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슬 소프라노] “벨칸토 오페라에서 아름다운 소리와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긴장감과 스펙터클을 선사하고 싶다”: 〈로베르토 데브뢰〉 엘리자베타 역, 손가슬 소프라노
[손가슬 소프라노] “벨칸토 오페라에서 아름다운 소리와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긴장감과 스펙터클을 선사하고 싶다”: 〈로베르토 데브뢰〉 엘리자베타 역, 손가슬 소프라노
  • 박영민 기자
  • 승인 2023.05.0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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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데브뢰〉 엘리자베타 역, 손가슬

5월 26일(금) 부터 28일(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최되는 한국 초연 도니제티 오페라 〈로베르토 데브뢰〉 공연에서 절대 권력을 가진 엘리자베타 역을 맡으셨습니다. 기분이 어떠신지요?

손가슬_ 제게 벨칸토bel canto(아름다운 노래) 오페라는 영원한 소리의 고향과 같고 늘 부르고 싶은 시대의 작품들입니다. 부를 때마다 천국에 온 기분이 들지요. 테크닉이나 음악적, 드라마적으로 모두 최고 수준의 기술과 깊이를 표현할 수 있는 실력이 준비 되어 있어야하기 때문에 제 자신을 더욱 단련하게끔 가슴의 불꽃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이죠.

제가 23살에 유럽무대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비올레타 역으로 데뷔를 한 후 모든 콜로라투라들이 선망하는 역들을 노래하는 꿈만 같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20대 도니제티의 〈람메르어의 루치아〉에서 루치아, 30대에 벨리니 오페라 〈청교도〉의 엘비라 그리고 40대에 도니제티의 여왕삼부작의 절정 작품인 〈로베르토 데브뢰〉의 엘리자베타를 맡는 것은 노래를 시작한 이후로 늘 소망해 왔고, 그 꿈들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또다시 찾아와 무척이나 감격스럽고 영광입니다. 오페라는 모든 가수에게 그 어떤 작품보다 커다란 도전이 되는데, 특히나 엘리자베타가 짊어져야 하는 전체적인 작품의 무게가 왕관의 무게만큼 무겁고 절대적이기에 더욱더 많은 에너지와 몰입도를 필요로 합니다. 큰 도전이지요. 많은 연구와 준비가 필요한 작품입니다.

변방의 나라인 영국을 대영제국으로 발전시킨 탁월하며 위대했던 엘리자베스 여왕이지만, 어머니인 앤불린은 아버지 헨리 8세에 의해 교수대에 처형당했으며, 사생아로 불리며 늘 불안하고 비참한 어린시절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역경을 이겨내고 여자로서의 불리함을 오히려 정치적 외교적으로 잘 이용했던 영리하고 지혜로운 강한 여왕이었지요. 〈엘리자베스〉(1999, 세자르 카푸르 감독, 케이트 블란쳇 주연)를 보고 그녀에게 매료되었습니다. 강인한 여왕의 모습 뒤의 인간적인 고뇌와 여자로서의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깊은 갈망, 하나의 사람으로서 여자로서, 왕관의 무게를 견뎌내고 자신의 역할을 찾고 여리고 순수했던 소녀에서 내면의 여왕을 끌어내어 “짐은 영국과 결혼했노라”라고 선포하는 위대한 리더쉽에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제 안에 그리고 많은 여성들 안에 감추어져 있거나 이미 발현되어 자신의 빛을 발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역을 준비하는 수개월 동안 제가 완전히 알지 못했던 저 자신을 찾아내고 엘리자베타와 함께 강해지고 저 스스로 확장되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라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서 초연하게 되는 여왕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 무대에 오르게 되어 기쁘고 설렌 만큼 많이 고민하고 연구하며 매순간 농도 깊게 작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달 남짓 남은 지금 출산을 기다리는 해산의 고통이 다가오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설레기도 하면서 상상하지 못할 아름다움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이번 〈로베르토 데브뢰〉 공연을 주관한 곳이 민간오페라단으로 알고 있습니다. 라벨라오페라단과 도니제티 오페라 〈로베르토 데브뢰〉 공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손가슬_ 라벨라오페라단은 여왕 삼부작을 한국에서 초연으로 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오페라단이며 여러 가지 시도로 관객과 호흡하고 있습니다.

