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회 칸국제영화제] 거장들의 귀환, 다시 영화의 시간으로: 제 76회 칸국제영화제
[제76회 칸국제영화제] 거장들의 귀환, 다시 영화의 시간으로: 제 76회 칸국제영화제
  • 설재원 에디터
  • 승인 2023.05.03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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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의 계절이 돌아왔다. 오는 5월 16일부터 27일까지 프랑스 남부 코트다쥐르 칸 팔레 데 페스티벌에서 제76회 칸국제영화제가 열린다. “칸의 역사가 곧 영화의 역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칸영화제는 세계영화제 중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 올해도 《쿨투라》 편집부는 칸에 머물며 현지 소식을 공유할 예정이다.

축제의 서막을 알리는 개막작은 프랑스의 배우이자감독인 마이웬의 〈잔 뒤 바리〉이다. 마이웬의 여섯 번째 장편영화 〈잔 뒤 바리〉는 루이 15세와 그의 정부 뒤 바리 부인의 생애와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다. 특히, 루이 15세 역에 조니 뎁이, 뒤 바리 부인 역에 감독인 마이웬이 출연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은 “〈잔 뒤 바리〉는 정치에서의 여성의 위치에 대한 현대적 관점을 다루고 있다”며 “영화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고, 이번 개막작 선정 역시 정치적인 면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또한 개막작 이외에도 올해 경쟁부문에는 여성감독이 연출한 작품이 일곱 편으로 역대 최다인데, 이에 대해 “여성 감독의 존재감이 강해진다는 것은 세계 영화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제는 여성이 남성과 여성 캐릭터를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묘사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고 선정 이유를 전했다.

개막작 〈잔 뒤 바리〉
Jeanne du Barry (Maïwenn) and Johnny Depp (Louis XV) in Jeanne du Barry © Stéphanie Branchu / Why Not Productions

칸을 찾는 한국영화
김창훈, 김지운, 김태곤, 홍상수, 유재선 감독의 신작

올해는 7편의 한국영화가 칸을 찾는다. 먼저 장편영화를 살펴보면 공식부문으로는 주목할만한 시선Un Certain Regard에 김창훈 감독의 〈화란〉이, 비경쟁부문Out of Competition에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과 김태곤 감독의 〈탈출: PROJECT SILENCE〉(이하 〈탈출〉)가, 비공식부문으로는 감독주간Director’s Fortnight에 홍상수 감독의 〈우리의 하루〉와, 비평가주간Critic’s Week에 유재선 감독의 〈잠〉이 초청되었다.

김창훈 감독의 〈화란〉

단평영화로 눈을 돌리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서정미 감독의 〈이씨 가문의 형제들〉과 한국영화아카데미 정규과정을 졸업한 황혜인 감독의 〈홀〉이 시네파운데이션Cinéfondation에 이름을 올렸다. 시네파운데이션은 전 세계 영화학교 학생들의 단편영화를 선보이는 영화제의 공식부문으로 경쟁 방식으로 진행된다.

황금카메라상을 노리는 김창훈 감독의 첫 장편영화 〈화란〉은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년이 조직의 중간 보스를 만나 위태로운 세계에 함께하며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방황하는 밑바닥 청춘들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그려낸 누아르물이며, 배우 홍사빈, 송중기, 김형서(비비)가 희망을 찾아 서늘하고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다. 주목할만한 시선은 예술성과 미학성이 뛰어난 독특하고 색다른 작품을 선보이며 최근에는 젊은 감독들을 발굴하는 무대로 기능하고 있다.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1998), 봉준호 감독의 〈마더〉(2009), 나홍진 감독의 〈황해〉(2011) 등이 주목할만한 시선으로 칸을 찾았고, 장편영화 데뷔작이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받은 한국감독으로는 〈용서받지 못한 자〉(2005)의 윤종빈 감독, 〈도희야〉(2014)의 정주리 감독에 이어 김창훈 감독이 세 번째이다.

〈달콤한 인생〉(2005),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에 이어 세 번째로 공식 비경쟁부문을 찾는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은 서슬퍼런 검열이 존재했던 70년대 영화 현장을 그린 블랙코미디이다. 〈인랑〉 이후 5년만에 신작을 선보이는 김지운 감독은 “영화의 시간이 다시 살아나야 할 때, 전 세계 영화인과 관객이 함께 모이는 축제에 초대되어 더욱 각별한 느낌”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지난해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와 〈장화, 홍련〉 이후 20년 만에 호흡을 맞추는 임수정이 김기영을 모델로 삼은 ‘김감독’과 베테랑 여배우 ‘이민자’로 분하며 오정세와 전여빈, 정수정이 빛나는 연기를 펼친다. 특히 송강호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후 15년만에 김지운 감독과 칸 진출이며, 이번 작품으로 무려 여덟 번째 칸의 선택을 받아 한국배우 최다초청기록을 스스로 경신했다. 칸의 화제성을 담당하는 비경쟁부문은 지난해에는 톰 크루즈 주연의 〈탑건: 매버릭〉 등이 초청되었고, 올해는 15년만에 리부트작인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과 마틴 스코세이지의 신작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샘 레빈슨의 〈더 아이돌〉(HBO 시리즈)과 프레데릭 텔리에의 〈아베 피에르〉, 그리고 〈거미집〉이 초청되었다.

