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분단과 통일의, 그리고 역사의 기억을 품은 베를린
[베를린] 분단과 통일의, 그리고 역사의 기억을 품은 베를린
  • 이은정(베를린 자유대학교 역사문화학부 학장, 동아시아대학원 원장)
  • 승인 2023.03.0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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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은 독일 역사에서 분단체제의 상징이자 분단의 극복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분단시기 동안 치열한 대립과 갈등의 근원지였고, 동시에 갈등을 해소하고 합의를 만들어낸 곳이었다. 그리고 1990년 통일된 독일의 수도가 된 베를린은 유럽의 중요한 관광지이자 새로운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포츠담광장 ⓒ쿨투라
포츠담광장 ⓒ쿨투라

분단된 베를린과 1990년대 초반의 베를린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세계적인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발전한 오늘날의 베를린을 걸으면서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일 것이다. 장벽에 둘러싸였던 분단도시의 암울한 분위기, 전쟁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검게 그을린 동베를린 구도심의 공허함은 이제 모두 사라졌다.

장다르멘마르크트의 콘서트하우스 ⓒ쿨투라
장다르멘마르크트의 콘서트하우스 ⓒ쿨투라

동독 체제에서 폐허가 될 뻔했던 동베를린의 시가지는 고풍스러운 옛날의 모습을 완전히 되찾았다. 장벽이 세워진 후 방치되었던 포츠담광장과 슈프레강변에도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섰다. 고급스러운 상점이 늘어선 동베를린의 중심가 프리드리히거리를 오가는 행인들의 걸음은 여유롭고도 생기에 차 있다. 베를린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라고 하는 장다르멘마르크트의 콘서트하우스 앞 광장은 까페에 앉아 거리 악사의 연주를 즐기는 사람들과 그 옆을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브란덴부르크문에서부터 오페라하우스를 지나 베를린돔과 다시 복원된 베를린성까지 잇는 운터덴린덴거리를 걷다보면 누구나 19세기 유럽의 강자였던 프러시아 제국의 위풍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베를린돔 ⓒ쿨투라
베를린돔 ⓒ쿨투라

물론 지금의 베를린의 모습은 2차대전 이전, 1920년대와 1930년대, 문화적 황금기를 누렸던 시기의 베를린과 같지는 않다.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건물들이 이미 파괴되었다. 2차대전 중에 베를린 건물의 3분의 1정도가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1945년 이후에는 현대화의 이름으로 전쟁 중에 파괴된 것과 유사한 정도로 많은 건물들이 철거되었다.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이들어선 곳도 많았지만 분단으로 인해 빈 공간으로 남아 있는 경우도 많았다.

통일 이후에 베를린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건설 공사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공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포츠담광장의 많은 빌딩들, 베를린중앙역, 유대박물관을 비롯해서 연방수상청과 연방의회 의원회관이 모두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의 작품이다. 베를린 시정부는 세계적인 스타 건축가들에게 건축을 의뢰할 때 도시 전체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건축물을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다. 그 결과 높지 않고 우아한 스카이라인이 조성되고, 역사를 품은 베를린 도심의 거리가 재생되었다. 

베를린돔 ⓒ쿨투라
카이저빌헬름기념교회 ⓒ쿨투라

건물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곳에 담긴 역사가 잊힌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통일 이후 베를린은 역사를 잊은 공간이 아니라 기억을 품은 도시가 되었다. 도시 중심의 브란덴부르크문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공간에 만들어진 홀로코스트 추모공간과 분단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는 체크포인트 찰리, 이스트사이드갤러리, 나치 테러의 참상을 보여주는 ‘테러의 지형도 박물관’, 티어가르텐 한가운데에 있는 ‘나치에 희생된 동유럽 집시들을 위한 추모공원’에 이르기까지 베를린 안에는 어떻게 역사가 기억되고 있는지 볼 수 있는 장소들이 정말 많다. 이 공간들은 누구에게도 역사의 한 단면을 특정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기억의 공간으로서, 잊지 말고 성찰해야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줄 뿐이다.

체크포인트 찰리 ⓒ쿨투라
체크포인트 찰리 ⓒ쿨투라

그렇게 역사를 품은 도시가 된 베를린은 지금세계 곳곳의 젊은이들이 꿈과 열망을 안고 모여드는 도시가 되었다. 저녁이면 한산해지는 독일의 다른 도시들과 달리 베를린 시내 중심가에서는 밤에도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곳곳에 있는 작은 극장에서는 다양한 실험극들이 무대에 올라오고, 젊은 음악가들과 화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이벤트가 계속 열린다. 분단시기 서베를린의 부촌이었던 베를린 서남쪽의 달렘과 그류네발트 지역의 거리 분위기와 동베를린 주민들이 선호하던 주거지역이었던 팡코와 헬러스도르프의 거리 분위기는 지금도 여전히 다르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베를린이라는 대도시의 다양한 일상을 함께 만들고 있다. 그런 베를린은 지금도 여전히 한국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도시이다. 포츠담광장과 브란덴부르크문을 잇는 도로 바닥에 가늘게 새겨져 있는 장벽의 흔적이 어떠한 분단도 영원하지 않고 극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숨통을 짓누르듯 길을 가로막고 있던 콘크리트 장벽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하나가 되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베를린은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잘 보이지도 않는 베를린 장벽의 흔적을 열심히 찾아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베를린이 보여주는 역사의 기억 속에서 희망을 찾기 위해서.

 

 


이은정 현 베를린 자유대학교 역사문화학부 학장 겸 동아시아대학원 원장, 한국학연구소 소장. 독일 괴팅겐 대학 정치학 박사, 할레 대학 교수자격(Habilitation) 획득. 현 베를린-브란덴부르그 학술원(구 프러시아왕립학술원) 정회원, 아가데미아 오이로페아 정회원. 2019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 2013년 이미륵상 수상. 10권의 저서와 100여 편의 논문 발표.

 

* 《쿨투라》 2023년 3월호(통권 10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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