도니제티는 수많은 아름다운 벨칸토 오페라를 썼습니다. 그중 대중에게 잘 알려진 〈사랑의 묘약〉, 〈람메르어의 루치아〉가 있지요. 여왕 삼부작으로 일컬어지는 〈안나 볼레나〉, 〈마리아 스튜아르다〉, 〈로베르토 데브뢰〉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튜더왕조의 이야기를 가지고 작곡한 삼부작입니다, 이 세 작품의 제목은 모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이들의 이름입니다. 엘리자베스의 어머니인 앤 불린의 이야기가 〈안나 볼레나〉, 스코틀랜드의 여왕이었던 엘리자베스의 위협이 되어서 반역죄로 처형되었던 메리 스튜어드의 이야기가 〈마리아 스투아르다〉 그리고 마지막 엘리자베스의 영원한 연인이었으며 그녀가 가장 아꼈던 로버트 데브뢰와 엘리자베스의 이야기가 〈로베르토 데브뢰〉입니다.

도니제티가 이 작품을 초연했던 1837년 그의 갓 태어난 아들이 죽고 아기를 낳다가 몸이 많이 상한 부인도 출산 며칠 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가득했던 작곡가의 작품 또한 처절하고 드라마틱합니다. 예술은 많은 위대한 작품이 나올때 이렇게 한 예술가에게 큰 고통을 겪게 하고 세상과 후대에 전율과 감동의 유산을 남기는 잔인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오페라는 역사적 사실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실존인물이었던 로버트 데브뢰의 이야기는 처녀왕으로 결혼하지 않고 나라를 다스렸던 엘리자베스 여왕의 가장 총애를 받고 가까웠던 남자였습니다. 〈로베르토 데브뢰〉는 이 인물들을 토대로 픽션을 가미한 오페라입니다. 그렇게 하여 여왕의 여자로서의 사랑받고 행복하고자 하는 인간적인 갈망과 권력과 정치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관계안에서 철저히 외로운 절대 권력자의 뒤편, 비극을 보여줍니다.

여왕은 로베르토를 사랑하고 아껴서 모든 의회와 정치세력에게서 그를 보호했고 반역죄에 몰려도 그의 결백을 믿고 싶어했습니다. 여왕이지만 사랑의 포로인 셈이죠. 그렇지만 로베르토 경은 여왕이 가장 신뢰하는 노팅험 공작의 부인 사라를 연모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왕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지만 그들이 나누었던 마지막 물건들이 화를 불러 일으켜 배신의 증거품이됩니다. 여왕은 결국 로베르토에게 사형을 집행하도록 허락합니다. 그러나 여왕은 여전히 로베르토가 다시 살 수 있기를 바라고, 결국 그가 연모하던 여인이 사라임을 알게 되어 형 집행을 멈추려 할 때 로베르토의 사형은 집행됩니다. 그리고 여왕은 사라와 노팅험 공작을 저주하며 거의 혼이 나가서 마지막 아리아인 〈Quel sangue versato그의 피가 흘러넘치네〉를 부릅니다. 더 이상 살고 싶지도 더 이상 통치하고 싶지도 않은 그녀의 마지막 절규를 담은 아리아는 오금이 저릴 정도로 드라마틱하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관객을 놓아주지 않을 극적인 음악을 담고 있습니다. 엘리자베타역이 너무도 어렵고 드라마틱하지만 다른 역들의 무게감도 대단합니다. 전체적으로 음악과 드라마가 가수도 관객도 한순간도 놓아주지않는 태풍 같은 오페라 입니다.

이번 도니제티 오페라 〈로베르토 데브뢰〉 공연을 위해 특별히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번 공연에서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은 어떤 것일까요?

