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통신] 베트남의 경이로운 역사와 뗏의 럭키머니 문화
[베트남 통신] 베트남의 경이로운 역사와 뗏의 럭키머니 문화
  • 이상옥(시인, 창신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3.0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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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온 지 벌써 일 년이 넘었다. 베트남에 대한 그간의 피상적인 인식이 확 바뀌었다. 한국식당에서 일하는 베트남 여성들만 주로 보고 막연하게 형성된 베트남의 이미지와는 달리 베트남 사람들은 수많은 외침을 받으면서도 정체성과 문화를 지켜낸 강인한 정신과 더불어 여유와 낭만을 즐길 줄 아는 외유내강형의 민족성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했다.

앞의 베트남 통신에서도 국부 호찌민이 프랑스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고 독립을 성취한 것을 잠시 거론했지만 베트남은 근세에도 강대국과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를 거둔 경이로운 역사를 자랑한다. 호찌민의 리더십으로 프랑스를 격퇴한 외에도 몽골, 미국, 중국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했다.

1284년 몽골 쿠빌라이 제국이 유럽까지 진출하고 아시아를 휩쓸었던 가운데서도 인도차이나 반도 중 유일하게 베트남만은 점령하지 못했다. 쩐흥다오 장군은 몽골 침략군을 하노이 북부에서 두 차례나 격퇴했다. 쩐흥다오 장군은 한국의 이순신과 같은 존재로 추앙 받는다. 또한 20년간의 미국과의 전쟁에서도 승리를 거둔 것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된다. 미국은 55만명을 파병하고도 1973년 패배를 안고 철수했다. 미국과의 전쟁이 끝난 지 6년 만에 또 중국의 침략을 받았다. 중국과의 단기 전쟁이었지만 중국군은 2만 6,000여 명의 사망자를 내고 역시 퇴각했다. 베트남은 강대국의 침략에도 굴하지 않고 자력으로 격퇴시킨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닌다.

 

메콩대학교 교정에서 가끔 보는 것이 대학생들이 군복을 입고 국방군사 교육을 받는 장면이다. 베트남 대학생들은 남녀 모두 교양필수 과정으로 군사교육을 일정기간 받도록 돼 있고, 병영입소 훈련도 받는다. 우리나라도 분단상황을 준전시 하로 인식하고 학도호국단을 1949년 창설했지만 4·19 혁명 이후 해체되었고, 5·16군사정권혁명 이후 재건학생회가 그 기능을 하다가 1975년에 다시 고등학교 이상의 학생과 교직원으로 구성되는 학도호국단이 발족됐다. 학도호국단은 학생들에게 안보의식을 고취하고 전시를 대비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정부가 학교 학생 조직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한 부작용이 많아 결국 역사의 유물이 됐다. 베트남 대학생들이 군사훈련을 받는 것을 볼 때마다 자국은 타국에 의해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자국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안보의식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부작용이 많았던 학도호국단 제도는 폐기됐지만 본래 그 취지마저 잘못된 것인 양 치부돼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베트남은 대학생들도 군사교육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만큼 국방 수호 의지도 강하고 국부 호찌민을 정신적 지주로 사회주의 사상으로 무장돼 있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아이러니칼하게도 매우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하며 낭만적이다.

 

베트남에 와서 최대의 명절 뗏Tết(설날) 문화를 실제로 경험해 보면서도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도 유교문화권에 속하기 때문에 음력설을 쇤다. 음력 설날을 기점으로 베트남은 매년 화려한 새해 맞이 행사가 성대하게 열린다. 올해 베트남 뗏연휴는 공식적으로 1월 20일부터 26일까지 총 7일간이었는데 실제로는 2주에서 한 달까지 긴 연휴를 즐기고, 뗏연휴에 고향에 돌아가서 아예 다시 회사로 오지 않고 그만 두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호찌민의 경우에도 해마다 시청 광장에서 새해맞이 카운트다운 행사 불꽃 놀이가 펼쳐진다. 작년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가운데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지난해 1월 27일 베트남에 와서 2022년 뗏연휴는 호찌민시에서 보내며 시청 광장에서 화려하게 펼쳐진 뗏 축제를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뗏연휴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가족과 친지를 만나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한국과 유사하다. 베트남에는 뗏이 다가오면 거리 곳곳에 꽃으로 장식하고 가게들도 화려한 장식을 한다. 베트남 북부와 남부는 기온 차이 때문에 북부는 분홍색 복숭아꽃, 남부는 주로 노란색 매화꽃으로 장식한다. 복숭아꽃은 건강과 재물을 불러오고 매화는 학업운과 집안의 악귀를 쫓아낸다고 믿는다.

베트남의 설날에는 반쭝 혹은 반뗏을 설 음식으로 먹는다. 북부 스타일인 반쭝은 찹쌀, 녹두, 돼지고기를 라종이라는 나뭇잎에 싸서 대나무로 묶어서 네모나게 만든 것이고, 반떽은 남쪽 스타일로 바나나 잎에 써서 원통으로 만든 것인데, 반떽은 고기 함량이 반쭝보다 적거나 아예 고기를 넣지 않는다. 자손들은 조부모에게 옷 선물을 하고, 새로 수확한 찹쌀과 향미로 찹쌀밥과 쌀밥을 지어 새해 차례를 정성스럽게 지낸다. 월병, 복숭아, 수박, 사탕, 잼 등을 선물하기도 한다. 사탕부터 과일 등 다양한 품목을 담은 선물 바구니도 큰 인기다. 무엇보다 특별한 것은 붉은 색 봉투에 돈을 넣어주는 리씨li xi라고 하는 뗏머니인 럭키머니다. 베트남에서는 세배를 받고 세뱃돈을 주는 한국과는 달리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그냥 럭키머니를 준다.

 

올해 뗏연휴는 한국에서 보내서 올 뗏 축제는 직접 목격하지 못했지만 뗏연휴가 끝나고 베트남으로 돌아오니 대학 캠퍼스가 노란 색 물결의 꽃으로 장식돼 있어 깜짝 놀랐다. 뗏연휴가 끝났지만 개학을 하자마자 해피 뉴 이어 행사를 다시 가졌다. 화려하게 장식한 대학교 대강당에서 교직원들이 모두 모여서 총장이 축하인사를 하고 표창을 하며 행운권 추첨과 아울러 럭키머니를 선물로 주었다. 작년과 올해 총장, 부총장 등에게서 럭키머니를 받았다. 또한 온갖 진귀한 것들이 가득한 선물 바구니와 그림도 선물 받았다.

베트남의 럭키머니는 설날에만 주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날 같은 기념일에도 럭키머니를 주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럭키머니 액수는 10-20만동 정도인데, 한국돈으로 오천원이나 만원이다.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그것도 제법 큰 돈일 수 있겠지만 한국인에게는 아무 부담없는 금액이니 그런 기념일이 오면 평소에 도움을 받은 사람들에게 럭키머니라는 이름으로 붉은 봉투에 담아 고마운 마음을 표할 수 있어 좋다. 한국에서는 촌지가 뇌물 개념으로 변질됐지만 베트남의 럭키머니는 고마운 마음을 표하는 순수한 의미의 촌지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상옥 창신대학교 명예교수. 1989년 월간 《시문학》 등단. 유심작품상, 편운문학상 등 수상

 

 

* 《쿨투라》 2023년 3월호(통권 10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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