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9] 트로트의 정점, 조용필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9] 트로트의 정점, 조용필
  • 유성호(본지 주간, 한양대 국문과 교수
  • 승인 2019.05.01 0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편적 슬픔의 노래

 우리 가요의 장場에서 트로트의 위상은 매우 크고 또 특별하다. ‘뽕짝’이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일컬 어지는 ‘트로트Trot’는 사실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우리 대중가요 양식이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전통가요라고 칭해지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수입가요라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은 서양의 팍스 트롯fox trot을 받아들여 도롯도로 변용하였는데 우리나라에 그것이 들어와 한 시대를 수놓았던 것이다. 우리 것이 3박자 넷을 한 절로 삼는 삼분박인 데 비해, 일본 도롯도는 4분의 2박자나 4박자에 일곱 글자와 다섯 글자를 한 단위 한 절로 삼는 칠오조 가사를 주로 썼다. 말도 박도 율도 달랐지만 이 새로운 양식은 우리 창작 대중가요의 주류로 곧 자리를 잡게 되었다. 초기에는 일본곡을 번안하여 부르다가 1930년 전후로 국내 창작이 본격화하였는데, 그 당시에는 특별한 양식 명칭 없이 그냥 ‘유행가’나 ‘유행소곡’ 정도로 불렸다. 이때로부터 한국 가요사에는 ‘트로트’와 ‘신민요’가 양대 축을 이루게 된다. 신민요 가수로 유명했던 강홍식은 배우 강효실의 부친이요 배우 최민수의 외조부이다. 시인 유도순과 강홍식이 콤비를 이루어 신민요로 대중들의 인기를 끌었는데, 유도순의 걸작 <시골 영감>은 지금도 유명하게 전해지고 있다.

 우리가 트로트의 걸출한 사례를 나열한다면 그것은 한국 가요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빛나는 성좌를 이룰 것이다. 1930년대 작품인 이애리수의 <황성옛터>, 고복수의 <타향살이>,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 등은 그 가운데서도 빼어난 대표곡들이다. 대체로 트로트 가사는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 혹은 신파적 요소를 품은 그리움과 향수鄕愁 그리고 자기 연민의 태도를 기반으로 했다. 애절한 슬픔의 노래일 경우가 많았는데, 전수린, 손목인, 박시춘, 김해송 등의 작곡가가 트로트 의 음악적 차원을 한 단계 높여주었다. 김해송은 이난영의 남편이었다. 해방 후에도 이미자, 남진, 나훈아, 배호, 하춘화 등으로 이어진 트로트 양식은 더욱 큰 폭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갔다. 이때 박춘석이 불멸의 작곡가로 이름을 남겼다. 그러다가 1976년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에 와서 트로트는 다시 보편적 대중가요의 전면에 서게 되고, 조용필은 <미워 미워 미워>, <허공> 등을 통해 트로트 장르에서도 정점에 서게 된다. 트로트에 대해 일부에서는 지나친 애수의 감정을 담고 있기 때문에 퇴폐적이고 불건강하다는 비판이 이루어졌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보편적 슬픔을 담아낸 양식적 특성을 보인다는 긍정적평이 따라붙기도 했다. 조용필의 노래는 바로 그 슬픔을 향한다.

 

‘못 잊음’의 역설적 미학

 조용필 3집 앨범 타이틀곡인 <미워 미워 미워>는 정욱 작사, 정풍송 작곡의 노래이다. 정풍송은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하였고, 우리 가요사에 한상일의 <웨딩드레스>, 이상열의 <아마도 빗물이겠지>, 홍민의 <석별>, 조영남의 <옛 생각> 등 명곡들을 남긴 분이다. 그런데 작사가 정욱은 누구인가? 정풍송은 작곡할 때에는 자신의 본명을 썼고, 작사가로 이름을 낼 때는 따로 예명인 ‘정욱’을 썼다. 결국 정욱과 정풍송은 동일인인 셈이다. 그가 두 개의 이름을 쓴 것은 작사가, 작곡가, 편곡자로 많은 활동을 했지만 돌아오는 대가가 너무 작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2집 이후 8개월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1981년 7월에 발매한 조용필 3집에 정풍송은 <미워 미워 미워>를 준다. 이 노래는 조용필이 얼마나 위대한 트로트 가수인가를 증명해낸 명곡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음반은 A면과 B면으로 정확히 구분되어 다른 음악적 차원을 구축했는데, 가령 A면은 <일편단심 민들레야>, <황성옛터> 등 트로트 곡으로만 엄선했고, B면은 록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로 구성했던 것이다. A면을 빛나게 한 트로트의 절창은 단연 <미워 미워 미워>였다.