손가슬_ 벨칸토 오페라는 아름다운 소리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벨칸토 창법으로 노래하면서 극의 긴장도와 드라마를 끌고가기 위해서는 모든 구간을 철저히 계산하고 철저히 훈련해야 합니다. 한국 초연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이 작품을 공부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럽으로 날아가 독일극장에서 이미 이 작품을 지휘한 벨칸토 오페라에 탁월한 이탈리아 지휘자 Daniele Squeo와 수차례 작품을 같이 연구했고, 여러 이탈리아 코치 선생님들과도 공부했습니다. 많은 준비 덕에 제 안으로 점점 엘리자베타가 자라나고 있음을 느낍니다.악보와 작품 안으로 깊게 들어갈수록 우주의 새로운 공간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듭니다. 무대에서 큰 자유가 올 때 까지 쉬지 않고 악보를 파고 들어야합니다. 그래서 벨칸토 오페라에서 요구하는 아름다운 소리와 함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긴장감과 스펙터클도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싶습니다.

저는 오페라를 정말 사랑합니다. 모든 예술의 복합적인 결정체로서 위대한 이 문화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길 수 있기를 바라고 처음 오신 관객이라면 저희 공연을 보고 다시 또 오페라 극장을 찾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순간 사명감을 가지고 작품을 준비합니다. 도니제티 오페라의 역작이자 한국초연으로서, 또 제 꿈의 역으로서 〈로베르토 데브뢰〉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고 뇌리에 남는 역사적인 순간이 되기를 바라며 그날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무대에 서는 성악가 꿈꾸다

어렸을 때부터 꿈이 성악가였나요? 성악가를 꿈꾸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손가슬_ 어린시절을 기억해보면 늘 노래하고 춤추고 책을 읽고, 시를 쓰고 그 시로 작곡을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명절에 친척들 앞에서 노래하거나 춤을 출 때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제게 시선을 주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속이 상해서 울었지요. 성악가가 된다는 구체적인 꿈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것과 예술가의 덕목 사이에 겹치는 부분이 많아 비슷한 활동을 즐겼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생 때 뜻밖의 기회가 왔지요. 동요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그 계기로 재능을 발견하게 되어 노래를 잘하는 아이로 알려졌습니다. 그때부터 제 마음이 목소리로 아름답게 울리는 신비로운 경험과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에 대한 희열을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성악가가 되고 싶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어려운 길을 걸어가야 할 딸을 염려하셔서 공부를 하기를 권하셨는데 그래도 저는 꼭 무대에 서는 성악가가 되고 싶다고 뜻을 밝혀서 성악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한 후, 독일 베를린 한스아이슬러 음악대학 성악과,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 음악대학 솔로 성악과 및 오페라과 postegraduate 과정,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악대학에서 리트·오라토리오 Master 과정을 마쳤는데,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음악가의 대학시절과 유학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힘든 점은 없었는지, 또 그 시절의 희로애락과 특별한 에피소드를 듣고 싶습니다.

손가슬_ 다른 학생들처럼 예중, 예고 준비과정을 밟은 것이 아니여서 짧은 입시 과정을 통해 입학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의 생활은 기대와 기쁜 마음이 컸습니다. 동시에 물리적인 준비 기간이 적었던 만큼, 제 실력이나 재능에 대해 의심하기도 하고 좌절감도 많이 느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훌륭한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인 만큼 모두들 음악에 대해 진지하고 실력들도 우수했기 때문에 새내기가 된 해에는 노래와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지요. 그러다가 정말 노래가 너무 잘하고 싶어서 학교 연습실에서 연습에만 매진하며 지냈습니다. 많이 울었어요. 매일 매일 저는 남들보다 더 연습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놀다가 수업에 들어오는 친구들이 태연하게 레슨과 수업에서 노래를 잘 부르는 모습에 낙담도 많이 했지요. 그럴 때마다 가까운 친구가 곁에서 눈물을 닦아주며 “언젠가는 너의 재능이 빛을 발할 거다 때를 기다리라”고 확신과 믿음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제 안에 한줄기 희망을 붙잡고 노력하다가 마지막 학년에 드디어 실력이 급상승했고 처음으로 나간 동아 콩쿠르에서 본선에 진출하더니 입상까지 하게 되었죠. 어떤 일이든지 계단식으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그때 배웠던 것 같습니다. 아무런 진전이 보이지 않을 때도 농사 짓는 농부처럼 끊임없이 우직하게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태풍이 오면 쓰러진 농작물을 다시 새우고,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가을이 찾아오고 수확을 기다리는 황금빛 볏잎들이 환상적인 물결을 이루는 것처럼요.