김태곤 감독의 〈탈출〉은 비경쟁부문의 미드나잇 스크리닝Midnight Screening에 초청되었다. 심야에 상영되는 미드나잇 스크리닝은 박진감 넘치는 장르영화들이 주로 이름을 올리며, 지난해에는 이정재 감독의 〈헌트〉가 뜨거운 반응 속에서 첫 선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형 재난물인 〈탈출〉은 짙은 안개가 자욱한 붕괴 직전의 공항대교에 고립된 사람들의 생존기이다. 예기치 못한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이선균, 주지훈, 김희원, 문성근, 박희본 등 검증된 배우진이 그려낸다. 특히 한국 VFX를 대표하는 덱스터 스튜디오와 〈기생충〉의 홍경표 촬영감독,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이건문 무술감독 등 국가대표 제작진이 한데 모여 완성도 높은 작품이 기대된다.

홍상수 감독의 〈우리와 함께〉

홍상수 감독의 서른 번째 작품 〈우리와 함께〉는 감독주간의 폐막작으로 이름을 올렸다. 감독주간은 칸영화제 기간동안 해변을 낀 크루와제트극장에서 열리는 비공식부문으로 프랑스감독조합에서 선정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공식부문보다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며 홍상수 감독의 경우처럼 경쟁부문에 초청받지 않은 거장들이 이곳을 찾기도 한다. 올해에는 미셸 공드리의 신작과 작고한 포르투갈의 거장 마누에우 드 올리베이라의 〈아브라함 계곡〉(1993)특별상영 등을 감독주간에서 만날 수 있다. 감독주간 내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지만, 〈우리와 함께〉는 폐막작으로 수상레이스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우리와 함께〉는 칸에 초청받은 홍상수 감독의 열두 번째 작품이다. 작품으로 보면 〈당신 얼굴 앞에서〉 이후 2년만이며, 감독이 직접 참여하는 것은 〈클레어의 카메라〉 이후 6년만이다. 홍상수 감독은 2010년 〈하하하〉로 주목할만한 시선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올해부터 감독주간을 맡는 줄리앙 르질 집행위원장은 “단순함과 미니멀리즘의 힘을 쌓아가는 모습과 영화라는 삶의 즐거운 단면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유재선 감독의 〈잠〉은 비평가 주간을 찾는다. 비평가주간은 신예 감독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작품만을 대상으로 하며, 재기발랄한 라인업으로 영화제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지난해에는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가 폐막작으로, 허문영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유재선 감독의 〈잠〉은 잠드는 순간 겪는 끔찍한 공포를 이겨내는 신혼부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이선균과 정유미 배우가 주연을 맡았다. 봉준호 감독은 〈잠〉에 대해 “최근 10년간 본 영화 중 가장 유니크한 공포영화이자 스마트한 데뷔작”이라며 “관객들이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스크린 앞에서 이 작품과 마주하길 바란다”고 극찬했다.

거장들의 귀환, 화려한 경쟁부문 라인업

칸영화제는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린 작품 스물 한 편을 공개했다.(4월 25일 기준) 시네필을 설레게 하는 거장들이 다수 포진해 있어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미 황금종려상 수상 경력이 있는 켄 로치(〈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나, 다니엘 블레이크〉), 고레에다 히로카즈(〈어느 가족〉), 누리 빌게 제일란(〈윈터 슬립〉), 난니 모레티(〈아들의 방〉) 그리고 빔 벤더스(〈파리, 텍사스〉)의 신작이 경쟁부문에 포함되었으며, 이외에도 칸에서 황금카메라상(〈그린 파파야 향기〉)과 베니스에서 황금사자상(〈씨클로〉)을 받은 쩐 아인 훙이나 한국에서도 인기있는 웨스 앤더슨과 토드 헤인즈 감독 등도 신작을 발표한다. 또한 당초 애플TV+ 공계 예정이어서 비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린 마틴 스코세이지의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이 프랑스 내 극장개봉이 확정되며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은 이 작품을 경쟁부문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시사하였다. 칸영화제 경쟁부문은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만을 대상으로 한다.

