하여 놀라움과 반가움을 표한다고 Art Radar에 실었다.

채진주(1981년생), 그녀의 작품 ‘초코파이’는 그 독특함만으로도 충분한 관심을 끈다. 달콤쌉쌀한 초콜릿을 녹여 잉크로 사용하고 거기에 북한 노동신문을 배경으로 아이러니한 부조리를 연출했다. 한국의 정치, 국제적 모순, 문화적 변혁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라 평받고 있으며 ‘문화적 서사성을 희망으로 표출하고 있다’고 Art Rader는 말한다.

이지영(1983년생), 일반 사진이 현실을 포착한다면 그녀의 작품은 자신이 만든 새로운 우주를 찍어내고 있다. 그녀는 화가, 조각가, 세트 디자이너로 변신하며 세상을 꿈과 환상으로 변모시키는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작업기간, 작업량, 공간임대 등에서 쉽지 않은 생존전쟁을 치르기 있기도하다. 2012년 Sovereign 예술상을 수상했으며 2014년 첫 개인전을 프랑스에서 시작하며 세계 주요 언론매체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신광호, 이정, 이불, 이일을 비롯하여 박서보, 하종현, 윤형근 등 신인과 중견 작가들까지 그 활동은 활발하다. 단지 그 활동에 걸맞은 관심과 지지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아직 이름을 드러내지 못한 수없이 많은 작가들에 대한 발굴과 환경개선 또한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러한 관심이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더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생긴다. 그것은 이제 위에서 말한 ‘한국’, ‘K’라는 이름에 대한 관심이 Art에서도 불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알려지고 유명세를 입은 작가의 작품보다는 더 적은 비용으로 더 가치있을만한 작품에 투자하고자하는 발 빠른 해외 갤러리들의 한국행에서 읽을 수 있다.

지난 2017년 서울경제신문에 의하면 미국 정상급 화랑인 리만모핀 갤러리가 홍콩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한국에 사무실을 마련했고 2016년에는 프랑스 파리에 기반을 둔 갤러리 페로탕이 서울 분관을 개관하였으며 미국 뉴욕과 중국 베이징, 홍콩에 거점을 두고 있는 페이스갤러리가 전시장을 개관하였고 나아가 세계 3대 옥션으로 불리는 필립스는 홍콩 경매의 사전전시를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고 올해 정식 사무실을 열기로 공식 발표 했다.

연간 미술시장 총 거래액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한 점 가격에도 못 미치는 4,000억원 수준인 국내 미술시장에 내로라하는 갤러리들과 경매회사들이 몰려드는 것은 그들이 무모해서가 아닐 것이다.

한국 미술경영연구소 김윤섭 소장은 “2016년 5월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가 단 5일만에 6만 4000명의 관람객을 유치했고, 17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라며 이는 “2002년 개최 첫해 1만 8000명의 관람객과 7억 3000만원의 매출과 비교해 볼 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단순한 숫자적 개념이 아닌 가치적 개념으로 볼 때에도 한국 현대미술, K-Art의 가능성은 이미 입증되었으며 이 폭발력의 시기를 따져야 할 때라고 해도 될 것이다.

외국 화랑들의 노력은 한국 작가를 발굴 및 확보하고 해외 작품의 국내수요와 한국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유망작가들을 붙잡고 또 새로운 작가들을 발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충분한 문화적 토양과 지원 속에서 기다리고 대비하는 수순이 먼저일 것이다.

 

4. 멈추지 않는 것이 젊음이다.

세계 어디서나 젊은 세대가 대예술가에 대한 갈망과 열정 속에 방황하는 것은 극히 정상적이고 그 기다림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르네상스의 찬란한 문화 수도인 피렌체는 젊은 화가들을 위한 그들의 전시회인 ‘Street Level's Gallery'란 제목의 Urban Art를 위한 전시회를 2016년 마련했다. 도시를 깊숙이 관통하는 이 전시회는 겹겹이 뒤엉킨 르네상스의 본향 안에 산재된 예술품들의 산더미 속에서 작은 횃불을 밝힌 것 같은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꼬불꼬불 뒷골목을 따라 작은 Show Window 속에 젊은 작가들은 누구나 단기간에 전시를 허용하고, 그 어느 제한도 만들어 놓지 않은 것이다. 이런 식의 실험적이고 실용적인 기회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예술을 지망하고 그 예술을 옹호하는 다수의 애호가들의 크고 작은 후원으로 지속될 수 있다. 그것은 사실상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소년상 조각상 아래 Contemporary Art와 Graffiti 같은 Urban Art까지 같이 숨쉬고 있는 놀라운 현장인 것이다.

