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효 작가] 감촉여행자의 ‘남미 히피로드’
[노동효 작가] 감촉여행자의 ‘남미 히피로드’
  • 김성신(출판평론가)
  • 승인 2019.06.01 0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동효에게 김성신이 묻다

김성신: 반갑다. 노동효 작가가 남미에서 막 돌아왔을 때가 2017년 7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가 그해 여름 만났는데 벌써 해가 두 번이나 바뀌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나?

노동효: 날개 달린 나무를 본 적 있는가? 지구에 존재하는 생물의 기관 중에서 나는 ‘날개’와 ‘뿌리’를 가장 갖고 싶었다. 그것도, 동시에! 다른 대륙으로 떠날 땐 ‘날개’를 펼치고, 귀국하면 ‘뿌리’를 펼친다. 고국으로 돌아와 지인들을 만나고. 모국어로 된 영화·연극·뮤지컬을 보고. 모국어로 된 책·신문·잡지를 읽고. 모국어로 된 노래를 들으며 뿌리를 펼치는 사이 매화 피는 봄, 매미 우는 여름, 단풍 드는 가을, 눈 내리는 겨울이 지나갔다.

김성신: 남미로 떠난 해가 2015년 봄이었다. 세월호 참사 후 일 년가량 지났을 때였다. 그때 당신이 남미로 떠나며 남겼던 말이 기억나는가? ‘여기로부터 가장 먼 곳으로 간다. 박근혜 정부의 한국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라고 했었다. 탄핵과 정권교체가 당신의 귀국 일정을 앞당겼나?

노동효: 세월호 사건 당일 나는 진도에 있었다. 우연이었다. 4월 16일 이른 아침 길을 나섰고, MP3 음악을 틀고, 국도와 지방도를 넘나들며 진도에 닿았을 땐 저물녘이었다. 빈 한옥에 짐을 내려놓고, 식사를 준비한 후, JTBC 뉴스룸을 켰다. 그때의 정적을 잊지 못한다. 1년 후 한국을 떠났다. 가장 먼 곳으로 갔지만, 한국의 기사를 접하면 모국어를 잊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그러나 모국어를 어떻게 잊겠는가? 대신 글을 썼다. 그 글이 모여 <남미 히피 로드>가 되었다. 남미 사람들의 모습인데, 각각의 이야기를 파고들면 인류라는 핵을 통과해 다시 지구 반대편, 한국(의 문제)으로 튀어나왔다. 표현의 부자유, 저녁 없는 삶, 갑을로 나뉘는 인간관계, 다양성 결핍, 세대 간 소통의 어려움. 박근혜 정부, 새누리당(자한당)이 재집권하는 상황이라면, 나는 지금도 한국에 없었을 것이다.

김성신: 노동효 작가는 한국의 대선기간 동안 페이스북을 통해 아주 감동적인 장면을 보여줬다. 부재자 투표를 위해 아마존 밀림을 가로질러 장장 열흘을 오간 것으로 안다. 대체 그건 어떤 종류의 열정인가?

노동효: 추운 겨울 영하의 바람이 부는 광장에서,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있었던 천만 시민의 열정에 비하면 내가 고작 열흘에 걸쳐 아마존 밀림을 횡단해 투표한 일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으로나마 ‘그곳에 함께 있지 않았다’는 부채의식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2017년 5월 내가 투표할 기회를 준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내가 열정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고국의 시민들이 겨울바람 속에서 들었던 촛불이 내 미지근한 열정에 불을 지른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한국인으로서 ‘자괴감’을 줬다면 촛불혁명은 한국인으로서 ‘자존감’을 갖게 해주었다.

김성신: 이제 당신의 새 책 이야기를 해보자. 단도직입적으로 먼저 묻겠다. 왜 ‘히피’인가? 왜 여기의 우리가 지금 히피의 삶을 보고, 알아야 하는가?

