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 “새로운 문학적 글쓰기를 시도하는 작업을 멈추지 않으려 합니다”: 한국출판인회의 신임회장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
[이광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 “새로운 문학적 글쓰기를 시도하는 작업을 멈추지 않으려 합니다”: 한국출판인회의 신임회장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
  • 강유정(문학·영화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 승인 2023.05.0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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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로 활동하며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를 역임했고,
2017년 문학과지성사 대표이사를 맡았다.
이후 한국출판인회의 부회장, 한국잡지협회 부회장 등을 거쳐
올해 한국출판인회의 창립 이래 처음으로 회원 직접선거를 거쳐 신임회장이 되었다

작가와 출판사는 같은 콘텐츠 생산자라는 입장에서 거대한 유통자본과 복잡한 유통환경에 함께 대응

강유정_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며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를 역임했고, 2017년 문학과지성사 대표이사를 맡으셨습니다. 이후 한국출판인회의 부회장, 한국잡지협회 부회장 등을 거쳐 올해 한국출판인회의 창립 이래 처음으로 회원 직접선거를 거쳐 신임회장이 되셨는데요. 그 간의 여정과 근황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이광호_ 80년대에 ‘문학’을 선택한 것이 삶의 방향성을 결정한 것이었다면, 그 이후의 삶은 문학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네트워크, 문학교육, 문학 제도와 장치, 출판 시장, 콘텐츠 생산과 소비 등의 문제로 관심이 넓어지는 시간이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단체의 장은 저의 내면성과 잘 맞지 않는 것이지만, 문학과 책의 생존에 대한 사회적 소명과 부끄러운 책임감 때문에 맡게 된 것 같습니다. 문학과 출판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생태계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강유정_ 보통 사람들은 출판인회의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단체인가요? 그리고 임기 동안 어떤 일들을 중점적으로 수행하실지도 궁금합니다.

이광호_ 한국출판인회의는 490여 개 단행본 회원사가 참여한 단행본 중심의 대표적인 출판단체입니다. 출판권자의 법적 지위 신장, 출판 창의 인재 양성, 도서정가제 의식 개선, 바람직한 독서생태계 구축 등에 대해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첫 직선제 회장으로서 임기가 3년으로 늘어나서 부담이 있지만, 저작물 불법 복제 유통 근절, 출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추진, 독립출판 지원 및 연대, 출판저작권 수출 등에서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고자 합니다. 저는 글쓰는 사람이면서 출판인이라서 작가들이 출판과 출판사에 대해 갖고 있는 막연한 거리감을 해소하고, 작가와 출판사는 같은 콘텐츠 생산자라는 입장에서 거대한 유통자본과 복잡한 유통환경에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인식을 넓혀가고 싶습니다.

SBI는 가장 공신력 있는 출판인 양성기관 출판의 미래는 새로운 출판 인재들에 의해 만들어져

강유정_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진행하는 주요 사업 중 특히 SBI(서울북인스티튜트)는 출판계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관심이 높습니다. SBI는 2006년부터 시작한 출판계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서울출판예비학교로 직전 원장을 역임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SBI를 좀 더 소개한다면 어떤 곳일까요?

이광호_ SBI는 정부 지원에 의해 출판인회의가 운영하는 가장 공신력 있는 출판인 양성기관으로 2005년 창립 이후 지난 18년 동안 1,000명이 넘는 새로운 출판인을 선발해 교육했으며, 7,000명이 넘는 출판인에게 다양한 재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왔습니다. 편집, 디자인, 마케팅 영역에서 출판 인재를 교육하며 특히 ‘서울출판예비학교’로 알려져 있는 채용예정자 과정은 90% 가까운 취업률을 기록하고 높은 입학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교육 공간 확충과 변화된 출판상황에 대응하는 교육 프로그램 등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나가려 합니다. 출판의 미래는 새로운 출판 인재들에 의해 만들어질 것이니까요.

