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Theme] 공동체의 사생활
[5월 Theme] 공동체의 사생활
  • 박동욱(눈뫼가름협동조합원)
  • 승인 2019.04.26 1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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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님께서 맛있는 돼지고기를 이웃들과 나눠 드시겠다고 해서요. 오늘 저녁 6시 30분에 시간 되시는 분들은 포트락 하나씩(반찬 하나도 괜찮아요) 준비해서 모여주세요.^^ 참석 원하시는 분들 5시까지 알려주시면, 맞춰서 밥을 짓겠습니다.”

 

 S는 전날 열린 마을 여성들의 1박 모임에 함께 하지 못했다. 마침 멀리서 손님들이 집을 방문하는 바람에 오래 준비한 모임에서 빠졌다. 그 아쉬움과 미안함을 담아 번개 모임을 열었다. 마을에서 가장 연장자인 S를 대신해 모임 공지는 J가 카톡으로 날렸다. 어른 열여섯에 아이들 다섯까지, 모두 스물한 명이 마을 공용공간인 모드락에 저녁 식사를 위해 모였다. 모드락의 공동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고, 각자 들고 온 반찬으로 상을 차렸다. 돼지고기볶음, 삼겹살 구이, 각종 쌈채소, 묵무침, 파김치, 배추김치, 떡볶이(어른용, 아이용), 순두부찌개, 멸치볶음, 계란말이, 마늘종 장아찌에 막걸리와 맥주, 이날은 특별히 고량주도 한 병 더해졌다.

 

 믿기지 않지만, 함께 모여 살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던 사이들이다. 28가구가 함께 집을 짓기로 하고, 설계와 건축을 진행한 1년 가량을 거의 매주 만나면서 이물을 텄다. 집들이 다 지어지고 이사 온 집이 절반을 넘어서면서 마을 살이도 더불어 활발해졌다. 함께 하는 식사와 한잔 술은 물론이고, 요가와 탁구 같은 여러 소모임이 씨줄과 날줄처럼 마을을 엮였다. 여기에 아이들은 마을의 불꽃이다. 외딴곳에 자리한 마을이 어쩌면 나른하고 처질 법도 한데, 아직 기저귀를 차고 있는 해님부터 초등학생 형 누나들까지, 어린 친구들의 대책 없는 경 쾌함이 마을의 공기를 한결 가볍게 만든다. 그들이 없었다면 마을은 한결 어두워졌으리라.

 

 S부터 해님까지 여러 세대가 어우러지자 자연스레 가족의 기운이 마을에 서렸다. 나 역시 슬리퍼를 신고 갈 수 있는 거리에 또래 친구들이 생겼고, 멀리 있는 혈육보다 왕래가 잦아졌다. 도시에서는 가족 하면 ‘핵가족 형태의 정상 가족’을 당연시하는 습관이 내게도 있었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유사 가족이 곳곳에서 등장해도 자기 주변이나 미디어가 즐겨 노출하는 이들 가운데 ‘비정상’(그러고 보니 정상이라는 말도 참 그렇네. 다른 이들은 비정상이라는 말인지)이 많지 않아서인지 둔감한 편이다. 언젠가부터 일본 영화를 보면, <행복 목욕탕>으로 개봉한 <물을 데우는 뜨거운 사랑>이나 <아주 긴 변명>도 그렇고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말할 것도 없이, 비전통 가족들이 속속 등장한다. 가족이 세상 단단해 보여도 그렇게 생각하는 만큼 금이 가고 깨졌을 때 충격도 심하다. 그렇다고 소를 잃고 ‘같은’ 외양간을 또 지을 필요는 없다.

 

 물론 우리 마을은 기존 가족의 균열이라는 극적인 사건을 통해 형성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누구에게나 닥칠 ‘비정상’가족을 미리 준비한 쪽에 가깝다. 당장은 각 가족끼리 오순도순 잘 사는 것이 목표이겠으나, 10~20년만 지나도 마을 가족들의 손으로 행복해질 가능성이 크다. 외양간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각자의 외양간들을 크게 두르는 대형 외양간을 또 하나 만든 셈이다.

 

 이제 마을을 새로 시작한 터라, 그 큰 외양간이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구 말처럼 지금은 ‘허니문 기간’이라 아직 행복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밖에서만 보는 관전평이다. 이 안에서는 얼마나 치열한지 모른다. 첫머리에 적은 일화는 그중 아주 보드랍고 말랑말랑한 이야기다. 공동체의 사생활은 정상 가족만큼이나 다사다난하며, 참여자가 많은 만큼 갈등 조정이나 전환이 오히려 더 힘들 때도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모든 일에는 장단이 교차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건 선택뿐이다.

 

 글을 마무리하는데 J의 남편이 커피를 들고 집에 들렀다. 어제오늘 열린 제주 북페어book fair에 단골 책방이 참여해서 인사라도 할 겸 갔더니 선물로 주더란다. 나눠 준 커피를 감사히 받고, 마침 저녁 반찬으로 부치고 있던 연근전을 들려 보냈다. 연근전은 J가 좋아할 취향이다. 그렇게 우리의 선택은 조금씩 제 길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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