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Theme] 여행의 참 의미
[6월 Theme] 여행의 참 의미
  • 곽광수(서울대 명예교수)
  • 승인 2019.06.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마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만萬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것이 인류 전체에 관계되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짐작게 한다. 사실, 집단 무의식이라는 정신의 깊은 차원을 상정하는 심층심리학의한 경향에서는 집단 무의식의 표상, 즉 이른바 원형적 이미지의 하나로 무한한 움직임의 이미지를 든다. 이것은 우리 사람들의 정신의 가장 깊은 곳에 끊임없이 옮겨감에 대한 욕구가 있음을 뜻한다. 문학에서는 이에 대한 증거가 쉽사리 발견되는데, 그 욕구의 구체적인 표현인 여행이 문학에서 다루어지는 가장 중요한 테마의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낭만주의와 상징주의 문학에서 그러한데, 왜냐하면 낭만주의와 상징주의의 가장 중요한 테마가 이상적인 것, 구원久遠한 어떤 것에 대한 지향이고, 여행은 바로 그 이상으로의 떠남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기실 위에서 말한 원형이란 인간이 이상적으로 그리는 상태를 표상하는 것이라고 하므로, 원형적 이미지로서의 무한한 움직임은 그 자체가 바로 인간의 이상의 하나인 셈이다. 예컨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다음 시구를 접하고 어느 누가 깊은 울림으로 환희에 찬 전율을 느끼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여행이란 단순히 레저만이 아니다. 인간은 그가 존재하게 된 이래 이 세상에 결해 있는 것, 완전하고 낙원적이고 신적인 어떤 것을 끊임없이 추구해 왔지만, 여행은 바로 그 열정적인 추구와 비슷한 무엇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여행에 의해 환기되는 그 모든 낭만적인 뉘앙스의 원인이 여기서 비로소 이해된다.

 이상에 대한 갈망은 꿈이라는 말로 달리 표현할 수 있고, 꿈은 우리들이 역경에 처해 있을 때에 더 잘 꾸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가, 모든 면에서 나의 젊은 시절에 비해 필요한 것들을 넘쳐나게 갖춰 받고 있는 오늘날 젊은이들은 우리들 세대보다 =는 꿈을 잘 못 꾸는 것 같다. 여행을 두고 보더라도 오늘날 젊은이들은 더 쉽고 안락하고 더 멀리 여행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들의 여행에는 위에서 말한 낭만적인 열정의 분위기가 없어 보이고, 객기로운 가벼운 즐거움, 레저에 대한 욕구가 승해 보인다.

 여행이 가지는 근원적인 인간적 의미를 되찾기 위해서는 우선 혼자 떠날 일이다. 낯 모르는 승객들 사이에서 흘러가는 차창 풍경들에 망연히 시선을 빼앗긴 채 깊은 사념에 빠져 있는 젊은이의 진지한 옆모습,—이것이 내가 젊은 시절 가지고 있던 여행의 이미지였던 것이다. 지금 내 머릿속에서는 그 젊은이의 옆모습이 내 옆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그게 언제였던가? 1970년인가 1971년인가의 여름이었다. 나는 내가 공부하고 있던 남불南佛에서 마시프 상트랄이라고 불리는 중불中佛의 산악지대를 거쳐 파리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1968년에 프랑스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남불의 조그만 대학도시 엑스 앙 프로방스라는 곳에 와 있었던 것이다. 엑스 앙 프로방스에서 파리로 가려면, 마르세유로 나와 리용을 거쳐 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다. 그러나 나는 파리로 가는 도중에, 내가 공부하고 있던 조르주 베르나노스라는 작가의 무덤이 있는 중불 엥드르 지방의 펠르봐젱이라는 시골 마을을 찾아볼 생각을 하고, 마시프 상트랄을 거치는 여정을 잡았던 것이다.

 버스와 기차를 이리저리 갈아타고 펠르봐젱에 닿았을 때는, 하룻밤을 기차 안에서 보낸 뒤라, 오후 초였는데, 십여 호의 그 벽지 마을은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개소리도 들리지 않는 채로, 초여름의 햇빛 아래 고즈넉이 누워 있었다. 하나뿐인 여관에 짐을 맡기고 마을의 묘역을 찾아가 마침내 베르나노스가家의 무덤을 찾아냈다. 나는 비석도 없이 정사각형의 펀펀한 석판에 덮여 있는 그 무덤 앞에서, 초라하게 지나갔다는 베르나노스의 장례식 장면을 눈앞에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장례식에는 특이한 두 인물이 참석하고 있었는데, 스페인 내전에 공화파 정부군을 위해 참전했던 작가 앙드레 말로와, 또 바로 그 스페인 공화파 대표가 그들이었다. 이것은 베르나노스의 인물됨을 가늠케 하는 좋은 일화이다. 그는 카톨릭이었으므로, 카톨릭의 후원을 받았던 프랑코의 왕당파 반란군에 동정적이었으나, 그들의 공포정치를 목격할 기회를 갖게 되자 그들을 감연히 고발했던 것이다….

묘역을 나와 마을 변두리로 나가 보니, 사위로 아득히 지평선까지 밀밭이 펼쳐져 있고, 그 위로 드문드문 구름덩이를 안은 초여름의 하늘이 지평선에 잇닿아 있었다. 그 무한한 공간, 그 무한한 고요, 거기에는 어떤 영겁의 장엄한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것은 그 참혹했던 스페인 내란 같은 인간들의 불행도 조용히 가라앉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문득 베르나노스의 유명한 말 한 구절을 떠올렸다: <인간들의 불행은 우주의 경이이다.>

 나는 아직도 그 평범한 프랑스 시골 마을을 찾아간 그 여행이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물론 거기에는 베르나노스라는 깊은 정신의 작가가 관계되어있기는 하지만, 나는 그 여행에서 이 세계의 악과 부조리를 다시 한번 생각하고, 그것들을 감싸안아 승화시킬 수 있는 어떤 장엄한 조화를 한결 가까이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열정적인 정신적 추구라는 그 근원적인 인간적 의미를 구현하는 여행, 이 세계와 이상적인 세계 사이의 괴리의 신비를 사색하게 하는 계기가 되는 여행이야말로 정녕 참된 여행일 것이다.

 

 

* 《쿨투라》 2019년 6월호(통권 60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