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Theme] 태초의 그리움,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바이칼호수
[6월 Theme] 태초의 그리움,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바이칼호수
  • 이승철(시인)
  • 승인 2019.06.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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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결국 나 자신을 찾고자 떠나는 게 아닐까. 때론 고통과 근심을 떨쳐버리기 위해 우리는 곧 잘 서식지를 탈출하곤 한다. 백석 시인이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며, 왜 북방으로 떠나갔던가. 그는 자신의 옛 한울과 땅으로― 그의 태반으로 되돌아오기 위해 북 방을 유랑했다. 나 또한 내 본적지를 발견하고자 그 날 문득 시베리아로 떠나기로 작정했다. 불혹과 지천명을 지나 어언 이순의 시간표에 당도할 때까지 몸부림친 숱한 흔적들을 기억한다.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때때로 그는 홀로 울다가 웃곤 했다. 그해 정초, 백두산 장군봉에서 휘날리는 눈보라 송이송이를 상상하다가 마침내 그는 시베리 아 횡단열차를 타기로 마음먹었다. ‘한민족의 시원지’라고 일컬어지는 그곳, 바이칼호수와 알혼섬을 한번 찾아가보기로 했다.

 그해 2월에 나는 아에로플로트항공 SU5437편에 몸을 싣고 2시간 동안 창공을 날아 블라디보스톡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저녁 7시 10분발 007횡단열 차(TSR)를 타기 위해 서둘러 블라디보스톡 역으로 갔다. 밤새 내린 함박눈에 파묻힌 역 주변은 한 폭 의 수묵화였다. 바이칼호수에 가려면 블라디보스톡 역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이르쿠츠크 역에 당도해야 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먼 시간을 탑승할 그 횡단열차는 장장 70시간 동안 4,115㎞를 달려갈 것이다. 열차 승무원들은 모두 제복을 입은 여성들 이었다. 그들은 검표를 하거나 음료와 음식을 팔면서 승객들의 사연을 귀담아들었다. 횡단열차가 가슴 뭉클한 기적소리를 울리며 대평원을 가로지를 때 창밖에는 눈보라가 하염없이 수직으로 휘날렸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먼먼 대륙횡단의 길. 컵밥 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철길 주변에 늘어선 자작나무들이 내 온몸 마디마디에 각인되었다. 4인 1실의 침대칸에서 바라본 설경은 태초의 흔적으로 가득했 다. 그 때문에 누구라도 쉽사리 잠들 수 없었다.

 그 밤의 압솔루트 애플보드카는 목구멍 깊숙이 향기로웠다. 하바롭스크와 카림스카야, 치타 역 등 에서 잠시 기차가 정차할 때마다 승객들은 밖으로 나와 줄담배를 피워대며 주변 풍경을 눈에 담았다. 긴 숨을 몰아쉬며 휘달리던 횡단열차는 2박 3일 만에 비로소 울란우데 역에 도착했다. 얼음호수로 변한 바이칼이 저 멀리 보일 때쯤 007열차는 마침내 이르쿠츠크 역에 당도했다.

​러시아 소설가 안톤 체호프에 의해 ‘시베리아의 파리’로 명명된 이르쿠츠크. 그곳 앙가라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시내관광에 나섰다. 다음날 전용버스 를 타고 우스찌아르다로 갔다. 그곳에서 브리야트 족의 박물관을 보고나서 민속공연도 관람했다. 징키스칸의 어머니가 브리야트족이라고 했다.

​브리야트족과 한민족의 유전자가 95%나 일치한 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와 브리야트 족은 문화적으로 흡사한 점이 여럿 있었다. 브리야트에는 <선녀와 나무꾼>, <심청전> 과 유사한 설화 가 있고, 샤먼(무당)과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성황당, 그리고 <강강수월래>와 흡사한 <유하르> 춤이 있었다. 브리야트족이 살고 있는 알혼섬에 가고자 다시 길을 나섰다. 전용버스로 사휴르따 선착장에 도착한 후 ‘우아직’이라는 미니버스를 타고 결빙된 바이칼호수를 쉼 없이 달려갔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간직한 바이칼호수는 길이 636㎞, 둘레 2200㎞, 1742미터 깊이의 호수다.

