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루미스 시인] 단단하고 날카로운 가시에
[수잔 루미스 시인] 단단하고 날카로운 가시에
  • 김준철(시인, 본지 편집위원)
  • 승인 2019.05.01 0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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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잔을 인터뷰하게 되었다. 그녀를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몇몇 미국 시인들의 모임에 초대되어 참석했을 때, 몇 차례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대로 된 통성명이나 친분을 쌓지 못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외관상 그녀가 풍기는 아우라가 상당했기에 쉽게 다가서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녀 주변에는 항상 여러 사람들이 모여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Salon 2.0’(이 모임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다룰 예정이기에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기로 하겠다.)이라는 Private 예술 강연회에서 강사로 온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었고 드디어 이야기를 나누며 인터뷰 요청을 하게 되었다.

 시인 수잔은 50여 년간 주요 미국 시인들을 연구하여 왔으며 특히,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계관시인인 필립 레이븐에 대한 연구를 해 왔다. 가주 프레즈노 대학에서 석사를 받았고 부루링스시 상 외에도 많은 문학상을 수상했다. 최근 시집 ‘24시간 개방’이 링스하우스 출판사에서 발행되었다. 30여 년간 UCLA에서 작가수업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80년대 시운동인 ‘Stand-up Poetry’에 대해 가주 여러 대학에서 강연해오고 있다. 이 운동의 취지는 시학이 학문적 집필과 대치적 시적 공연의 중간 역할을 촉진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그녀를 말한다. 이제 그녀를 만나보기로 하자.


J 당신도 알다시피 이번 우리 잡지의 주제가 ‘가족의 재구성’이다. 현대 사회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혼밥, 혼술 등…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내가 듣기로 당신도 싱글이라고 알고 있다. 맞는가?

S 그렇다. 독신이다.

J 당신의 경우, 자의적 싱글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현재 많은 사람들이 타의적으로 싱글의 삶을 선택한다고 생각된다. 그 역시도 이미 오래된 이야기일 수 있다. 이제는 자의적, 타의적인지도 모른 체 싱글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가? 그랬다면 어떻게 생각하는가?

S 맞다. 나 자신의 선택으로 독신의 길을 택했다. 나는 어린 시절에도 결혼을 원했던 기억조차 없다. 그 시절, 결혼을 선택으로 보는 일은 거의 드문 일이었고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산다는 것은 바람직하게 여겨지지도 않았다. 또한 그 당시 결혼하지 않은 여인을 ‘늙은 하녀’라고 부르곤 했다. 그 안에는 어떤 슬픔이 담겨져 있다. 또한 그 와중에 한 번도 나의 로망스를 꺾어 본 적도 없다는 의미도 함께 들어있다.

 사실상 이제는 우리의 언어에서도 사라지고, 그 뜻 또한 의미 없는 말이 되었다. 그것은 비단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최소한 독신 여성의 삶을 특이하게 보지 않고, 이제는 ‘늙은 하녀’라는 말을 하진 않으니까……. 앞선 질문에서 언급한 결혼을 원하지만 할 수없는 여성에 대한 나의 예상적 추리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구별점이 있을 것이다. 배우자를 찾지 못한 외로운 삶과 가족에 대한 의무적 충성으로 결혼하는 경우라고 본다. 이 문제는 아무래도 ‘그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것이냐?’, ‘사회적 관습에 따를 것인가?’를 그들 자신에게 먼저 물어봐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결혼을 원한다면 그 희망대로 배우자는 나타날 것이다.

J 당신에게 싱글의 의미를 무엇이고 왜 싱글을 선택했고 어떻게 그 삶을 즐기고 있는가?

S 나는 최소한 내가 원한다면 24시간 동안 아무에게도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나는 내가 원할 때 어디든 오고 가며 또 밤 새워 일하고 거실 바닥에 내가 쓰던 원고들을 흩어놓고, 부엌에는 닦지 않은 그릇들이 쌓여 있으며 불규칙한 식사를 하고 누군가에게 늦은 귀가를 전화로 알리지 않아도 된다. 또 나는 끊임없이 곁에 있는 파트너의 감정을 관찰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내 책임 하에 시간을 맞추어야 하는 작업이나 세금납부, 경조사 등의 모든 일이 내게는 나 자신의 삶인 셈이다.

J 또한 당신의 예술 활동에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S 만일 내가 결혼을 했고 아이가 없다면 아마도 그런대로 내작업을 이어갈 수 있겠다 여겨지지만 만약 아이가 생긴다면 내 모든 크고 작은 작업에 큰 도전이 될 것이다. 내가 읽은 시인 Sylvia Plath의 이야기에서 그녀는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에 작업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사실 일찍 일어날 수 없는 밤 올빼미다.

J 사실상 모든 예술 활동이 예술가 자신이 완성해 나가는 것이겠지만 종국에는 그 예술을 향유하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남겨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에 대한 견해는?

S 아니다. 나는 나의 작품과 나의 공연이 타인들에게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고 본다. 얼마 전 가졌던 시 강연회 린다 쿠닉의 Salon 2.0에서의 시 낭송처럼 나는 많은 낭송과 다양한 발표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누아르 영화(1940년대와 50년대의 흑백 범죄 영화)와 나의 누아르 시(영화 누아르나 하드보일 형사소설의 영향을 받은 시)에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있다.

