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제73회 베를린영화제 결산: 다큐멘터리의 승리
[베를린] 제73회 베를린영화제 결산: 다큐멘터리의 승리
  • Nesreen Allam(영화평론가)
  • 승인 2023.03.02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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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없는 강력한 방역 지침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축소 개최가 불가피했던 팬데믹 시기를 뒤로하고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23. 2. 16. – 2. 26.)는 가득 메운 미디어와 관객으로 우리가 알던 ‘정상’ 영화제로 돌아왔다. 영화제의 포문을 연 레베카 밀러의 로맨틱 코미디 〈쉬 케임 투 미She Came to Me〉는 오페라 작곡가로 분한 피터 딘클리지가 새로운 작품의 영감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상영 내내 관객들에게 웃음을 안긴 이 매력적인 드라마는 밝고 경쾌한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Nicolas Philibert ©Sandra Weller Berlinale 2023
Nicolas Philibert ©Sandra Weller Berlinale 2023

경쟁부문과 주요 수상

영화제 본상인 황금곰상을 향한 경쟁부문에는 세계 최고의 영화제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은 작품도 포함돼 있었다. 황금곰상은 성인 정신 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센느강 위의 데이케어센터를 인간적이고 따듯한 시선으로 그려낸 니콜라 필리프의 다큐멘터리 〈아다망에서On the Adamant〉에게 주어졌다.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에서 로라 포이트라스가 〈올 더 뷰티 앤 더 블러드셰드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것에 이어 다큐멘터리가 인정받는 순간을 보여주는 황금곰상에 아주 합당한 작품이다.

경쟁부문에서 가장 사랑받고 호평받았던 셀린 송의 〈전생〉은 놀랍게도 시상식날 주목받지 못했다.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의 데뷔작인 〈전생Past Lives〉은 우정과 이루지 못한 영원한 사랑을 다루며 여러 겹의 층위를 가지고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어린 시절 학교 친구인 노라(그레타 리 분)와 해성(유태오 분)은 서로 깊은 관계를 형성하지만 그들의 삶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노라의 가족은 북아메리카로 이민을 가는데, 둘 사이의 애정은 세월이 지나도 이어진다. 해성은 소셜미디어를 사용하여 노라를 찾고, 두 사람은 온라인에서 다시 연결된다. 시간이 더 지나 해성은 미국인 남편 아서(존 마가로 분)를 둔 노라를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난다. 〈전생〉은 이들을 따듯한 시선으로 아름답고 고요하게 관찰하는 이야기이다.

 

20,000 Species of Bees ©Gariza Films, Inicia Films

몇몇 경쟁작들은 훨씬 어둡다. 호주 감독 롤프 드 히어의 〈더 서바이벌 오브 카인드니스The Survival of Kindness〉는 인종차별과 식민주의에 대한 우화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당면한 문제를 황금곰상 레이스에는 어울리지 않는 피상적인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오스트리아 시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마가레테 폰 트로타의 〈잉에보르크 바흐만 – 사막으로의 여행Ingeborg Bachmann - Journey into the Desert〉는 바흐만 역을 맡은 비키 크립스의 연기 만큼은 찬사를 받았으나 작품 자체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여름 휴가 동안 독특하고 실존적인 고뇌 경험하는 작가를 그린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어파이어Afire〉는 심사위원대상 을 받았다.

다른 주요 상들은 여러 국가, 다양한 세대 감독들에게 골고루 분배되었다. 프랑스의 베테랑 촬영감독 엘렌 루바르는 프랑스 외인부대를 다룬 지아코모 압루제세의 〈디스코 보이Disco Boy〉에서 보여준 뛰어난 촬영으로 예술공헌상을, 독일의 작가 감독인 앙겔라 샤넬렉은 오이디푸스 드라마 〈뮤직Music〉으로 각본상을 받았다. 트랜스젠더 배우 테아 에레는 독일의 첩보 드라마 〈틸 디 엔드 오브 더 나이트Till the End of the Night〉에서 마약수사반과 함께 일하는 트랜스 여성을연기하며 조연배우상을 받았고, 소피아 오테로는 바스크 감독 에스티발리즈 우레솔라의 〈2만 종의 벌들20,000 Species of Bees〉에서 여덟 살의 트랜스 젠더 아이 역할로 주연배우상을 받았다. 프랑스의 거장 작가 감독 필립 가렐은 〈북두칠성The Plough〉로 감독상을, 포르투갈의 조아오 카니조는 음침한 〈배드 리빙Bad Living〉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Seneca ©Filmgalerie 451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준 스페셜 갈라의 〈세네카〉

더 흥미로운 작품들은 오히려 경쟁부문보다는 다른 섹션에 있었다.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에서 상영한 로베르트 슈벤트케의 〈세네카Seneca – On the Creation of Earth〉는 코미디와 드라마 사이에 걸쳐있는 이탈리아 사극이다. 로마 철학자로 분한 존 말코비치는 피에 굶주려 있는 치기 어린 네로 황제(톰 잰더 분)의 멘토로 등장한다. 폭력에 대한 뒤틀린 심사를가진 황제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을 죽이고, 이어 어머니까지 살해한 후 잔인한 병사를 세네카에게 보내 자살을 명한다.

