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그럼에도 나는 이 드라마를 본다 - 〈더 글로리〉, 〈금혼령〉
[드라마 월평] 그럼에도 나는 이 드라마를 본다 - 〈더 글로리〉, 〈금혼령〉
  • 김민정(드라마 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3.02.02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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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넷플릭스

2023년 내 새해 인사는 예년과 달랐다. “더 글로리 봤어요?”

2022년 12월 30일 공개된 첫날 국내 넷플릭스 시리즈 순위 1위에 오르고, 며칠 지나지 않아 넷플릭스 TV 비영어권 부문 전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드라마,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스타 배우 송혜교와 스타 작가 김은숙, 그리고 글로벌 OTT 넷플릭스의 만남. 〈더 글로리〉는 탄생 전부터 이미 유명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무엇보다 〈태양의 후예〉 이후 배우 송혜교와 작가 김은숙의 6년 만의 재회였다. 중국과 한국 동시 방영으로 한국 드라마의 존재감을 세계에 확실히 알린 명실공히 국가대표 K-드라마. 그때의 영광이 다시 재현될 것인가, 모든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넷플릭스를 등에 업고 190여 개국에 공개된다고 하니, 〈더 글로리〉를 향한 높은 기대는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그 기대는 곧바로 아름다운 현실이 되었다. 공개 2주 만에 누적 시청 시간 1억 돌파. 와우.

‘19금’에도 불구하고

“You Are My Everything.” 로맨틱한 드라마 OST로 전 세계를 핑크빛으로 물들였던 〈태양의 후예〉. 배우 송혜교와 작가 김은숙, 두 사람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더 글로리〉는 전혀 ‘송혜교’답지 않고 전혀 ‘김은숙’답지 않다. 그런데, 그래서, 좋다.

우선, 배우 송혜교부터. 이제까지 송혜교의 연기와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로맨스물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배우 송혜교의 서늘한 얼굴과 팔자 주름에 대한 호평이 온라인에 자자하다. 슬픔과 아픔을 고스란히 얼굴에 담아낸 30대 여자의 얼굴이 이토록 매혹적일 수 있을까. 배우 송혜교는 학교폭력에 처참하게 으스러졌다가 처절한 복수를 꿈꾸는 문동은으로 열연한다. 한번 보면 중도하차가 불가능할 정도로 몰입감이 상당하다.

〈더 글로리〉는 OTT 시리즈답게 극 중 학교폭력의 수위가 상당히 높다. 1화를 보다가 시청을 포기한 사람이 있을 정도. 그 어떤 것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것이 드라마에 나온다. “고데기 온도 좀 네가 확인해 줘.”라는 평범한 대사가 이렇게 섬뜩할 줄이야. 고온으로 달궈진 고데기를 맨살에 가져다 대는 10대 청소년들의 섬뜩한 미소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2006년 청주의 한 여자중학교에서 이미 실제로 발생한 사건이 있다. 현실은 여고생이 아니고 더 어린 여중생이고, 폭력의 도구는 고데기만이 아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이 픽션보다 더 믿을 수 없는 허구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드라마보다 뉴스가 더 드라마틱한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학교폭력’이라는 한국 사회 핫이슈, ‘사적 복수’라는 한국 드라마 최신 트렌드, 그리고 표현의 수위에 자유로운 OTT 플랫폼의 삼위일체가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19금 드라마. 그것이 바로 〈더 글로리〉다. “용서는 없어. 그래서 그 어떤 영광도 없겠지만.”

‘용서 없음’에도 불구하고

학교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진 만큼 학교폭력(학폭)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최근 몇 년 사이 쏟아지듯 많이 나오고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피해자가 성인이 되고 사적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인데, 그 분노는 백이면 백 모두 신체로 향한다. 때리거나 죽이거나.

〈더 글로리〉는 다르다. 학폭이 육체와 영혼을 파괴하는 일인 것처럼 학폭에 대한 복수도 육체와 영혼 둘 다를 겨냥한다. 1화 마지막에 이를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문동은의 대사가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파상은 파상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 글쎄… 그건 너무 페어플레이 같은데요. 여러분.”

학교폭력 소재를 다룬 작품들의 공통점이 있다. 폭력의 현장에 어른이 없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른은 있으나 어른다운 어른이 없다. 청소년을 보호하고 가르침을 줄 어른이란 존재가 오히려 폭력을 재생산하고 악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어쩌면 문동은의 복수 리스트에 친엄마가 있다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가정은 사회의 축소판이니까. 그런 까닭에 학폭 소재 드라마는 사적 복수를 모티프로 한 드라마와 결을 같이 한다.

최근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적 복수의 강도는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폭력은 폭력을 부르고,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는 식의 악순환을 경계하며 권선징악을 설파하는, 화해와 용서로 끝나는 결말은 더 이상 없다. 사적 복수의 절정을 보여준 드라마 〈빈센조〉는 “쓰레기 치우는 쓰레기”를 자처하는 ‘다크 히어로’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다. 악인을 총으로 쏴서 죽이고 불에 태워 죽이고… 악인의 방식을 그대로 재현한다. 일종의 ‘미러링’이랄까.

