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벚꽃을 보러 학교에 가자
[벚꽃] 벚꽃을 보러 학교에 가자
  • 이지혜(영화평론가)
  • 승인 2023.04.03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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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 직전인 2023년 3월 1일에서야 한 학기 시간표가 완성되었다. 다시 재개된 대면 강의와 각종 연구, 원고로 꽉 찬 시간표였다. 연구실 구석에서 상반기 일정을 확인하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번 봄은 대단히 바쁘고 시끄럽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캠퍼스의 새해는 3월 2일에 시작된다. 전날까지 생기없고 고요했던 교정은 고작 하루만에 낯빛을 바꾼다. 강의 자료를 챙겨 강의실로 가려는데 동료 연구자가 “올해, 쌍춘년이래요.”하고 말했다. “쌍춘년이요?”하고 묻자 “봄에 윤달이 들어서 입춘이 두 번 있으면 쌍춘년이라고 한대요. 윤달은 하늘이 죄를 지어도 모른척 해주는 달이라고 하던데, 선생님은 짓고 싶은 죄 없으세요?”라고 되물었다.

2020년 1학기, 팬데믹으로 모든 강의가 비대면 온라인으로 전환됐다. 기계와 거리가 먼 나는 3월 첫 한 달이 지옥이었다. 1시간 15분 분량의 교양 글쓰기 녹화 강의를 만드는 데 5시간이 걸렸다.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었다. 삶이 이렇게까지 수고롭고 막막해야 할까.

교정에 벚꽃이 필 때 쯤 정신이 돌아왔지만, 학생들도 나도 생소한 방식의 수업과 상황에 집중이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학생이 아니라 교수자였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책임감이 엄습했다. 입학을 하고도 학교에 오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수업 참여에 대한 의지와 성실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상황을 면피하고 싶진 않았다. 학생들이 좀 안쓰러웠다. 힘든 입시를 버티고 막 어른이 되었을 학생들에게 회기동 캠퍼스의 벚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고 싶었다. 학교에 가서 벚꽃 사진을 마구 찍어 온라인 게시판에 올렸다.

한편으로는 캠도 제대로 갖춰지지않은 얼렁뚱땅 비대면 수업에서 대부분 스무살일 아이들이 가장 흥미를 갖고 집중 할 수 있는 수업 주제가 뭘까 고민했다. 결국 〈사랑〉이란 주제를 글감으로 던졌다. 게시판에 에세이를 업로드하고 서로 합평을 합시다. 내가 한 말은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소설을 써 온 학생도 있었고 비평을 써온 학생도 있었으며 일기나 에세이를 써온 학생도 있었는데, 어떤 남학생이 남긴 독서 감상문에 한 여학생이 “이런 글을 쓰는 분이라면 저는 사랑에 빠질 것 같아요”라는 리플을 남긴 것이다. 서로의 문장 외엔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는 아이들이 남긴 글과 답글을 읽어주고 의견을 받으며 크리틱을 하는 방식으로 녹화 강의를 진행했다. 여학생의 답글은 학생들 사이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되었다. 다음 시간 남학생이 정중하게 답장을 했다. 그 다음 또 여학생이 답장을 했다. 종내엔 매수업이 끝날때마다 둘이 자꾸 익명으로 서로에게 수신인과 발신인이 불분명한 암호투성이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는 모르는 척 하며 둘의 답글을 수업에 대한 의견 중 하나인 척 읽었다.

- 교수님이 올려주신 사진을 보고 벚꽃을 보러 학교에 왔습니다. 산책을 하고 나면 중앙도서관 열람석에서 혼자 책을 읽습니다. 요즘은 교수님이 수업에서 추천해주신 책을 읽곤 합니다.
- 학교 앞 A카페 3층에서 과제를 하고 있어요. 수업에서 말씀해주신 책 너무 좋아요. 같이 공부하면서 꽃구경도 할 수 있는 학우님이 계시면 좋겠어요.

종강은 했어도 둘의 결말은 알 수 없었던 2020년 3월 강의를 떠올리며, 새로운 학생들에게 다가올 개강에 대한 공지를 했다. “올해가 쌍춘년이래요, 이 강의에 들어오기 전에 이야기를 듣고 검색을 좀 해봤는데, 쌍춘년에 사랑에 빠지면 오래오래 행복하다고 합니다. 우리 학교 벚꽃이 얼마나 유명한지 다들 아시죠? 꽃구경하다 한 번 정도 결석하는 건 봐 드리겠습니다. 거리두기 해제된 첫 봄이니까 올해만 봐드릴게요. 열심히 사건을 만들어보세요.” 학생들이 열렬히 환호했다. O.T를 끝내고 나오며 역시 올해 봄의 교정은 대단히 바쁘고 시끄럽겠다고 확신했다. 거리두기가 종료되고 맞이하는 최초의 봄,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질 대면의 봄, 유구한 벚꽃과 시끄러운 축제가 도래할 계절. 한 번쯤은 눈감아줘도 되지 않을까? 벚꽃을 보러 학교에 가자.

 

 


이지혜 제16회 《쿨투라》 신인상 평론부분 당선.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강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서 문화평론을 고정연재 하고 있다. 경희대 K-컬처·스토리콘텐츠 연구소 소속으로 문화콘텐츠를 연구한다.

 

* 《쿨투라》 2023년 4월호(통권 10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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