노동효: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니 구구절절 설명 없이 히피가 ‘추구하는’ 삶과 가치만 들여다보자. 이들은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를 반대하고 3R 즉, Recycle(재활용), Reuse(재사용), Reduce(폐기물 줄이기)를 실천한다. 공존의 대상을 인간뿐 아니라 동물로 확대하여 육식보다 채식을 선호한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기계보다 풍력, 태양열을 이용하는 기계나 아날로그 기계를 만들어 사용한다. 집을 지을 땐 주로 자연으로 환원되는 흙을 사용하고 목재사용도 최소화한다. 인종, 종교, 지역에 관계없이 ‘형제’라고 여기며 위아래 없는 관계를 맺고 예술을 스스로 만들고 향유하길 즐긴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히피 르네상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것이 나의 결론이다. 물론 단점도 있다. 의사결정이 너무 느리다는 것이다. 모든 구성원의 의견을 들어주고, 오이 한 쪽도 나눠 먹고, 리더도 따로 없다. 그러나 인류가 ‘어벤저스’처럼 ‘타노스’를 상대로 한 전쟁터에 서 있는 것도 아닌데, 서로 다른 의견을 귀담아 듣고, 골고루 나누고, 천천히 간다고 해서 무슨 상관인가.

김성신: <남미 히피 로드>를 보면 당신의 시선은 히피를 보는 것이 아니라, 히피가 된 자신을 보고있더라. 왜 히피가 되었나? 히피가 되어보니 어떻던가? 당신은 지금 히피인가?

노동효: 1970년대 태어나 1990년대 20대였던 청년을 한국 사회는 ‘신세대’라고 불렀다. 그러나 스스로 ‘나는 신세대야!’라고 말하는 이는 없었다. 그런 명칭은 스스로 규정짓는 이름이 아니라 타인이 부르는 이름이다. 히피도 마찬가지다. 그 많은 나의 히피 친구들 중에 자신을 ‘나는 히피야!’라고 말하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관광객들과 정시에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내 친구들을 ’히피‘라고 불렀을 뿐이다. 누군가가 나를 히피로 본다면, 나는 히피다. 그리고 나의 남미여행은 마치 <이지 라이더>, <내마음의 아이다호>,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데이킹 우드스탁>, <아메리칸 허니>… 이런 히피 로드 무비들을 죄다 섞어 놓은 것과 같았고, 나는 히피들과 있을 때 가장 편안했다.

김성신: 나는 출판평론가로서 당신의 책에 내 나름의 해석을 해보았다. <남미 히피 로드>의 가장 특별한 점이라면 ‘온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식인의 사유를 요구하면서도 시니컬한 차가움이 없더라. 대신 따뜻함과 뜨거움, 그 사이만을 오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체온의 따뜻함과 열정의 뜨거움이랄까. 결국 인간은 죽기 전까진 결코 체온이 변하지 않는, 우리는 항온동물이란 점을 당신의 책이 상기시키더라. 체온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 뜨거움을 동경해야 하는 그런 존재로서의 인간 말이다. 내 해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노동효: 무섭다. 보통 자신이 지금 입고 있는 팬티색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만 그런가? 아무튼 그런 나에게 와서는 ‘지금 빨간색 팬티 입고 있네!’라 고 누가 말한다면 어떤 느낌일 것 같나? 게다가 바지춤을 풀어보니, ‘헉, 빨간색 맞네!’ 딱 그와 비슷한 느낌이다.

김성신: 별 쓸데없는 걸 다 맞추고 있냐는 뜻이냐?

노동효: 아니다. 재미있고 신기하다는 뜻이다. 당신 말을 듣다 보니, 영화 <카우걸 블루스>의 원작자 톰 로빈스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평화를 믿는다면, 평화롭게 행동하길. 사랑을 믿는다면 사랑스럽게 행동하길” 그러고 보니 지적인 히피를 만난 적은 많지만, 냉소적인 히피를 만난 적은 없다.

김성신: 내 관점에서 <남미 히피 로드>는 여행기가 아닌 방랑기다. 목적지가 따로 없고, 돌아다님 그 자체가 목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방랑기’라는 명칭으로 굳이 분류하고 싶었다. 그런데 방랑의 삶이 당신에게는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런 당신의 삶의 끝에서 당신은 무엇을 보거나 만나기를 원하는가?

노동효: 나는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이 말을 정말 좋아한다. “본질에 다다르느냐 못 다다르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본질을 탐색해나가는 ‘과정’ 그 자체다”

김성신: 남미대륙을 두 번이나 돌았던 것으로 안다. 첫 번째는 혼자였고, 두 번째는 아내와 함께한 여정이었다. 그 두 번의 여정은 무엇이 서로 달랐나?

