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탐방] 제주의 돌과 바람을 품다: 제주 유동룡미술관 & 건축가 이타미 준
[미술관 탐방] 제주의 돌과 바람을 품다: 제주 유동룡미술관 & 건축가 이타미 준
  • 김명해(화가, 객원기자)
  • 승인 2023.05.02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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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룡미술관

한라산 자락에서 맞이한 제주의 아침은 우거진 나무숲 향기와 새들의 노랫소리가 깨워주었다. 고층 숙소에서 광활히 펼쳐진 오름 풍경만 보다가 땅과 마주한 저층에 내려오니 짙게 우거진 나무들과 야생화, 오솔길과 새소리가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화산활동으로 생긴 오름과 빌레1가 있고 유네스코에 등재될 만큼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자랑하는 제주도. 수려한 자연환경과 더불어 돌과 바람 많기로 유명한 이곳 제주에 최근 늘어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미술관이다.

이미 제주에 들어선 김창열미술관, 이중섭미술관, 본태박물관을 취재하여 〈미술관 탐방기〉에 다루었지만, 이외에도 소개할 미술관이 많아 제주에 올 때마다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번에 소개할 미술관은 2022년 12월에 개관한 신생미술관인 ‘유동룡미술관ITAMI JUN MUSEUM’이다.

유동룡(1937-2011)은 일본 도쿄에서 재일교포로 태어나 40여 년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한 건축가로, ‘이타미 준’이라는 예명으로 더 잘 알려진 예술가이다. 제주도는 그가 건축가로서 절정의 작품을 남긴 곳으로, 제주의 바람과 하늘, 대지와 바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아 만든 〈포도호텔〉, 〈방주교회〉, 〈수·풍·석 미술관〉, 〈두손미술관〉, 〈핀크스 비오토피아〉 등의 대표 건축물들을 만날 수 있다. 한라산 서남쪽 기슭(서귀포시 안덕면 산록남로) 광활한 대지 원시자연에 들어선 이 독특한 건축물들은 최근 ‘제주에 가면 꼭 가 봐야할 곳’으로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고 있다.

방주교회 사진작가 sato shinichi 작

제주뿐만 아니라 일본, 한국, 미국에 많은 건축물을 지은 유동룡은 늘 살아갈 이의 삶과 융합한 온기 있는 집을 짓기로 유명한 건축가이다. 이러한 유동룡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딸이자 건축가로 활동하는 유이화(ITM 유이화 건축사무소) 대표가 저지예술인마을2 내에 직접 설계한 미술관을 지었다. 그녀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조응하는 방식이나 지역의 풍토와 역사를 고민하며 건축을 풀어갔던 아버지 유동룡의 건축철학에 바탕을 두고 미술관을 설계했다고 한다.

연면적 약 675㎡, 지상 2층 규모의 미술관은 나지막한 제주의 초가에 한라산 주변의 오름 형상이 들어간 구조로, 제주의 자연과 조응하던 유동룡의 건축물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빌레로 축대와 담을 쌓고 건물외벽은 엷은 나무무늬 사이딩을 둘렀으며, 내부는 노출콘크리트로 공간 전체가 먹색으로 꾸며져 있다. 용암동굴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으로 다소 어둡긴 하지만 양방언3이 큐레이션한 음악이 공간을 채워주어서인지 차분하고 경건한 분위기다. 이는 관람객이 자연에 둘러싸인 공간 전체를 충분히 보고 느끼며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길 바라는 마음에 미술관에서 심혈을 기울여 구성한 것이다.

건축물은 그저 짓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주체로 삼아 건축물을 매체나 중간 항으로 인식할 때 어떤 세상이 펼쳐질 것인가, 어떤 여백이 생겨나는가, 어떻게 조화되는가, 반대로 어떤 대립과 복합이 일어나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중략)… 사람의 온기, 생명을 작품 밑바탕에 두는 일. 그 지역의 전통과 문맥, 에센스를 어떻게 건축물에 담아낼 것인가?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일이다.4

풍미술관

미술관은 1층에 안내데스크, 라이브러리 ‘먹의 공간’, 교육실, 티 라운지 ‘바람의 노래’와 뮤지엄 스토어가 있고 2층에는 세 개의 전시실과 영상 및 아카이브실이 있다. 관람방향은 2층 전시실부터 먼저 관람한 후 1층 ‘먹의 공간’에서 책을 빌려 읽거나 ‘바람의 노래’에서 차를 마시는 코스다.

