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쿨투라 신인상] 당선작 및 심사평: 시 · 영화평론 부문
[제17회 쿨투라 신인상] 당선작 및 심사평: 시 · 영화평론 부문
  • 유성호, 강유정, 김민정, 손정순
  • 승인 2023.02.01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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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신인상 당선작 발표

시 부 문
「아몰퍼스」 외 2편 김해솔

영 화 평 론 부 문
「어눌한 발화를 통해 매체로서의 영화를 증명하기
─ 〈헤어질 결심〉과 뉴진스의 〈OMG〉 M/V를 중심으로」 이우빈

심 사 위 원
유성호(문학평론가), 강유정(영화평론가),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손정순(본지 발행인)

 

심사평

영상적 소통의 매력과 실험성의 페이소스를 보여준 당선작

제17회 쿨투라 신인상 공모에 많은 응모작들이 모였다. K-콘텐츠에 대한 열기와 그 열기를 자기의 언어로 말하고 싶은 또 다른 열정을 부피로 체감할 수 있었다. 2023년도 신인상 당선작으로 김해솔씨의 시 「아몰퍼스」 외 2편과 이우빈 씨의 영화평론 「어눌한 발화를 통해 매체로서의 영화를 증명하기 ─ 〈헤어질 결심〉과 뉴진스의 〈OMG〉 M/V를 중심으로」를 선정하였다.

올해 유난히 많은 투고작이 몰린 소설 부문은 공정한 심사를 위해 다음 호로 당선작 발표를 미루었다. 매체적 위상이 높아진 《쿨투라》의 미래를 새로운 신인으로서 한껏 밝혀줄 것으로 기대해본다. 심사위원들은 이분의 작품이 예술에 대한 경험적 구체와 함께 참신한 실험성과 완성도를 아울러 갖추고 있다고 판단하여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김해솔 씨의 시 「아몰퍼스」 외 2편

김해솔 씨의 시는, 자유롭고 대담한 시상을 전개하면서도 의미론적 지연이나 의도된 해체와는 결별하면서 자신의 독자적 상상력을 풀어놓고 있다. 삶에 대한 친화적 상상력에 확고한 기반을 두면서도 삶의 진정성과 간단없는 신뢰를 강렬하게 내비치고있다. 서정적 온축보다는 말의 연쇄적 리듬에 따른 심장의 문법을 택하고 있다 할 것이다. 특별히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연작이나 「아우또노미아」가 선사해주는 사랑의 밀도는 퍽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우리 삶의 흐름과 속성을 상징적으로 예표하는 목소리가 견고하고 아름답게 번져간다. 「아몰퍼스」의 제목 ‘amorphous’는 무정형 혹은 비결정질을 함의하는데, 도서관과 책의 관계론을 일그러뜨리고 확장하고 다시 가지런히 모아들이는 감각의 탄력을 미덥게 담고 있었다. 만만찮은 습작 시간의 축적이 느껴지면서 작품을 써가는 역량과 가능성에서 큰 기대를 모으는 시인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우빈 씨의 영화평론 「어눌한 발화를 통해 매체로서의 영화를 증명하기」

영화평론 「어눌한 발화를 통해 매체로서의 영화를 증명하기 ─ 〈헤어질 결심〉과 뉴진스의 〈OMG〉 M/V를 중심으로」는, 제목에서 짐작되듯, 문화평론의 성격도 갖고 있다. 당선자 이우빈 씨는 〈헤어질 결심〉 ‘서래’의 어눌한 한국어와 뉴진스 뮤직비디오 〈OMG〉 속 페르소나─멤버들이 표현하는 분열증적 언어를 연결해 영상적 소통의 매력과 가능성을 살펴본다. 대단한 설득력과 학술적 치밀함보다 발상의 전환과 제안의 도발성 자체가 매력적인 글이다. 지금 우리 평단에 필요한 게 있다면 이런 재기발랄한 시도와 자유로운 전환이 아닐까?

앞으로 눈여겨볼 만한, 잠재력이 풍부한 두 작품

최종심에 오른 작품 중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후보작은 하현주의 영화평론 「욕망하는 주체로서의 여성은 어떻게 죽임을 당하는가」라는 〈해피엔드〉 비평과 taeppokp의 웹툰 〈거대한 쥐가 갉아먹는 항로〉와 〈너는 흐려지지 않는 뜨거운 거울이다〉였다. 하현주의 영화평론은 자기만의 문체와 주제의식이 시의성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지금, 여기의 삶과 1999년 〈해피엔드〉 사이의 간극을 넘어서는 새로운 제안이 부족했다. 완미함보다 가능성, 기대를 품고 이우빈 씨의 평론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taeppokp의 웹툰은 문학적인 감수성을 기반으로 자기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가진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특히, 한 편의 짧은 영화를 본 듯 강렬한 영상미를 구현해내며 웹툰의 예술적 지평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자 한 시도는 매우 돋보였다. 하지만 웹툰의 형식미를 뒤받쳐줄 수 있는 작가 고유의 주제 의식이 미흡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웹툰이 진행될수록 앞으로 나아가거나 안으로 깊어지기보다는 한 자리에 계속고여 있다는 인상을 받는데, 이러한 극적 몰입감의 하락 역시 작품세계가 가진 내적 완결성의 부족이 원인으로 보인다. 두 작품이 비록 당선작으로 선정되진 않았지만 앞으로 눈여겨볼 만한, 잠재력이 풍부한 작품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당선하지 못한 분들께 위로와 응원의 말씀을 드리면서, 구체성과 실험성의 결속을 통한 삶의 페이소스를 개성적으로 보여준 김해솔 씨와 이우빈씨가 시인과 평론가로서 역량을 크게 진작해가기를 마음 깊이 소망해본다.