​한겨울의 바이칼호수는 호수 전체가 모두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그 호수에는 22개의 섬이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섬이 바로 알혼섬이다. 몽골어로 ‘자연’을 뜻하는 바이갈Baigal에서 유래한 바이칼Baikal호수는 푸르딩딩한 에메랄드빛이었다. ‘우아직’을 탄 우리는 눈 속에 파묻힌 드넓은 시베리아 벌판과 야산 곳곳의 자작나무와 전나무 숲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후지르마을에 인접한 그 알혼섬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날 밤 시베리아의 푸른 눈동자는 결빙된 채 수평선 저 끝으로 우리를 불러들였다. 통나무집 숙소인 ‘바이칼로브 오스트록 호텔’은 코사크족 성채를 모방한 목책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새벽나절, 먼 데서 개들이 서글프게 울부짖었다.

​여명에 휩싸인 호숫가에서 가만가만 속삭이다가 그녀의 눈동자를 이윽히 바라보았다.

‘민족의 시원지’로 일컫는 부르한바위. 알혼섬의 상징이자, 가장 신성시되는 그 바위는 샤먼들이 기도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불그스름한 바위산이 태초의 자태로 꼿꼿했다. 부르한바위 옆의 언덕(섬)에 오르면 ‘세르게’라고 불리는 13개의 신목神木이 오방색 천으로 휘감겨 있었다.

​하늘을 향해 일렬종대로 늘어선 신목은 지상과 지하의 신을 호출하고, 샤먼이 길흉화복을 점치는 곳 이다. 이어 우리는 사라예스끼 해변을 따라 사자섬과 악어바위, 삼형제바위를 둘러보았다. 파도가 켜켜이 쌓아놓은 수정얼음이 옥빛으로 눈부셨다. 러시아어로 ‘송곳니’라고 불리는 하보이바위에서 수많은 수정 고드름을 보고, 또 보았다. 그 얼음동굴 속에는 영원으로 가는 길목이 숨어 있는 듯했다.

​본적지를 찾은 육체는 이제 어디로 향할 것인가. 잠시 머물다가 결국은 집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하는가. 여행의 미학은 원시반본原始返本인가. 삶은 결국 어디론가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 돌아올 때 그는 무언가를 버렸고, 그 무엇을 껴안고 왔을 것이다. 그러다가 뇌리에 다시금 떠오른 건 등 뼈가 휘어지도록 육신의 땀방울로 만든 인생이란 이름의 칵테일파티였다. 바이칼호수 위 별들이 쏟아져 내릴 때 그 눈동자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지난 삶의 그림자에 집착하지 말기로 결심했다. 그간 삶이란 녀석에게 지독한 상처를 입지 않았다면 어찌 내가 그 사슬에서 벗어날 생각을 할 수 있었겠나.

​알혼섬에서 다시 이르쿠츠크로 갔다. 1825년의 12월혁명에 참여한 제정러시아시대 11명의 젊은 귀족들. 그 데카브리스트들은 모든 기득권을 팽개치고 농노제 폐지, 절대군주제 폐지라는 파천황적 발상을 행동으로 옮겼다. 특히 그들은 하층민중들의 인간적 삶을 위해 투신했다. 그 데카브리스트의 아내들은 귀족신분을 포기한 채 모스크바에서 이르쿠츠크로 이주해 왔다. 그들은 지아비들의 석방을 기다리며 원주민들과 함께 새로운 문화를 일구었다. 7년간의 유형생활을 견뎌내며 그들은 조국의 미래를 위해 고통을 자청했다. 세속적 쾌락과 욕망을 내던진 ‘이데올로기’는 그토록 위대했다. 허나 이순의 길목에 들어선 내가 무엇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겠나. 내 뼛속에 일렁이는 한 떨기 먼 그리움이 저 만치서 반짝거렸다. 황홀했던 그날의 순간들이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다시 길 떠나고 있었다.

 

 

* 《쿨투라》 2019년 6월호(통권 6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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