 

나뭇잎이 떨어져 바람결에 뒹굴고
내 마음은 갈 곳 잃어 낙엽 따라 헤매네
잊으라는 그 한 마디 남기고 가버린
사랑했던 그 사람 미워 미워 미워
잊으라면 잊지요 잊으라면 잊지요
그까짓 것 못 잊을까 봐.
이슬비가 내리네 소리 없이 내리네
님을 잃은 내 가슴을 하염없이 적시네
잊으라는 그 한 마디 남기고 갈 바엔
사랑한다 왜 그랬나요 미워 미워 미워
잊으라면 잊지요 잊으라면 잊지요
그까짓 것 못 잊을까 봐.

 

 일찍이 우리 문학사에서 ‘잊음/못 잊음’이라는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대상에 대한 항구적인 ‘못 잊음’을 노래한 시인은 김소월과 한용운이다. 소월은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먼훗날 그때에 <잊었노라>”(「먼 후일」)라고 노래하고, 만해는 “구태여 잊으려면/잊을 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잠과 죽음뿐이 기로/님 두고는 못하여요”(「나는 잊고저」)라고 노래 함으로써, 이들은 2인칭에 대한 불멸의 ‘잊을 수 없음’을 특유의 역설逆說로 표현하였다. 조용필의 간절하고도 폭발적인 목소리 역시 잊으라는 한 마디 남 기고 떠난 이를 향해 결코 잊지 못하겠다는 말을 “잊으라면 잊지요 잊으라면 잊지요/그까짓 것 못 잊을 까봐”라는 반어적 외침으로 표현한다.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여기서 ‘나뭇잎(낙엽)’은 수척하게 남은 이의 이미지를 환기하고 있고, ‘바람결/이슬비’는 남겨진 자의 마음을 뒹굴게하고 젖게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바람 불고 비오는 가을 풍경 속에서 남겨진 자의 마음은 갈 곳을 잃고, 그는 “잊으라는 그 한 마디 남기고 가버린/사랑했던 그 사람”을 향해 “미워 미워 미워”라는 반어적 사랑 노래를 부르고 있을 뿐이다. 어디 밉기만 하겠는가.

 음악평론가 임진모는 이 곡을 두고 “<미워 미워 미워>를 통해 사람들은 숨 막히는 두려운 시대상황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한풀이’를 한 것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전두환 대통령 시대가 반대급부로 조용필의 소리, 저의 외침을 더 리얼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지요.”라고 말함으로써 이 노래가 한 시대에 대응하는 역할을 했다고 분석한 바 있다. 그러고보니 무려 백만 장이 팔린 조용필 3집 앨범 표지에는 우수에 가득찬 조용필의 모습이 이색적이다. 다른 앨범처럼 활짝 웃거나 열창하는 모습을 담기지 않고 한 시대의 비극성을 유추하게끔 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표정이 그의 귀를 가린 장발과 어울리고 있다. 어쨌든 이 노래는 간명하게 마무리되는 “그까짓 것 못 잊을 까봐”라는 종결 어사를 통해 대상을 향한 강한 항구적 열망과 그리움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미워 미워 미워>는 그 인기의 연장선상에서 같은 이름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최동준 감독, 이희우 각본으로 현진필름에서 제작하였다. 음악은 정풍송이 맡았다. 음반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1982년 11월 27일 개봉하였고 당시 최고주가를 날리던 임동진과 안소영이 주연을 맡은 멜로물이었다. 노래의 인기를 못 따라가고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다.