지금 여기 2023년 〈더 글로리〉는 한층 더 ‘흑화’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받은 만큼 돌려준다? 똑같이 돌려준다? 어림없는 소리! 원금은 물론이고 원금의 복리 이자까지 모조리 다 받아내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한다. 윤리와 도덕, 나아가 공정성과 합리성에 대한 우리의 나이브한 편견에 이의를 제기하고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더 글로리〉는 굉장히 도발적인 작품이다.

‘쪼개보기’에도 불구하고

〈더 글로리〉는 문동은이 십여 년에 걸쳐 치밀한 복수극을 설계하고 본격적으로 복수를 시작하는 지점에서 파트1 8부가 끝난다. 온라인 리뷰를 보니까 ‘절대 〈더 글로리〉 보지 말라’는 평이 많다.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절대 멈출 수 없다는 극찬에 가까운 하소연이다. “잘못은 학폭 5인방이 했는데 시청자들이 파트2 기다리다 말라 죽게 생김."

최근 국내외 OTT 시장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 그 관심을 오래 붙잡을 수 있을까,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신규 구독자를 유입하고 기존 구독자를 오래 붙잡아 두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OTT 쪼개보기’다. 지상파 방송사 드라마와 달리 OTT 오리지널 시리즈의 매력은 ‘몰아보기’였다. 그런데 드라마를 한꺼번에 몰아보고 구독을 취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몰아보기와 쪼개보기를 영리하게 섞어 신구新舊 구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애쓰고 있다.

물론, 몰아보기도 아니고 쪼개보기도 아니고 ‘요약보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클립영상이나 드라마 요약 유튜브 영상으로 드라마 감상을 대신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 글로리〉만큼은 정속도로 정주행하며 복수에 얽힌 복잡한 심리를 온전히 느껴보길 추천한다. 가해자 김연진이 가진 모든 것을 하나씩 빼앗아 없애는, 하루하루 피 말리는 문동은의 집요한 복수극. 극중 바둑이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하는데, “상대가 정성껏 지은 집을 빼앗으면 이기는 게임”이라는 점에서 바둑과 문동은의 치밀한 복수극은 긴밀하게 연결된다. 보고 있으면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는 느낌이다.

‘더 글로리’에도 불구하고

〈더 글로리〉가 전 세계 랭킹 1위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드라마가 보고 싶은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MBC 금토드라마 〈금혼령〉. 7년 전 세자빈을 잃고 실의에 빠져 혼인 금지 명령을 내린 왕 이헌 앞에, 죽은 세자빈으로 빙의가 가능하다는 혼인 사기꾼 소랑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한 마디로 달콤한 ‘로코’. 로맨틱 코미디물이다.
동명의 웹소설 원작으로 천지혜 작가가 웹소설과 드라마 둘 다 집필했다. 웹소설과 비교해서 드라마는 상대적으로 스토리가 상당히 짧다. 그래서 웹소설을 드라마로 옮겼을 때 스토리를 많이 축약하기 때문에 사건과 사건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고 둥 떠 있는 듯한, 서사적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들이 생기기 쉽다. 4회까지는 굉장히 재밌다. 그런데 5회부터 살짝 삐거덕댄다.

‘그럼에도’ 스토리의 허점을 감미로운 배경음악이 보완해준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이 매끄럽지 않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세자의 테마곡 〈어찌 잊으라 하시오〉가 흘러나와 심장을 푹 적신다. 그 바람에 몰입감이 깨졌다가도 다시 붙는다. “달마저 잠든 이 밤, 어딜 그리 바삐 가시오~.”

연출 역시 한 몫 단단히 한다. 드라마 〈내 뒤의 테리우스〉와 〈두 번은 없다〉를 연출한 박상우 PD가 연출을 맡았는데, 연출이 드라마의 품격을 한 단계 높인다. 〈내 뒤의 테리우스〉에서 장면연출이 독특해 인상 깊게 봤던 기억이 있다. 〈금혼령〉에서도 우아하고 세련된 연출을 선보이며 실력 발휘를 마음껏 한다. 서사적 개연성이 부족하면 노래를 듣고, 노래가 안 나오면 연출을 눈여겨보고. 아. 어제도 오늘도 ‘그럼에도’ 나는 또 드라마를 보고 있구나.

 


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연두빛 캠퍼스물과 회색빛 오피스물 사이를 분주히 오가고 있다. 언젠가는 내 인생이 장르가 판타지로맨스코미디홈드라마가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2022년 중앙대학교 교육상과 제4회 르몽드 문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쿨투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크리티크 M》 편집위원과 KBS World Radio 〈김형중의 음악세상〉 고정 게스트로 활동하며 자발적 드라마 홍보대사로 열일하고 있다. 저서로 드라마 캐릭터 비평집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외 여러 권의 책이 있다.

 

* 《쿨투라》 2023년 2월호(통권 10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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