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쿨투라 신인상 문화평론 부문 당선작] 판타지드라마의 장르적 아이러니
[제11회 쿨투라 신인상 문화평론 부문 당선작] 판타지드라마의 장르적 아이러니
  • 김민정
  • 승인 2018.03.3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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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판타지는 이미 우리 안에 있다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현실의 것이 아니다. 텔레비전이라는 대중매체를 통해 방영되는 드라마는 대중의 기호와 욕망을 간과할 수 없다. 결국 드라마는 현실을 기반으로 하되 현실에는 없는, 그래서 대중들이 보고 싶어 하고 듣고 싶어 하는 것, 그러니까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준다. 모든 드라마는 판타지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드라마의 환상성이 현실에는 없는, ‘결핍’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 그것은 아직 내게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환상은 우리에게 없는 것, 지금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즉, 환상은 우리 안의 결핍이다.

최고 시청률 29.9%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 〈별에서 온 그대〉(2013, 극본 박지은)은 중국에서 〈대장금〉(2003, 극본 김영현)의 뒤를 이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눈 오는 날엔 치맥이 딱인데.”라는 여자주인공의 대사 한 줄에 중국 대륙에 치맥 열풍이 불기도 하였다. 〈별에서 온 그대〉의 방영 판권은 아시아권을 넘어 전 세계로 확대되면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이 드라마의 인기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별에서 온 그대〉의 중심서사는 외계인 남자와 지구인 여자의 사랑이야기다. 이 드라마의 공식 홈페이지에 등록된 프로그램 소개 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바로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르고 고독사가 한줄 뉴스거리도 안 되는 이 서글픈 시대에...또 모를 일 아닌가? 나의 옆집에도 어느 사랑스러운 외계인이 살고 있을지? 그와 기적과도 같은 달콤한 로맨스를 만들어 갈 수 있을지? 말이다.

〈별에서 온 그대〉의 로맨스는 멜로드라마의 ‘달콤한 로맨스’가 아니다. “기적과도 같은 달콤한 로맨스”, 즉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어려운 기적과도 같은 비현실적인 로맨스다. 한국에서 방영되는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직업군이 있다면 바로 ‘재벌’이다. 정확히는 재벌 2세 혹은 3세. 남자주인공의 경제력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지켜주는 순정의 척도로 묘사되곤 한다. 하지만 재벌 2세도 할 수 없는 것을 해내는 남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이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기에 사랑하는 여자 천송이를 구하기 위해 순간이동을 할 수도 있고 초인적인 힘으로 그녀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번쩍 들어올리기도 한다. 옆집에 사는 그녀의 혼잣말을 듣고 알콩달콩 사랑놀이를 하는 초능력자의 모습은 판타지 로맨스의 절정을 보여준다.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 캐릭터는 누구나 꿈꾸는 ‘특별한 사랑’의 전형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가장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재벌 2세도 해내지 못하는 일을 그는 가볍게 해낸다. 더욱이 그는 그 힘을 사랑하는 한 여자를 지키기 위해서만 사용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런 사랑도 이런 사람도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그럼에도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도민준은 지구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외계인’이다.

비현실성과 환상성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지만 엄연히 다르다. 비현실성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고 있다면 환상성은 그것에서 더 나아가 현실에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욕망에 주목한다. ‘어쩌면 내가 이러한 특별한 사랑을 하게 될지도 몰라’ 혹은 ‘이런 사랑을 하고 싶어’ 라는 대중의 욕망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도민준이란 외계인 캐릭터를 창조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별에서 온 그대〉가 재현해내고 있는 판타지다.

대중들이 원하는 환상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리 안의 결핍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엄청난 스펙트럼의 판타지를 발견하게 된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 극본 박혜련)은 사람들의 생각이 들리는 초능력을 가진 남자와 국선변호사인 여자가 만나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드라마의 소개 글은 다음과 같다.

착하고 가난한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게 쉬운 세상이다. 때문에 우리는 세상 어디쯤에 살고 있는 그런 영웅을 만나기를 꿈꾸는 건 아닐지 (중략) 이 이야기는 억울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행복을 찾아주는 영웅을 만날 수 있는 21세기의 동화다.