그렇게 해서 베를린의 한스아이슬러 음대에 진학하게 되었고 실력이 상승세로 가고 있었기에 폴란드에서 음반녹음 제의도 들어왔고 콘서트와 여러 좋은 기회들이 생겼습니다. 입학한 첫해에 제 클라스의 소프라노 Olga Pertyatko가 학교 오페라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에서 체르비네타 역을 맡아 준비하던 중에, 갑자기 사정이 생겨 하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공연 2주전에 대신 투입되었지요. 이제 막 학교에 적응을 시작하려고 하던 때에 너무도 어려운 오페라에서 초절기교를 보여주어야 하는 체르비네타역을 2주만에 해내야 한다니…. 그런데 별로 걱정 되지 않았어요.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기회라는 느낌이 왔고 악보를 보는 순간 가슴이 뛰었죠. 아름답지만 끊임없이 변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어려운 화성과 박자, 하나도 반복되지 않는 엄청난 양의 독일어 대사, 콜로라투라에게 요구하는 고난이도 테크닉을 다 넣어놓은 듯한 마라톤 같은 프레이징들이 두려움 보다는 제 세포 하나하나를 강렬하게 흔들어 깨우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안을 승낙했고 도전했습니다. 하는 도중에는 많은 교수님들과 동료들이 잘해낼 수 있을지 우려했지만 저는 알고 있었어요. 분명 그날, 연주하는 날 저는 자유롭게 날아오를 거라고. 그래서 이때도 산고의 고통을 겪으며 준비했고 제너럴 리허설 때 드디어 날개를 폈습니다. 연주 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음껏 날개짓하며 자유로이 하늘을 날아오르는 불사조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 날 학교에 부임하셨던 바리톤 토마스 크바스토프Thomas Quastoff 교수님과 다른 교수님들께서 관객선 맨 앞자리에서 저의 아리아가 끝나고 기립박수와 브라바를 몇 분이 넘도록 외쳐주셨던 감격스런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체르비네타로 성공적으로 데뷔하고 바로 독일 바이커스하임에서 열리는 오페라 페스티발에서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준비하러 떠났고 그 공연이 우수한 평가를 받아 스페인의 빼렐라다 페스티발에 초청되었지요. 공연날 뿐만 아니라 리허설도 스페인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한 달 넘게 야외에서 진행되는데 저혈압이 있는 저로서는 강렬한 여름 열기 속에서 야외공연을 하는 게 쉽지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꿈에 그리던 비올레타를 노래할 수있는 것에 감사했고 저자신이 지금까지 노래할 수 있도록 단련해준 첫 프로페셔널로서의 무대로서 성공적으로 해냈던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네덜란드로 가서는 제 인생에서 내려놓음을 배우는 시기였고 그때부터 늘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인내와 타인에 대한 이해심을 배웠고, 그때부터 저만을 위한 음악이 아닌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가르치는 기회들이 오기 시작하였고 비엔나에 거주하면서 음악 활동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가르치는 것에 재능과 보람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 때부터는 제게 도움받고 싶어하는 후배와 학생들을 기쁜 마음으로 돕고 있습니다. 공부한 기간이 한국에서 4년 유럽에서 11년…. 거의 15년을 공부했네요. 그 시간들이 지나보니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어요. 가난했고, 순수했으며 온몸으로 인생을 사랑하고 배웠지요. 정말 로맨틱하죠. 지나간 그 시간들이 어우러지고, 그 속에서 나만의 빛나는 울림을 내기까지 긴 배움의 여정이었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지금도 계속 그렇게 살고 있네요 평생 배우고 성장하고 배우고 있습니다.

23세에 스페인 빼렐라다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오페라 주역가수로 성공적으로 데뷔했습니다. 유럽에서 활동하던 시절과 국내에서 교수와 공연 활동을 겸하고 있는 지금은 많이 다를 것 같은데 어떤가요?