  나는 현재 작가 수잔 헤이든과 공동 큐레이터로 활동하는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그것은 ‘Kiss Me You Criminal’라고 불리며 그 작품에 배우, 시인, 소설가, 예전 인기 록그룹(80년대 인기 있던 그룹 ‘The Bangles’) 등을 모아 noir 작품으로 공연과 낭송을 하게 된다. 물론 나의 작품도 발간 될 예정이다. 물론 내 작품은 내 시선 집과 온라인 문학 웹사이트에 실려 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라는 존재가 독자층을 크게 확장하는데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J 혼자의 삶을 표현한 작품으로 인상적이었던 작품이 있다면 한편 소개해 줄 수 있겠는가?

S 내 생각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A Room of One’s Own’는 페미니스트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라고 본다. 이 작품은 당시 나의 세대는 물론 이 전 세대 중 문학과 인문학을 공부한 모든 이들에게 큰 영향을 준 에세이라 하겠다. 또한 받아들이기에 좀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당시 황당하고 쓰레기 같은 하찮은 일상을 다룬 Helen Gurley Brown의 ‘Sex and the Single Girl’은 나에게는 매우 인상적이었고 최고의 작품이 되었다. 내 생각에 이 책이 나의 독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J 당신의 시 세계를 조금 더 설명해 주겠는가?

S 지난 세대, 거의 모든 미국 시인들과 영어권 시인들이 에즈라 파운드가 ‘추상의 공포 속으로 들어가라’고 말한 충고를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충고가 아니라 명령이었다. 이것이 의미를 가지기에, 추상명사 추상적인 언어들은 영어로 쓰는 시에서 단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또한 그것들은 모호하고 게으른 세대와 진부함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아마도 그것들로 인해 저는 그 무엇보다 인장력이나 물리적, 감각적 충전을 갈망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외에 나의 시들은 엘에이 인근 풍경을 떠오르게 하지만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다. 내 시는 또한 불경하고 신비한 다소 공상적이며 사색적인 주제도 다루고 있다. 나의 느와르 시들 중 일부는 상당히 폭력적이다. 특히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주제로 접근하기도 한다.

J 당신의 시 낭송을 들었을 때, 굉장히 극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의 내용이나 목소리, 표정, 몸짓이 너무 잘 어우러졌다. 어떤 것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작품을 쓰는지 궁금하다.

S 내 시의 주제는 위에서 충분히 설명했다. 당신도 참석했던 시 낭송회에서도 몇 사람들이 내 낭송을 듣고 나에게 배우인지 물어 왔었다. 사실 나는 엘에이에서 수년간 배우 수업을 받았고 몇 년 동안 연극무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래서 관객과 무대에서 마주하는데 불편함이 없다. 어떤 날은 시 낭송을 할 때 연극에서 ‘Pushing’이라고 부르는 극적인 연극적 에너지를 낭송에 가져와 사용하기도 한다. 난 우장하고 과도한 공연은 싫다. 그것은 낭비이고 사치이며 바보 같은 짓이다.

J 마지막으로 싱글을 선택해 살아가는, 싱글을 고민하는 많은 이들에게, 그리고 쿨투라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S 나는 내가 자라지 않았고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하는 것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혼이나 독신 생활에 대해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어떤 상황에서도 술주정뱅이나 마약 중독자와 결혼하지 마라. 폭력성이 드러나는 사람과도 결혼하지 마라. 아이를 가질 계획이라면 좋은 엄마나 아빠가 되지 못할 사람과 결혼하지 마라. 당신의 야망과 열망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지 마라. 한동안은 미인과 결혼하지 마라. 아름다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결혼을 제외하고는 당신 자신과 당신의 파트너와 행복해라. 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누구의 일도 아닌 당신의 삶이기 때문이다.

 수잔과의 만남을 끝내며 내가 사랑하는 것들과 내가 선택한 것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독신의 삶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싶은 하나를 위해 그 한가지의 삶을 택하여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매우 날카롭고 단단하지만 따스한 온기를 지닌 가시 같다는. 상대의 질문을 깊이 이해하려고 했으며 또 그 이해한 만큼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하고 있었다. 삶 자체를 자신의 글 안에서 충분히 녹여내고 또 드러내는 작가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수잔과의 인터뷰는 하나의 모습으로 당당히 살아가고 있는 한 시인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끝으로 그녀를 닮은 그녀의 시 한편을 소개한다.

 

나의 뇌리 속에 있는 도시는 완벽하다

수잔 루미스 / 번역: 김준철


도넛츠 여관에 있는 모든 남자들은 사랑에 빠져있다.
여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다 그리고 전에 없이 공터에서
방랑자의 외치는 소리는 낮게 흔들리는 벨소리 같고
아직 나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다
고속도로와 거리의 성자, 이 거리에 버스들은
빛의 화물을 실고 떠내려간다
이 거리 몇 몇 사람은 나의 눈에 익은 사람이지만
이제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그들은 내가 원하던 무언가를 태우고 있다
누가 무엇을 생각하든 상관하랴?
이 교통체증이 으르렁거리며 축복을 떨쳐버린다
어디든, 파도를 헤치고, 이렇게,
그래, 그렇다, 바다 같은 것이다

 

 

* 《쿨투라》 2019년 5월호(통권 5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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