“억울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행복을 찾아” 주고 싶다는 대중의 욕망이 초능력을 가진 영웅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이러한 환상에는 대중들이 느끼고 있는 엄청난 좌절감이 내재되어 있다. ‘초능력’ 혹은 ‘영웅’ 없이는 착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자조적 희망인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수록 그런 일이 가능해지길 바라는 마음, 그것이 바로 대중들이 판타지 드라마를 보며 느끼는 ‘공감’의 지점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모순은 대중들의 마음속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평소에 자신이 원했던 세상을 상상해왔고 그 세계와 오랫동안 정서적 친밀감을 형성해왔다. 비현실성은 그 세계가 구축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욕구를 증폭시키는 자극제로서 작동한다. ‘비현실성’에 대한 인지와 ‘환상성’에 대한 욕망은 비례관계를 형성하고 결국엔 비현실성이 판타지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가진 게 없어 꿈이 많아진 이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은 불가능한 로맨스를 가능하게 하고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만족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드디어 신의 영역까지 손을 뻗치게 된다. 판타지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서사 장치 중 하나는 ‘시간여행’이다. 대중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시간의 흐름을 바꾸길 원한다. 미래로 가서 미래를 바꾸기도 하고 과거로 가서 과거를 바꾸기도 한다. 그들의 시간여행은 시간의 흐름에 역행함으로써 무언가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목적성을 가진다.
〈시그널〉(2016, 극본 김은희)은 과거로부터 걸려온 신호로 현재와 과거의 형사들이 함께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다. 드라마의 기획 의도는 다음과 같다.

“제발 범인을 잡아주세요!”시간이 지나도, 아픔은 치유되지 않는다.... 죄도 사라지지 않는다. 1999년, 대구에서 누군가 7살 소년 김태완 군에게 황산을 뿌렸고, 온몸에 화상을 입은 김태완 군은 결국 49일만에 사망했다. 하지만 끝내 범인은 잡지 못했고.... 공소시효 15년이 지나자 태완이 부모님의 눈물겨운 호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사건은 영구미제로 남게 되었다. (중략)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과거는 바꿀 수 있습니다.” 무전으로 연결된 과거와 현재. 과거 형사와 현재 형사, 그들의 간절함이 미제 사건을 해결한다. 이 드라마는 더 이상 상처받는 피해자 가족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희망과 바람을 토대로 기획되었다. 완전 범죄는 결코 존재할 수 없으며, 죄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하는 법, 이제 우리는, 정의와 진실을 위해 그들의 시그널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정의와 진실”이라는 두 단어는 〈시그널〉의 환상성이 지향하고 있는 지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우리 안의 결핍이 사실은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 〈시그널〉 속 환상성은 개인의 영역에 머물던 ‘우리 안의 결핍’을 사회의 영역으로 확장시킴으로써 현실 비판적 성격을 갖는다. 다시 말해, 〈시그널〉은 결핍을 해소하는 방법으로서의 전통적 판타지와 결핍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서의 새로운 판타지를 함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판타지가 있고 그만큼 다양한 종류의 결핍이 있다.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싶다는 로맨틱한 상상부터 세상을 모조리 바꾸고 싶다는 현실 비판적 문제의식까지 우리 안의 다양한 욕구들로부터 우리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판타지는 이미 우리 안에 있다.

 

2. 판타지는 새롭게 창조된 우리 자신이다

90년대에는 10편, 2000년대에는 14편에 불과하던 판타지드라마의 방영 편수는 2010년부터 2017년 현재까지 61편으로 크게 증가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의 목록을 작성해보면 판타지드라마의 인기를 쉽게 확인해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시그널〉 〈너의 목소리가 들려〉 〈별에서 온 그대〉를 비롯하여 왕세자 이각이 사랑하는 세자빈을 잃고 3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신하들과 함께 21세기의 서울로 날아와 전생에서 못다 한 사랑을 이룬다는 내용의 〈옥탑방 왕세자〉 (2012, 극본 이희명), 음탕한 처녀귀신이 빙의된 소심한 주방 보조와 자뻑 스타 쉐프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오 나의 귀신님〉(2015, 극본 양희승, 양서윤), 인어를 모티프로 한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2016, 극본 박지은), 웹툰 주인공이 웹툰 속 세계와 현실 세계를 오고 가며 모험과 사랑을 경험하는 〈W〉(2016, 극본 송재정), 도깨비와 저승사자가 주인공으로 나와 인간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도깨비〉(2016, 극본 김은숙), 선천적으로 엄청난 괴력을 타고난 여자주인공의 정의감 넘치는 활약상을 그린 〈힘쎈 여자 도봉순〉(2017, 극본 백미경) 등 최근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많은 드라마들이 다양한 종류의 환상성을 재현해낸 판타지드라마였다.

