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통신] 메콩델타의 수도라는 껀터의 닌끼에우 야시장과 까이랑 수상시장
[베트남 통신] 메콩델타의 수도라는 껀터의 닌끼에우 야시장과 까이랑 수상시장
  • 이상옥(시인, 창신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2.02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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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빈롱에 체류하며 주말에 가장 많이 여행 가는 곳이 껀터이다. 껀터는 빈롱에 인접해 있다. 메콩대학교에서도 버스로 30분, 호찌민에서는 3시간 정도의 거리다. 메콩강 최대의 지류인 하우강의 남쪽에 있어 메콩델타의 수도라 일컬어지는 껀터는 중앙정부 관할 하노이, 호찌민, 다낭, 하이퐁과 함께 5대 직할시의 하나다. 베트남에서는 메콩델타를 ‘끄우롱 델타’라고도 부른다. 중국에서 란창瀾滄강이라 부르는 메콩강은 남서부 티베트 자치구에서 발원해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태국 등으로 흐르는데, 각 나라마다 메콩강을 부르는 명칭도 다양하다. 베트남에서 메콩강은 구룡강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메콩강이 베트남에서 아홉 갈래로 흘러 아홉 마리의 용의 형상을 띠기 때문이다. 메콩대학교를 구룡대학교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연유이다.

베트남 남부 지역 메콩강 삼각주인 메콩델타를 개발하기 위한 마스터플랜이 본격화되고 있다. 베트남 중앙 정부는 메콩 삼각주가 단순한 농수산물 주요 생산지를 넘어 베트남 정치, 경제, 사회, 안보, 국방뿐만 아니라 아세안 국가와의 무역에 있어서도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메콩델타는 캄보디아와 베트남이 분할해 있지만 베트남이 80% 이상을 차지하며 대한민국 국토의 40%에 해당하는 면적이 될 만큼 엄청난 규모로 베트남을 대표하는 농수산물 생산지다. 메콩델타 지역이 지난해 베트남 전체 쌀 생산량 50%, 양식 수산물 생산량 65%, 과일 생산량 70%를 차지할 만큼 메콩델타 농수산물이 베트남이 먹여 살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풍부한 먹거리 때문인지 껀터에는 미인들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베트남의 각종 미인대회 입상자 중 껀터지역 출신의 미인이 가장 많다고 한다. 껀터에서는 피부가 하얀 젊은 여성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무더운 날씨가 연중 계속돼도 피부 보호를 위해서 외출할 때는 눈과 귀를 빼 놓고는 모두 가린다. 목덜미까지 내려오는 웃옷에 달린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 장갑, 마스크로 중무장한다. 물론 껀터의 여성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베트남 어느 지역에서나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헬멧을 쓰고 햇볕을 가리기 위해 중무장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젊은 여성들을 보면 폭염도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대수롭지 않는 것 같다. 특히 껀터에 ‘미인’들이 많다는 것은 중국 명나라 시절 ‘장군의 가문들’이 청나라에 당하는 굴욕을 피해 껀터 지역으로 이주해서 그렇다. 또 프랑스 지배를 받으며 서구의 영향으로 그렇다는 등의 속설이 있다.

주말에 껀터에 가면 닌끼에우 야시장 근처 호텔에 묵는다. 깨끗한 호텔인데도 한국돈으로 2만여 원 정도면 충분하다. 주말에 학교 앞에서 버스를 타고 껀터로 가는데, 버스비가 1500원 정도이다. 버스에서 내려서 그랍 오토바이를 타거나 택시를 타고 닌끼에우 야시장으로 가는 게 요즘은 너무 익숙하다. 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승객 중에서 외국인은 언제나 나 혼자 뿐이다. 1년 정도 베트남에 체류하다 보니 현지인처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닌끼에우는 껀터 제1의 관광명소이기 때문에 공원, 산책로, 야시장, 카페, 가라오케, 클럽 등이 즐비하다. 닌끼에우 야시장 인근의 야경이 특히 아름답다. 밤에는 닌끼에우 야시장을 중심으로 인파가 몰린다. 특히 토요일에는 야외 공연이 펼쳐져서 인산인해다. 닌끼에우 야시장은 낮에는 철거돼 인적도 끊어진 듯 한산해 보이다가도 늦은 오후부터 서서히 노점이 설치되기 시작해서 밤이 되면 온갖 물건들이 진열돼 별천지가 같다. 닌께에우 야시장은 밤마다 깜짝 쇼를 펼치는 도깨비 시장이다.

닌끼에우 야시장 인근 강변 공원에는 호찌민 동상이 우뚝 서 있다. 호찌민은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자 혁명가이다. 호찌민은 젊은 시절에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고, 인도차이나 공산당을 창당해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활동하다 탄압을 피해 중국, 소련 등에서 머물다 베트남에 돌아와 독립운동을 했다. 베트남은 제네바 합의를 체결해 독립됐으며 호찌민은 베트남의 초대 주석이 됐다. 프랑스와 미국의 개입으로 베트남은 남북으로 분단되고 호찌민은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하노이에 월맹 정부를 수립해 산악지역에서 게릴라 전으로 맞서며 통일 과업을 추진했으나 1969년 80세로 생을 마감하며 반드시 통일 과업을 완수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그의 유언을 따라 6년 후 베트남은 통일을 이루었다. 장기전쟁의 상처를 씻어내고 호찌민을 정신적 지주로 삼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결합한 개방정책으로 오늘 1억 베트남 사람들은 세계가 주목하는 성공신화를 향해 매진하고 있다. 베트남 지폐 9종 모두 앞면에는 호찌민 초상으로 도안이 돼 있을 만큼 호찌민을 향한 존경심은 상상을 불허한다. 메콩대학교 강당에도 황금색의 호찌민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호찌민은 베트남의 국부이며 정신적 지주다.

껀터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까이랑 수상시장이다. 호찌민 동상이 있는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다. 껀터 다운타운에서 약 6km 떨어져 있는 이 수산시장은 식품, 먹을거리, 과일 등의 농수산물들이 거래되는 상거래 공간이자 유명한 관광 코스다. 상인들은 상품을 조그만 배에 가득 싣고 새벽에 모여들고 물건을 사러, 또는 관광을 하러 모여드는 사람들로 장관을 이룬다. 수상시장은 오전 5시에서 열려 오전 8시에 파하는 아침시장이다. 배로 떠 다니며 상위행위가 이뤄지는 특별한 시장인 것이다. 까이랑 수상시장은 메콩델타 지역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필수코스로 알려져 있다. 40만동(한화 2만원) 정도면 배 1대를 빌릴 수도 있고, 40분간의 보트여행 코스를 이용하면 수상가옥들과 함께 강변의 서구식 아름다운 건물들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특히 베트남 여성들의 억센 생활 의지도 엿볼 수 있어 수상시장 자체가 하나의 휴먼 드라마로 여겨진다.

 


이상옥 창신대학교 명예교수. 1989년 월간 《시문학》 등단. 유심작품상, 편운문학상 등 수상

 

 

* 《쿨투라》 2023년 2월호(통권 10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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