출판계는 창작자와 출판권자의 저작권을 존중하는 생성형 AI 관련 저작권 대책을 요구

강유정_ 요즘 ‘AI 챗봇’이 뜨거운 관심의 대상입니다. 《쿨투라》도 이번호 테마가 ‘AI 챗봇’인데요. 최근엔 창작, 작가의 영역까지 도전한다고 하는데, 챗GPT나 빙(Bing) 같은 AI 챗봇을 활용해 보셨나요? 콘텐츠를 생산하는 출판권자와 저작권자들의 인공지능 서비스 관련에 대한 인식과 역할도 더욱 중요해질 듯합니다. 소문 같기도 하고 확실한 미래일 듯도 한데, ‘AI 챗봇’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그리고, 우리는 어떤 대책과 준비가 필요할까요?

이광호_ ‘AI 챗봇’은 굉장히 거대한 문화적 충격을 가져올 것으로 보입니다. 창작의 영역에서의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개념이 변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인간-창작자’라는 개념으로부터 ‘학습자-편집자-창작자’를 모두 겸하는 ‘AI 챗봇’의 등장은 ‘창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하게 만듭니다. 출판계의 입장에서 ‘AI 챗봇’이 책의 편집과 출간에 여러 도움을 줄 수 있는 무한한 잠재성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저술 창작의 영역에서 보조 작가의 역할은 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AI 챗봇은 인간이 만든 저작물 데이터를 학습하여 저작물을 생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AI의 학습 과정과 저작물 생성과정, 그리고 그 생성된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요. 인간의 창작물을 중심으로 되어있는 저작권법에 대한 개정을 포함, 새로운 저작권 개념이 필요합니다. AI 업계는 AI 저작에 관한 TDM(저작권 면책권)을 주장하고 있으나, 출판계는 창작자와 출판권자의 저작권을 존중하는 생성형 AI 관련 저작권 대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문학을 둘러싼 어떤 이념과 집단에도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고 단 하나의 진리에 대한 믿음과 거리를 두고 싶었다

강유정_ 처음 등단해 활동하던 시절과 지금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실 듯합니다. 세대 교체나 세상의 변화는 당연하기도 하지만 몹시 빠르고 가파르게 변하는 듯합니다.

이광호_ 문단의 분위기, 문학 시장의 상황, 글쓰기의 환경과 세대적인 감각 같은 것들이 정말 지난 35여 년 동안 정말 많이 바뀌었고, 이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산업의 팽창과 페미니즘 리부트와 같은 사회적 격변은 문학이라는 제도와 개념 자체를 변화시켰습니다. 변화하는 시대의 감각을 예민하게 느끼고 받아들이면서 세대적 정체성에 갇히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 문학을 둘러싼 어떤 이념과 집단에도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고 단 하나의 진리에 대한 믿음과 거리를 두고 싶었습니다.

’문지‘는 전통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친근한 전위의 이름으로 자리매김해야

강유정_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시절과 문학과지성사 대표로서의 활동은 기본적 일상 범주 자체의 변화일 듯합니다. 그렇게 확연히 다른 두 가지 삶을 살기도 쉬운 일은 아닌데, 어떤 차이가 있고 또 과거의 경험이 어떤 영향을 주는 지도 궁금합니다.

이광호_ 좋은 학교에서 좋은 학생들과 함께한 20년은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학교라는 제도적 공간이 변화가 많지 않은 곳이라면, 출판사는 시장과 시대의 흐름의 최전선에 있어야 하고 계속 새로운 작가와 새로운 책을 계속 만들어내어야 하는 곳입니다. 문학가가 출판 경영을 생각하면서 문학과 사람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 여전히 불편한 일이지만, 피할 수 없는 책임에는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요. 문학 시장의 생동감을 가깝게 느끼고 그것에 촉각을 세워야 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고, 이런 시간들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강유정_ 문학평론가 이광호,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신 이광호가 대표인 문학과지성사는 지금까지의 문학과지성사와 다를 듯 싶습니다.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이나 특별히 준비 중인 기획이 따로 있을까요?