최근 판타지드라마의 열풍과는 다르게 한국 판타지드라마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최초의 판타지드라마로 평가받는 작품은 1977년 방영된 〈전설의 고향〉이다. 이 드라마는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민담, 설화 등을 바탕으로 한 여름시즌 납량특집 드라마다. 〈전설의 고향〉 중 구미호 편은 동아시아에서 구전되는 황금빛 털 9개 꼬리를 가진 여우에 관한 이야기로 인기가 많아 여러 차례 리메이크되었으며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동아시아 설화 중 한국 버전의 구미호는 인간이 되고 싶은 강한 소망을 품고 사는 반인반수로 형상화된다. 구미호는 아름다운 인간 여자로 둔갑하여 인간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는데, 그 정체를 남편에게 들키지 않고 백일을 같이 살면 진짜 인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인간을 사랑하게 되거나 인간의 배신으로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잃은 등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

구미호가 등장하는 드라마와 영화의 경우 구미호 배역은 당대 유명한 여배우들이 맡았으며 그 점이 영화 혹은 드라마 홍보에 적극 활용되었다. 다시 말해 구미호 이야기의 인기는 여우와 인간 사이를 오가는 반인반수 캐릭터의 환상성이나 판타지 장르 자체에 대한 호감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남자를 유혹하는 매력적인 팜므파탈인 동시에 사랑하는 남자에게 버림받는 비련의 여주인공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구미호 이야기에 대한 대중적 인기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적 환상물의 효시로 평가받는 드라마 〈M〉(1994, 극본 이홍구)은 낙태라는 심각한 사회 문제를 육체가 박탈된 태아의 복수극이라는 비현실적 설정으로 풀어낸다. 평균 시청률 38.6%라는 높은 수치를 기록하며 세간의 화제가 되었지만 기본적인 스토리라인은 ‘혼의 복수’라는 측면에서 〈전설의 고향〉과 유사하다.1) 당시 한국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특수효과를 보여주었지만 그것이 판타지 장르로서의 특징을 보여주기보다는 서사 장치의 하나로서 작동하고 있다.

90년대 중반까지 한국에서는 판타지드라마의 특징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드물었던 반면에, 외국에서는 이미 60년대에 판타지드라마의 원형으로 평가받는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1963년 영국 BBC에서 방영된 〈닥터 후Doctor Who〉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SF드라마로 평가받고 있다. 이 드라마는 신비한 외계인 종족의 ‘닥터’가 영국의 경찰 전화박스 모양의 타임머신 ‘타티스’를 타고 우주여행을 다니며 겪는 일에 대한 이야기다. 극중 닥터는 1200살이 넘고 심장이 2개라는 것을 제외하면 겉모습은 보통 인간과 같다는 설정으로 등장한다. 〈닥터 후〉는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방영된 SF드라마 시리즈로 2017년 현재 시즌 10이 종영하였으며 ‘12대 닥터’ 피터 카팔디가 활동 중이다.

1966년부터 방영된 미국 NBC의 〈스타 트렉Star Trek〉 또한 대표적인 판타지 드라마로 손꼽힌다. 집필기간만 6년이 걸린 이 드라마는 광활한 우주를 누비며 화려한 액션을 펼치는 우주활극담으로 온갖 기묘한 외계생명체와 외계인들이 이질적인 풍광의 천체를 배경으로 등장한다. 2017년 미국 CBS TV를 통해 방송된 〈스타 트렉 : 디스커버리〉의 작가 크레디트에 한국 이름이 포함되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공동 작가인 에리카 리폴드와 함께 한국 작가인 김보연 씨가 메인 집필자로는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1960년대부터 시간여행이나 우주탐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방영해온 외국과 달리, 한국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야 판타지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과거 판타지드라마에 대한 무관심과 최근 한국에서 불고 있는 판타지드라마 열풍은 같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두 가지 현상 모두 드라마의 생산과 소비를 둘러싼 내외적 환경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판타지드라마는 현실의 논리와는 다른 환상적 인물, 환상적 상황, 또는 환상적 세계를 다루어야 한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설정을 그럴듯하게 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텍스트 자체의 논리를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다시 시청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특수한 분장과 효과와 세트가 필요하다. 이러한 제작 환경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판타지드라마의 생산과 소비가 가능해진다. 장르적 특성상 동시대를 화면에 옮기는 것에 비해 훨씬 수고로울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전설의 고향〉 구미호 편의 리메이크 변천사를 살펴보면 한국 판타지드라마의 역사가 잘 드러난다. 70년대에는 하얀 소복, 백발 가발, 짙은 화장으로 고전적인 구미호를 표현했다. 90년대에는 실제 동물의 간을 먹으면서 실감 있는 구미호를 연출했다. 하지만 2000년대에는 할리우드에서 공수해온 수백만 원대 렌즈를 낀 구미호가 컴퓨터그래픽의 도움으로 훨씬 세련되고 섹시한 구미호로 변신하였다.