 

허공 속에 묻힐 그 약속

역시 정욱 작사, 정풍송 작곡으로 대중들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노래는 <허공>일 것이다. <비 오는 거리>(5집, 1983), <네 입술에 그대 눈물>(6집, 1984)도 정풍송이 만들어 조용필에게 건넨 작품들 이지만, 대중적 인지도와 영향력에서 <허공>은 단연 압도적이다. 이 노래는 1985년에 발매된 조용필 8집의 타이틀곡이다. 이 앨범은 조용필의 대표곡 <킬리 만자로의 표범>, <바람이 전하는 말>, <그 겨울의 찻집>, <상처> 등을 수록하여 그야말로 황금 앨범으로 남았다. <허공>은 말 그대로 ‘허虛’와 ‘공空’이 합쳐진 무無의 공간이요 모든 것이 흩어져 사라져가는 폐허의 공간이기도 할 텐데, 조용필은 그 허공 속으로 우리의 사랑도 미움도 모두 사라져갈 것임을 노래한다.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
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
사랑했던 마음도 미워했던 마음도
허공 속에 묻어야만 될 슬픈 옛 이야기
스쳐버린 그날들 잊어야 할 그날들
허공 속에 묻힐 그날들
잊는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미련이 남아
돌아선 마음 달래보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
설레이던 마음도 기다리던 마음도
허공 속에 묻어야만 될 슬픈 옛 이야기
스쳐버린 그 약속 잊어야 할 그 약속
허공 속에 묻힐 그 약속


허공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은 소멸의 역동성이라고 할 만하다. 허공은 오랜 시간 생명들이 걸어온 길이기도 하고, 그것들이 한시적 목숨을 마감하고 흩어져갈 길목이기도 하다. 인간 역시 허공이라는 창을 통해 꿈을 꾸고 시간을 견뎌간다. 이 노래에서 허공 속으로 흩어져가는 것은 오랜 ‘꿈’과 ‘사랑’의 마음이다. 멀어짐과 아쉬움 속에서 떠나는 ‘그대’를 두고 누군가 “사랑했던 마음도 미워했던 마음도/허공 속에 묻어야만 될 슬픈 옛 이야기”를 노래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오랜 날들의 사랑도 미움도 모두 스쳐버린 날처럼 잊어야 할 날처럼 사라져갈 뿐임을 알게 된다. 또한 잊지 못할 것이 분명한 그대를 두고 “설레이던 마음도 기다리던 마음도/허공 속에 묻어야만 될 슬픈 옛이야기”임을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그 무수한 약속들도 결국 허공 속으로 사라져갈 것을 예감할 뿐이다.

 이 노래의 에피소드는 정풍송에 의해 세상에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원래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아쉽고 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 너무나 멀어진 것은 ‘그대’가 아니라 ‘민주’였다고 한다. ‘서울의 봄’ 이후 민주주의의 회복을 열망했던 그는 신군부 등장 이후 펼쳐진 억압적인 시대상황을 두고는 “설레이던 마음도 기다리던 마음도 허공 속에 묻어야만 될 슬픈 옛 이야기”가 되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민주’ 라는 말을 썼다가는 고초를 당할 것이 분명하여 순간적으로 ‘그대’라는 말을 넣었는데, 절묘하게 노래 의 작의作意는 보존한 채 애절한 사랑 노래로 변모 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정풍송은 대중예술도 사회적 양심과 책임을 가지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 분이 다. 뽕짝의 대표 작곡가이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한 시대의 절망과 우수를 담아내려는 예술적 결기가 있었던 것이다.

 

트로트의 일가를 이루다

 정풍송은 조용필을 이렇게 회고한다. “제가 조용필 씨하고 일을 하면서 느낀 건데 어떤 걸 가르친다든지 감정을 이쯤에서는 이 정도만 넣으라고 말을 하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아요. 또 녹음할 때나 공연할 때 최선을 다하는 것, 혼신을 다하는 것이 가수로서 히트를 칠 수 있었고 장수할 수 있었던 요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게 트로트라는 양식 안에서 조용필-정풍송은 만났고, 모든 면에서 최선을 다 하고 혼신을 다한 조용필은 <미워 미워 미워>와 <허공>을 4년 터울로 히트시켰다.

 다시 트로트로 돌아가보자. 우리 주위에서는 트로트를 즐겨 부르면서도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이른바 ‘국악國 樂은 오랫동안 전해져온 전통 음악이지만 접근하기 쉽지 않았던 데 비해, 트로트는 많은 이들의 접근성을 한층 높여준 음악 양식이었다. 발라드가 서양에 서 들어와 우리 것이 된 음악이라면, 트로트는 일본을 경유하여 착근한 음악일 것이다. 간극을 좁히기 어려운 양편향의 이해와 평가 속에서 오늘도 사람들은 트로트를 부르고 네박자의 꿈을 꾼다. 조용필은 그 트로트에서도 정점을 보여주면서 당당하게 일가를 이룬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