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편식 없는 ‘건강한’ 시청 습관을 위하여
[드라마 월평] 편식 없는 ‘건강한’ 시청 습관을 위하여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3.05.0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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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제공

가족의 달 5월을 맞이하여 이번 드라마 월평의 주인공은 ‘주말연속극’이다. 최근 몇 년 사이 OTT 오리지널 시리즈가 워낙 사랑을 많이 받다 보니 지상파 방송국 드라마는 한참 뒷순위로 밀린 느낌이다. 주말연속극은 특히 그렇다. 연세 지긋한 분들이 보는 ‘다소 나이브한 완성도’의 드라마라는 인식이 있어 화제의 중심에서 많이 밀려나 있다.

세상에 단맛과 매운맛만 있는 건 아니다. 단맛, 신맛, 쓴맛, 매운맛, 짠맛, 떫은맛… 다양한 맛을 골고루 먹어야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다. 미니시리즈 맛이 따로 있고, 주말연속극 맛이 따로 있다. 그동안 드라마의 다양한 맛을 알리는 것에 드라마평론가로서 내가 너무 소홀했다.
반성하는 의미에서 ‘부모님과 도란도란 대화하는 맛’ 주말연속극 특집을 마련했다. 아, 부모님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 것이 언제였던가. 매일 부모님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맛은 8부작 OTT오리지널 시리즈보다는 50부작 주말연속극에서 진하게 느낄 수 있다.

MBC 제공

주말연속극이 뭐길래

다른 장르에 비해 주말연속극이 나이대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 역사를 조금 깊게 파고들어 가보면, 주말연속극이 남녀노소가 즐겨보는 대중적인 장르였던 시절이 있다. 주말연속극의 ‘리즈시절’이랄까. ‘한류’라는 용어가 처음 쓰이기 시작한 것도 주말연속극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에서 방영되던 1997년이다.

한류의 원조 〈사랑이 뭐길래〉에 대해 살짝 귀띔하자면, 1991년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방영된 MBC 주말연속극으로 평균 시청률이 59.6%였다.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본 드라마. 흔히 흥행 영화를 수식할 때 천만 관객이란 표현을 쓰는데, 시청률 60%를 기록한 드라마의 시청자 수는 가히 상상 이상이다.

KBS 제공

줄거리는 간단하다. 가부장적인 집안과 현대적 분위기의 집안이 사돈을 맺으며 벌어지는 일들을 유쾌하게 그린 이야기. 당시 가부장적인 시아버지와 남편을 연기한 배우 이순재와 최민수가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추억이 방울방울. 90년대에 유독 재미난 주말연속극들이 많았다. 드라마 제목부터 이미 치사량의 정겨움을 간직한 〈목욕탕집 남자들〉(1995)은 30여 년간 대중목욕탕을 업으로 살아온 할아버지와 그의 대가족 이야기를 그리는데, 무려 83부작이다. 자그마치 10달 동안 대한민국 주말을 하드캐리하며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KBS 제공

K-막장의 세계화

최근 미니시리즈에 밀려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긴 하지만 주말연속극이 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작년에 방영된 KBS 주말연속극 〈신사와 아가씨〉는 넷플릭스에 업로드되고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지금껏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흥행을 거둔 한국 드라마는 대부분 미니시리즈였다. 그런데 무려 52부작이나 되는 주말연속극이 이례적으로 넷플릭스에서 글로벌 흥행에 성공했다고 해서 한국이 들썩들썩했다. K-막장드라마의 세계화라나 뭐라나.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했지만 〈신사와 아가씨〉는 국내에서도 대박이 난 드라마다. 2021년 9월부터 2022년 3월까지 52부작으로 방송되는 동안 꾸준히 30%대 시청률을 유지했다. 최고 시청률 38.2%. 작년 ‘추앙커플’ 팬덤을 형성하며 최고의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7%의 벽을 넘지 못한 것과 비교해 엄청난 ‘양적’ 성과다.

KBS 제공

자, 곰곰이 생각해보자. 집에서 TV로 드라마를 보는 사람은 과연 누굴까. 그렇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주말 저녁 8시에 방영하는 지상파 방송국의 주말연속극은 고정 시청자층이 있어 시청률이 20~30%대로 늘 상향 고정되어 있다. 드라마에 따라 시청률의 변동 폭도 그리 크지 않다. 늘 호황기이다 보니 ‘다소 나이브한 완성도’의 드라마가 나이 지긋한 부모님의 적적한 마음을 방패막이 삼아 방영되곤 한다. 아무리 잘난 아들도 찾아오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사고 치는 막내아들일지라도 부모님에게 자주 찾아뵈면 그 사람이 제일 효자다.

문제는 그 효심 가득한 막내아들이 사고를 너무 많이 친다는 데 있다. 주말연속극이 젊은 층의 관심을 덜 받았던 배경을 살펴보면 그 중심에는 ‘막장코드’가 있다. 출생의 비밀, 기억상실증, 시한부 선고… 이런 막장코드가 사서적 개연성 없이 그냥 막 나온다. 나이 든 부모님을 앞장세워 그냥 막막 나온다. 세계적인 흥행작 〈신사와 아가씨〉도 국내외에서 성공은 했지만 ‘최악의 막장 드라마’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다.