이렇듯 판타지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상의 영상화다. 비현실적 설정을 시청각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무엇보다 큰 과제인 것이다. 한국의 최초 드라마는 1956년에 방영된 〈천국의 문〉이다. 이 드라마는 최상현·이낙훈 두 배우가 스튜디오에서 하는 연극을 촬영해 생방송으로 내보낸 것이다. 시기적으로 본다면 미국에서 우주탐사를 다룬 판타지드라마 〈스타 트렉〉을 준비하는 동안 한국에서는 연극을 생방송으로 내보내는 형태의 출연자가 두 명뿐인 15분 드라마를 방영한 것이다. 지금과 같이 녹화된 방송을 내보낼 준비도 안 된 열악한 상황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방영되었던 한국과 외국의 드라마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당시 한국 드라마 생산과 소비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당시 한국은 과학기술 발전의 낙후로 인해 드라마 제작 환경 또한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 있지 않았다.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볼 때 50년대의 한국은 전쟁을 경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다. 전쟁의 폐허에서 과학기술 발전을 논하는 것 자체가 너무 성급하다고 할 수 있었다. 특히 그것이 전력, 석탄 등 기반산업의 시설 증강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문화생활에 관련된 것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드라마 제작 환경 못지않게 드라마 소비 환경 역시 판타지 드라마를 수용하기에는 너무 이른 감이 있었다. 당시 방영되었던 드라마를 살펴보면 과거 이야기를 각색하거나 당시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등 현실에 기반을 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한국 전쟁 이후 한국은 생존의 문제에서 벗어나는 데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는 인간의 삶에 큰 그늘을 안겨주었으며 현실에 압도된 상황에서 사람들이 허구의 판타지보다는 현실의 영역에서 고군분투하는 삶에 공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최근 판타지드라마 열풍에 대해 현실을 부정하는 현실 도피적 경향으로 해석하는 일련의 비평은 일부 타당하면서도 일부 불합리한 면을 가지고 있다. 한국 판타지드라마의 역사에 비추어보면 환상의 시작은 생존이 아닌 삶을 토대로 한다. 설사 그렇지 않을지라도 환상의 특성상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논리와 질서가 그 안에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결국 판타지드라마의 환상성은 현실 도피를 위한 일시적인 몽상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함으로써 얻게 되는 새로운 세계로 이해할 수 있다.

판타지는 우리 안의 결핍에서 탄생한, 보다 나은 ‘내일’이며 ‘세상’이다. 우리는 새롭게 창조된 ‘우리 자신’에게 공감하고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3. 판타지드라마에는 우리와 다른 ‘우리’가 있다

환상성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비현실성을 전제로 한다. 이렇듯 새로움 혹은 낯섦은 환상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작동한다. 이때 새로움은 환상적인 세계로 발현되기도 하고, 인간의 삶 일부에 비현실적인 요소가 틈입함으로써 발생되기도 한다. 그중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방식은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는 것이다.

판타지드라마의 캐릭터는 인간, 초인간, 비인간, 반인간 등의 네 가지 항목으로 유형화할 수 있다.2) 환상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외부에서 작용하는 경우가 ‘인간’이라면 ‘초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환상을 작동시키는 경우이다.

환상적 요소로서 ‘인간’은 외부에 의한 갑작스러운 신체 변화에 따라 환상성이 재현된다.

최고 시청률 35.2%를 기록한 〈시크릿 가든〉(2010, 극본 김은숙)은 무술감독을 꿈꾸는 스턴트우먼 길라임과 까칠한 백만장자 백화점 사장 김주원의 영혼이 바뀌는 판타지 드라마다. 드라마 초반 두 사람은 너무 다른 성격 탓에 상대방에게 매력을 못 느끼지만 어느 날 요상한 약술을 마신 후 몸이 바뀌게 되면서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고 그러다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돌아와요 순애씨〉(2006, 극본 최순식)는 40대 여자가 남편의 불륜녀였던 젊고 늘씬한 스튜디어스와 몸이 바뀌면서 남편과 그의 애인에게 통쾌하게 복수하는 이야기다. 같은 작가가 집필한 〈울랄라 부부〉(2012)는 호텔 총지배인을 꿈꾸는 객실 지배인 남편과 남편만 바라보며 살던 아내의 영혼이 바뀌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남편의 외도가 발각되는 순간 부부의 영혼이 바뀌는데, 전생의 못다한 인연으로 현세에 부부가 되어 만난 두 사람이 남편의 외도로 이혼하게 된 상황을 안타깝게 바라본 월하노인이 두 사람의 영혼을 체인지한 것이다. 건장한 체격의 남편은 아줌마 방언을 쏟아내고 가녀린 아줌마였던 아내의 몸에서는 걸걸한 목소리를 나온다.