이광호_ 문학과지성사는 좋은 전통과 작가들을 가진 출판사이지만 시대의 변화된 요구에 대응해야만 했습니다. 적극적인 홍보 마케팅을 해야 하고 원고를 기다리지 않고 기획해야만 했어요. ’문지‘를 전통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친근한 전위의 이름으로 자리매김해야 했습니다. 제가 일하면서 6개가 넘는 새로운 시리즈를 기획했는데, 올해는 연초에 새로운 스타일의 인문 시리즈 「채석장 그라운드」를 선보였고, 반년간 앤솔로지 「SF 보다」를 곧 론칭할 예정입니다. 문학-인문의 핵심적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문지의 출판 스펙트럼은 더 유연해지고 기민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출간한 인문 에세이 『장소의 연인들』은 장소의 문학과 인문학의 경계에 있는 글쓰기

강유정_ 최근 출간한 인문 에세이 『장소의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제목에 대해 궁금한데, ‘연인들의 장소’가 아니라 ‘장소의 연인들’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광호_ ‘연인들의 장소’가 더 익숙한 개념이긴 하지만, 너무 익숙해서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 ‘연인들이 가면 좋은 장소’ 같은 것을 연상시키는 것 같아요. 연인들에게 어울릴 법한 장소가 이미 존재한다는 생각보다는, 연인들의 사소한 사건들이 미지의 장소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연인들의 시간이 장소에 대한 일반적인 감각을 바꾸어 놓는 것에 더 흥미를 느껴서 개념을 한 번 뒤집어 보았어요. 이 책은 제가 작업해온 ‘익명의 에세이’의 연장에서 장소의 문학과 인문학의 경계에 있는 글쓰기입니다. 문학 제도의 장치들과 경계들을 넘는 글쓰기는 제가 가장 흥미를 느끼는 작업입니다.

강유정_ 대표님의 글 안에서 보면 장소가 숨기고 있는 다양한 아우라, 기억으로 완성되는 의미 등이 있는데, 연애와 결혼과 같은 현실적 문제에 있어서 장소, 공간이 지나치게 세속적으로 여겨지는 듯싶기도 해요. 그래서 시작을 못 하는 듯도 싶고 혹시 그런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이광호_ 세속적인 측면에서의 연인들의 장소는 부동산 문제 같은 것이 되겠지만, 저는 소유와 생활 공간으로서의 장소가 아닌, 사랑이라는 사건이 벌어지는 곳으로서의 도래할 장소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은 장소에서 발생하는 사건이고 연인들의 장소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측면에서 ‘아토포스’적인 장소일 테니까요. 소유할 장소가 없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겠지만, 연인들의 시간이 만들어낼 미지의 장소를 둘러싼 감각의 모험을 포기하지 않기 바랍니다.

문학하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문학적 글쓰기를 시도하는 작업을 멈추지 않으려 한다
올해 펴낼 새 비평집은 문학과 문학 너머의 예술과 문화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포함된 책

강유정_ 앞으로의 짧은 계획 그리고 긴 계획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이광호_ 이 모든 사회적 책임의 시간들은 혼자만의 시간이 없다면 아마 무력할 것이어서, 혼자만의 시간을 더욱 아끼고 싶습니다. 출판 경영자로서 출판단체 회장으로서 해야 할 책임이 있지만, 저는 언제나 문학하는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문학적 글쓰기를 시도하는 작업을 멈추지 않으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문학의 연장으로서의 영상에 관한 관심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올해 펴내게 되는 14년 만의 비평집은 문학과 문학 너머의 예술과 문화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포함된 책이 될 것 같습니다.

 


사진 김한솔 기자

 

* 《쿨투라》 2023년 5월호(통권 10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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