노동효: 남미를 떠도는 동안 아내와 7개월 만에 만나기도 했는데 긴 시간 떨어져 있다가 만나면 함께 열흘 정도 여행했다. 그건 다른 형태의 신혼여행이 었다. 나홀로 방랑 후, 아내를 모시고(!) 남미대륙을 한 바퀴 더 돌았다. 사전답사-아내 의전용 단어다-로 점찍어둔 숙소에서 아름다운 아침을 맞이하고, 운치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를 가고, 인상적인 유료 공연을 보며 7개월을 보냈다. 그렇게 ‘나 홀로 방랑’과 ‘아내와의 여행’으로 다른 층위의 여행을 경험할 수 있었다.

김성신: 남미대륙에서 당신이 만난 사람 중에 당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가?

노동효: 체 게바라다. 현존인물이 아니라 좀 이상한가? 그러나 나는 체를 만났다. <남미 히피 로드>에서도 묘사했지만 체가 체포되고 사살당했던 볼리비아의 시골 마을을 찾아갔다. 거기서 체가 즐겼던 쿠바산 시가에 불을 붙이고 추모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동안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회개혁가’와 ‘여행가’ 둘 중에 어느 하나를 포기할 수 없었기에 둘 다 충족하는 방법으로 난 ‘게릴라’를 선택했다.” 이게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체의 목소리가 실제 내 귀에 들렸다는 거다. 나는 체에 관한 어떤 글에서도 이 문장을 본 기억이 없었다. 볼리비아에서 자료를 뒤져보았는데, 그가 어머니께 보냈던 편지에서 그와 유사한 발언을 찾아냈다. 내가 이전에 봤던 구절이 확실히 아니었다. 이 신기한 경험을 통해 나는, 내가 체와 같은 욕망, 같은 인생의 딜레마를 가지고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성신: 노동효는 왜 책을 쓰는가? 그 많은 문장을 통해 이 세상에 던지고 싶은 당신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노동효: ‘사회개혁가’와 ‘여행가’ 둘 중 하나를 포기 할 수 없기에 <남미 히피 로드>와 같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 나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길 위의 노동자’ 혹은 ‘트레블 레지스탕스’라고 여긴다. 여행기로도 세상을 뒤집을 수 있을까? 내 문장이 다다르고 싶은 지점은, 21세기의 <자본론>이다.

김성신: 당신처럼 남다른 삶을 사는 이는,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질문을 받을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받기 싫은 질문이나 당신을 가장 짜증 나게 하는 질문이 있다면?

노동효: ‘그게 돈이 되나요?’

김성신: 노동효의 <남미 히피 로드>와 거의 같은 시기에 출간된 소설가 김영하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가 지금 종합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몇 주째 지키고 있다. 나는 두 작품이 모두 여행을 주제로 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비교를 해보게 되었다. 내 생각에 김영하가 ‘지식여행자’라면, 노동효는 ‘감촉여행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여행의 이유>가 독자를 꿈꾸게 한다면, <남미 히피 로드>는 독자를 설레게 한다. 두 책을 겹쳐 읽으며 이렇게 구분해 보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그게 당신을 읽는 우리에게 도움이 될까?

노동효: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는 말이 있다. 독자들이 그 두 가지 모두를 일상적으로 향유하길 바란다. ‘지식여행자’와 ‘감촉여행자’로 구분하는 당신의 언어가 나는 좋다.

김성신: 마지막 질문이다. 방랑자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답게, ‘다음 여정은 어디인가?’라고는 묻지 않겠다. 당신이 떠난 이후에 ‘와! 역시 노동효!’라고 탄성을 터뜨리고 싶으니까 말이다. 대신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노동효: ‘기억되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없다. 난 ‘구름’을 좋아한다. 구름은 무정형이고 끊임없이 모양이 바뀐다. 구름을 오래 지켜보고 있으면, 결국 하늘엔 하늘만 남는다. 내 삶이 끝내 하늘만 남기고 사라지는 구름 같기를 원한다.

김성신: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이게 히피식 인사일지는 모르겠지만, 세상 그 어디를 떠돌든 자유와 평화와 사랑이 당신 안에서 영원하길.

 

 

* 《쿨투라》 2019년 6월호(통권 60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