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Theme] 티티카카 호수에 흩어져 있는 60여 개의 갈대섬
[6월 Theme] 티티카카 호수에 흩어져 있는 60여 개의 갈대섬
  • 이기식(고려대 명예교수)
  • 승인 2019.06.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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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티카카 호수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티티카카 호수는 항해가 가능한 호수 중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말이 호수지 바다처럼 넓다. 길이가 170킬로미터, 폭이 70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호수다. 수심은 깊은 곳이 무려 2,000미터를 넘는다. 거기다 호수의 해발은 무려 3,820미터이다. 우리 백두산보다도 높은 곳에 호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높기 때문에 공기는 더없이 맑고, 햇살은 피부를 찌르는 듯이 따갑다. 티티카카 호수 자체는 그 신비로움과 아름다운 풍경으로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거기다 티티카카 호수의 섬에 사는 주민들의 독특한 생활문화를 볼 수 있어서 사시사철 관광객이 몰려든다. 이 곳 티티카카 호수의 섬에 사는 사람들에게 스페인어는 통하지 않는다. 깨추아어와 아이마라어가 제1언어이기 때문이다.

 25인승 버스에 관광객이 꽉 들어찼다. 운전사 바로 옆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바깥 풍경을 잘 볼 수 있었다. 버스가 출발한 지 조금 지나자, 안내원이 나를 보고 맨 뒷자리가 비었으니 그곳으로 가라고 한다. 나는 여기가 내 좌석이므로 여기에 앉아 가겠다고 말했다. 거절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길가의 풍경을 잘 볼 수 있다. 갈수록 고도가 점점 더 높아진다. 멀리 만년설이 덮인 산이 보이고, 자동찻길 옆에는 잡초 밭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곳곳에 작은 늪들도 있다. 버스가 가다가 쉬다가를 반복하니 리마에서 아침에 출발한 버스가 어두워서야 푸노에 도착했다. 푸노는 티티카카 호수 변에 위치한 큰 도시다. 버스는 승객들이 묵을 호텔 앞까지 데려다 준다. 모두가 내리고 버스에 남은 사람은 서넛밖에 없다. 그들도 자신들이 묵을 호텔 앞에 내리고 나 혼자만 버스에 남았다. 내가 예약해 놓은 호텔 이름을 대며 그곳으로 가자고 말한다. 그곳은 버스가 갈 수 없으니 걸어가라고 한다. 길을 모른다고 했더니 손가락으로 대충 가르쳐 주었다. 호텔에 도착하고 보니 버스가 못 다닌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안내원이 결국 나한테 복수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른다. 호텔을 나서니 내 모자 챙이 작다며 좀 큰 것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한다. 배가 드디어 티티카카 호수에 들어서니 가슴이 탁 트인 다. 태곳적 신비를 간직한, 바다처럼 넓은 호수가 아닌가. 배는 잔잔한 호수를 두 쪽으로 가르며 앞으로 나간다. 티티카카는 마냥 신비로울 따름이다. 크기도, 물 색깔도, 주변 환경도, 모두가 신기할 뿐이다. 그러나 선상에 오래 머물 수가 없다. 피부를 찌르는 듯한 원시적 햇살은 더 이상 견디기 힘들 정도다. 선크림을 충분히 발랐지만 피부가 바싹바싹 타는 듯하다. 마치 철판 위에 놓인 삼겹살이 된 듯하다. 해발이 높아서인지 햇빛도 장난이 아니다. 선글래스를 꼈는데도 눈이 부셔 연신 얼굴을 찡그리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다시 선실로 들어선다. 선실에 들어서면 후덥지근하고, 선상에 올라서면 햇살이 따갑고 눈이 부신다. 선실과 선상을 오락가락한다. 대략 한시간 정도 지나니 우로스 섬에 도착했다. 이 섬에는 우로스 족이 사는 곳으로 티티카카 호수에서 최고의 관광지다. 종족을 합쳐 모두 몇 백 명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갈대 인공섬에 살기 때문이다. 이 종족들은 티티카카 호수에서 나는 갈대를 잘라 차곡차곡 쌓아 인공섬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이 섬은 물 위에 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섬을 우로스 섬이라고도 하지만, 영어로는 물 위에 떠 있는 섬Floating Islands이 라고 한다.

우로스 섬들은 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다. 하기야 갈대를 잘라 섬을 만들었으니 어떻게 더 이상 크게 만들 수 있을까. 그나마 큰 섬은 지름이 몇십 미터가 되어 조금 걸을 수가 있다. 그러나 아주 작은 섬은 꼼짝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그냥 쪽배 위 에 사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이들은 갈대를 잘라서 섬을 만들고, 그 위에 갈대로 집을 짓고 산다. 또 갈대로 배를 만들어 이동수단으로 삼는다. 갈대를 말려 땔감으로 사용하고 일부는 먹기도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갈대 없이는 모든 것을 생각할 수가 없다. 갈대로 만든 크고 작은 갈대 섬 60여 개가 이곳 저곳 티티카카 호수에 흩어져 있다. 가장 작은 섬에는 한 가족이 외롭게 살고 있다. 그러다 갈대를 점점 더 많이 쌓아 섬이 더 커지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 수도 있다. 즉 갈대섬이 감당할 수 있는 숫자만이 그 위에서 사는 것이다. 실제 섬 위에 발을 내디디면 바닥이 푹신푹신하다. 혹 몸이 갈대섬 아래로 쑥 빠지지나 않을까, 조금 겁이 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가장 큰 섬에는 학교도 있고 우체국도 있다.

 우로스 종족들은 몇 백 년 전에 이곳에 갈대 인공 섬을 만들어 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잉카족과 코야스족으로부터 종족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물 위에 살면서 외부와 모든 관계를 끊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사이에 그들의 고유 언어인 우로스어는 잃어버리고 현재는 아이마라어를 사용한다. 이들은 티티카카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산다. 갈대로 만든 배를 타고 나가 물고기를 잡는다. 갈대로 불을 지펴 물고기를 요리한다. 그리고 싱싱한 갈대 뿌리도 먹는다. 오늘날에는 관광객으로부터 입장료를 받고, 또 그들이 만든 기념품을 판다. 갈대로 만든 움막에서 잠을 잔다.

 티티카카 호수에 섬을 만들어 이들이 외롭게 살아간 지 몇 백 년이 지났다. 하지만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과거나 현재나 별 차이가 없다. 관광객의 방문을 제외하면 그렇다. 우로스 섬에서는 몇 백 년이라는 시간이 멈춰버린 것이다.

 

 

* 《쿨투라》 2019년 6월호(통권 6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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