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평] 호모 모빌리쿠스의 도시괴담: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영화 월평] 호모 모빌리쿠스의 도시괴담: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 강유정(영화평론가, 강남대 교수)
  • 승인 2023.03.0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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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최초의 연쇄 살인마는 영국 출신 잭 더 리퍼다. 런던의 빈민구역 화이트 채플에서 일어난 끔찍한 살인 사건은 당시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잭 더 리퍼라는 별명은 잔혹한 살해 수법과 연관된다. 주로 여성들을 노린 살인마는 칼을 사용해 내장이 드러날 만큼 심한 자상을 남겼다. 심지어 일부 장기는 사라지기도 했다. 문제적인 것은 이러한 연쇄 살인마가 등장한 시기이다. 때는 1888년, 19세기 영국, 런던은 산업 혁명 이후 급격한 대도시화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아일랜드를 비롯한 타 지역 이주민들이 대도시 런던에 살길을 마련하기 위해 몰려들었고, 도시는 빈민, 노동자, 하층민이 뒤섞여 포화 상태였다. 하지만 당시 인권이나 치안의 수준은 형편없었다. 특히, 화이트 채플은 빈민가이자 사창가로 알려져 있었기에 그곳에서의 살인 사건은 진지한 범죄로 취급되지 못했다. 이후 선정적인 범죄 결과가 엄청난 화제를 모았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존중되었다는 인상을 받기는 어렵다.

잔인하기도 했지만 결국 미제 사건으로 끝났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잭 더 리퍼는 문화적 자산으로 남았다. 지금도 매주 목요일 저녁 8시엔 런던 이스트엔드에서 잭 더 리퍼를 기리는 퍼포먼스가 벌어진다. 〈잭 더 리퍼〉라는 유명 뮤지컬도 있다. 말 그대로 희대의 살인으로 유명 인사가 된 것이다. 연쇄 살인은 대도시화, 산업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에 등장하는 연쇄 살인마 역시 산업화, 대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던 1980년대 정치적 폭압과 권위주의 없이는 존재하긴 어려웠다.

 

영화와 대중문화는 늘 잔혹한 범죄에 관심을 갖는다. 이는 호기심을 일으키는 강한 휘발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 범죄는 그 사회와 밀접한 연관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잔혹 범죄는 사회의 기술적 발전과 비례해 지능화된다. 일본 영화를 원작으로 각색된 넷플릭스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를 보더라도, 잔혹한 지능 범죄가 문명화 수준과 얼마나 깊숙이 연관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제목 그대로이다. 한 20대 여성이 술이 취한 상태에서 핸드폰을 손에서 놓친다. Z세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바로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걸어 다닐 때도, 차에 탈 때도, 술에 취했을 때도 심지어 잠들기 전이나 잠드는 순간에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특별한 알람이나 용건이 있어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마치 신체 일부처럼 핸드폰을 놓지 않는다. 이는 한편, 핸드폰 카메라를 통해 그 주인의 일상을 전부 엿볼 수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누군가의 잃어버린, 떨어뜨린 핸드폰에 스파이앱을 심는다면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들여다보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하루의 패턴, 각종 비밀번호, 사생활, 인간관계, 자산 정도, 금융 기록, 음악 취향, 패션이나 독서의 흐름 심지어 생리 주기까지 핸드폰에 모두 기록한다. 호모 모빌리쿠스, 모빌리언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스마트폰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기기가 아니라 한 인간의 삶을 조망하고 아카이빙하는 자아 대체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가 눈길을 끄는 가장 큰 요소는 대개의 사람들이 이미 호모 모빌리쿠스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영화 속에서 발생하는 공포스러운 상황들이 스마트폰 분실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이미 2023년 관객에겐 완벽한 개연성이 제공된다. 핸드폰을 가지고 있거나 쓰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면, 영화 속의 공포는 누구나에게 일어날 법한 그런 일로 다가온다.

1888년 영국 런던의 연쇄 살인마가 매춘을 가장해 여성들에게 접근했다면, 2023년의 연쇄 살인마는 스마트폰 수리 기사를 가장해 피해자들에게 접근한다. 연번을 매겨 피해자를 수납하는 가해자, 연쇄 살인마는 스마트폰을 복제해 살해 대상자들을 철저하게 분석한다. 취향과 인간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일단 핸드폰 주인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누구도 찾지 않게끔 고립화를 시킨다는 것이다. 단절시킬 인간 목록을 추린 후, 범죄자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쉽게 그 일을 해낸다.

놀라운 것은 그 일이 너무 쉽게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가령, 인스타그램 계정에 들어가 직장 상사나 동료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거나 친구의 비밀을 폭로하는 것만으로도 인간관계는 엉망으로 뒤엉켜 버린다.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소셜 미디어는 더이상 하나의 가상 세계가 아니라 ‘진짜’ 삶을 망쳐 버릴 만큼의 위력을 갖고 있다.

 

소셜 미디어나 쿨 미디어를 통해 범죄를 저지르는 발상은 2020년대에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 된 듯싶다. 정지우 감독의 넷플릭스 시리즈 〈썸바디〉의 살인마 윤오도 데이팅 앱을 통해 피해자를 물색한다. 미국 드라마 〈너의 모든 것〉의 연쇄 살인마 역시 스토킹을 시작할 땐 일단 소셜 미디어에 접근해 그 사람의 사생활과 취향, 인간관계, 동선을 파악한다. 과거엔 무척 힘들게 알아내야 할 정보이지만 젊을수록, 세련된 사람일수록,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일수록 스스로 자기 정보를 노출하기에 힙한 사람일수록 접근은 더 쉽다. 이 정도라면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 문동은이 버려진 쓰레기 봉투를 뒤져 비밀과 정보를 캐내는 것이 너무 고전적이며 고답적인 방식으로 보일 수준이다.

 

물론 〈서치〉처럼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사람을 구하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대도시화와 산업화의 변화가 긍정적인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보다 흉측한 살인마에 대한 광적 호기심을 낳았듯이 우리의 삶을 장악한 디지털 디바이스와 그 기술력 역시도 디스토피아적 상상을 더 부추긴다. 동시대적 설득력 위에 배우 임시완은 〈비상선언〉에 이어 치밀하면서도 비정한 사이코패스 역을 훌륭히 해낸다. 천우희 역시 20대 후반의 전형적인 여성을 표현하는 데 어색함이 없고, 아버지, 형사 역할을 해내는 베테랑 조연들의 연기 역시 훌륭하다. 몇몇 부분들에서 어색한 도약이 있긴 하지만 스마트폰과 그에 얽힌 일상적 범죄, 도시괴담 하나를 추가했다는 점만으로도,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문화사적 의미를 갖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강유정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졸업. 2005년 《조선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으로 등단, 저서로는 『영화 글쓰기 강의』 『타인을 앓다』 등이 있다. 현재 강남대학교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사진 제공 넷플릭스

 

* 《쿨투라》 2023년 3월호(통권 10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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