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하나, 그리고 둘] 최악의 폭염과 함께 기억될 영화들 - 〈신과 함께〉와 〈어느 가족〉
[윤성은의 하나, 그리고 둘] 최악의 폭염과 함께 기억될 영화들 - 〈신과 함께〉와 〈어느 가족〉
  • 윤성은(영화평론가)
  • 승인 2018.09.01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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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과 함께: 인과 연>

7월 중순부터 약 한 달간은 아스팔트의 온도만큼 극장가의 열기도 뜨거워지는 기간이다. 숨 막힐 듯 더웠던 올해 여름도 바깥 기온에 비례한 박스오피스가 열렸다. 블록버스터로는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감독 크리스토퍼 맥쿼리)이 포문을 열었고, 그 다음 주 개봉한 <신과 함께: 인과 연>(감독 김용화)이 <인랑>(감독 김지운)의 부진까지 껴안을 만큼 단기간에 많은 관객들을 모으면서 연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편, 작년과 올해 칸영화제에 초청되었던 작품들이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는데, <어느 가족>(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더 스퀘어>(감독 루벤 외스틀룬드), <주피터스 문>(감독 코르넬 문드럭초) 등은 다양성 영화관을 달궜던 영화들이다. 특히, 올해 황금종려상 수상작이자 국내에서 굴지의 티켓 파워를 갖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은 올해의 아트버스터로 등극할 만큼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공작>(감독 윤종빈)은 제작 규모로는 블록버스터지만 일반적인 첩보물과 달리 액션보다 대사와 구성의 치밀함을 앞세운 작품이었다. 올해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공식 초청되었으나 같은 부문에 상영된 바 있었던 <부산행>(감독 연상호), <악녀>(감독 정병길) 등과는 결이 다르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만하다.

오락 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욕구를 채워준 것은 단연 <신과 함께: 인과 연>(이하 ‘인과 연’)이었다. 전편인 <신과 함께: 죄와 벌>(이하 ‘죄와 벌’)이 국내영화관객동원 2위(약 1,442만명)에 올랐던 만큼 사전 최고 예매량, 사상 최고 오프닝, 1일 최다 관객동원수 등 많은 기록을 세우며 천만 고지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알려진 대로 ‘죄와 벌’, ‘인과 연’은 두 편이 동시에 제작되었고 ‘죄와 벌’에 등장했던 사건과 캐릭터가 ‘인과 연’에도 그대로 이어지지만, 내러티브의 방점은 다른 지점에 있다. 앞서, ‘죄와 벌’은 한국의 발전된 VFX 기술로 재현한 7개의 지옥과 액션 신들, 그리고 후반부 심금을 울리는 모정과 효심의 멜로드라마로써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으나, ‘인과 연’은 저승 삼차사가 이승에서 맺었던 숨겨진 인연과 ‘강림’(하정우)이 망자, ‘수홍’(김동욱)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는 재판 과정이 중심이다. 이승에서 내레이터 역할을 하는 ‘성주신’(마동석)과 ‘해원맥’(주지훈), ‘덕춘’(김향기)이 소외계층의 할아버지와 손자를 돕는다는 설정은 전편에서 ‘자홍’(차태현)이 보여주었던 선행과 연결되며 두 편의 톤 앤 매너를 유지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 이 시리즈가 연말 및 여름휴가 시즌에 가족 단위의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옥에서 펼쳐지는 강림과 수홍의 여정은 1편에서 조금씩만 변형되었는데, 특히 CG 기술이 새롭게 부각된 것은 공룡이 등장하는 신 정도이다. 온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할 만큼 강력한 최루성 신도 없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2편이 1편과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는 점이 흥행에 더욱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시각적 어트랙션 보다 이야기의 밀도에 더 매력을 느끼는 관객층들이 상당수 있었기에, 개봉이후 1편을 선호하는 층과 2편을 선호하는 층이 분분히 관람평을 개진하면서 천만이라는 탑을 쌓아올려 나가는 양상을 보였다.