 


당선소감

시 - 김해솔

나는 말하는 일을 좋아한다. 이 당신소감(당선소감에서 멋대로 점 하나를 뺐다. 당신소감은 나에 대한 당신의 소감일까, 당신에 대한 나의 소감일까.)은 수정되었다. 많이. 아주 많이, 때문에 나는 담당편집자님께 계속 메일을 보내야만 했다. 이게 정말 최종입니다. 이게 진짜 완전 최종입니다.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라고 메일들을 보내고 또 보낸 뒤, 나는 썼다. 나는 말하는 일을 좋아하고 말하는 일을 수정하는 일은 더 좋아한다고. 이건 어쩐지, 시공을 초월하는 일 같다고.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일 같다고. 하지만 사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은, 내가 한 말에 책임지는 일이다. 번복할 수 없음을,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아는 일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계속 말하고 수정하는 일은, 나를 무너지게 할 수도 있다. 누군가 내게 이렇게 묻게 할 수도 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고? 과해. 과하다고. 넌 미쳤어.”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그럼 나는 울 수도 있었다. 베개를 팡팡 치며 다시는 말하지 않을 거라 다짐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말이지. 나는 말이지. 좋았다. 눈물을 흘리고 후회하면서도 좋았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게. 이런 게 미친 거라면 미치는 것도 꼭 나쁘진 않지? 생각했다. 이렇게라도 말할 수 있다면.

문보영, 장수양, 한주연, 김승일에게

대학과 대학원을 비롯한 저의 모든 은사선생님들, 목맴, 이인환각연쇄고리, 술탄, 낯섬어드벤처, (전)과외생이자 친구들, 7교시퍼포먼스, 〈초월일기〉구독자분들, 베개, 《쿨투라》의 심사위원님들과 편집위원님들, 요괴!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할머니, 작은삼촌에게 제 안의 가장 커다란 마음을 전합니다.

나는 천재가 되고 싶었다. 천재가, 되고 싶다고 말하다 보니까 정말 되어버린 게 아닐까. 천재 같은 게. 말하고 싶은 걸 말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뭐 그런 천재.

 

영화평론 - 이우빈

저는 영화와 권태기를 겪고 있습니다. 한없이 사랑스러웠던 영화였는데 요즘 따라 그의 결점들이 자꾸 눈에 밟히곤 합니다. 아마 이유는 영화를 일로 삼게 되어서인 것 같습니다. 부족한 소양에도 불구, 2022년엔 영화 기자라는 직함을 달고 이곳저곳에서 이런저런 일을 했습니다. 관객으로서 좌석을 덥히던 각종 영화제에선 프레스 배지를 목에 걸고 관계자 구역을 드나들었습니다. 마냥 기뻤습니다. 위인처럼 여기던 선배들과의 사석에선 흥분된 맘을 애써 삭히곤 했습니다. 이런 들뜸에 탄력을 얻어서 저의 영화잡지를 만들기도 하고, 종종 도전하던 영화 제작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제 또래들이 NCS니 토익 스피킹이니착 실한 사회인으로의 변태에 몰두할 때 저는 여전히 영화란 공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혹은 영화로 글쓰기란 어불성설의 몽상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입니다.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입니다. 영화와 글이라는 두 개의 이정표는 점점 색이 바래고 저는 저의 미래를 어디로 몰고 나가야 할지 영 헷갈리기만 합니다.

그러니까 영화와의 권태기는 연인 간의 권태기가 으레 그렇듯 저로부터 나온 문제입니다. ‘지금이라도 코딩을 배울까?’란 야비한 맘이 저를 연신 괴롭히고, 저는 괜히 이 문제의 원인을 영화란 친구에게 돌리고 있는 것 입니다.

기쁨의 장소인 당선 소감에 우중충한 말만 해대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말을 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징징거림이었습니다. “영화야 미안해. 내가 앞으로 더 잘할게.” 이처럼 제 맘을 다잡게 해준 것은 당연히 《쿨투라》 신인상 당선 소식입니다. 사실 영화와의 관계 유지가 앞으로 어떤 형국으로 이어질지 모르겠습니다. 파국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지금 당장 영화가 사랑스럽고 귀여워 보입니다. 전 어쩔 수 없는 영화 바보인가 봅니다.

저를 이런 바보로 만들어 준 《쿨투라》와 심사위원님들, 영화 은사 서대정 교수님과 김채희 교수님, 《씨네21》 선배들, 《섭씨 233》을 함께해 준 서정과 동료들, 작은아들의 바보짓을 묵묵히 응원해주는 부모님과 형에게 고맙습니다

 


 

 

* 《쿨투라》 2023년 2월호(통권 10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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