KBS 제공

막장 없는 막장 드라마

KBS 공영방송 주말극이 이래도 괜찮겠는가, 하는 자아 성찰과 함께 〈신사와 아가씨〉 후속으로 방영된 드라마가 하명희 작가의 〈현재는 아름다워〉다. 막장 없는 주말연속극을 내세워서 순한 맛 드라마를 선보였다. 하명희 작가가 누구인가. 〈사랑의 온도〉 〈청춘기록〉 〈닥터스〉와 같은 웰메이드 로맨스 미니시리즈를 집필한 작가 아니던가. 〈현재는 아름다워〉는 젊은 시청자층에게 사랑받는 로맨스 장인 하명희 작가의 첫 주말드라마라는 점 덕분에 방영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개인적으로 〈따뜻한 말 한마디〉(2013)를 아주 좋게 봐서 큰 기대를 하면서 기다렸다.

자극적인 MSG에 길든 주말연속극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순한 맛이었을까. 〈현재는 아름다워〉는 결국 30%대에 올라서지 못하고 소박한 종영을 맞이했다. 로맨스물 속 연인들에게 시련과 장애가 많을수록 그 사랑은 더욱 견고해진다. 가족드라마의 성격을 가진 주말연속극에서 가족들에게 위기가 많을수록 가족의 소중함은 더욱 도드라진다. 진한 가족애를 위한 극심한 가족 위기와 격렬한 가족 해체랄까. 막장은 주말연속극의 필요악이었다. 그리하여 최근 방영 중인 〈진짜가 나타났다〉는 막장의 ‘진짜’를 보여주며 다시금 매운맛 출사표를 내밀었다. 길을 비켜라, 막장 나가신다.

KBS 제공

진짜가 나타났다

KBS 주말연속극 〈진짜가 나타났다〉는 서로 다른 성격과 배경을 가진 미혼모와 비혼남이 만나 티키타카하다가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그렇게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첫 방송에서 여자 주인공 오연두는 믿었던 남자친구의 바람피우는 현장을 목격하고 충격으로 기절한다. 실려 간 병원 응급실에서 그녀는 임신 진단을 받게 되고, 그렇게 1화가 끝난다. 남자친구의 외도 후 알게 된 혼전임신. 정말 상상하기 싫은, 인생 최악의 막장이 펼쳐진 것이다.

괜찮다. 주말연속극이니까. 오연두가 남친의 외도를 목격하고 응급실에 실려 갈 때 그녀를 고이 데려간 사람이 바로 남자주인공 공태경이다. 재벌 3세이자 성공한 성형외과 의사, 그리고 따뜻한 외모의 훈남. 악연이 인연이 되는 한국식 로맨스의 클리쉐가 빼꼼 고개를 내민다. 이제 좀 순한 맛이 나오려나 하고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오연두 남친이 바람피운 상대 여성, 그녀는 공태경의 첫사랑이자 집안끼리 맺어진 계약 결혼의 당사자다. 복잡하게 얽힌 네 남녀와 그들의 가족들 이야기가 서사적 개연성 없이 마구마구 펼쳐지는데… 이래서 내가 주말연속극을 안 보는 거야, 불만을 토로하기에는 아직 또 이르다.

극 중 오연두는 남친이 문자 실수를 하는 바람에 바람피우는 현장을 목격한다. 문자를 받고 자신을 위한 서프라이즈 프러포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다른 여자를 위한 이벤트였던 것이다. 반성은커녕 남친이 오히려 화를 내자 오연두는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남친 얼굴에 케이크를 던진다. 그 유명한 싸대기 시리즈의 2023년 최신 버전 ‘케이크 싸대기’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모두 다 김치〉(2014)의 ‘김치 싸대기’ 이후 한국드라마에는 ‘싸대기’ 계보가 조용히 전해 내려온다. 총각김치 싸대기, 삼겹살 싸대기, 토마토 스파게티 싸대기, 봉골레 싸대기...

〈진짜가 나타났다〉는 현재 넷플릭스에도 업로드되어 있다. 또 한 번의 K-막장드라마 세계화를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난 셈이다. 라면 스프에만 중독성 강한 MSG가 있는 게 아니다. 한국 드라마에도 한번 보면 빠져나올 수 없는 MSG 주말연속극 맛이란 게 있다. 자, 가자. 세계로.

 


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연두빛 캠퍼스물과 회색빛 오피스물 사이를 분주히 오가고 있다. 언젠가는 내 인생이 장르가 판타지로맨스코미디홈드라마가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2022년 중앙대학교 교육상과 제4회 르몽드 문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쿨투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크리티크 M》 편집위원과 KBS World Radio 〈김형중의 음악세상〉 고정 게스트로 활동하며 자발적 드라마 홍보대사로 열일하고 있다. 저서로 드라마 캐릭터 비평집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외 여러 권의 책이 있다.

 

* 《쿨투라》 2023년 5월호(통권 10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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