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만난 별 Ⅱ 배우 김혜자] 오늘을 사셔요
[시로 만난 별 Ⅱ 배우 김혜자] 오늘을 사셔요
  • 장재선(시인)
  • 승인 2023.04.04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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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 배우. 월드비전 제공

오늘을 사셔요
- 배우 김혜자

장재선(시인)

 

읽은 거 겪은 거 어디로 가지 않기에
꾸민 이야기 속 당신을 보며 느껴온 것들도
내 피톨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닭이 홰칠 때 온 몸 다해 울고 나서 너부러지듯
낮이든 밤이든 숨을 바쳐서
누군가를 살아냈기에
당신은 모든 날을 온전히 품었을 것이다
방 안의 전구를 보다가 떠올린 먼 나라의 아이들
당신이 그들을 위해 흘린 눈물이
독한 계절을 지나는 내게도
순한 글자를 보여 준다
후회 가득한 어제와 불안한 내일 때문에
오늘을 망치지 말아요
지금을 사셔요
눈이 부시게.

 


시 작 노 트

지난 2009년 영화 〈마더〉 제작보고회에서 김혜자 배우를 봤을 때의 여운이 지금도 강렬하게 남아 있다. 그녀는 그날 이렇게 말했다. “봉준호 감독이 잠자고 있던 세포를 노크해서 깨워줬습니다.” 한국 최고 배우라는 찬사를 듣는 이의 멘트로는 참으로 겸허했다. 그런데 그날 그녀의 얼굴 표정은 시종 아련하게 어딘가를 헤매는 듯했다. 극 중 〈마더〉의 엄마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한 게 아닐까 싶었다.

장애가 있는 자신의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하는 〈마더〉의 엄마 역을 그녀가 한 것을 두고 세간에서는 연기 변신이라고 떠들었다. 22년이나 지속한 드라마 〈전원일기〉에서의 자애롭고 현명한 어머니 역과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그녀는 영화 〈만추〉, 〈마요네즈〉, 드라마 〈모래성〉 〈겨울안개〉 등에서 다양한 캐릭터의 여성을 연기한 바 있다. 그러니 연기 변신이 아니라 ‘연기 충실’이었을 뿐이다. 작년 말에 끝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보여준 어머니 역은 그 모든 충실이 빚어낸 절정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한다.

김 배우는 “연기는 숨 쉬는 것처럼 나입니다”라고 한다. 그 공력의 비결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어렸을 때 대저택에 살았다”라며 천연덕스럽게 자랑을 해서 듣는 이를 당혹시킨다. 그런데 거기엔 독립운동을 했던 조부와 부친에 대한 자부가 바탕하고 있다. 그런 자부는 그녀의 봉사활동과 맥이 닿아 있는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김 배우가 시리아·튀르키예 지진 피해복구를 위해 성금 1억 원을 기부했다는 소식이 월드비전을 통해 전해졌다. 그녀는 1991년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위촉된 후 국내외에서 꾸준히 나눔 활동을 펼쳐왔다. 르완다, 케냐, 우간다, 시에라리온 등 아프리카를 방문해 아동들을 돌보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큰 울림을 줬다. 현재 전 세계 곳곳의 도움이 필요한 아동 103명을 정기후원하고 있는데, 방 안에 누워 전구를 보다가도 아이들 얼굴이 떠오른다니 나눔 중독자인 셈이다.

 


장재선 문화일보 선임기자. 시집 『기울지 않는 길』, 시-산문집 『시로 만난 별들』, 산문집 『영화로 보는 세상』 등 출간. 한국가톨릭문학상 등 수상.

 

 

* 《쿨투라》 2023년 4월호(통권 10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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