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집 속의 詩] 이은규 시인의 「터키 아이스크림」
[새 시집 속의 詩] 이은규 시인의 「터키 아이스크림」
  • 이은규(시인)
  • 승인 2023.05.0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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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아이스크림

이은규

 

이제 우리 밀고 당김을 시작해 보자 밀고 당김으로 밀어를 속삭이자 밀고 당김으로 허공을 깨뜨리자 달콤한 마음을 망가뜨리자 밀고 당김으로 몸을 굽히지 말자 밀고 당김으로 착각하자 밀고 당김으로 춤을 추자 밀고 당김으로 시선을 빼앗자 밀고 당김으로 정지선을 넘어가자 밀고 당김으로 꽃잎처럼 흩날리자 밀고 당김으로 발을 내딛자 아니면 넘어지자 밀고 당김으로 실수하지 않는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 밀고 당김으로 무해한 뇌를 선물하자 밀고 당김으로 모국어를 잊자 온 힘을 다해 하찮아지자 밀고 당김으로 눈앞이 하얘지자 밀고 당김으로 이정표가 되자 밀고 당김으로 아름다운 보호색을 가진 새인 척하자 약속처럼 가능하다면 밀고 당김으로 밀고 당김을 가려 보자 밀고 당김으로 예쁘게 용감해지자 밀고 당김으로 끝내 밀고 당겨보자 밀고 당김으로 현기증을 견뎌 내자 밀고 당김으로 빙빙 도는 봄을 따돌리자 밀고 당김으로 그림자끼리 포옹하자 잠시 멈춤하자 다시 처음인 듯 밀고 당김으로

 

- 이은규 시집 『무해한 복숭아』(아침달) 중에서

 


이은규 시인은 2008년 《동아일보》 신촌문예 시 부문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다정한 호칭』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 등을 펴냈으며, 시창작 동인 '행성'으로 활동 중이다.

 

 

 

* 《쿨투라》 2023년 5월호(통권 10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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