작품은 많은 시간을 ‘좋은 죽음’을 위한 세네카의 어설픈 시도를 보여주는 데 할애하고 있다. 말코비치는 스스로 손목을 잘라도, 독을 넣어도 멀쩡히 살아있는 세네카를 기발하게 표현해냈다. 본인이 생각하는 만큼 용감하지도 똑똑하지도 않은 철학자를 보여주기 위해 괴상하고 과장된 연기를 잘 소화해 냈다.

 

Boom! Boom! ©Andy Hayt Getty Images

수준 높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황금곰상이 다큐멘터리 영화에 수여된 올해에는 그만큼 수준 높은 다큐멘터리 작품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전쟁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리더십을 다루고 있는 션 펜과 애런 카우프만의 〈슈퍼파워Superpower〉는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했다. 테니스 스타 보리스 베커는 알렉스 기브니의 다큐멘터리 〈붐! 붐! 더 월드 vs. 보리스 베커Boom! Boom! The World vs. Boris Becker〉 프리미어 상영을 위해 베를린을 찾았다. 두 챕터로 이루어진 다큐멘터리는 베커의 커리어의 성공과 시련을 다루고 있다. 파산 후 감옥에 가기 이틀 전에 진행된 인터뷰에서 6번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테니스 스타는 카메라 앞에 무너진다. 인생의 밑바닥을 마주한 그는 정신을 못 차리나, 위기 극복 능력이 있는 베커는 이내 회복하고 호감가는 모습으로 돌아온다.

비평가와 관객에게 모두 감명을 준 다른 다큐멘터리 작품은 〈그리고, 행복의 골목으로And, Towards Happy Alleys〉이다. 이란의 영화 문화와 페미니스트 시인 포로우 패럭자드Forough Farrokhzad에 깊이 매료된 인도 감독 스리모이 싱은 이란 영화계에서 투쟁하고 있는 이들을 찾아 나섰다. 영화감독 자파르 파나히, 모하메드 쉬르바니, 인권 운동가 나스린 소투데 등 6여 년 간 그녀가 담아낸 인터뷰에는 정권을 비판한 사람들이 처하는 투옥에 대한 위협과 일상 생활의 어려움과 같은 위태로운 이란의 실상이 드러나 있다. 싱은 이란을 뒤흔들고 있는 비타협적 투쟁의 선봉에 선 이란 여성들이 일상 생활에서 겪는 이슬람 공화국의 절대적 검열을 자신만의 예리한 시선으로 기록했다. 〈그리고, 행복의 골목으로〉는 이란의 실상을 폭로하는 영화와 시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담고 있으며, 시민의 자유를 끈질기게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두려움 없는 세대를 보여준다.

 

Under the Sky of Damascus © Raed Sandid

또 다른 강력한 다큐멘터리는 〈다마스쿠스의 하늘 아래Under The Sky of Damascus〉이다. 시리아의 듀오 탈랄 더키와 히바 칼리드는 베를린 망명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알리 와지흐와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 시리아는 수년간의 전쟁 이외에도 가정이나 직장에서의 일상화된 여성혐오와 폭력 문제가 심각하다. 괴롭힘은 권위의 표현으로써 어떠한 죄책감도 없이 자행되고 있다. 남성의 권위에 저항하는 여성은 사회에서 부적합 판단을 받고 정신병동으로 격리되며 이들에게 가해지는 극단적인 학대는 거의 보도되지 않는다. 다마스쿠스에서는 젊은 여성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이에 대해 조사한다. 여기서 우리는 금기를 깨는 수많은 익명의 여성들의 감동적인 증언을 목격하게 된다.

〈아다망에서〉가 황금곰상을 받고 뛰어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호평받은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는 ‘다큐멘터리의 승리’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Nesreen Allam is a British Egyptian film journalist and critic based in London. She writes extensively about film in several Arab and international newspapers.

번역 설재원

 

* 《쿨투라》 2023년 3월호(통권 10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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