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통신] 한인타운 푸미흥은 거대한 대한민국의 홍보관
[베트남 통신] 한인타운 푸미흥은 거대한 대한민국의 홍보관
  • 이상옥(시인, 창신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4.04 16: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흐는 프랑스 남부 아를에 15개월 체류하며 200여 점의 그림을 그리고 집필도 하며 10년의 화가로서의 활동 중 아를 시대를 고흐 예술의 황금기로 만들어냈다.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은 지금도 〈해바라기〉 〈론 강 위로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 테라스〉 〈아를병원의 정원〉 등의 명작의 배경이 된 아를을 보기 위해 찾는다. 고흐는 15개월의 짧은 아를 시대를 살았지만 아를의 역사를 바꿔 놓았다. 아를은 고흐의 은택으로 항상 풍요롭다.

나도 지금 베트남 빈롱에 체류한지 15개월째다. 베트남 올 때는 메콩대학교를 플랫폼으로 동남아에 디카시를 소개하고 한국과 베트남간 문화 교류를 추진하겠다는 벅찬 기대를 가졌다.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하지만 고흐처럼 나의 빈롱 시대를 내 시의 황금기로 만들고 싶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겠는가. 빈롱 체류는 내게 덤으로 주어진 축복인 것만은 분명하다.

주중에 메콩대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고 주말에는 학교 행사가 없으면 여행하는데, 가장 자주 가는 곳이 호찌민푸미흥Phú Mỹ Hưng이다. 푸미흥의 Phú富는 부유함을, Mỹ美는 아름다움을, Hưng興은 흥겨움을 뜻하는 말로 합성어다. 부유하고 아름답고 즐거운 도시가 푸미흥이라는 뜻이니 글자 그대로 호찌민의 한인타운으로서 명소이고 한류의 중심지다. 한국이나 베트남이 모두 한자 문화권에 속하기 때문에 베트남어와 한국어 발음이 비슷하거나 같은 말이 많다. 푸미흥도 한자어 富美興의 한국어 발음과 비슷하다.

푸미흥은 베트남 호찌민 7군에 소재한 신도시다. 푸미흥은 1997년부터 베트남-대만 합작투자회사인 푸미흥 코퍼레이션에 의해 건설됐는데, 원래는 염분이 가득한 늪지대여서 쓸모 없는 땅이었다 한다. 이 불모의 땅이 동남아시아에서 제일 큰 한인타운의 하나로 발전한 것은 미처 예상치 못한 기적이라 해도 좋다. 처음 호찌민에 정착한 1세대 한국인들은 호찌민 공항이 있는 떤빈Tan Bin군에 정착했지만 한국인들의 경제 활동이 왕성해지면서 주재원들을 중심으로 주거환경과 도시 인프라가 월등한 푸미흥에 2세대 한국인들이 정착하면서 푸미흥 한인타운이 조성된 것이다.

푸미흥에서는 영어와 베트남어를 몰라도 아무 불편을 느끼지 못할 정도다. 내가 의식할 것도 없이 자주 주말에 푸미흥을 찾는 것은 한국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수도 있겠다. 빈롱에서 푸미흥으로 가는 방법은 메콩대학교 앞에서 버스를 타고 빈롱 도심으로 가서 호찌민행 버스를 타고, 다시 호찌민 시내에서 택시나 그랩 오토바이를 이용하면 된다. 빈롱 도심에는 호찌민 가는 버스도 자주 있다. 작은 미니 버스를 탈 수도 있고 침대버스인 대형 푸타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빈롱 도심에 3시간 정도면 호찌민에 간다.

메콩대학교에는 타이완에서 온 여선생이 있다. 이름은 Pei Lee로 매우 지적인 28세의 젊은 여성이다. Pei Lee는 프랑스 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프랑스어도 공부하고 프랑스 대학에서 조교도 하고, 중국어도 가르치며 3년 반 프랑스에 체류한 바 있다. 지금은 타이완 정부의 파견으로 메콩대학교에 와서 중국어를 가르친다. 메콩대학교에 온 지 4개월이 됐지만 한 번도 학교 바깥으로 나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주말에 호찌민 푸미흥에 여행 가는 줄 알고 동행하고 싶다고 해서, 지난 주말에 내가 가이드 역할을 하고 함께 여행을 했다.

푸미흥은 거의 한국을 옮겨 놓은 듯해서인지 Pei Lee는 한국에 여행 온 듯한 표정이었다. 코로나 19 팬데믹 영향으로 베트남 한류의 중심지인 한인타운 푸미흥도 큰 타격을 받았지만 지금은 일상을 거의 회복하고 있다. 푸미흥의 거리에는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한국어 간판들도 즐비하다. 푸미흥은 한국교회, 한국 음식점, 한국 미용실, 한국 토산품점, 한국 마트, 한국 빵집, 한국 문구점, 한국 병원, 한국 마사지숍, 한국 찜질방 등 한국문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한인타운이다.

Pei Lee와 푸미흥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어가니 한국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무래도 스타벅스가 고급 브랜드이니 베트남 사람들보다는 한국 사람들이 많은 듯했다. 물론 푸미흥에 한국 사람들이 많으니 그런 것도 있지만 스타벅스 인근 베트남 고급 브랜드인 커피숍 더카피하우스에는 한국 사람보다는 배트남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Fei Lee는 스타벅스나 푸미흥 거리에서 한국 젊은이들을 알아보고는 한국 스타일은 독특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지만, 외국인들은 한국인의 외모만 봐도 한국인임을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독특한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이나 중국인, 일본인은 외모도 비슷하고 같은 동양문화권이라 쉽게 구분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Fei Lee는 유니크한 한국 스타일은 표시가 바로 난다며, 헤어 스타일만 해도 한국적인 독특함이 있다고 말해서 내심 놀랐다. 또한 Fei Lee는 한국인의 피부도 일본인이나 중국인에 비해서 좋고 희다고 말했다. 나는 농담으로 한국 화장품의 힘이라고 말해 줬다.

Fei Lee는 K-컬처에 대한 관심이 많아 푸미흥을 통해 한국을 부분적이지만 맛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푸미흥 여행에 대단히 만족했다. 그녀는 한국은 타이완에 비해서 경제적 수준도 훨씬 높다고 생각한다. Fei Lee는 중국어 외에도 영어, 프랑스어, 베트남어, 한국어를 조금씩 구사할 줄 아는 타이완의 엘리트 여성이건만, 기회만 있으면 한국에서도 일하고 싶어하고, 한국 여행도 계획하고 있다. 한인타운 푸미흥에서 한국문화를 직접 목격한 타이완의 젊은 엘리트 여성이, 그녀가 피상적으로 지니고 있던 한국에 대한 느낌을 더욱 호의적으로 말하며 실제의 한국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것을 보며, 문득 푸미흥이 베트남에 있는 대한민국의 거대한 홍보관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상옥 창신대학교 명예교수. 1989년 월간 《시문학》 등단. 유심작품상, 편운문학상 등 수상

 

 

* 《쿨투라》 2023년 4월호(통권 106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