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Theme] 진짜 가족에게 바라는 위안과 대안적 삶을 영화가 보여줄까
[5월 Theme] 진짜 가족에게 바라는 위안과 대안적 삶을 영화가 보여줄까
  • 정민아(영화평론가)
  • 승인 2019.05.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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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은 척박한 현실 속에서 개인의 유일한 위안처이며 최후의 근거지라고 한다. 개인이 어려울 때면 결국 가족에게 기대게 되며, 더 나아가 이상적인 가족 모습을 상상하며 집착하기도 한다. 혈연으로 구성되건 생활 공동체를 형성하건 누구에게나 가족은 있기에 가족관계가 영화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영화에서 가족을 다루는 방식은 언제나 변화하고 있고, 영화 속 가족의 모습은 시대와 사회상을 반영한다.

 1960년대 <로맨스 빠빠>, <서울의 지붕 밑> 같은 서민 가족 코미디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가족 내 민주적 질서와 화합을 유머러스하게 담아낸 이 가족 코미디들은 근면한 삶의 모습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만들기를 통해 이상적인 단란한 가족상을 재현해내었다. 1970년대 호스티스 멜로드라마와 1980년대 사회비판적 리얼리즘 영화들은 도시화와 빈곤, 폭력과 매춘 등을 통해 무너져가는 가족을 표현하는데 주력했다. 1990년대 기획영화 시대에는 세련된 도시인으로 재현되는 캐릭터 각자의 개인성이 강조되며 전형적인 형태의 가족조차도 좀처럼 부각되지 않는다.

 이렇게 흘러가는 가운데 2000년대에는 무한 경쟁 체제를 옹호하는 경제정치 논리에 자본의 불균등한 배분을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문화적 가치와 사회적 이상이 달라졌다. 공동체보다는 개인을 강조하는 가치로의 변화로 인해 가족의 안정성이 흔들리 고 있다. 가정은 자녀를 대학에 보내야 가족 공동 프로젝트가 완수되는 기능적인 단위가 되어서 경쟁을 효율적으로 해내기 위한 수단처럼 움직인다. TV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보여주는 지나치게 과 열한 경쟁 단위로서의 가족 모습에서 현실을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돈에 대한 인간의 탐욕은 무한대로 뻗어나가 경제 위기 담론이 일상화되면서 이에 따라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공포감은 더욱 팽배해진다. 높은 이혼율, 낮은 출산율, 청년들의 결혼 기피 현상, 한부모가족 증가 등 고전적인 의미의 가족 구성은 변화되고 있고, 이는 환경 변화에 적응하려는 가족의 진화로 봐야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혈연 중심의 관계가 아니라 진짜 말 그대로 밥을 함께 먹는 식구食具 개념으로 가족을 바라봐야 할 때가 왔다.

 지금 관객의 사랑을 받으며 극장가에서 상영 중인 <생일>(이종언)과 <미성년>(김윤석)은 모두 가족 문제를 전면에 드러낸다. 두 작품은 붕괴되어 가는 가족을 그리고 있는데,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이나 헌신으로 가족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하나하나의 바람과 소망이 가족 형태를 어떻게 변화 시킬 수 있는지 보여준다.   

 세월호 이후 남겨진 가족들의 이야기인 <생일>은 서로 떨어져 지내던 아내와 남편이 죽은 아들의 생일을 어떻게 맞이하게 될 것인가를 향해 서사를 쌓아올린다. 각자 아픔을 속으로 삭이며 살아가던 중 유가족 지원 단체에서 떠나간 아이의 생일을 특별히 기억하는 행사를 진행하자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이웃도 나선다. 상실감과 트라우마에 힘겨워 하는 사람들이 함께 그 사건을 마주하고 서로 껴안음으로써 고통을 서로 나누고 위로하는 가운데 새로운 삶의 공동체를 발견하게 된다. 같은 경험과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위안의 공동체로 쭉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성년>은 아빠가 친구의 엄마와 사랑에 빠져버린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스스로 무마해보려는 십대 소녀들의 이야기이다. 가장이 바람을 피우고, 가정이 위기를 겪고, 서로 상처 입는 어른들의 아수라장 가운데, 두 딸들은 갓 태어난 동생 아기를 보살피며 가족이 되어간다. 어른들은 분노하지만 아이들 각자의 용기와 용기가 만나 서로를 긍정하는 아름다운 순간은 무엇이 진짜 인간다움인지 보여준다.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책임지는 공동체가 진정한 가족임을 아이들은 직감적으로 안다.

 문제를 덮은 채 가정을 안정적으로 사수하는 것이 무슨 의미이랴. 즐거움도 위기도 공유하고, 위로를 주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명랑한 대안 가족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영화의 상상력은 우리의 소망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기에 영화에서 다양한 변종 가족의 모습을 보는 일은 늘 즐겁다

 

 

* 《쿨투라》 2019년 5월호(통권 5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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