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음악] 21세기의 통기타 음악
[9월 음악] 21세기의 통기타 음악
  • 서영호(뮤지션, 본지 편집위원)
  • 승인 2018.09.01 0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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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뮤지션
악동뮤지션

기타를 쳤어야 했나라고 생각한 적이 많다.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인 5,6살 때 플라스틱 장난감 기타를 매고 어른들 앞에서 그렇게 끼 충만한 퍼포먼스를 자주 펼쳤었다는 얘기를 들었고 나도 어렴풋 기억나는 것 같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올리비아 뉴튼 존의 <렛츠 겟 피지컬>과 윤수일의 <나나>가 메인 레퍼토리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등 떠밀려 간 학원에서 시작한 피아노와의 인연으로 결국 건반 연주자로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그때 부모가 아이에게 진짜 기타를 쥐어줬더라면 존 스코필드, 존 메이어 저리가라는 기타리스트가 되었을 거라고 혼자 크게 안타까워하곤 한다. 피아노의 영롱함과 고매함, 엄격함도 좋지만 팝음악에서는 역시 기타인거 같다.

한국에서 기타가 주목받은 건 70년대 청춘문화를 상징했던 포크 음악을 통해서다. 이후에 긴 머리 늘어뜨리고 퇴폐미 물씬 풍기는 록커들과 전자기타에 ‘멋짐’ 타이틀을 많이 내주긴 했지만 어찌됐든 기타를 직접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줄곧 ‘싱어송라이터’의 상징이었고 고뇌하는 지성 뮤지션의 악기로는 역시 전자기타보다는 통기타가 제격이다. 그런데 한동안 주류에서 사라졌던 소위 통기타 가수들이 2010년대 들어서 메인 차트에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십센치, 버스커버스커와 장범준, 에디킴, 로이킴, 존박, 악동 뮤지션 등 새 세대의 뮤지션들이 그 흐름을 주도했고 이들이 하는 음악은 포크라기보다는 이른바 ‘어쿠스틱 팝’이라고 불렸다. 음악 스타일뿐 아니라 요즘 밴드 이름에서부터 각종 음악 페스티벌이나 행사들에서 기획으로 내세우는 ‘어쿠스틱’이란 말은 ‘전기 증폭이 되지 않은’이란 뜻으로 앰프를 거치지 않고 생으로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악기나 연주를 말한다.

어쿠스틱 악기는 보다 아날로그적인 것, 보다 인간적인 것, 보다 자연적인 것의 가치와 연관된다. 80년대부터 음악 장비 테크놀로지의 본격적인 발전과 함께 뮤지션과 음악시장은 기계의 회로가 만들어 낸 소리의 매력에 탐닉해왔고 이것은 곧 일렉트로닉이나 댄스 장르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기계가 만들어낸 소리는 자연의 세상에 없던 신기한 소리이거나 혹은 자연의 소리를 모방하면서 얻어진 또 다른 매력을 지닌 결과물 이였고 이러한 새로운 기계ㆍ전자음의 발전은 곧 나날이 무섭게 발전하는 물질문명 세계의 전개와 닮아 있었다. 하지만 90년대를 지나 2000년대로 접어들며 우리는 인간성의 회복, 인문학의 재강조, 인간다움의 가치 등에 다시 주목할 필요를 느꼈고 이는 어쿠스틱 음악의 부활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하게는 기계음의 분절성, 건조함, 정형성 등에서 비롯된 피로감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지만 그 근저에는 이러한 시대적 욕구가 깔려있다.  

하지만 인간성의 회복이 무조건적인 과거 상태로의 회귀를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새로운 어쿠스틱 음악도 과거 이러한 음악의 전형이었던 포크나 포크록만의 재현으로 일어나지는 않았다. 에디킴이 부르는 소울 필 충만한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이나 <너 사용법>을 떠올려보자. 악동 뮤지션은 통기타를 치면서 랩을 하고 일렉트로닉 댄스 비트를 얹는다. 볼빨간 사춘기도 어쿠스틱 기타의 찰랑거림에 팍팍 꽂히는 강한 전자비트를 깐다. 사운드는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하되 다른 음악적 요소에서는 동시대의 감각과 트렌드를 자연스럽게 반영하고 있으며 이런 네오포크적 시도나 R&Bㆍ소울적 리듬과 창법 구사, 전자음과의 배합, 랩의 삽입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현재성을 획득하고 있다.

십센치

가사도 과거의 포크와 많이 달라졌다. 지난 80~90년대까지는 민족, 국가, 산업화, 도시화, 민주화, 자유, 세계화와 같은 가치와 ‘거창한 이야기’가 사회적 관심사였다. 하지만 경제, 정치적 시대 과제가 어느 정도 실현된 이후의 한국 사회는 이제 보다 개인적이고 소소하며 사소한 일상사의 정감의 가치와 표현에 집중하게 되었다. 사랑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비장미를 동반한 애절한 사랑, 운명적 사랑, 비극적 사랑 혹은 인생의 사랑 같은 이야기가 끊임없이 노래되고 있지만, 이제는 보다 가벼운 만남이나 일상에서의 작은 탐색전과 실랑이, 설레임 같은 것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진다. 십센치는 ‘아메리카노’가 좋다고 ‘설탕 빼고 달라고’ 줄곧 외치는가 하면 볼빨간 사춘기는 ‘나 오늘부터 너랑 썸 탈거야’라고 상대에게 선언한다. 그리고 그냥 대화하듯 내뱉는 이런 이야기를 실어 보내는데 어쿠스틱 팝 음악의 소박하고 따뜻한 사운드는 보다 적절한 음악적 선택처럼 보인다.

2017년 멜론의 연간 인기곡 100곡을 보니 소위 이런 어쿠스틱 팝이라 할 만한 곡이 대략 15곡정도 된다. 한국 대중가요의 큰 축(?)인 댄스와 발라드 그리고 최근 급부상한 힙합 사이에서 15%라는 수치는 이 음악스타일이 어엿이 일정의 시장을 구축했음을 의미한다. 날로 발전하는 디지털 전자 악기의 기술이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지만 통기타 하나에 의존해서 자작곡을 직접 부르는 뮤지션의 모습과 인간적인 통기타 소리에 대한 갈망은 한동안 쉽게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 《쿨투라》 2018년 9월호(통권 5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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