일본 드라마 〈아빠와 딸의 7일간〉(2007)은 사춘기에 접어든 딸과 업무에 치여 딸과 소원해진 샐러리맨 아빠가 지진으로 인해 몸이 바뀌게 되면서 가족애를 되찾게 된다는 내용이다. 감동적인 스토리로 최고 시청률 16.7%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영혼체인지를 모티프로 한 일본 영화 〈너의 이름은〉(2016) 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도쿄에 사는 소년 ‘타키’와 시골에 사는 소녀 ‘미츠하’가 천년 만에 오는 혜성으로 인해 몸이 바뀌게 되면서 절대 만날 리 없는 두 소년 소녀가 서로를 만나러 간다는 이야기다.

외부에 의해 환상성을 부여받은 ‘인간’과 달리, ‘초인간’은 자기 안에 ‘환상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환상은 주로 초능력으로 재현되는데, 타인의 마음을 읽는다거나 귀신들과 대화할 수 있는 등 보통 인간이 할 수 없는 것들이다.

〈힘쎈여자 도봉순〉(2017, 극본 백미경)은 선천적으로 괴력을 가진 여자 도봉순의 이야기다. 도봉순 모계 혈통의 괴력을 기록한 책 ‘역량기’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행주산성에서 돌로 왜군을 때려잡은 박개분이 괴력의 시조이다. 박개분의 괴력은 반드시 의로운 일에만 사용해야 하는 특징이 있는데 만약 이를 어길 시에는 괴력이 사라지고 병에 걸리게 된다. 도봉순은 어려서부터 괴력을 숨기고 살았지만 남자주인공 안민혁과의 만남을 계기로 자신의 괴력을 이용해 일상 속의 사소한 정의 구현에 앞장서게 된다.

〈냄새를 보는 소녀〉(2015, 극본 이희명)은 냄새가 눈으로 보이는 초감각 목격자와 어떤 감각도 느낄 수 없는 무감각 형사가 연쇄살인범을 추격하는 미스터리 서스펜스 드라마다. 주인공 윤새아가 부모를 죽인 범인을 찾아가는 이야기와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해결하는 이야기 등 두 개의 서사 축으로 진행된다. 문제해결 과정에서 윤새아의 초능력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주군의 태양〉(2013, 극본 홍정은, 홍미란)은 인색하고 욕심 많은 유아독존 사장과 음침하고 눈물 많은 귀신 보는 여직원이 무섭지만 슬픈 사연을 지닌 영혼들을 함께 위령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자주인공 태공실은 죽을 뻔한 사고를 당한 뒤 귀신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는 이유로 외롭고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남자주인공 주중원을 만나게 되면서 둘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한다.

〈미래를 보는 소년〉(2010)은 EBS에서 방영된 어린이 과학드라마로 타임머신을 개발하는 과학자 할아버지의 연구실을 몰래 들여 보다 섬광을 맞아 정신을 잃은 후 약 12시간 전후의 미래를 볼 수 있게 된 소년 김밀의 이야기다. 주인공 밀은 자신이 본 미래의 장면들을 조합해서 사건현장을 찾아가 미래에 일어날 위험천만한 사건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앞에서 언급한 ‘인간’과 ‘초인간’이 인간의 정체성을 가지되 환상 작동의 의지(능력)에 따라 서로 다른 두 요소로 구분된다면 ‘비인간’의 경우에는 인간의 정체성을 처음부터 가지지 않은 경우에 해당된다. 설사 사람의 외양을 갖고 있더라도 인간이 아니라면 ‘비인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폭스사가 제작한 〈X파일〉은 외계인을 모티프로 한 대표적인 미국 드라마로 94년 10월30일 첫 방송을 방영했으며 2018년 현재 시즌 11이 방송 종료했다. 〈X파일〉의 주요내용은 FBI 요원들이 미스테리한 사건을 추적해가는 것으로서 특히 사건 파일넘버 X로 시작하는 외계인을 위시한 각종 음모와 초자연현상을 겪는 내용을 담고 있다. 외계인의 침략이 임박한 상황에서의 미국 정부의 음모와 이를 파헤치려는 멀더와 스컬리의 활약, 그리고 이를 방해하는 자들간의 대립으로 구성돼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에 참여해 화제가 되었던 미국 드라마 〈폴링 스카이〉(2011)는 외계 침공에 맞선 인류의 생존전쟁을 그리고 있다. 배경은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 6개월 후 황폐해진 미국 매사추세츠 주다. 가족과 친지를 잃은 사람들이 모여 자신을 지켜줄 군인들과 함께 생존을 위해 싸운다는 것이 중심내용이다. 2015년 현재 시즌 5가 종영되었다.