현재 개관 기념으로 《바람의 건축가, 이타미 준ITAMI JUN: Architect of the Wind》전이 진행 중이다. 1970년부터 2011년 제주도 프로젝트까지 가공하지 않은 자연의 야성이 살아 숨 쉬는 건축, 생각의 힘을 제외시킨 무심無心의 건축, 자연과 인간의 매개체로 그 관계성을 고민한 유동룡의 건축 작품들을 사진과 모형 및 건축가가 직접 그린 드로잉을 통해 만날 수 있다.

2층 2전시실 초입에 들어서면 벽면 한 귀퉁이에 새겨놓은 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자연의 나무나 물이 건네는 말을 듣고 싶다. 바람의 소리, 땅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다. 그러면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세계, 새로운 공간이 보일 것 같다.”는 글을 통해 유동룡이 지향해온 건축신념과 철학이 엿보이며, 어떤 건축 작품들을 설계하고 지었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전시장 초입 첫 작품은 충청도 온양에 위치한 〈온양미술관〉(1982)이다. 〈온양미술관〉은 유동룡이 흙벽돌로 지은 유일한 건축물로 우리네 시골집에서 모티브motive를 얻었다고 한다. 기와로 두른 1층에 타원형의 초가를 얹은 형체의 2층 건축물은 사진으로 보아 넓은 광야에 오롯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고, 한국의 미美인 곡선미가 물씬 풍긴다.

1975년부터 한국의 시골에서 흙벽돌로 지은 민가들을 보았다. 특히 햇볕에 말린 황토벽돌로 지은 곳간이 인상에 남았는데, 외벽은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여있었지만 자연과 풍토성 속에서 마치 숨 쉬고 있는 것 같아 관능적이고 아름다웠다.5

석 미술관 사진작가 sato shinichi 작

두 번째 작품은 〈M빌딩〉(1992), 〈각인의 탑〉(1988), 〈조각가의 아틀리에〉(1985), 〈석채의 교회〉(1991)로 돌로 지은 건축물들이다. 특히 서울에 지어진 〈각인의 탑〉은 마치 삼국시대 지어진 적석총 외관처럼 돌무지무덤 같은 느낌을 주며, 손잡이 같은 조형물이 지붕에 설치되어 솥뚜껑을 올려놓은 형상 같기도 하여 건물 자체가 하나의 돌조각마냥 독특하다. 지상 1층과 지하 1층으로 구성된 이 건물은 아티스트의 스튜디오 용도로 지어졌는데 땅을 깊숙이 판 지하공간에도 햇빛과 공기가 흘러들어올 수 있도록 석벽을 지하 창가까지 끌어내려 지하정원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자연에서 캐낸 원석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보통은 자연소재인 돌을 깎아내고 얇게 잘라 다듬어 상품화한다. 그 과정에서 돌의 거친 면은 버려지는데, 나는 그런 아름다운 돌들이 새로운 소재가 될 수 있음을 직감했다. 내 건축행위는 실재이다. 경험하지 않은 세계를 비현실이라고 한다면 비현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실재로 살아있음을 의미한다.6

세 번째 작품은 일본 도쿄에 지은 〈먹의 암庵〉(1997)이다. 대나무와 철판으로 지은 이 집은 자연물과 인공물, 흑과 백의 대비와 조화를 보여주며 유동룡이 건축 재료의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이다. “벚나무와 대나무의 건축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비 내리는 밤, 불빛 속에 드러난 건물은 마치 벚꽃을 위한 연극무대의 배경처럼 보인다.”라는 말처럼 집 앞 오랜 벚나무가 주인처럼 당당하고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는 상반된 재료의 믹스매치mix match를 통해 주연으로 쓰고자 하는 재료의 본질을 부각시켰다. 이는 1970년대 일본의 모노파7의 영향을 받은 것과도 연관이 있다. 전시실 한쪽에는 유건축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사용했던 작업실도 재현되어 있다.

