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문화비평] 해피엔딩의 조건
[청년문화비평] 해피엔딩의 조건
  • 김현구(출판편집자)
  • 승인 2023.02.02 16: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결말이 팬들에게 날 선 비판을 받았다.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제대로 된 결말’을 만화나 소설 등으로 2차 창작해 위로를 받는 모습 또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방영 이후부터 종영 직전까지 큰 사랑을 받아온 만큼 드라마 작가의 자질 문제로까지 얘기가 번질 정도로 결말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이 드라마의 결말에 왜 이토록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실망하는 것일까. 단 한 화 만에 ‘모든 것이 꿈이었다’라는 전개로 15화에 걸쳐 쌓아온 이야기의 탑을 무너트린 전개의 엉성함과 원작의 설정 파괴 등의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핵심은 ‘배신감’이다. 시작과 끝을 함께 한 콘텐츠 경험이 ‘없던 일’이 되었다는 배신감.

〈죠죠의 기묘한 모험〉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 〈스톤 오션〉에서는 결말에 다다랐을 때 한 소년을 제외한 모든 주인공 일행이 적에게 살해당한다. 죽은 것처럼 연기를 한다거나 다시 부활해 적을 쓰러트린다는 만화적 설정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주인공 일행은 정말로 죽음을 맞이했고, 작품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홀로 살아남은 소년의 활약으로 탄생한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새로운 세계에서 주인공 일행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팬들과 함께 한 모험의 과정을 모두 잊은 채 겉모습만 똑같고 다른 이름으로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새로운 캐릭터’로 다시 등장한다.

작품의 설정에 따르면 팬들이 시작부터 끝까지 지켜봐 온 캐릭터들은 사라졌다. 하지만 팬들의 콘텐츠 경험은 결말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홀로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는 소년의 존재와 다른 세계에서 완전한 타인이 되었음에도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다시 인연을 이어나가는 캐릭터들의 모습이 팬들과의 연대를 이어가기 때문이다. 〈스톤 오션〉은 새로운 시리즈의 출발을 위해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부터 여섯 번째 작품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스토리를 ‘없던 일’로 만들었다. 하지만 팬들과 작품 세계, 즉 캐릭터의 관계가 끊어지지않는 선을 지키며 배신감보다는 감동과 여운을 남겼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팬들에 대한 존중과 연대를 생각하지 않고 캐릭터를 스토리의 진행을 위한 부품으로 소비해 하루 만에 팬들을 실망시키고 수많은 비판을 받은 것과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결말을 아쉬워하는 이들이 만드는 2차 창작물들은 대부분 ‘없던 일’이 되어버린 인물들의 관계를 되살리는 데 집중한다. 이처럼 작가와 작품이 아무리 부정하려고 노력하더라도 그들의 콘텐츠 경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작품 속 캐릭터들에게 지난 모든 일이 다 꿈이었다고 해도 팬들에게는 생생한 현실의 경험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스토리의 정당화를 위해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던 캐릭터를 죽음으로써 소비한 게임 〈The Last of Us Part II〉가 높은 제작 완성도와 별개로 무수히 많은 비판을 받은 이유도 팬들의 콘텐츠 경험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콘텐츠를 사랑하는 팬들은 창작자의 의도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스토리를 멀리서 지켜만 보는 관찰자가 아니다. 그들은 작품 세계 아주 깊은 곳까지 헤엄쳐 들어가 캐릭터와 설정 등 작품의 모든 것과 관계를 이루는 ‘플레이어’다. 이 중요한 사실을 간과한 채 만들어진 작품이 과연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2023년 1월 8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같은 성공 사례를 만들겠다며 방송영상콘텐츠 예산을 전년 대비 168% 증가된 1,235억 원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새롭게 각색되어 탄생할 작품들이 부끄러운 ‘제 2의 〈재벌집 막내아들〉’이 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을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까. 자신만의 세계에서 잠시 눈을 떼고 작품을 향유할 팬들을 향해 고개를 들어보자. 작품 세계와 함께 할 이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노력이 분명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모두를 위한 ‘해피엔딩’의 조건을 멀리서 찾을 필요 없다. 해답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김현구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출판편집자.

 

 

 

* 《쿨투라》 2023년 2월호(통권 104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