2011년 미국 ABC에서 방영된 〈V〉는 1984년 방영된 〈V〉를 리메이크한 것으로 전 세계 주요 대도시에 갑자기 외계의 방문자들인 브이가 등장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인간과 쏙 빼닮은 외계인들이 지구를 식민지화하고 물을 비롯한 지구의 자원을 빼앗아 가는 악행을 저지르다가 결국엔 이에 저항하는 인간들에게 패배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위와 같이 인간과의 유사성과는 별개로 인간과 외계인이 대립구도를 형성하는 류의 드라마가 있는 반면에 현실 세계를 배경으로 인간과 동일한 외양의 외계인이 등장하여 인간과 로맨스를 만들거나 또는 정서적 연대를 형성하는 과정을 다루는 류의 드라마가 있으며 최근 들어 점점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

〈별에서 온 그대〉(2013)은 톱스타 여배우와 외계인의 사랑이야기로 남자주인공 역할의 도민준은 1609년 9월 25일 조선 땅에 떨어진 외계인이다. 404년 동안 지구에 처음 왔을 때와 똑같이 젊고 아름다운 그 모습 그대로 살고 있는 그는 매의 시력과 늑대의 청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놀라운 속도로 이동할 수 있고 순간순간 누군가의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을 볼 수도 있다.

2012년 미국 ABC에서 방영된 〈우리 동네 외계인〉은 지구인 주민인 위버 가족과 그들의 외계인 이웃들이 한동네에 살면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유쾌한 해프닝들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배워나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외계인 부부의 아들 레지 잭슨과 지구인 부부의 딸 애비 위버 사이에 러브라인이 형성되기도 한다.

‘비인간’이 ‘인간’의 대척점에서 ‘인간적인’ 면모가 모두 배제된 상태를 의미한다면 ‘반인간’은 ‘인간’과 ‘비인간’의 사이에서 양쪽의 특성을 모두 가진 경우에 해당된다. 가령, 인간과 여우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구미호와 죽어서도 산 사람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혼이 된 귀신, 인간의 육체로 불멸의 삶을 살게 된 뱀파이어와 인간으로서 생명력을 잃은 좀비가 그 사례에 해당된다.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2010, 극본 홍미란, 홍정은)는 철없는 학생 차대웅이 인간이 되길 원하는 구미호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22.8%를 기록하면서 구미호를 기반으로 콘텐츠화한 작품 중 가장 대중적으로 성과를 거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드라마 속 구미호는 기존의 구미호들과 달리 매우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러한 천진난만함은 우유부단하며 겁이 많은 남자주인공 차대웅의 성격과 어우러지면서 같이 성장하는 동반자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준다.

애니메이션 〈천년여우 여우비〉(2007, 감독 이성강) 역시 기존에 재현된 부정적 이미지의 구미호와 달리 인간의 공존과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한다. 애니메이션에서 구미호 캐릭터인 여우비는 아직 꼬리가 다섯 개밖에 안 되는 미성숙한 모습이다. 소녀 여우비는 인간과 교류를 통해 한층 성장하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애니메이션 속 구미호는 인간을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들과 동등한 친구가 됨으로써 그들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숭고한 행위를 보여준다. 그러한 희생은 구미호를 인간으로 환생하게 한다.

이와 같이 2000년대 영상매체 속 구미호는 공포의 대상이자 비극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여겨지던 전통적인 구미호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친근하고 현대적 이미지의 캐릭터로 재창조되어 이야기의 흥미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반인반수 캐릭터 중 동양에 구미호가 있다면 서양에는 늑대인간이 있다.

〈틴 울프〉(2011)는 1985년 제작된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어느 날 갑자기 늑대인간이 되어버린 후로 우정과 사랑을 지키며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평범한 고등학생의 이야기다. 주인공 스콧은 마을에 일어난 살인사건을 몰래 구경 갔다가 알 수 없는 동물의 습격을 받고 그 이후 늑대인간의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된다. 시도 때도 없이 늑대인간의 힘이 불끈 솟아올라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그는 다시 사람이 되기 위해 해결책을 찾기 시작한다. 2017년 현재 시즌 6가 종영했다.