손가슬_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젊은 예술가의 로맨틱한 시간들이었지요. 배우고 갈망하고…. 사실 한국에서의 삶은 이제 많이 안정되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워졌지만 그때의 갈급함이나 절실함을 찾기가 어려운 감도 있어요. 그래서 저 자신을 순수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 더 몰아붙이기도 합니다. 노래만 생각하고 살 때 보다 훨씬 더 많은 역할을 하게 되니까요. 가수, 엄마, 아내, 교수, 딸 등 여러 역할을 하고 또 책임을 져야하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그만큼 저만의 시간은 줄어들고 제 내면과 마주하여 음악을 온전히 바라보는 시간은 철저히 부족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중심을 잘 잡으려 노력합니다. 예전보다 더 시간을 잘 배분해서 연습하는 시간, 사색하는 시간, 영적인 저를 돌보는 시간을 어떻게든 확보하려고 노력합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AI에게는 없는 것, 영혼으로 노래하는 사람만이 살아남으리라

바야흐로 ‘AI 챗봇’ 시대입니다. 성악가로서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으신가요? ‘AI 챗봇’ 시대의 음악은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합니다.

손가슬_ 챗GPT가 나오고 당장 제 추천 유튜브 첫 썸네일부터 모두 쳇GPT를 설명하고 어떻게 시대를 준비할 것인가에 관한 동영상들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그만큼 챗GPT의 등장은 우리 모두를 새로운 변화에 적응케 하는, 어쩌면 위협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급진적 변화이죠.

저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AI에게는 없는 것, 바로 영혼으로 노래하는 사람만이 살아남으리라 늘 믿어 왔습니다. 개개인의 경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의 영혼, 전혀 다른 아름다움을 지닌 고유의 울림을 주어야 잊혀지지 않는 예술가가 될 수 있습니다.

학생들에게도 훌륭한 테크닉을 요구하고 음악적인 기술을 전수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마음과 개개인의 우주의 중심인 영혼을 노래하기 위해, 그것에 자유로움을 주기 위해 테크닉을 배운다는 것을 늘 상기시켜줍니다. 분명 그것이 차별화되는 점으로 AI에게는 없고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요. AI는 분명 시간이 지나 기술이 점점 견고해지면 음악 산업에도 상상할 수 없는 변화를 일어날 것이고,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아직은 종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완벽한 연주보다, 진실되고 진정한 깊은 곳의 영혼의 순수한 울림을 세상에 전달해야 하고, 그러한 음악가가 살아남습니다. 이러한 접근법이 우리가 우려하는 인공지능에 지배당하지 않을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의 루치아, 질다, 엘비라에서 보여주었던 레지에로leggiero(가벼운) 콜로라투라에서 드라마틱 콜로라투라로 변신하는 소프라노 손가슬의 멋진 공연이 기대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손가슬_ 〈로베르토 데브뢰〉 공연이 끝나고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비엔나국립음대 교수님들과 여름 마스터클래스를 함께 하고, 제주 서귀포로 내려가 오페라 〈이중섭〉에서 그의 부인인 ‘마사코’ 역을 노래합니다. 그 외에도 여러 콘서트들이 계획되어 있어요.

나이가 들면서 소리가 변화하고 특히 여자 가수들은 출산을 경험하면서 놀라운 변화들을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지금도 저는 제 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매일매일 즐겁습니다. 아이를 낳고 소리가 점점 더 풍요롭고 따뜻해졌고, 힘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밸런스를 잘 잡는 듯한 느낌입니다. 이제 인생에 다가올 새로운 레퍼토리들을 준비하고 공부하면서 또 가슴 뛰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삼십 대에 막연히 출산에 대해 걱정했던 변화들이 오히려 이렇게 축복으로 돌아오게 될 줄 몰랐습니다. 인생은 참 재밌고 매순간 배우는 여정입니다. 저는 노래를 통해서 저를 알아가며 축복을 받고 축복을 전합니다. 그렇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아름답고 빛나게 공기를 울리고, 또 가슴을 울리며 그 찰나의 순간을 위해 산고의 고통도 지루한 인내도 모두 기대와 설렘으로 기쁘게 맞아 들이고 있습니다.

 


 

 

* 《쿨투라》 2023년 5월호(통권 10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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