‘인과 연’이 영화의 절정부로 선택한 것은 수홍이 죽지 않은 것을 알았음에도 그를 묻으려 했던 원일병(도경수)과 박중위(이준혁)를 지옥으로 불러내 그들의 죄를 시인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유사한 죄를 지었던 강림과 그를 데려왔던 염라의 과거도 함께 드러난다. 이 부분은 사실상 전편과 마찬가지로 ‘죄와 벌’이라는 부제가 붙었어도 어색할 것 없을 만큼 윤리적인 측면을 파고드는데, 오락적이거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전반부까지 성주신과 두 차사의 조합이 만들어냈던 가벼운 유머를 상쇄하는 진중함이 있다. 원일병과 박중위, 강림의 죄가 밝혀지기는 하지만 그들에 대한 비난의 시선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은 극 중 죽음을 맞거나 이승에서든 저승에서든 나름의 벌을 받는 중이기 때문이다.

접근 방식에 있어서나 전반적인 결에 있어서나 비교하기 어려운 작품임에 틀림없지만, 이 지점에서 <신과 함께>와 <어느 가족>은 상통하는 데가 있다. <어느 가족>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는데도 끈끈한 유대감을 갖고 오순도순 한 집에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다. 누가 나의 가족인가. 나는 누구와 어떻게 가족이 되는가에 대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식 성찰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혈연관계가 없어도 함께 먹고 자고 대화하고 마음을 나누면서 가족이 되어가는 이들의 이야기, 그 과정에서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가 성장하는 이야기가 그의 작품들에서 반복되어 왔다. 그러나 캐릭터의 풋풋함과 온기 어린 서사는 매번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무엇보다 기쁨이나 슬픔의 정서를 과잉되지도 결핍되지도 않게 적확한 양으로 이야기에 흘려보내는 연출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을 다시 기다리게 만드는 힘이었다.

Ⓒ 어느 가족
Ⓒ <어느 가족>

<어느 가족>은 그가 그토록 잘하는 가족 서사에 중량감이 컸던 최근작, <세 번째 살인>이 파고들었던 윤리적 주제까지 합성해 놓은 작품이다. ‘오사무’(릴리 프랭키)는 겨울에 아파트 난간 복도에서 떨고 있는 ‘유리’(사사키 미유)가 불쌍해 보여 노인부터 소년까지 다섯 식구가 살고 있는 집으로 데려온다. 온 몸에 폭력의 흔적이 있는 유리는 며칠이 지난 후에도 부모에게 돌아가지 않으려 하고 ‘노부요’(안도 사쿠라)도 유리를 보내지 말자고 한다. 그렇게 함께 살게 된 여섯 식구가 잊지 못할 여름을 맞는다. 피보다 진한 유대를 만들려는 듯 계속해서 서로에게 닮은 점들을 찾아내는 모습이 익살스럽고도 애처롭다.

윤리적 문제는 유리가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고 해도 부모의 동의 없이 유리를 데려와 키웠다는 점, 유리가 자연스레 이 좀도둑 가족(원제: 万引き家族)에게 도둑질을 배우게 된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게다가 할머니가 죽자 이들은 장례 비용 때문에 시신을 집 안에 묻어버린다. 그러나 이들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에 작동하는 것은 애당초 로고스(logos)가 아니라 파토스(pathos)다. 이들 각자가 진짜 가족으로부터 배신당하고, 사회로부터 소외당해온 과거가 플롯 전반에 조금씩 묻어나기 때문이다. 더욱이 영화는 결말부에서 소년 ‘쇼타’(죠 카이리)의 결심을 통해 이들이 불법을 일삼는 대안 가족 생활을 청산하고 노부요가 대표로 죄 값을 치르도록 함으로써 관객들이 윤리적으로 갈등하는 수고를 덜어준다. 남은 처벌과 분노의 대상은 유리의 부모와 오사무 가족을 집요하게 취조해 형을 내리는 공권력으로 좁혀진다.

<신과 함께>가 죄를 심판하는 지옥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죄에 대한 인간의 내면적 갈등에 심층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사건 이면의 진실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쉽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영화 자체가 추구하는 지점이나 지향하는 관객층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가족>이 파고든 현실의 씁쓸한 맛까지 <신과 함께>가 도달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두 작품이 공히 죄 값을 상정함으로써 나름의 ‘정의’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만큼은 기억해 볼만하다. <어느 가족>의 경우에는 아직 처벌의 대상이 남아있을 뿐이다. 유례없는 폭염이 이어졌던 2018년 여름을 이 두 편의 영화와 함께 기억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쿨투라》 2018년 9월호(통권 5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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