〈헴록 그로브〉(2013)는 펜실베이니아의 가상 마을 헴록 그로브를 배경으로 브라이언 맥그리비의 동명 소설을 드라마화했다. 극단적인 빈부격차를 보이는 이 마을에서 소녀들을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이 일어나고, 지역 유지 가문의 상속자 로만과 새로 이사 온 친구 피터가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사건들의 진실과 비밀을 함께 파헤쳐가는 이야기다. 늑대인간과 뱀파이어가 절친한 친구로 등장하는 공포 스릴러 드라마로 2015년 시즌 3이 종영했다.

구미호와 늑대인간 외에 ‘반인간’의 대표적인 캐릭터로는 뱀파이어가 있다. 뱀파이어는 서양 문화권에서 시작되었지만 문화 장벽 없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인간의 모습으로 피를 마시며 사는 불멸의 존재 뱀파이어는 삶과 죽음, 욕망과 금욕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학,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에서 매력적인 캐릭터로 오랜 사랑을 받고 있다.

〈버피와 뱀파이어〉(1997)는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대표적인 미국 드라마로 틴에이저 뱀파이어 슬레이어인 버피가 뱀파이어 무리를 퇴치하는 내용이다. 시즌 7로 2003년 종영되었다. 〈엔젤〉(1999)은 〈버피와 뱀파이어〉에 서브 주연으로 출연했던 꽃미남 뱀파이어 ‘엔젤’이 단독 주연을 맡은 드라마로 버피와 이루지 못한 사랑을 뒤로하고 LA로 건너온 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혼을 가진 따뜻한 뱀파이어 ‘엔젤’이 수퍼내추럴한 현상을 전문으로 수사하는 탐정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사람들을 돕는 내용이 담겨 있다. 2004년에 시즌 5로 종영했다.

2000년을 경계로 뱀파이어 형상화 방식에 변화가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2000년 이전에는 뱀파이어가 공포의 존재 혹은 ‘악’의 상징으로서 인간과 대립 구도로 그려졌으나 이후에는 인간과 정서적 연대감을 형성하며 로맨스로 발전하는 등 동반자적 이미지가 강해지기 시작한다.

〈오렌지 마멀레이드〉 (2015, 극본 문소산)은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뱀파이어와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세상을 배경으로 한 감성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다. 인물 설정을 고등학생으로 하여 서로 다른 존재들의 순수한 사랑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블러드〉 (2015, 극본 박재범)은 불치병 환자들을 치료하고 생명의 존귀함과 정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뱀파이어 외과의사의 히어로 스토리다.

이국적인 캐릭터라고 여겨지던 뱀파이어는 어느덧 한국 사극에서도 볼 수 있는 친숙한 존재가 되었다. 〈밤을 걷는 선비〉(2015, 극본 장현주,류용재)는 조선시대 선비가 뱀파이어라는 설정으로 시작하여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사람을 죽이려는 흡혈귀와 이를 막으려는 수호귀의 대결, 그리고 목숨을 담보로 한 비밀스럽고도 위험천만한 흡혈귀와 인간의 로맨스를 담고 있다.

뱀파이어 외에도 ‘반인간’ 캐릭터에는 죽음으로 육체를 잃은 귀신과 바이러스로 영혼을 잃은 좀비가 있다.

〈전설의 고향〉에서 주로 등장했던 ‘귀신’은 2000년대에 들어 공포와 한을 버리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로 재탄생한다. 〈싸우자 귀신아〉(2016, 극본 이대일)은 귀신을 볼 줄 아는 주인공과 주인공이 만난 여자 귀신이 한 집에 동거하며 겪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남자주인공 사람은 여자주인공 귀신과 함께 생활하면서 둘 사이에는 미묘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오 나의 귀신님〉(2016)은 의문의 사고로 처녀 귀신이 된 신순애의 영혼이 빙의된 여자사람 나봉선의 미스테리 로맨스를 다룬 드라마다. 뻔뻔하고 당돌하게 남자에게 들이대는 신순애와 수줍음 많고 소심한 나봉선, 반대 성향의 두 캐릭터가 번갈아 등장하며 남자주인공과 사랑을 키워나간다.

〈워킹 데드〉(2010)는 좀비를 모티프로 한 대표적인 미국 드라마이다.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 산 사람들을 공격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2017년 현재 시즌 8이 종영했다.

〈아이 좀비〉(2015)는 어느 날 갑자기 좀비가 된 전도유망한 의과 레지던트 리브가 생존을 위해 검시소에 취직해 신원미상 시체들의 뇌를 먹으며 살아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인공은 자신이 먹은 뇌 주인의 성격과 능력을 갖게 되는데, 뇌 주인의 기억들이 단편적으로 공유되기도 한다. 이러한 특성들을 활용해 주인공은 경찰서 형사를 도와 여러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2018년 현재 시즌 4가 방송예정이다.

