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리뷰] 내가 꿈꾸는 또 다른 가족
[독자 리뷰] 내가 꿈꾸는 또 다른 가족
  • 이연수(독자, 62세, 서울 용산구 보광동)
  • 승인 2019.05.01 0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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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꾸는 가족형태가 있다. 아이들이 한참 어릴 때는 학부모 모임에서 마음 맞는 아이들 친구 엄마들과 만나 잠깐만 이야기를 나눠도 좋을 때가 있었다. 그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문득 꺼내 본 이야기이다.

우리 먼 훗날에 아이들 모두 출가하면, 서울에서 가깝고 공기 좋은 곳에서 마을을 이루며 사는 게 어때?”

엄마들은 아이들보다 더 우정을 돈독히 하며 꿈같은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나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성인이 된 아이들은 결혼에 대한 꿈을 더러는 접었다. 결혼을 했다고 해도 아이들은 우리들처럼 전업주부가 될 수 없었다. 할머니가 된 우리들 또한 공기 좋은 곳에서 마을을 이루며 살기는커녕 손자손녀들의 육아를 도맡아 제2의 육아 전쟁에 돌입하게 되고 말았다.

주말마다 찾아오는 손자손녀가 귀여워 맛있는 집밥을 해주며 보람을 느끼던 시대는 꿈같이 흘러갔다. 우리는 주 5일 내지 일주일 내내 자녀들의 집으로 출근하다시피 하며, 손자손녀들의 손을 잡고 유치원으로, 학원으로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돌봄 할머니 할아버지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 집엔 결혼하지 않은 딸이 하나 있다. 그녀는 굳이 결혼 같은 것 하지 않고, 혼자 살기를 원한다. 그런 그녀가 언젠가 분가해서 혼자 살았던 적도 있다. 그런데 몇 달 정도 지내보더니 외로워서 못 살겠어하며, 집으로 슬며시 들어오더니 그 이후로는 다시 나갈 생각을 않는다.

또한 나에겐 이혼하고 혼자 사는 여동생도 있다. 그녀는 연로한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 부모님은 이혼한 딸을 부끄러워하며 수십 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딸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몸이 한두 군데씩 말을 듣지 않고, 기억도 총기도 점차 흐려지자 부모님은 결국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부모님과 함께 살겠다고 나선 것이 그녀였다. 나는 착하기만 한 그녀가 무척 안쓰럽다.

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돈을 벌어오는 그 아버지만을 위해 모든 것을 장만하고 살피는 어머니의 1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몸까지 약해 저것이 살아남아 사람구실이나 하겠나.’ 하며 늘 어른들의 걱정을 들으며 자랐다.

이러한 나에게 다가온 동반자 또한 어린 시절은 부모의 보살핌이나 안온한 환경 같은 것은 전혀 누리지 못하고 조부모의 슬하에서 형제 둘만 서로 의지하며 세상 모진 풍파를 겪어온 남자였다. 우리는 가정을 꾸리고, 슬하에 31남을 두었다. 어린 시절 우리가 받아보지 못한 사랑과 보살핌과 안정된 생활을 우리 자녀들에게만큼은 아낌없이 베풀며 나눠주고자 우리는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끝으로 내가 꿈꾸는 내 생의 마지막 가족 구성을 소개한다.

결혼도 하지 않고 가정살림도 일체 못하는 나이든 우리 딸을 우리 집의 가장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젊을 때는 무서울 것이 없었지만 이제는 성한 곳보다 아픈 곳이 더 많은 우리 남편과 착해빠져서 자신을 챙기는 데에는 영 소질이 없는 측은한 나의 여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다.

우리는 조금씩 부족하고 생각도 다르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조금씩 부족한 서로의 어깨를 내어주며, 사랑으로 완성해나가는 가족, 그것이 내가 꿈꾸는 또 다른 가족이다.

 

 

* 《쿨투라》 2019년 5월호(통권 5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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