올해 칸을 찾는 감독 중 유일하게 황금종려상을 두 번 받은 켄 로치 감독은 〈오래된 오크 나무〉로 4년만에 돌아왔다. ‘칸이 사랑하는 감독’ 켄 로치는 이번 작품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칸영화제 역대 최다 초청 감독 기록을 또다시 경신했다. 지난해 〈브로커〉로 송강호에게 한국배우 첫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긴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괴물〉로 1년 만에 칸을 다시 찾는다. 〈괴물〉은 〈어떤 가족〉의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프랑스(〈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한국(〈브로커〉)에서 작품활동을 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오랜만에 다시 일본에서 작업하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우작〉, 〈쓰리 몽키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나톨리아〉로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튀르키예의 거장 누리 빌게 제일란은 〈건초에 관하여〉를, 20세기 말을 대표하는 이탈리아 감독 난니 모레티는 〈미래의 태양〉을, 뉴저먼시네마를 이끌었던 빔 벤더스는 일본에서 작업한 〈퍼펙트 데이즈〉를 선보인다. 빔 벤더스는 독일의 예술가 안셀름 키퍼의 작품 세계를 다룬 3D 다큐멘터리 〈안셀름〉으로 특별상영 부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웨스 앤더슨의 〈애스터로이드 시티〉

또한 미국영화로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한국 관객에게도 친숙한 비주얼리스트 웨스 앤더슨의 〈애스터로이드 시티〉와 〈파 프롬 헤븐〉과 〈캐롤〉 등 개인의 정체성 문제를 통해 사회적인 이슈를 풀어내는 토드 헤인즈의 〈메이 디셈버〉가 있으며, 이탈리아 영화로는 은퇴를 예고한 거장 마르코 벨로키오의 〈납치〉와 〈행복한 라짜로〉로 칸에서 각본상을 받은 알리체 로르바케르의 신작 〈키메라〉가 첫 황금종려상 수상에 도전한다. 이외에도 헨리 8세의 이야기를 담은 역사소설 『퀸즈 갬빗』을 각색한 브라질 감독 카림 아이노우즈의 첫 영어영화 〈선동가〉와 에밀리 비첨이 칸 여우주연상을 받은 〈리틀 조〉를 연출한 오스트리아 감독 예시카 하우스너의 신작 〈클럽 제로〉, 중국 소도시 공장 노동자를 다룬 경쟁부문 유일한 다큐멘터리 왕빙의 〈청춘〉 등도 이목을 끌고 있다. 왕빙의 프랑스영화 〈맨 인 블랙〉도 빔 벤더스와 마찬가지로 특별상영 부문에도 초청받았다.

지난해에 이어 러시아 작품은 배제하는 추세가 이어졌으며, 경쟁부문 라인업에서 유럽영화의 비중이 높기는 하지만 튀니지와 세네갈 영화뿐만 아니라 아시아 작품을 여럿 포함하며 다양성을 고려한 점이 눈에 띈다. 또한 송사에 휘말렸음에도 개막식에 초청받은 마이웬, 조니 뎁과 달리 신작을 낸 로만 폴란스키와 우디 앨런은 초청받은 점도 눈여겨 볼 점이다. 경쟁부문 외에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이상한 삶의 방식〉과 장 뤽 고다르의 〈우스운 전쟁〉을 선보이는 단편부문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올해의 심사위원장은 지난해 〈슬픔의 삼각형〉으로 〈더 스퀘어〉에 이어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받은 루벤 외스틀룬드이다. 지난해 프랑스 배우 뱅상 랭동이 심사위원장을 맡은 것과 달리 올해는 영화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은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의 사회적 기능에 주목하겠다”는 외스틀룬드는 “좋은 영화는 집단 경험과 관련한 사고와 토론을 자극하기 때문에 ‘함께 보자’”는 메시지를 건넸다.

팬데믹 이후 칸영화제의 흐름을 살펴보면, 재작년 프랑스 감독 쥘리아 뒤쿠르노의 〈티탄〉, 그리고 지난해 스웨덴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의 〈슬픔의 삼각형〉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유럽영화의 강세’가 지속되고 있다. 아시아영화의 경우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제외한 다른 부문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데, 누리 빌게 제일란과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경쟁부문에 참가하는 만큼 올해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볼 만하다. 또한 아직 칸 수상경험이 없는 웨스 앤더슨과 토드 헤인즈가 최근들어 고전을 면치 못하는 미국영화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 세계의 거장들이 모인 올해의 영화제는 어떤 선택을 내릴지, 돌아온 칸의 계절을 주목해 보자.

 


사진제공 칸국제영화제

 

* 《쿨투라》 2023년 5월호(통권 10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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