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진선미 장관] 다양성이 보장되고 존중받는 포용 사회로 나아가길
[여성가족부 진선미 장관] 다양성이 보장되고 존중받는 포용 사회로 나아가길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 승인 2019.05.0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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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INTERVIEW] 여성가족부 진선미 장관 인터뷰

 

가족’이란 무엇인가

김민정(이하 김): 월간지라는 특성상 촉박한 마감일정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먼저, 장관님이 생각하시는 ‘가족’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진선미(이하 진): 우리는 일반적으로 엄마, 아빠, 자녀로 구성된 4인 가족을 가족의 형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정의를 혼인과 혈연 관계에 한정하지 않고 실재하는 다양한 가족형태를 포괄할 수 있도록 가족의 개념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살고 싶은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은 행복추구권의 핵심입니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특별한 한 사람’을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또한, 누구나 삶을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선택할 권리를 주고, 이들의 선택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사회는 통합과 안정을 이룰 수 있고, 구성원들의 행복지수가 높아질 것입니다.

 

서로 다른 문화가 교류 소통할 수 있는 장

김: 최근 한국사회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다양한 가족 유형이라면 다문화가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해 <한국다문화청소년상> 행사에서 “다양한 문화적, 언어적 배경을 가진 다문화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의 ‘미래’이며 소중한 ‘자산’이 될 거라 믿는다”는 장관님의 말씀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 다. 작년에 저는 나이지리아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패션모델 한현민 씨를 인터뷰하고 논픽션 『한현민의 블랙 스웨그』를 출간하였는데요. 한현민 씨는 피부색 때문에 차별을 많이 받았지만 다문 화가정 출신 아이들로 구성된 ‘레인보우 합창단’에서 활동하면서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진: 현재 다문화가족 구성원은 총인구의 1.9%로 96만 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다문화가족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해소하고, 다양한 가족이 공존할 수 있도록 열린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 사회 통합을 위한 과제입니다. 이를 위해, 여성가족부는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다문화 이해 교육을 실시하여 서로 다른 문화가 교류·소통할 수 있는 장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학령기 다문화가족 자녀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다문화청소년들이 교육 등에서 차별받지 않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하고, 가족관계 강화, 성장기 심리·정서적 안정 지원 등 성장 지지체계를 강화할 계획입니다.

 

비혼가정에 대한 인식 개선과 제도적 지원

김: 최근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결혼과 가족에 대한 가치관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2017년 방영된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새로운 결혼관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극중 남녀 주인공은 동거 후 혼인신고를 하는데, 이때 “우리의 사랑을 최우선으로 할 것”이라는 결혼계약서를 작성합니다. “결혼이든 비혼이든 혼인신고를 하든 안 하든 중요한 건 어떤 형태로든 옆에 있는 사람과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지난해 겨울, ‘다양한 동거 가족 간담회’를 개최하셨는데 다양한 동거 가족 중 비혼가정에 대한 인식 개선이나 제도적 지원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진: 세상엔 결혼하고 혼인신고를 하는 사람도 있 을 것이고,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함께 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은 일자리도 많지 않고 집값이 폭등해서 결혼하지 않고 그냥 함께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통계청이 지난해 13세 이상 우리 국민 3만9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8년 사회조사’에서도 ‘남녀가 결혼 안 해도 같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56.4%)이 2008년 조사를 시작한 뒤 처음으로 과반을 넘겼습니다. 물론 우리의 결혼관은 여전히 보수적이긴 하지만, 동거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많이 누그러진 것도 사실입니다.

 외국의 예를 봐도 프랑스·독일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동거 커플에게도 사회보장 혜택 등에서 법적 부부와 다름없는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프랑스(56.7%), 스웨덴(54.6%) 등은 신생아 가운데 혼외자의 비율이 절반을 넘고, 네덜란드 (48.7%) 스페인(42.5%), 미국(40.2%) 등도 늘고 있 는 추세입니다. 우리도 ‘혼인신고’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면, 연간 17만 건 넘게 이뤄지는 신생아 낙태 수술이 줄어들고, 미혼모가 낳은 아기들이 한 해  800명씩 엄마 품을 떠나 다른 집에 입양되는 슬픈 현실이 달라질 것입니다.

 따라서 결혼과 가족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에 맞추어 삶을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지 선택할 권리 를 주고, 사회복지 서비스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제도와 법률이 개정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건강가정기 본법 개정을 통해 가족교육, 가족상담 등 가족서비스의 서비스 대상이 확대될 수 있으며,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이 가족형태와 상관없이 사회구성원으로 동등하게 존중받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그간 제도권 밖으로 밀려났던 가족을 포용하고 어떻게 제도화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일상에서 차별받는 제도를 조사하여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논의를 할 계획입니다.

 

 

김: 진선미 장관님은 2016년까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혼인신고하기 전까지 불편함은 느끼지 않으셨는지요. 있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불편함이 있었는지, 그것이 정책을 구상하는데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진: 대학교 때 여섯 살 위 복학생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14년 간의 열애 끝에 사법연수원을 마칠 무렵인 1998년에 결혼식을 올렸지만 혼인신고를 하진 않았습니다. 호주제 위헌소송 변호를 하면서 남편을 호주로 하는 혼인신고를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호주제 위헌소송과 개인별 신분등록제 제정에 10년이나 걸리다 보니 혼인신고를 안 한 채로 계속 살게 됐습니다. 그러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에서 뿌리를 내린다는 의미로 혼인신고를 하게 됐습니다.