영화 〈웜 바디스〉(2012)는 폐허가 된 공항에서 다른 좀비들과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던 좀비 ‘R’이 우연히 아름다운 소녀 줄리를 만나면서 차갑게 식어있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줄리를 헤치려는 좀비들 사이에서 그녀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그녀는 좀비를 죽이려는 인간들로부터 R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면서 둘 사이에는 애틋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좀비의 경우에도 초반에는 다른 ‘반인간’ 캐릭터와 유사하게 인간과는 다른 ‘타자’로서 묘사되었으나 최근에는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반자’로 재현되는 경향이 강하다. ‘반인간’ 캐릭터로 등장하지만 점차 ‘인간적인’ 면모가 강화되어가는 것이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판타지드라마의 ‘초인간’이 지닌 능력과 ‘인간’이 경험한 판타지가 ‘인간의 한계’를 비추는 거울로 존재한다면 판타지드라마에 등장하는 ‘반인간’과 ‘비인간’ 캐릭터는 ‘비非인간화’되어가는 시대상을 되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이 되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결국 판타지드라마는 인간의 결핍에서 비롯된 ‘초인간’에의 욕망에서 출발하지만 ‘비인간’과 ‘반인간’의 인간성을 극대화시킴으로써 비인간화 시대에서의 ‘인간적인’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사유케 한다. 이로써 판타지드라마의 장르적 아이러니는 삶의 영역으로 환원된다.

 

4. 드라마가 된 삶, 삶이 된 드라마

드라마는 우리 가까이에 있다. 우리가 원하면 언제든지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다. 영화처럼 힘들게 지하철을 타고 영화관에 갈 필요도 없고 두 시간이란 긴 러닝 타임 동안 집중할 필요도 없다. 게임처럼 누군가로부터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머리를 쓰느라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 그저 소파에 앉아 리모컨 버튼만 누르면 된다. 아니, 손에 휴대폰만 쥐어져 있다면 어디서든 드라마를 편하게 볼 수 있다. 우리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스크린에서는 우리가 보길 원하는 또 하나의 세계가 손쉽게 펼쳐진다. 우리가 친구와의 약속장소로 이동하는 중에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중에도 그 세계는 태연하게 흘러간다.

창조의 영역이 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 인간은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만들 수 있다. 그 세계를 직접 만들지 못할지라도 그런 세계와 언제든지 접속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는 우리의 상상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세계이면서 우리의 욕망에 의해 구축된 지극히 현실적인 세계이다. 그중 판타지드라마는 창조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 특성화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작가이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이야기를 창작해가는 ‘삶의 창작자’다. 모두 자기 인생에서는 본인이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캐릭터가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그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지 여부는 그 다음 문제다.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내 인생에서는 내가 주인공’이란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생각에 따라 이야기의 전개는 달라진다. 주인공의 선택에 따라 주인공 캐릭터는 물론 그가 살고 있는 세상도 달라진다.

드라마 창작과 시청의 영역 너머, 그러니까 드라마 너머의 지점에 가면 결국엔 드라마가 아닌 ‘삶’이 놓여 있는 것이다. 삶이 된 드라마, 아니 드라마가 된 삶이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다.

당신의 삶은 무슨 장르인가요.

내 인생의 장르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그것이 바로 캐릭터를 창조하고 그 캐릭터가 살아갈 세계를 구축하는, ‘전지전능한’ 창작자로서의 첫 걸음이다.

우리는 지금 현재 ‘판타지’란 현실에 살고 있다.

 

 


1) 박노현, 『텔레비전 드라마와 환상(성) : ‘환상적인 것’의 개념과 유형을 중심으로』, 『한국문학연구』 47,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2014. 339쪽 참조.
2) 판타지드라마 유형 분류에 있어 박노현의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의 환상성·1990년대 이후의 미니시리즈를 중심으로」 (『한국학연구』 제35집,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4)을 참조하여 일부 변형하여 적용하였음을 밝힙니다.


김민정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를 졸업하고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2년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며 글을 쓰기 시작하였고 201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차세대 예술인력 문학분야에 선정되었다. 소설집 『홍보용 소설』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디아스포라 문학에 나타난 타자 인식 연구」 「이청준 소설에 나타난 종교관 연구」 「바리공주 서사의 수용과 활용」 등이 있다. 현재 중앙대학교에서 스토리텔링 강의를 하고 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 reise81@hanmail.net

 

 

* 《쿨투라》 2018년 여름호(통권 5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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