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詩] 유홍준 시인의 「벚꽃나무」
[벚꽃 詩] 유홍준 시인의 「벚꽃나무」
  • 유홍준(시인)
  • 승인 2023.04.0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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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나무

유홍준

 

추리닝 입고 낡은 운동화 구겨 신고 마트에 갔다 온다 짧은 봄날이 이렇게 무단횡단으로 지나간다 까짓 무단이라는 거 뭐, 별것 아니지 싶다 봄이 지나가는 아파트단지 만개한 벚꽃나무를 보면 나는 발로 걷어차고 싶어진다 화르르화르르 꽃잎들이 날린다 아름답다 무심한 발바닥도 더러는 죄 지을 때가 있다 머리끝 생각이 어떤 경로를 따라 발바닥까지 전달되는지…… 그런 거 관심 없다 굳이 알 필요 없다 그동안 내가 배운 것은 깡그리 다 엉터리, 그저 만개한 벚꽃나무를 보면 나는 걷어차고 싶어진다 쎄일로 파는 다섯 개들이 라면 한 봉지를 사서 들고 허적허적 돌아가는 길, 내 한쪽 손 잡은 딸아이가 재밌어서 즐거워서 자꾸만 한번 더 걷어차보라고 한다 한번 더

 


유홍준 1962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1998년 《시와반시》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喪家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저녁의 슬하』, 시선집 『북천 - 까마귀』가 있다. 시작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쿨투라》 2023년 4월호(통권 10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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