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새는 울지 않으면 존재 증명이 어렵다: 김세인의 성장 소설, 『어린 새들이 울고 있다』
[북리뷰] 새는 울지 않으면 존재 증명이 어렵다: 김세인의 성장 소설, 『어린 새들이 울고 있다』
  • 박혜연(인턴기자)
  • 승인 2023.05.03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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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인 작가의 자전적 장편소설 『어린 새들이 울고 있다』 가 도서출판 작가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주인공 ‘우조’의 이야기이자 우조가 우조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김세인 작가는 “어느 지점에서는 소설이 아니고 자전적이어서 까무룩 해지기도 여러 번”이었지만, “일어나 새의 언어를 받아 적었다.”고 말한다. 중년의 여성 소설가인 우조는 자신의 고향 유정리를 배경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1부 ‘유정리에 머물다’, 2부 ‘생의 한 가운데에서’, 3부 ‘어린 새들이 울고 있다’로 나누어 총 22편의 짧은 이야기들로 구성한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저자(우조)는“동굴에 갇혀서 속죄와 발효의 시간”을 가졌다고 말한다. 속죄와 발효의 시간 동안 소설의 발원인, 그 긴장되는 순간을 여러 차례 만날 수 있었고 그런 시간이 추동력이 되어 장편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새가 되었다고 믿었던 우조는 날아오르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고, 미래를 위한 나무를 가꾸는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폭탄이 떨어졌고, 서른 세 해 동안 지성으로 가꾼 나무가 뿌리째 뽑혀버렸다. 그 자리에는 동굴이 하나 생겼고 우조는 동굴 속 어둠을 택했다. 우조는 어둠이 좋았고 이 어둠이 무덤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우조에게 지인이라는 인간들이 찾아왔다. “너의 슬픔”을 좀처럼 알아챌 수 없었기에 어떤 이는 침을 뱉었고, 어떤 이는 똥물을 끼얹었고, 어떤 이는 인과응보라고 지껄이고 갔지만 우조는 “저는 이제 한 그루의 나무가 되겠어요.”라고 말한다. 우조는 나무가 뽑힌 동굴로 돌아와서 웅녀처럼 웅크리고 앉았다.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새들이 너에게로 날아와서 새들의 언어로 노래할지도 모른다고, 제 가슴 털을 뽑아내어 둥지를 만들고, 알을 낳아서 따뜻한 가슴으로 새끼를 품을지도 모른다.”고 우조는 믿고 싶을 것이다. 우조는 생각한다. “나무가 되길 잘했어. 나무도 새처럼 울 때 눈물을 흘리지 않으니까.”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동명스님은 『어린 새들이 울고 있다』를 성장소설이라고 평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인공이 어린이나 청소년이 아닌 어른인데도 성장소설이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육체적인 성장이야 어린이나 청소년의 몫이겠지만, 영적인 성장은 나이와는 상관없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 노래 부르는 조카 한수, 정신적인 동 반자 경혜경, 그리고 갑자기 죽어버린 아들 윤슬 등은 이 소설의 제목에 등장하는 ‘어린 새’이다. 새의 울음은 노래와 분간되지 않는다.

이들의 노래는 울음이고, 이들의 울음이 노래이다. 결국 우조가 깨닫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어린’ 생명체가 울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문학이 출발하고 종교가 출발하고 철학이 출발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박완서의 『나목』, 이문구의 『관촌수필』, 신경숙의 『외딴 방』, 은희경의 『새의 선물』, 그리고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등과는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은 성장소설이다. 아마도 소설가 김세인은 ‘어린 새들이 울고 있다’는 것을 눈물로 깨달은 이 작품을 통해 더욱 깊어지고 넓어지리라.”

 

아침 숟갈을 놓자마자 방으로 들어간 노모는 침대에 누워서 잼잼잼을 하고 있다. 아기 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퇴행 연습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밥을 먹었으면 밥값을 해야 사람 노릇 제대로 하는 거라며?”
노모는 대답은 하지 않고 우조를 쏘아본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주먹을 쥐고 태어나고 죽을 때는 주먹을 피구 떠나는 거여.”
무슨 선문답인지. 죽을 때가 되니까 귀신이 되어가나 싶어서 우조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본다. “저승사자가 문간에서 기다리구 있는데, 내가 시방 아꺼운 시간을 밥값 하는 데 쓰게 생겼냐, 그 말이여.”

- 「장풍자 씨의 만담」 중에서, 본문 19쪽

 

두 해가 흘러갔다.
오늘은 첫눈이 오려는지 하늘이 암상 떠는 고양이처럼 새침하게 흐렸다.
사고가 난 그해 그날에는 첫눈이 많이 늙은이 살비듬 같은 눈이 희롱하듯이 나풀거리다 말았다. 그날부터 색조 화장을 하지 않았으므로 날씨로 표현하자면 우조의 얼굴은 ‘흐림’이었다. 오늘은 가부키처럼 분칠을 하고, 윤슬과 작별할 생각이다.
절에서 배운 대로 사시에 제를 지낸 후 우조는 윤슬의 방에 들어간다. 옷장을 열어 남은 옷을 꺼내고, 앨범들을 모두 꺼내고, 일기장도 꺼낸다.
일기장에서 종이가 툭 떨어진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잘 있거라!!!

- 「어린 새들이 울고 있다」 중에서, 본문 209쪽

‘어린 새들이 울고 있다’는 것을 눈물을 통해 깨달은 김세인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모든 이들이 작은 위안을 얻고 새살이 돋을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삶의 존재가 더욱 깊어지고 넓어지길 희망한다. 김세인 작가는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학예술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단편 「옥탑방」으로 계간 《21세기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었다. 문예진흥기금, 세종시전문예술지원금을 수혜했다. 작품집으로 『무녀리』, 『동숙의 노래』, 장편소설 『오, 탁구!』등이 있다.

 


 

 

* 《쿨투라》 2023년 5월호(통권 10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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