이타미준 뮤지움 photo by kim yongkwan

타원 돔 형태의 2전시실은 앞서 말한 제주에 지은 건축물의 사진과 모형, 드로잉이 전시되어있다. 바람을 막기 위한 돌을 쌓고 크고 작은 포도송이처럼 부정형의 흐름으로 작은 마을을 형성한 〈포도호텔〉(2001), 하늘과 일체화된 건축을 주제로 시도한 〈방주교회〉(2009), 사각의 입방체에 타원형을 도려내어 하늘의 움직임을 수면에 투영시킨 〈수미술관〉(2006), 벌어진 나무판의 틈새로 빛과 바람이 통과하면 현弦을 문지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는 〈풍미술관〉(2006), 암흑 속에 의도적으로 빛의 구멍을 내어 사유이자 시적환상의 공간 〈석미술관〉(2006), 땅 위에 세워진 염원의 형태이자 두손 모아 기도하는 손의 형태 〈두손地中미술관〉 등 제주 자연을 상징하는 물·바람·돌을 주제로 하는 건축물들은 그저 유물이나 미술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치유와 명상의 공간을 제시하고 자연을 모아 담고 있다. 제각기 다른 모습을 뽐내며 제주 원시자연의 품에 안긴 고요하고 평화로운 건축물들이다.

3전시실에는 유동룡이 그린 회화작품 〈맨하탄 블루〉(1995)와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의자들이 전시되어 있다. 건축가이지만 화가 못지않은 재능으로 건축물 드로잉과 추상화 작업도 하셨다. 2층 타원 전시실을 감싸는 계단으로 내려오면 바로 1층 라이브러리 ‘먹의 공간’으로, 유건축가가 몸이 편찮으셨던 어머니를 위해 일본 시즈오카현에 지은 〈어머니의 집〉(1971) 모형도가 인상적이다. 이곳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원통형 룸이 등장하는 최초의 작품이라 더 눈길이 간다.

유동룡의 건축은 흙, 돌, 나무라는 소재의 원형질을 그대로 살리고 더불어 빛과 그림자, 바람의 동선까지 고려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대지를 어루만지고 자연과 사람을 보듬는 바람은 건축가에게 영감의 원천이었다.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에 집중하다 보면 어떤 형상이 떠오른다.” 말했던 것처럼 그는 바람에 녹아든 지역의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고, 자연과 본질에 집중한 건축으로 세상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이타미준 뮤지움 photo by kim yongkwan

인간과 자연의 연결고리로서 건축의 역할은 인간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한 생활공간을 창출해 주며,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시켜 함께 존재하여 공유하고자하는 건축가의 사상과 태도 또한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그의 철학에 바탕을 둔 유동룡미술관은 요즘 시대에 필요한 본질의 힘을 회복하도록 돕는 공간으로, 현재의 언어로 재구성하고 다양한 장르의 예술로 확산시키면서 미술관의 생명력을 유지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미술관을 나와 유건축가의 건축물을 보기 위해 비오토피아 마을로 향했다. 하지만 〈포도호텔〉, 〈수·풍·석 미술관〉, 〈두손미술관〉, 〈핀크스 비오토피아〉는 2개월 전에 미리예약을 해야 입장가능하다고 해서 예약 없이 볼 수 있는 〈방주교회〉로 갔다. 방주교회는 물에 떠 있는 ‘노아의 방주’를 형상화 하였다고 하지만 앞면에서 보면 마치 큰 상어가 입을 벌리고 바다를 향해 돌진할 기세로 보인다. 은갈치색의 교회지붕이 햇빛에 반짝이고 하늘로 향한 짧은 지느러미를 팔딱거리며 저 멀리 산방산 앞바다를 향해 위치한 교회건물은 장엄하기 그지없다. 잠금장치를 풀면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 방주를 상상하며 오래도록 건축물을 바라보았다. 위대한 건축물을 지은 건축가의 아이디어와 상상력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던 하루이다.

 


1 용암이 굳어 형성된 평평한 암반. 너럭바위의 제주도 방언
2 제주시 한경면 저지14길 28-4.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 모여 작품 활동하는 문화예술인촌
3 梁邦彦(1960- ), 재일교포 2세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4 이타미 준, 『손의 흔적』, 「바람의 노래」에서
5 이타미 준, 『손의 흔적』, 「하늘과 땅 사이에 자립하는 건축」에서
6 이타미 준, 『손의 흔적』, 「각인의 건축」에서
7 物派, 물질 및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중시한 사조


참고자료
유동룡미술관 https://itamijunmuseum.com/
『돌과 바람의 조형, 이타미 준-손의 흔적』, 유이화 엮음, 2014, 도서출판 미세움

 

 

* 《쿨투라》 2023년 5월호(통권 10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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