 아마 자녀가 있었다면 혼인신고를 바로 했을 것 같습니다. 많이 바랐는데 자녀의 연이 없었고, 우리 둘다 각자 소득이 있었기 때문에 결정적인 불편은 사실 없었습니다. 물론 세금, 보험 등에서 손해가 있었고 당장 항공사 마일리지나 각종 포인트도 공유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크게 아프거나 불의의 사고로 의사표현을 정확히 할 수 없을 때를 생각하면 가끔 막연히 불안해지곤 했습니다.

 남편을 만난 게 30년이 넘었고 무엇보다 내가 이 사람 없으면 살 수가 없으니까 혼인신고를 안 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다만 가족제도에 대해 고민하는 법률가이자 정치인으로서 가족제도의 한계에 대해 많이 고민했고, 스스로를 현재의 가족제도로 포용하지 못하는 어떤 ‘여지’로 남겨두고 싶었던 반항심도 있었습니다.

 제 사례뿐 아니라 변호사로서 많은 가족들을 만나면서 법적으로 규정해 놓은 관계의 가깝고 먼 거리가 실제로 사람들이 느끼는 사랑과 신뢰와는 너무 차이가 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법적으로 거의 모든 권리를 대신할 수 있는 부부지만 이미 수십 년 째 연락도 안 하는 분들도 있었고, 서로 모든 걸 내어줄 수 있지만 또 법적으로 완전히 남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만큼 법으로 인정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법과 제도는 사랑과 신뢰를 지원하고 키우는 방향이 되어야지, 사랑을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도 제 가족정책의 가장 큰 원칙은 첫째, 사랑과 신뢰의 사회적 총량을 키우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며 함께 살아가도록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지원을 하는 것입니 다. 그리고 둘째는 사랑과 신뢰의 정도만큼 법적으로도 인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가족제도가 유연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1인 가구를 삶의 형태로 인정하고 정책관점 전환해야

김: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구수에서 1인 가구 비중이 2017년 28.6%로 가장 높습니다. 1인 가정 역시 다양한 동거 가족 못지않게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진: 1인 가구를 하나의 삶의 형태로 인정하고 정책 관점을 전환해야 합니다. 1인 가구 유형 중 청년은 미혼, 중년은 이혼, 노년은 사별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1인 가구는 다인 가구에 비해 주거, 건강, 안전 등이 취약한 상태입니 다. 그동안 1인 가구는 정책 사각지대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1인 가구에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수요를 파악하고 정책안을 짜고 있는 단계입니다. 여성가족부는 1인 가구를 고려하여 2017년에 건강가정기본법을 개정해 1인 가구 대상 맞춤형 지원 강화를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였고, 지난해 8월 제3차 건강가정기본계획 보완 시 1인 가구 지원 사항을 포함하였습니다. 가구 형태와 무관하게 국민이 안정적이라고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여가부 장관으로서 가장 보람된 일과 힘들었던 일

김: “여가부 장관으로서 욕을 먹어야 한다면 제대로 먹겠다”라고 언론 인터뷰하신 것을 본 적이 있습 니다. 여가부 장관이 되고 가장 보람찼던 일과 가장 힘들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혹은 언제였는지 궁금합니다.

진: 가장 보람찬 일은 올해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여성독립운동가 달력’을 제작한 것입니다. 달력은 나라를 위해 세운 공로에 따라 훈장이나 포상을 받은 여성독립운동가 357인으로 구성하였고, 이를 통해 여성독립 운동가들을 재조명하고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고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가장 힘든 일은 여가부에 대한 오해 때문에 여가부가 비판받는 것입니다. 여성가족부를 비판하는 이유가, 흔히들 여성만을 위해 일하고, 여성가족부가 지원하는 정책들에 대해서 남녀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 여성가족부 정책은 남녀 모두 함께 발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앞으로 여성가족부가 하는 일에 대해 대한민국 남녀 모두가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한 시대적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가족부는 2030 청년이 겪는 어려움을 들여다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전적이고 건설적인 의제를 설정할 수 있는 청년참여 플랫폼을 마련해 청년과 소통하며 의견을 정책결정과정에 반영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 해결책 마련을 위해 노력할 예정입니다.

 

 

김: 마지막으로 2019년 올 한해 활동계획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진: 앞으로도 여성가족부 장관으로서, 우리 사회가 더불어 살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 길에 앞장서고, 모든 이들이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차별받지 않는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으며,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말 걸기를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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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몇 년 사이 <응답하라> 드라마 시리즈가 대중적으로 큰 호응을 얻으며 방영되었다. 주된 줄거리는 여자 주인공의 남편 찾기였지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 드라마 시리즈에 열광했던 가장 큰 이유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하나의 가족처럼 유사가족을 형성하며 진한 가족애를 나누기 때문이었다. 그 안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다양한 캐릭터의 가족 구성원이 존재하는데, 아무런 편견과 고정관념 없이 서로 한 데 어울리며 희로애락을 함께 나눈다. 드라마 방영 내내 젊은 배우들을 향한 관심 못지않게 어머니와 아버지를 연기했던 중년 배우들에게 큰 애정이 쏟아진 것 역시 그 때문이었다.

 다양성이 보장되고 존중받는 포용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제도적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정책 개선과 함께 다양성을 인정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전제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가 먼저 변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가 변하고 사회가 변하고 세상이 변한다.

 변화의 중심에서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여성가족부를 응원하며 인터뷰를 마친다. 바쁜 일정에도 귀한 시간 내주신 진선미 장관님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쿨투라》 2019년 5월호(통권 5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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