우리도 숱한 공모전이나 그룹단위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실정이지만 좀 더 미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 창작의욕을 증진 시킬 수 있는, 그럼으로써 일반 아마추어 작가들까지 전시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여러 형태의 공간이 제공되길 바랄 뿐이다.

그것은 현대미술을 조금 더 보편적인 일상 속으로 집어넣고 지금을 살아가며 즐길 수 있는 도구로 만드는 일이라 본다.

내가 있는 이곳 캘리포니아에서도 매년 여러 Beach나 도시에서 노상전시회가 대규모로 열리고, 때론 작은 호텔 전체를 하나의 전시공간으로 구성하여 방마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며 후원하는 행사도 주기적으로 열린다.

그것은 단순히 피지컬적인 젊음에 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끊임없는 사고의 폭발과 의식의 전환을 시도하고 멈추지 않게 하는 기회이자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5. 사막을 건너내는 멈추지 않는 한걸음

그렇다면 이제 K-Art는, 한국 현대미술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가? 우린 알게 모르게 수없는 분열과 팽창 속에서 치열하게 기다리며 지금에 와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곳은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와도 같은 공간이다. 세계 여느 예술사와 다르게 역사적 의식과 뿌리의 목마름을 가지고 태어난 짧은 역사의 한국 현대미술, 턱없이 낮은 가치로 평가받고, 홀대받아 온 한국 현대미술이었지만 어느새 그 파도는 밖에서 안으로, 그리고 다시 안에서 밖으로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일제로부터 해방 후, 줄곧 한국 화가들은 짧은 현대미술의 역사와 약점을 극복하고 예술의 세계화란 주제로 달려왔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한국현대미술은 음지에 놓여야만 했다.

이제 어느 분야든 그 한계가 사라지고 또 그 표현방식 역시 파괴되고 있다. 시간과 거리의 의미가 사라지고 캔버스가 모니터로, 모니터가 건물로, 건물이 낙서로…… 또 그 무엇으로 변하고 있다. 급기야 작가 역시 변하고 있다. 어느새 AI가 인간이란 개념을 새롭게 만들고 있으며, 많은 부분에서 인간을 앞지르고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법칙과는 다른 형태를 가진다. 단계별 변화가 아니라 그 자체의 총체적 변화인 것이다. 오늘 ‘사과’였던 것이 내일은 ‘꽃’이나 ‘건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시공을 초월하고 인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수없는 분열과 팽창 속에서 어느새 우린 광활한 우주의 어딘가에 와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러기에 더더욱 ‘뿌리’를 품고 있는 예술, ‘기억’을 품고 있는 예술은 더더욱 그 가치를 더할 것이다. 그 누구보다 우리의 예술을 먼저 알아보고 먼저 기억하고 먼저 선점하여야 한다. 그리고 가장 효과적이며 적극적인 방법으로 알려야 한다.

그 방법론에 대해 여기서 논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방법은 가지고 있는 도구를 사용하려는 절실함에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며 그 절실함은 보편적 사고와 일상적 상식의 범주를 넘어서야 할 것이다. 더욱 열린 감성과 넓은 경험으로 공격적이고 전폭적인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 팽창과 분열 그리고 우주에로 흩뿌려진 공간에서 블랙홀처럼 무한의 흡입을 하는 고래의 모습과 또한 그 알알이 존재하며 빛을 가지는 작은 먼지의 호흡까지 포용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 보여지는 작업과 그 해석이나 이해의 과정, 지속적인 소화의 단계까지도 관리되고 계획되고 충분히 예상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긴 사막을 건너내는 걸음의 연속이어야 하는 것이다.

 

 


김준철 〈시대문학〉 시부문 신인상 등단. 시집 『꽃의 깃털은 눈이 부시다』 『바람은 새의 기억을 읽는다』 등이 있음. 현 미주문인협회 부회장 겸 출판편집국장.

 

 

 

* 《쿨투라》 2018년 여름호(통권 5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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